글 수 150
눅11:33-36
오늘 본문은 비교적 짧지만 세 부분으로 구별하여 볼 수 있습니다. 33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등불과 빛의 비유이고, 34-35절은 눈이 갖는 기능과 그것이 몸 전체에 대하여 갖는 관계의 비유이며, 36절은 예수님께서 앞의 두 비유를 결합시키시며 의도하신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33절의 등불과 빛의 비유는 누가복음에서만도 8:16에 이미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한 근본적인 이유가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님께서 비추시는 밝고 분명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임을 지적하는 데에 그 비유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는 자들의 요구를 거부하신 것은 진리를 감추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 자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밝히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향해 믿음의 눈을 뜰 것을 촉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켤 때에는 방과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밝혀서 방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더듬거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두는 법이지 기껏 등불을 켜서는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진리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나라와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말씀선포와 치유의 사역을 만민이 알도록 드러내놓고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귀를 기울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눈을 떠서 그가 행하시는 일을 보기만 하면 이미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만 계속 보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확실한 증거로서 보여줄 것이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들어올 방과 그 방문 입구에 있는 등경에 높이 등불을 켜놓았기 때문에 눈만 뜬 사람이면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등불을 켜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이지 못하고 패역한 세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남은 한 가지 일은 자기 자신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돌이켜보는 것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방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사시며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말씀과 친히 행하신 수많은 일들, 그리고 특히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로 확증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복음에 눈을 감고 외면하는 사람은 다른 어떤 놀라운 증거를 보여주어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34-35절의 눈과 몸의 비유입니다. 35절을 먼저 다시 봅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밖의 빛이 밝지 않다고 더 큰 빛을 비추어줄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밝은 밖의 빛이 자기 속에 들어오지 않아서 자기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지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일차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눈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눈은 우리에게 빛이 들어오는 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이 밝으면 우리의 삶이 밝아질 것이고, 우리 눈이 어두우면 우리의 삶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34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이 말씀의 뜻을 잘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우리 몸의 모든 지체를 위한 등불과 같아서 눈이 밝아야 다른 지체들이 바르게 움직이며 그 할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우리가 무슨 물체를 손으로 정확하게 잡을 수도 없고 무엇을 향하여 팔을 정확하게 뻗을 수도 없으며 어디를 향해서 걸음을 정확하게 내디딜 수도 없고 우리의 몸을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킬 수도 없습니다. 또 눈이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봐주어야 우리의 사고나 판단이 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빛이 없어서 어디를 못가겠다 무엇을 못하겠다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눈과 몸에 관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눈과 삶에 관해서도 진리입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이라는 영적으로 건강한 눈이 있으면 우리의 삶 속에는 밝은 진리의 빛이 쏟아져 들어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이 들어오면 시들어가던 우리의 심령이 활력을 얻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알지 못하던 기쁨이 솟아납니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일어납니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과 확신 때문에 이 세상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이 세상의 악과 불의와 거짓과 그것들의 공격과 일시적인 득세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견디며 위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는 의지가 서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이유와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사명을 다하려고 열심히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과 삶이 윤기를 띄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온통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진리의 빛이 가득하게 되면 어두움 속에 숨어 있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드러나게 되고, 그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게 될 것이며,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깨끗하고 빛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소유하게 되면 우리의 발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방황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바르게 행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입은 진리만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빛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이 될 때에 우리의 삶은 환히 빛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36절에서 주어지는 결론적인 말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마음의 완악함을 던져버리고 믿음의 눈을 떠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에 거하면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고 밝아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 첫 절인 33절의 말씀 속에는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등경 위에 켜놓아 온 방을 밝히 비추어 사람들이 방에 들어오도록 돕는 등불의 빛과 같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받아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바른 길로 안내하는 등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명령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 33절의 암시가 34-35절의 비유를 통한 말씀과 결합되면서 36절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고 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우리가 받아 우리 또한 그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빛을 받은 것은 그 진리의 빛을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경 위에 두기 위해서입니다. 등경 위에서 주위를 환히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데나 놓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여기저기 마음대로 가게 하는 방향성 없는 등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등불이 되어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에로 나아오고 들어가게 하는 등불로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거기서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적 사명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 시대적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답을 우리는 36절의 말씀을 조금 더 면밀히 살핌으로써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36절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우선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하신 말씀에 주목합니다. 34절에서 온 몸이 밝으려면 눈이 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려면 눈이 아주 건강해야 합니다. 여기서 눈은 영적인 눈이고 믿음의 눈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을 밝히 뜨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더 열심히,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확신에 거하도록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강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진리를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행하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진리로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을 비추고 깨끗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교회를 비추며 그 속에 늘어붙어 있고 숨어있는 모든 비신앙적이고 반복음적인 요소들을 밝혀내고 털어내야 할 것입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진리의 빛이십니다. 그 완전한 진리의 빛을 받아 우리 또한 어두운 데가 조금도 없이 온전히 밝은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가르침과 명령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둡고 더럽고 거짓되고 부패하고 악한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 하신 그리스도인들이 국민 넷 중 하나는 된다고 하는데 부패와의 싸움에서 계속 밀리고 어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부패와 어둠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의지나 용기조차 없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우리가 오히려 사회로부터 어둠의 세력이나 부패한 집단으로 몰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도 제대로 반론도 펴지 못하고 변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눈이 성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 눈이 멀었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진리를 향해 눈을 바로 뜨려고 하지 않았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눈이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성했으면서도 진리로 거짓을 밝히는 데에는 성하지 못했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악과 불의와 거짓을 밝혀내고 추방하는 일에는 성한 눈을 감고 있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거짓에 맞서 싸울 의지가 약했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진리에 더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의에 맞서 싸울 힘이 부족했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악과 맞서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에 진리와 거짓, 의와 불의,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몰랐고 바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 사회에서 약자의 자리로, 무기력한 존재들로 전락하지 않았는지를 통렬히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한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또 그 빛을 세상으로 온전히 반사하지도 못한 죄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는 빛이어야 합니다. 움 속에나 말 아래에 숨어있는 빛이어서는 안 됩니다. 주위를 밝히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밝고 투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둡고 불투명해서는 안 됩니다. 빛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빛을 잃은 삶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빛나는 삶을 세상이 보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위로할 수 있도록 빛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밝고 빛나는 삶 때문에 세상이 진리와 거짓,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1907년은 한국교회의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해입니다. 내년 2007년은 그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주제연구위원회에서 오는 9월 총회부터 내년 총회까지 1년간의 총회주제를 로 정하고 라는 부제를 달기로 했습니다. 내년의 우리 교회의 표어도 이에 맞추어 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총회의 주제와 우리 교회의 표어를 그렇게 정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성령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새롭게 재무장하고 다시 이 민족을 깨우는 빛으로 굳게 설 것을 다짐하는 우리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동안 기독교와 교회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너무나 그 세를 확대하고 이 사회를 지배하며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권력을 틀어쥐고 교회를 압박함에도 불구하고 바르고 힘 있게 대응하지 못한 것을 자성하며 이 시대에 이 민족을 향한 한국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뜻에 동참하여 영적으로 밝게 눈을 뜨고 진리로 빛나는 삶을 살며 이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오늘 본문은 비교적 짧지만 세 부분으로 구별하여 볼 수 있습니다. 33절은 우리에게 익숙한 등불과 빛의 비유이고, 34-35절은 눈이 갖는 기능과 그것이 몸 전체에 대하여 갖는 관계의 비유이며, 36절은 예수님께서 앞의 두 비유를 결합시키시며 의도하신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33절의 등불과 빛의 비유는 누가복음에서만도 8:16에 이미 언급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한 근본적인 이유가 그들의 마음의 완악함과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예수님께서 비추시는 밝고 분명한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임을 지적하는 데에 그 비유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이라는 자들의 요구를 거부하신 것은 진리를 감추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예수님 자신의 말씀과 행적을 통해서 밝히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진리를 향해 믿음의 눈을 뜰 것을 촉구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켤 때에는 방과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밝혀서 방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더듬거리지 않고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두는 법이지 기껏 등불을 켜서는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진리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나라와 구원의 진리를 전하는 말씀선포와 치유의 사역을 만민이 알도록 드러내놓고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귀를 기울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눈을 떠서 그가 행하시는 일을 보기만 하면 이미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럴 생각은 하지 않고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만 계속 보이라고 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확실한 증거로서 보여줄 것이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들어올 방과 그 방문 입구에 있는 등경에 높이 등불을 켜놓았기 때문에 눈만 뜬 사람이면 누구나 다 들어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 등불을 켜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정상적이지 못하고 패역한 세대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남은 한 가지 일은 자기 자신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돌이켜보는 것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방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사시며 선포하시고 가르치신 말씀과 친히 행하신 수많은 일들, 그리고 특히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로 확증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복음에 눈을 감고 외면하는 사람은 다른 어떤 놀라운 증거를 보여주어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34-35절의 눈과 몸의 비유입니다. 35절을 먼저 다시 봅니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밖의 빛이 밝지 않다고 더 큰 빛을 비추어줄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밝은 밖의 빛이 자기 속에 들어오지 않아서 자기가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지를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일차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눈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눈은 우리에게 빛이 들어오는 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이 밝으면 우리의 삶이 밝아질 것이고, 우리 눈이 어두우면 우리의 삶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34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이 말씀의 뜻을 잘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우리 몸의 모든 지체를 위한 등불과 같아서 눈이 밝아야 다른 지체들이 바르게 움직이며 그 할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이 어두우면 우리가 무슨 물체를 손으로 정확하게 잡을 수도 없고 무엇을 향하여 팔을 정확하게 뻗을 수도 없으며 어디를 향해서 걸음을 정확하게 내디딜 수도 없고 우리의 몸을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킬 수도 없습니다. 또 눈이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봐주어야 우리의 사고나 판단이 바르게 작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하신 말씀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빛이 없어서 어디를 못가겠다 무엇을 못하겠다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눈이 어두워서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육신의 눈과 몸에 관해서 뿐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눈과 삶에 관해서도 진리입니다.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이라는 영적으로 건강한 눈이 있으면 우리의 삶 속에는 밝은 진리의 빛이 쏟아져 들어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이 들어오면 시들어가던 우리의 심령이 활력을 얻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알지 못하던 기쁨이 솟아납니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신과 소망이 일어납니다.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과 확신 때문에 이 세상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이 세상의 악과 불의와 거짓과 그것들의 공격과 일시적인 득세에도 불구하고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견디며 위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는 의지가 서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이유와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 사명을 다하려고 열심히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과 삶이 윤기를 띄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온통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진리의 빛이 가득하게 되면 어두움 속에 숨어 있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드러나게 되고, 그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게 될 것이며,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삶이 깨끗하고 빛나게 될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소유하게 되면 우리의 발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방황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손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들을 바르게 행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의 입은 진리만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빛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이 될 때에 우리의 삶은 환히 빛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36절에서 주어지는 결론적인 말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마음의 완악함을 던져버리고 믿음의 눈을 떠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진리에 거하면 우리의 삶이 더 이상 어두움 가운데 있지 않고 밝아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 첫 절인 33절의 말씀 속에는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등경 위에 켜놓아 온 방을 밝히 비추어 사람들이 방에 들어오도록 돕는 등불의 빛과 같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받아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바른 길로 안내하는 등불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는 명령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 33절의 암시가 34-35절의 비유를 통한 말씀과 결합되면서 36절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고 보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우리가 받아 우리 또한 그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빛을 받은 것은 그 진리의 빛을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등경 위에 두기 위해서입니다. 등경 위에서 주위를 환히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데나 놓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여기저기 마음대로 가게 하는 방향성 없는 등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등불이 되어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에로 나아오고 들어가게 하는 등불로서 있어야 할 자리에 있고 거기서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시대적 사명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 시대적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답을 우리는 36절의 말씀을 조금 더 면밀히 살핌으로써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36절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우선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하신 말씀에 주목합니다. 34절에서 온 몸이 밝으려면 눈이 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려면 눈이 아주 건강해야 합니다. 여기서 눈은 영적인 눈이고 믿음의 눈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을 밝히 뜨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더 열심히,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바르게 깨닫고 확신에 거하도록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강하게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진리를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행하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진리로 우리 자신의 마음과 삶을 비추고 깨끗하게 할 뿐 아니라 우리의 교회를 비추며 그 속에 늘어붙어 있고 숨어있는 모든 비신앙적이고 반복음적인 요소들을 밝혀내고 털어내야 할 것입니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진리의 빛이십니다. 그 완전한 진리의 빛을 받아 우리 또한 어두운 데가 조금도 없이 온전히 밝은 빛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가르침과 명령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어둡고 더럽고 거짓되고 부패하고 악한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 하신 그리스도인들이 국민 넷 중 하나는 된다고 하는데 부패와의 싸움에서 계속 밀리고 어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어쩌면 부패와 어둠에 맞서 싸우려고 하는 의지나 용기조차 없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우리가 오히려 사회로부터 어둠의 세력이나 부패한 집단으로 몰리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도 제대로 반론도 펴지 못하고 변호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영적인 눈이 성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해 눈이 멀었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진리를 향해 눈을 바로 뜨려고 하지 않았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눈이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성했으면서도 진리로 거짓을 밝히는 데에는 성하지 못했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있는 악과 불의와 거짓을 밝혀내고 추방하는 일에는 성한 눈을 감고 있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거짓에 맞서 싸울 의지가 약했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진리에 더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의에 맞서 싸울 힘이 부족했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악과 맞서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었음을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에 진리와 거짓, 의와 불의,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몰랐고 바르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이 사회에서 약자의 자리로, 무기력한 존재들로 전락하지 않았는지를 통렬히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원한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또 그 빛을 세상으로 온전히 반사하지도 못한 죄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는 빛이어야 합니다. 움 속에나 말 아래에 숨어있는 빛이어서는 안 됩니다. 주위를 밝히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밝고 투명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어둡고 불투명해서는 안 됩니다. 빛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빛을 잃은 삶이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빛나는 삶을 세상이 보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위로할 수 있도록 빛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밝고 빛나는 삶 때문에 세상이 진리와 거짓, 의와 불의, 선과 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다.
1907년은 한국교회의 대부흥운동이 일어난 해입니다. 내년 2007년은 그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우리 총회주제연구위원회에서 오는 9월 총회부터 내년 총회까지 1년간의 총회주제를 로 정하고 라는 부제를 달기로 했습니다. 내년의 우리 교회의 표어도 이에 맞추어 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총회의 주제와 우리 교회의 표어를 그렇게 정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성령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로 새롭게 재무장하고 다시 이 민족을 깨우는 빛으로 굳게 설 것을 다짐하는 우리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그동안 기독교와 교회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너무나 그 세를 확대하고 이 사회를 지배하며 이 나라 구석구석에서 권력을 틀어쥐고 교회를 압박함에도 불구하고 바르고 힘 있게 대응하지 못한 것을 자성하며 이 시대에 이 민족을 향한 한국교회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뜻에 동참하여 영적으로 밝게 눈을 뜨고 진리로 빛나는 삶을 살며 이 사회의 어둠을 밝히고 이 나라 이 민족을 바른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