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힘을 얻으리니    (사 40:27~31)

예부터 내려오는 속담 중에 "당나귀가 쓰러지는 건 맨 마지막에 올려놓은 모자 하나 때문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짐 싣는 당나귀가 자기 힘에 넘치는 짐을 지고 억지로 버티고 서 있습니다. 짐을 다 올린 주인이 땀을 닦으려고 모자를 벗어 당나귀 위에 올려놓는 순간 당나귀가 가벼운 모자 하나를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사람들은 '그깟 모자 하나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 그것 때문에 쓰러질까?' 라고 생각하지만, 당나귀가 쓰러진 것은 모자 때문이 아니라 그 전까지 당나귀가 지고 있던 짐들의 무게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힘에 부친 일들을 감당하느라 있는 힘을 다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계까지 온 상황에서는 사소한 일 하나라도 덧붙여지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정을 사람들은 몰라줍니다. 오히려 '그깟 일로 그렇게 상처받고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릴까?' 라며 위로하기보다는 비난하고 책망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도 그랬습니다. 일은 안 풀리고, 환경은 악화되고, 마음이 답답해서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고 원망하고 탄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31절에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라고 오히려 격려하십니다. 이는 인생이 넘어지고 자빠지고, 피곤하고 무능해져도, 다시 새 힘을 얻어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높은 하늘로 날갯짓하며 올라가는 독수리의 모습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바람이 거셉니다. 그러나 힘있게 독수리는 날갯짓하며 올라갑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뚫고 창공을 향해 치솟고 있는 모습입니다. 독수리는 바람의 힘을 이용하여 납니다. 그러기에 바람이 불수록 독수리는 더 잘 날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는 사람들은 이처럼 창공을 나는 독수리와 같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새 힘을 얻고 사는 사람은 환경에 지배받지 않습니다. 사람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눈은 성령으로 불타고 있고, 가슴은 하나님으로 인해 뜨겁습니다. 심장에는 복음에 대한 열정과 하나님 영광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 힘을 얻고 사는 사람은 영적인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강한 용사로 싸우는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나 새 힘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시간에 나와 앉아만 있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 힘을 얻기 위해서는 영적인 결단을 해야 합니다. 새 힘을 얻으려면,


첫째로 벗어버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술을 먹고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부두에 매어진 자기 보트로 갔습니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보트를 운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너 시간쯤 계속해서 앞으로 달렸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술기운이 깨고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한복판에 와 있어야 하는 보트가 여전히 부두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많이 달렸는데 그 자리에 있습니다. 웬일인가 하여 보았더니 부두에 배가 그대로 매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로프를 풀지 않고 계속 달린 것입니다. 밤새도록 붕붕거리며 앞으로 항해를 했지만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얽어맨 줄을 풀기 전까지는 아무리 나아가려 해도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얽어매고 있는 세상 적인 것들을 풀어버려야 합니다. 과감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본문 27절은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것들을 말씀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네게 말하며 네가 어찌하여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을 수리하심 받지 못한다고 하느냐". 이는 패배주의입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운명론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떨쳐 버려야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을 수 있노라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사로잡혀 있는 한 결단코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힘찬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히 11장에는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12장 첫 부분에 말씀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히브리 기자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새 힘을 얻는 삶이 되려면 무거운 것과 우리를 얽매이는 것들을 먼저 벗어버리라고 합니다. 이제 불신앙을 벗어버립시다. 원망과 불평을 벗어버립시다. 죄악의 문제들을 벗어버립시다. 악한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벗어버립시다. 이러한 것들이 벗어질 때 새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덧입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이 등산을 갔다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벼랑에 뻗어있는 나뭇가지를 간신히 잡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붙잡은 손에 힘이 빠집니다. 누군가가 구해주기를 바라며 있는 힘을 다해 소리 질렀습니다. "사람 살려! 그 위에 누가 없어요?" 그러나 위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 위에 누가 없어요. 나 좀 끌어 올려 주세요." 계속 소리 지르다 기진맥진해 질 즈음에 희미한 소리가 벼랑 끝에서 들려왔습니다. "내가 위에 있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네가 믿는 하나님이다. 네가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감격한 이 사람은 "하나님, 제가 얼마나 충성해 왔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저를 속히 구해주십시오.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진정 살고 싶으냐? 내 말대로만 하면 살 수 있다. 내게 전적으로 순종할 수 있느냐?" "하나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씀만 하시면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그 손을 놓아라." 깜짝 놀란 이 사람은 "안 됩니다. 이것을 놓으면 죽습니다." "아니다. 나만 믿고 그 손을 놓아라. 그러면 살 것이다." 이때 이 사람은 위를 향해 다시 소리칩니다. "그 위에 하나님말고 다른 사람은 없어요?". 결국 견디다 못한 그는 나뭇가지를 놓치며 비명과 함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떨어지고 보니 1미터 아래였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벗어버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덧입어야 합니다. 본문 28절 말씀은 덧입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우리가 덧입어야 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명철하신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힘과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답답해도 아무리 어려워도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암담한 상황이라도 믿음의 옷을 입고 굳건히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의지하면 절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신다는 약속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새 힘을 얻은 사람은 찬송하게 됩니다. "나는 어려워도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찬송하며 살리라." 어려울 때에 믿음을 덧입고 살면 새 힘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믿음의 옷을 덧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며 어려움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옷을 입고 담대히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깨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가스펠송 가수 피터 빌흔이 교도소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날개가 상한 새는 날 수 없습니다' 라는 노래를 했습니다. 집회를 마친 후 젊은 죄수 한 사람이 찾아와 울먹이며 물었습니다. '날개가 상한 새는 영원히 날 수 없나요?' 슬픈 얼굴로 묻는 그 청년의 질문에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 말도 못 해주고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그 청년의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날개가 상한 새는 다시 날 수가 없는가' 라며 슬퍼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리하여 빌흔은 기도하는 가운데 노래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 때 작곡한 노래입니다. "예수께로 가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 맡기기만 하면 실패한 과거도 새롭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에 그대를 맡기십시오. 그대의 날개는 다시 새로워지고 높이 높이 푸른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옛날의 노래는 부르지 않고 새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 교도소에 가서 그 청년을 생각하며 다시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후 뉴욕 YMCA의 행사에서 그 노래를 다시 불렀습니다. 행사가 마친 후 자기 눈앞에 한 미군 장교가 나타나 인사합니다. "저는 20년 전에 상한 날개를 치유하면 다시 날 수 있다는 당신의 노래를 듣고 새사람이 된 바로 그 사람입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상한 날개로는 날 수 없습니다. 날개를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날개를 치유하시기 원하십니다. 그리고 새 힘으로 살아가기 원하십니다.

인생은 초점 맞추기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인생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새 힘을 얻습니다. 여호와를 앙망 하는 삶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삶입니다. 본문 31절은 약속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는 회복입니다. 이는 치유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이 치유되어 높이 날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이 속히 일어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환자가 의사를 찾아왔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습니까?" "선생님, 제가 요즘 증상이 심각합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찔러도 아프고, 팔과 다리를 찔러도 아프고, 온 몸이 손가락으로 찌르기만 하면 무지하게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요?" 의사가 신중히 환자를 검진합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립니다. "네, 대단히 심각하군요. 당신은 손가락이 부러진 겁니다." 원인이 머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팔이나 다리에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부러진 손가락에 있었습니다. 내가 새 힘을 얻지 못하는 원인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게 있는 겁니다. 문제는 내게 있습니다. 새 힘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음에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같이 손을 들고 따라합니다. "하나님, 이제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것들을 벗어버리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옷을 입고 살겠습니다. 더 이상 상처 입은 날개가 아니라 기운 찬 날개로 날아오르는 삶을 살겠습니다." 이 시간 새롭게 임명되는 교사들과 성도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으로 피곤치 않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광일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