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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을 찾아 주님께 (누가복음 15:1-10)
새해표어가 <잃은 양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므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시대를 글로벌 시대, 혹은 무한 경쟁시대, 무한 정보시대, 디지털혁명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사는 시대를 새 시대라고 합니다. 혹은 우주시대하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시대를 탐구하는 시대 혹은 탐색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무엇인가 찾아 헤매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기 모든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지금으로 말하면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기 위하여 인류가 가장 머리 좋은 사람을 동원해서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나라에 우주인을 보내고 광석을 채취해 오게 하고, 무인 우주선을 화성에 금성에 보내서 무엇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학자들이 물질의 내부를 연구해서 원자를 찾아내고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내부를 탐색하기 위하여 가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구 깊숙이 들어가 보기를 애를 씁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까스를 찾아내고 석유도 발견해내고 금은동철을 발견해서 찾아내고 있습니다.
또 바다를 연구하는 자들은 바다 속 깊이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오고, 그 안에 자세한 지도를 그려오고, 어떻든지 해양학자들은 바닷속 깊이 탐색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인류역사가 스스로 역사를 쓸 수 없던 그런 시대에 돌아가서 인류역사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 고고학이란 학문이 생겨 탐색하고 있습니다.
또 심리학자들은 우리 사람들이 무엇인가?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사람의 심리의 깊은 속을 찾아보기 위해서 각방면으로 새로운 연구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가까운데서 생각해 보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자식을 찾고
개를 잃은 주인은 개를 찾고, 돈을 잃은 사람은 돈을 찾고, 청년들은 대상자를 찾아 나서고, 실업자들은 직장을 찾아 헤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인가 찾아 헤매는 때인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어떤 목자가 양 100마리를 기르는 동안에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99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으러 나셨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양을 보호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양들과 같이 자고 들에서 지냅니다.
아침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불러내면서 세어보고
저녁에는 다시 세어 우리 안에 들입니다.
이렇게 양을 치는 목자가 양들을 위해서 희생하는데 한날은 양 한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양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마 목자는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사방을 살펴보았습니다.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큰 소리로 양의 이름을 불러도 보았습니다. 밤은 깊어만 갑니다. 큰일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니 양 99마리를 들에 두고 다른 목자에게 맡기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이곳저곳 양이 갔을 만한 속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밤은 깊고 산은 험해서 길도 없이 양만 찾아다니노라 많은 상처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찾기까지 헤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잃은 양을 찾았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이웃을 청해서 같이 즐거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 첫째로 인간을 양에다가 비유했습니다.
양은 인간을 말하고, 목자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종종 인간을 양에다가 비유한대가 있습니다.
이사야 53: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했습니다. 양에다가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신약에서 예수님을 목자로, 우리는 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25절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자 되신 이에게로 돌아왔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자요 목자장이요, 선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들입니다.
♪.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방초동산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 줍소서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2. 둘째로 양 100마리 중에 한 마리 양을 잃었습니다.
이 한 마리 양이 어떻게 해서 잃었을까요?
1) 양은 본능적으로 사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먼 앞길을 바라보지(미래)를 못합니다.
양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따라가기에 앞에 보이는 풀만 바라보고 먹으며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좌우를 살피지 아니하고 말하자면 부주의하고 자기 맘대로 나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 양은 목자를 떠나게 되었고,
양은 동무되는 다른 양들과 갈라지게 되었고,
결국 좋은 풀을 따라가는 줄 알았더니 황폐한 광야로 나가게 되었고,
험한 골자기에 들어가게 되었고,
원수 이리떼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큰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서 목자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고 잃어버린바 되었습니까?
이사야 53:6절 말씀대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같거늘..>,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부주의해서, 무원칙 가운데 조심하지 아니하고, 거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따라가다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나가다 범죄 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지금도 부주의 무원칙 가운데 자기 본능대로 먹을 것을 따라가고
돈을 따라가고, 권세를 따라가고, 세상 향락을 따라가고, 욕심만 따라가고, 정욕만 따라가다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큰 죄에 빠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아주 떠나가게 되어버렸습니다. 양같이 잃어지는 인간이 많이 있습니다.
2) 그뿐만 아니라 양이 환경만(풀밭만) 보고 따라가듯 인간도 환경만 보고 따라가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남이 술 먹었으니 나도 먹고,
남이 도박하니 나도 도박하고,
남이 댄스홀에 가니 나도 댄스하고,
남이 뇌물 받으니 나도 받고,
남이 협잡하니 나도 하고,
남이 사치하니 나도 하고,
거저 이렇게 내 생각이나 내 의지나 양심을 버리고, 무의식 가운데 남만보고 따르다, 환경만 따르다 큰 죄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천국도 기쁨도 평안도 건강도 재물도 다 잃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3) 혹은 찬송가에 있는 데로 목자의 음성이 싫어서 딴 길로 가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목자의 음성이 싫어서 딴 길로 가버려 잃어버린 자도 있습니다.
무의식이나 부주의나 환경이 아니라, 어떤 분들은 의식적으로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하나님을 반항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간섭과 지도와 사랑과 보호를 반항해서, 그릇된 자기의 자유를 찾아서 가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목자를 떠나서 죄를 범하는 인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을 반항합니다. 하나님이 내신 도덕적 법칙을 무시합니다. 자연법칙을 무시합니다.
<내 자유대로 살자. 내 마음대로 살자.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자> 자유를 방종으로 오인합니다. 잘못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므로 큰 죄에 빠지고, 큰 곤경에 빠지고, 큰 고통에 봉착하여 죄 가운데서 잃어지는 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다 해 아래서 범죄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각기 제 길로 자기 죄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는 고생과 파멸이 그 뒤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런 백성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으로, 정신적으로, 신앙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양은 아닙니까?
3. 셋째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인간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1) 그 소망은 양은 목자를 떠나 잃어버린바 되었지만 이 양 의 주인이 있습니다.
이 양의 주인 되는 목자가 있습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듯이 하나님께서 잃은 영혼을 찾습니다.
비록 한 마리의 양같이 가치 없고 매우 적고 작은 영혼이라도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목자에게는 양이 귀중합니다. 그래서 잃지 않은 양 99마리를 우리에 두고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험한 산을 헤맵니다. 험한 골짜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장장 대하가 문제가 아닙니다. 잃은 영혼을 찾아 따라갑니다. 잃은 영혼을 부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졌습니다.
주님은 이런 인간을 왜 부릅니까? 이것이 범죄한 인간을 찾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특별히 성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잃어버린 인간을 찾기 위하여 하늘 영광 버리시고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오셔서 33년 간 부르시고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거 어디 갔을까? 아무개야!> 불러봅니다. 주님은 양을 찾기 위해 전 생애를 다 바쳤습니다.
마치 양을 잃은 목자의 마음은 아들 잃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한용구 목사 서울 신학교 시절 요한 아들 잃고 찾는 모습
♪.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듯 나의 주님 이 죄인을 찾으셨도다
양을 위해 생명바친 목자의 수고 그 사랑을 잠시라도 잊지 말찌라
험산줄령 헤메이는 어린양 찾아 나의 주님 산 까시에 찔리셨도다
어진목자 내주 예수 이몸붙드사 푸른 초장 물가으로 인도합소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실 일이 많지만은 먼저 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이! 그 영광이 보좌를 버리시고, 기쁨이 충만하고 천군 천사의 호위로 둘러있는 하늘보좌를 내어놓고 험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친히 임재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을 찾으십니다.
병든 자를 찾으십니다.
인간의 소외된 자를 찾으십니다.
인간을 가까이 하십니다.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죄를 사해 주십니다.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인간들이 받는 저주와 사망과 죄악의 형벌을 완전히 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시고 속죄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잃은 인간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선한 목자와 같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현대 공산주의 같은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을 천시하는 풍조가 점점 높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 하나의 생명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해서 그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쓰십니다.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신 대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는 것이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말씀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마귀에게 끌려가고 도적질 당하고 죽임 당하고, 멸망당하는 인간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은 찔림을 받았습니다. 상함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채찍에 맞으시면 서도 잃은 양을 구원하시렴에는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악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분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만이 구주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헤메이는 인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사망의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에게 참 생명과 영생을 주실 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인류의 소망입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잃은 영혼을 찾는 사명을 자기의 몸된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하여 온전히 생각하고,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복을 증거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하나님의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여러 기관이 있습니다. 또 금년에 해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왜 기관을 조직하고 계획을 세웁니까? 잃은 영혼을 구원하기 의해서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자선사업 교육사업 사회개량사업도 귀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먼저 잃은 영혼을 찾는데 있습니다.
교사님들은 어린양을 찾아 그리고 보호하는 분들입니다.
각 기관들도 잃은 영혼을 찾는 모입니다. 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참 기관입니다.
3) 그리고 본문에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찾도록 찾아다녔다고 했습니다.
여기 목자가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집중해서 찾았나 생각해 보세요?
①양의 주인은 잃은 양만을 생각해서 염염자자해서 머리에 다른 생각 안 했습니다. 잃은 양만 생각했습니다.
②그 눈은 다른데 보지 않고 양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주시해 찾았습니다. 그저 이편보고 저편보고 이 돌 저돌 사이를 찾아보았습니다.
③입으로는 양을 부르면서,
④손으로는 무서운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⑤두 다리로는 이 산골 저 산골을 헤매는데 여염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목자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머리로 생각하고, 눈으로 찾아보고, 입으로 양을 부르고, 손으로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발로 뛰어다니면서> 그저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모습이요. 이것이 여전도회, 남전도회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회의 모습인줄압니다.
우리교회에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그 직분들이 여러 가지 책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은 여러 직분의 가장 첫째의 책임은 잃은 양을 찾는데 모아야 합니다.
우리교회에 여러 기관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부 청년회 찬양대 구역회 각 기관이 헤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모든 기관이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총력을 다해서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잃은 영혼을 찾는데 있습니다. 잃은 심령을 찾는데 마땅히 집중해야합니다.
4) 그리고 여기 보니 찾도록 찾아 다녔다고 했습니다.
찾는데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잃은 영혼을 찾기까지, 찾을 때까지 힘썼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고 몸은 피하고, 몸은 상처 나고, 다리는 아프니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찾기까지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멀리 까지 갔는지 모릅니다.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모릅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쓰러지고 찢기고 위험한 일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저 찾기까지 계속해서 찾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하여 <강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형제의 위험을 당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유대인들이 40에 하나 가하는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을 맞고, 한번은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내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음을 당했다>고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 친구 중에, 이웃 중에, 잃은 영혼이 있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마 힘쓰신 분들 계신 줄 압니다.
여러분 몇 번이나 권해 보셨습니까?
그들 위해 몇 번이나 눈물 흐리면서 기도했습니까?
몇 번이나 간절히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힘써 보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죽기까지 전하시고 구원해 내세요
여러분 석수가 큰 바위를 터 치는데 구경해 보셨습니까? 이 석수가 큰 바위 하나 깨뜨리기 위해서 맨 처음에 쇠못을 하나 대고 망치로 첫 번 땅 때리면 아무 금이 가지 않습니다. 두 번 때려 보아도 아무 틈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같아서는 <에잇 못하겠다> 그만 둘 것 같아요. 그러나 석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때리고, 두 번 때리고, 세 번, 열 번 마지막에는 쪼개질 때까지 때립니다. 마지막에는 큰 바위가 그만 못 견뎌서 쪼개지고 맙니다.
잃은 영혼을 찾는 사람이 배워야할 인내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얼마 애쓰다가 그만 두고, 얼마 힘쓰다가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서 나올 때까지 구원을 때까지 힘쓸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15년 동안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권면 하는 가운데 마지막 자기 아들이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모니카는 잃은 자식을 찾았습니다.
무디는 친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마지막 죽을 때까지 50년을 기도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디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4. 넷째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즐거워 어깨에 매고 집에 와서 즐겼다고 했습니다.
5-6절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1) 목자가 찾아 얻은 양을 사랑스러워 어깨에 메고 왔다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어깨는! 권세와 안전과 존귀를 말합니다.
<잃은 영혼을 어깨에 매고 왔다>는 것은! 죄인 된 인간이 주님 앞에 나올 때에 잃은 생명을 찾게됨을 기뻐하여 주님의 능력의 어깨에 올려 주신 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잃지 않도록 건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는 축복을 주시고, 누가 해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안전과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잃은 양을 찾을 때에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6절에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부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고 했습니다.
즐거움이 너무 커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너무 클 때에는 홀로 즐거워함보다는 벗과 함께 즐기려 함이 인간의 상정입니다.
양을 찾은 목자는 집에 돌아와서 그 잃었던 사건으로 인하여 누구를 책망하는 일도 없고, 혹은 그 양을 구타하지도 않고, 자기의 당한 수고를 인하여 원망하는 일이 없이 그저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요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여러 가지 하는 일 가운데 서 기쁨이 많지만 제일 큰 기쁨은 잃은 영혼을 찾는데 있습니다.
잃은 영혼을 찾지 않는 교회는 그런 기쁨이 없으니 싸움만 합니다.
좀더 전도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그리고 이렇게 잃은 양을 찾을 때에 하늘에 있는 천사까지라도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7절에 <이와 같이 죄인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
여러분 목자가 잃은 양을 찾을 때에, 여러분들이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모습을 혼자 하신 줄 아세요?
아닙니다. 천사들이 이 목자의 활동하는 상황을 구경했습니다.
금년에 광성교회가 복음 전하기 위해서 잃은 백성을 찾는 일에 있어서 우리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모든 천군들이, 먼저간 천천만 성도들이 우리 교회가 일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귀한 영혼을 찾을 때에는 우리 마음 속에만 기쁨이 있는 줄 아십니까? 하늘에 큰 기쁨이 있고, 천사들이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고 천만 성도들이 화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은 영혼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에게 칭찬과 상을 주시는데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복을 주십니다.
금년에 잃은 영혼을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이웃가운데 잃은 영혼은 없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잃은 영혼은 없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역사 하셔서 이 해에 잃은 양, 잃은 영혼을 찾아 하나님의 교회에 천국 곡간에 들일 수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출처/유흥준 목사 설교 중에서
새해표어가 <잃은 양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므로>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됩시다>라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우리 시대를 글로벌 시대, 혹은 무한 경쟁시대, 무한 정보시대, 디지털혁명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사는 시대를 새 시대라고 합니다. 혹은 우주시대하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시대를 탐구하는 시대 혹은 탐색하는 시대라고 합니다. 무엇인가 찾아 헤매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기 모든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지금으로 말하면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기 위하여 인류가 가장 머리 좋은 사람을 동원해서 우주의 비밀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달나라에 우주인을 보내고 광석을 채취해 오게 하고, 무인 우주선을 화성에 금성에 보내서 무엇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학자들이 물질의 내부를 연구해서 원자를 찾아내고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내부를 탐색하기 위하여 가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구 깊숙이 들어가 보기를 애를 씁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까스를 찾아내고 석유도 발견해내고 금은동철을 발견해서 찾아내고 있습니다.
또 바다를 연구하는 자들은 바다 속 깊이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오고, 그 안에 자세한 지도를 그려오고, 어떻든지 해양학자들은 바닷속 깊이 탐색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인류역사가 스스로 역사를 쓸 수 없던 그런 시대에 돌아가서 인류역사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알기 위해 고고학이란 학문이 생겨 탐색하고 있습니다.
또 심리학자들은 우리 사람들이 무엇인가?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사람의 심리의 깊은 속을 찾아보기 위해서 각방면으로 새로운 연구를 계속하는 것입니다.
가까운데서 생각해 보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는 자식을 찾고
개를 잃은 주인은 개를 찾고, 돈을 잃은 사람은 돈을 찾고, 청년들은 대상자를 찾아 나서고, 실업자들은 직장을 찾아 헤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인가 찾아 헤매는 때인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어떤 목자가 양 100마리를 기르는 동안에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99마리를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으러 나셨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는 양을 보호해야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양들과 같이 자고 들에서 지냅니다.
아침에는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불러내면서 세어보고
저녁에는 다시 세어 우리 안에 들입니다.
이렇게 양을 치는 목자가 양들을 위해서 희생하는데 한날은 양 한 마리가 없어졌습니다. 양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마 목자는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사방을 살펴보았습니다.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니까 큰 소리로 양의 이름을 불러도 보았습니다. 밤은 깊어만 갑니다. 큰일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니 양 99마리를 들에 두고 다른 목자에게 맡기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나섰습니다.
이곳저곳 양이 갔을 만한 속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밤은 깊고 산은 험해서 길도 없이 양만 찾아다니노라 많은 상처와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찾기까지 헤매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잃은 양을 찾았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목자는 양을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이웃을 청해서 같이 즐거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 첫째로 인간을 양에다가 비유했습니다.
양은 인간을 말하고, 목자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종종 인간을 양에다가 비유한대가 있습니다.
이사야 53: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했습니다. 양에다가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신약에서 예수님을 목자로, 우리는 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25절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자 되신 이에게로 돌아왔느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자요 목자장이요, 선한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들입니다.
♪.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방초동산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 줍소서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2. 둘째로 양 100마리 중에 한 마리 양을 잃었습니다.
이 한 마리 양이 어떻게 해서 잃었을까요?
1) 양은 본능적으로 사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먼 앞길을 바라보지(미래)를 못합니다.
양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따라가기에 앞에 보이는 풀만 바라보고 먹으며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좌우를 살피지 아니하고 말하자면 부주의하고 자기 맘대로 나가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이 양은 목자를 떠나게 되었고,
양은 동무되는 다른 양들과 갈라지게 되었고,
결국 좋은 풀을 따라가는 줄 알았더니 황폐한 광야로 나가게 되었고,
험한 골자기에 들어가게 되었고,
원수 이리떼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큰 곤경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해서 목자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고 잃어버린바 되었습니까?
이사야 53:6절 말씀대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같거늘..>,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다>고 했습니다.
부주의해서, 무원칙 가운데 조심하지 아니하고, 거저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따라가다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나가다 범죄 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지금도 부주의 무원칙 가운데 자기 본능대로 먹을 것을 따라가고
돈을 따라가고, 권세를 따라가고, 세상 향락을 따라가고, 욕심만 따라가고, 정욕만 따라가다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큰 죄에 빠지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아주 떠나가게 되어버렸습니다. 양같이 잃어지는 인간이 많이 있습니다.
2) 그뿐만 아니라 양이 환경만(풀밭만) 보고 따라가듯 인간도 환경만 보고 따라가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남이 술 먹었으니 나도 먹고,
남이 도박하니 나도 도박하고,
남이 댄스홀에 가니 나도 댄스하고,
남이 뇌물 받으니 나도 받고,
남이 협잡하니 나도 하고,
남이 사치하니 나도 하고,
거저 이렇게 내 생각이나 내 의지나 양심을 버리고, 무의식 가운데 남만보고 따르다, 환경만 따르다 큰 죄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천국도 기쁨도 평안도 건강도 재물도 다 잃어버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3) 혹은 찬송가에 있는 데로 목자의 음성이 싫어서 딴 길로 가다가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목자의 음성이 싫어서 딴 길로 가버려 잃어버린 자도 있습니다.
무의식이나 부주의나 환경이 아니라, 어떤 분들은 의식적으로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하나님을 반항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간섭과 지도와 사랑과 보호를 반항해서, 그릇된 자기의 자유를 찾아서 가버렸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고 목자를 떠나서 죄를 범하는 인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하나님을 반항합니다. 하나님이 내신 도덕적 법칙을 무시합니다. 자연법칙을 무시합니다.
<내 자유대로 살자. 내 마음대로 살자.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자> 자유를 방종으로 오인합니다. 잘못을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므로 큰 죄에 빠지고, 큰 곤경에 빠지고, 큰 고통에 봉착하여 죄 가운데서 잃어지는 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말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고, 다 해 아래서 범죄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각기 제 길로 자기 죄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에게는 고생과 파멸이 그 뒤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이런 백성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마음으로, 정신적으로, 신앙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양은 아닙니까?
3. 셋째로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인간에게는 아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1) 그 소망은 양은 목자를 떠나 잃어버린바 되었지만 이 양 의 주인이 있습니다.
이 양의 주인 되는 목자가 있습니다.
목자가 잃은 양을 찾듯이 하나님께서 잃은 영혼을 찾습니다.
비록 한 마리의 양같이 가치 없고 매우 적고 작은 영혼이라도 하나님은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
목자에게는 양이 귀중합니다. 그래서 잃지 않은 양 99마리를 우리에 두고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험한 산을 헤맵니다. 험한 골짜기가 문제가 아닙니다. 장장 대하가 문제가 아닙니다. 잃은 영혼을 찾아 따라갑니다. 잃은 영혼을 부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떨어졌습니다.
주님은 이런 인간을 왜 부릅니까? 이것이 범죄한 인간을 찾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특별히 성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잃어버린 인간을 찾기 위하여 하늘 영광 버리시고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오셔서 33년 간 부르시고 찾아 헤매었습니다. <이거 어디 갔을까? 아무개야!> 불러봅니다. 주님은 양을 찾기 위해 전 생애를 다 바쳤습니다.
마치 양을 잃은 목자의 마음은 아들 잃은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한용구 목사 서울 신학교 시절 요한 아들 잃고 찾는 모습
♪.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 찾듯 나의 주님 이 죄인을 찾으셨도다
양을 위해 생명바친 목자의 수고 그 사랑을 잠시라도 잊지 말찌라
험산줄령 헤메이는 어린양 찾아 나의 주님 산 까시에 찔리셨도다
어진목자 내주 예수 이몸붙드사 푸른 초장 물가으로 인도합소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실 일이 많지만은 먼저 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베드로가 고백한 대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이! 그 영광이 보좌를 버리시고, 기쁨이 충만하고 천군 천사의 호위로 둘러있는 하늘보좌를 내어놓고 험한 광야 같은 이 세상에 친히 임재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리와 죄인을 찾으십니다.
병든 자를 찾으십니다.
인간의 소외된 자를 찾으십니다.
인간을 가까이 하십니다.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죄를 사해 주십니다.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인간들이 받는 저주와 사망과 죄악의 형벌을 완전히 사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시고 속죄하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잃은 인간을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선한 목자와 같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현대 공산주의 같은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소위 자유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을 천시하는 풍조가 점점 높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 하나의 생명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해서 그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애쓰십니다.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신 대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하는 것이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말씀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마귀에게 끌려가고 도적질 당하고 죽임 당하고, 멸망당하는 인간을 구하기 위하여 자기 생명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의 몸은 찔림을 받았습니다. 상함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채찍에 맞으시면 서도 잃은 양을 구원하시렴에는 변함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악에 빠진 인간을 구원할 분입니다.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만이 구주가 되십니다.
예수님만이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헤메이는 인생을 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사망의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인간에게 참 생명과 영생을 주실 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인류의 소망입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잃은 영혼을 찾는 사명을 자기의 몸된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하여 온전히 생각하고,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서 복을 증거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하나님의 교회의 참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여러 기관이 있습니다. 또 금년에 해야할 일들이 있습니다.
왜 기관을 조직하고 계획을 세웁니까? 잃은 영혼을 구원하기 의해서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자선사업 교육사업 사회개량사업도 귀합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은 먼저 잃은 영혼을 찾는데 있습니다.
교사님들은 어린양을 찾아 그리고 보호하는 분들입니다.
각 기관들도 잃은 영혼을 찾는 모입니다. 이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참 기관입니다.
3) 그리고 본문에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찾도록 찾아다녔다고 했습니다.
여기 목자가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얼마나 집중해서 찾았나 생각해 보세요?
①양의 주인은 잃은 양만을 생각해서 염염자자해서 머리에 다른 생각 안 했습니다. 잃은 양만 생각했습니다.
②그 눈은 다른데 보지 않고 양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주시해 찾았습니다. 그저 이편보고 저편보고 이 돌 저돌 사이를 찾아보았습니다.
③입으로는 양을 부르면서,
④손으로는 무서운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⑤두 다리로는 이 산골 저 산골을 헤매는데 여염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목자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머리로 생각하고, 눈으로 찾아보고, 입으로 양을 부르고, 손으로 가시덤불을 헤치면서, 발로 뛰어다니면서> 그저 잃은 양을 찾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모습이요. 이것이 여전도회, 남전도회 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회의 모습인줄압니다.
우리교회에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그 직분들이 여러 가지 책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은 여러 직분의 가장 첫째의 책임은 잃은 양을 찾는데 모아야 합니다.
우리교회에 여러 기관이 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부 청년회 찬양대 구역회 각 기관이 헤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모든 기관이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총력을 다해서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잃은 영혼을 찾는데 있습니다. 잃은 심령을 찾는데 마땅히 집중해야합니다.
4) 그리고 여기 보니 찾도록 찾아 다녔다고 했습니다.
찾는데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잃은 영혼을 찾기까지, 찾을 때까지 힘썼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고 몸은 피하고, 몸은 상처 나고, 다리는 아프니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찾기까지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멀리 까지 갔는지 모릅니다.
소리를 얼마나 질렀는지 모릅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쓰러지고 찢기고 위험한 일을 당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저 찾기까지 계속해서 찾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하여 <강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형제의 위험을 당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유대인들이 40에 하나 가하는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을 맞고, 한번은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내고 주리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음을 당했다>고 간증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한국 속담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 친구 중에, 이웃 중에, 잃은 영혼이 있어서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마 힘쓰신 분들 계신 줄 압니다.
여러분 몇 번이나 권해 보셨습니까?
그들 위해 몇 번이나 눈물 흐리면서 기도했습니까?
몇 번이나 간절히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힘써 보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잃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중단하거나 포기하지 마세요. 죽기까지 전하시고 구원해 내세요
여러분 석수가 큰 바위를 터 치는데 구경해 보셨습니까? 이 석수가 큰 바위 하나 깨뜨리기 위해서 맨 처음에 쇠못을 하나 대고 망치로 첫 번 땅 때리면 아무 금이 가지 않습니다. 두 번 때려 보아도 아무 틈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 같아서는 <에잇 못하겠다> 그만 둘 것 같아요. 그러나 석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때리고, 두 번 때리고, 세 번, 열 번 마지막에는 쪼개질 때까지 때립니다. 마지막에는 큰 바위가 그만 못 견뎌서 쪼개지고 맙니다.
잃은 영혼을 찾는 사람이 배워야할 인내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얼마 애쓰다가 그만 두고, 얼마 힘쓰다가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계속해서 나올 때까지 구원을 때까지 힘쓸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15년 동안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권면 하는 가운데 마지막 자기 아들이 회개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모니카는 잃은 자식을 찾았습니다.
무디는 친구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마지막 죽을 때까지 50년을 기도하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디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가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4. 넷째 잃은 양을 찾은 목자가 즐거워 어깨에 매고 집에 와서 즐겼다고 했습니다.
5-6절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1) 목자가 찾아 얻은 양을 사랑스러워 어깨에 메고 왔다고했습니다.
예수님의 어깨는! 권세와 안전과 존귀를 말합니다.
<잃은 영혼을 어깨에 매고 왔다>는 것은! 죄인 된 인간이 주님 앞에 나올 때에 잃은 생명을 찾게됨을 기뻐하여 주님의 능력의 어깨에 올려 주신 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잃지 않도록 건사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는 축복을 주시고, 누가 해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안전과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잃은 양을 찾을 때에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6절에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부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고 했습니다.
즐거움이 너무 커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너무 클 때에는 홀로 즐거워함보다는 벗과 함께 즐기려 함이 인간의 상정입니다.
양을 찾은 목자는 집에 돌아와서 그 잃었던 사건으로 인하여 누구를 책망하는 일도 없고, 혹은 그 양을 구타하지도 않고, 자기의 당한 수고를 인하여 원망하는 일이 없이 그저 즐거워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모습이요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여러 가지 하는 일 가운데 서 기쁨이 많지만 제일 큰 기쁨은 잃은 영혼을 찾는데 있습니다.
잃은 영혼을 찾지 않는 교회는 그런 기쁨이 없으니 싸움만 합니다.
좀더 전도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그리고 이렇게 잃은 양을 찾을 때에 하늘에 있는 천사까지라도 기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7절에 <이와 같이 죄인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니라>
여러분 목자가 잃은 양을 찾을 때에, 여러분들이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하여 힘쓰고 애쓰는 모습을 혼자 하신 줄 아세요?
아닙니다. 천사들이 이 목자의 활동하는 상황을 구경했습니다.
금년에 광성교회가 복음 전하기 위해서 잃은 백성을 찾는 일에 있어서 우리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 모든 천군들이, 먼저간 천천만 성도들이 우리 교회가 일하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귀한 영혼을 찾을 때에는 우리 마음 속에만 기쁨이 있는 줄 아십니까? 하늘에 큰 기쁨이 있고, 천사들이 할렐루야 찬송을 부르고 천만 성도들이 화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잃은 영혼을 찾아 주님께로 인도하는 자에게 칭찬과 상을 주시는데 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복을 주십니다.
금년에 잃은 영혼을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이웃가운데 잃은 영혼은 없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잃은 영혼은 없습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역사 하셔서 이 해에 잃은 양, 잃은 영혼을 찾아 하나님의 교회에 천국 곡간에 들일 수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출처/유흥준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