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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망으로 인내합시다 (살후2:16)
어니스트 색클톤 경이 남극을 탐험하였을 때 자신의 밑에 있었던 사람들을 불가피하게 코끼리 섬에 남겨 두어야만 하는 경우를 당하였습니다. 그는 곧 그들을 영국으로 데려갈 것을 약속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연기 되어야만 하였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가려고 할 때는 공교롭게도 바다는 얼어붙어 자기 휘하에 거느린 사람들은 고립되어야만 하였습니다. 세 번이나 그들을 구조하려 하였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하여 빙판에 구멍을 뚫으며 갔습니다. 조그만 배로 섬에 도착하자 그는 자기 휘하의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았을 뿐 아니라 배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들은 곧 안전하게 집에 도착하였습니다. 모든 흥분이 가라앉자 어니스트 경운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승선할 수 있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그들의 지도자가 잠을 깨우며 "항상 갈 준비를 해두시오 오늘주인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라고 외쳤다고 말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다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색클톤 경이 코끼리 섬에 들어간 것보다 더욱 확실한 것이다. 구세주가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는 약속은 말씀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축복받은 희망" 은 반드시 이루어질 희망"인 것입니다.(예화백과-축복받은 소망) 주님의 재림과 영광은 우리에게 좋은 소망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다고 합니다. 성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위로나 소망은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하며 굳건한 믿음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스도인에 있어서 소망이란 하나님의 속성과 약속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그 본질상 좋은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있어서도 좋은 것입니다. 좋은 소망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주신 소망이 선한 것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은 절대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성품과 언약에 기초한 소망이므로 상황여하에 따라 취소되거나 변하지 않으며 견고한 닻과 같아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소망으로 인내하되 좋은 소망으로 인내하는 달 입니다.
그러면 좋은 소망은 무엇입니까
좋은 소망은 복음을 통해 얻게 될 성도들의 궁극적 구원 상태며 성도들이 복음을 믿을 때 장차 주님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4)합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성도들로 얻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증거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미래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창세전에 작정하셨습니다.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14)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신령한 복으로 성도에게 복 주심을 인하여 찬송하라고 외치며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에 속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한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계획을 세우시고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로 삼으셨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보좌 우편에 앉으리라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눅 22:69)
이제까지 모욕 받아온 사실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시고 보좌 우편에 앉게 됨을 예언 하신 것입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 7:55)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 (행 7:56)았습니다.
모든 무릎을 그 이름에 꿇게 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0)
모든 피조물이 무릎 꿇어야 할 이름이라는 말은 그의 이름만이 가장 존귀하고 그의 이름만이 피조물의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의 이름만이 모든 피조물들의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뜻하는 동시에 세상의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으로도 가리거나 탈색시킬 수 없는 이름이요 어떠한 폭력이나 사악한 권력으로도 지우거나 없앨 수 없는, 모든 것 위에 초월하여 계시는 '그리스도' 되시는 이름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영광은 이미 믿은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 17:22)
누릴 영광은 어떠합니까?
주의 형상으로 화하여 누릴 영광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 3:18)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성도는 주의 형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써 그에 대한 지식을 받고 그 내면이 변화되어 점점 더 높은 단계의 영광으로 나아가 마침내 주의 재림이 실현될 때는 성도들의 몸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완전한 영광의 형체를 얻게 될 것입니다(빌3:21).
그런데 이렇게 변화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은 자신들의 노력이나 업적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은총에 의한 것입니다(롬8:29, 30).
이는 하늘의 영광스런 몸으로의 변화를 포함합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고전 15:43)
인간의 육체는 수많은 정욕 때문에 고민하는 욕된 몸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부활할 때 이 욕된 몸은 완전하게 다른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변할 것입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 22:30)
변화 산에서 영광스럽게 변한 예수님처럼 우리의 몸도 영광스럽게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눅 9:28)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 9:29) 합니다.
현재의 우리 몸은 매우 약합니다. 또한 우리의 의지도 매우 약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주위 기온이 달라져도 감기에 걸리기도 하며, 조그마한 일에도 시험을 당하거나 유혹을 당하여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할 때는 우리의 몸은 강하여집니다. 그래서 더 이상 육체적인 질병이나 고통은 없으며 시험이나 유혹도 당하지 아니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찬양하며 영원히 살 수 있는 강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육의 몸'은 동물적인 육체를 가리킵니다. 즉 썩어질 몸이고 욕된 몸이며 약한 몸입니다. 이런 육의 몸은 영생에 이르는 데 부적합한 몸입니다. 그러나 '신령한 몸'은 영의 몸으로 육의 몸과는 달리 썩지 아니하는 몸이고 영광스러운 몸이며 강한 몸입니다. 이 신령한 몸은 지금도 우리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전혀 새로운 몸으로 영원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육의 몸은 무덤에 심겨지고 부활 때에는 옛 몸의 실체는 완전히 변형되고 새로운 영광을 입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됩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 세상에 적합한 육의 몸을 가지고 있으나 부활한 후에는 하늘나라에 적합한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령한 몸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이 끝나는 영광입니다
모든 죄악된 것이 끝나는 영광입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 3:21)
하늘나라 시민권 획득이 성취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6)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7) 합니다.
이때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입으셨던 몸과 동일한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고전 15:51)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전 15:52) 합니다.
이는 아직까지도 베일에 가려진 신비에 속한 일이지만 우리가 하늘나라에 영원히 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거룩한 곳으로서 죄악을 행하던 우리의 몸이 그대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천군 천사들과 함께 우리의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볼 것이며 그를 영원히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신비로운 변화의 체험은 필수적이며, 보다 중요한 사실은 하늘나라에서 있을 거룩한 삶을 위해 우리의 전 생애를 거룩한 성품을 가꾸는데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고가 끝나는 영광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사단의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지치도록 인내하고 수고를 통해서 믿음을 지킨 그들은 죽은 후에 온전한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사망과 슬픔이 끝나는 영광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
하나님이 성도들의 모든 고난의 상처들을 치유하시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룩되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 공의로운 통치 아래서 살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누릴 영광입니다.
주님과 같이 왕의 권세를 받아 누릴 영광입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2:26)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 2:27)
하나님은 악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이기는 자에게는 갖가지 상급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 2:17)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 2:26)
하나님은 승리한 성도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왕이 되어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곧 모든 복과 권세의 임재입니다.
이 약속과 동일한 시편의 말씀은 메시아가 원수를 쳐부수고 누릴 승리를 묘사합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 2:8)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시 2:9)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은 약속을 주신 것은 신앙의 승리자에게 최후의 심판 때에 메시아적인 통치권을 나누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므나의 비유를 통해서도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아 다스리는 영광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믿음을 지킨 성도에게 주는 상급입니다. 모든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 성도에게는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셨습니다. 이긴 자에게 주는 약속은 영광의 보좌입니다.
언제 누리게 됩니까
예수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 3:4) 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성도가 영광스럽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그의 이름과 함께 높아지며 하늘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땅에 있는 육체가 초래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요,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리시는 하늘의 영광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살후 1:10)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살후 1:11)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살후 1:12)합니다.
예수께서는 성도들을 구속하기 위하여 사셨고, 고난 받으셨으며, 죽으셨고,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영광을 성도들에게 주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좋은 소망을 바라는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이 좋은 소망을 바라는 성도는 인내하여야 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7)
아들은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로서 아버지의 보호와 그의 특권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게 됩니다. 과거에는 죄 아래 있어서 항상 사망의 고통 속에 거하였으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므로 더 이상 사망이 우리의 왕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롬6:9) 죄의 권세가 우리를 삼키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특권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죽음이 아니라 영생의 반열에 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나 양자입니다. 양자란 과거 죄의 종노릇하던(롬 6:6)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특권을 부여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상실하였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혀 자격이 없는 가운데 오직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양자의 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나 모든 자가 얻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요1:1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선하신 하나님과 같이 의로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의롭게 하신 분은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의 피를 믿고 의지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선한 자가 되며 선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아들 되게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믿음을 지키자면 죄가 관여하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야 하고 고난도 즐겁게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기까지 성도들이 참고 견뎌야 하는 고난의 순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담대히 악에 맞서며 의로운 신앙을 지킨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된 권리를 누립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악과 맞서 싸우는 투쟁의 전 과정을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고난당하는 성도들과 함께하셨기에 성도들이 겪은 어려움을 낱낱이 헤아리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온갖 고난의 파도를 헤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성도들의 모든 아픔을 충분히 위로하실 수 있습니다.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베풀며 모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1)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2)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61:3) 합니다.
참된 위로는 슬픔의 근본 원인을 제거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지닌 아픈 상처들을 일일이 어루만지고 싸매 주십니다. 이제 고난에 찬 옛 역사는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공의로 통치하시는 이상 하나님 나라에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이미 모든 슬픔과 고통의 근원인 죄악을 소멸시켜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성도가 누릴 삶은 완전한 평화와 안식뿐입니다.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고난을 견디며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아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좋은 소망으로 인내하는 모두가 됩시다.
출처/강성찬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