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89
이 말을 하매 노가 풀리니라 (삿 8;1-3)
강국이 소국을 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국 왕은 싸워보아야 쑥대밭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사신을 보내어 어떻게 하든지 전쟁을 하지 않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사신은 고민하면서 강국으로 갔습니다.
<무슨 말을 하여야 강국 왕이 전쟁을 그칠가?>
사신은 강국 왕앞에 서서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내가 보니 우리 왕은 초생달같고 대왕은 보름달같은 왕이십니다. 보름달같은 왕이 초생달같은 왕을 쳐서 무엇하십니까? 보나 마나 우리가 집니다. 전쟁을 그만 두시지요.> 이 말을 들은 대왕은 기분이 좋아서 전쟁을 포기하였습니다. 전쟁을 그치게 하고 돌아 온 사신은 그대로 보고하였습니다. 왕은 수고하였다고 치하하면서 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상을 주자 말자 빼앗으면서 칼을 빼면서 말했습니다. 왕은 대노하였습니다.
<너는 전쟁을 끝낸 공로로 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를 무시한 죄는 사형이다. 다른 말로 전쟁을 끝내야지 나를 무시하고 끝냈다. 저 왕을 보름달로, 나를 초생달로 비유하며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하였다. 사형이다.> 그리고 칼을 빼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사신이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내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나이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십시오. 보름달은 점점 작아지는 달이지만 초생달은 점점 커지는 달이 아닙니까?>
이 말 한 마디에 왕의 노가 풀렸습니다. 그래서 죽이지 않았습니다. 말 한 마디에 전쟁을 그치게 하고 말 한 마디에 노를 그치게 하였습니다.
말 한 마디의 중요성입니다.
<이 말을 하매 노가 풀리니라.>
본문으로 들어 갑니다. 에브라임 족속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옆에 미디안이라는 강대국이 있었습니다. 미디안은 얼마나 군사가 많은 지 인해 전술을 썼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사사에게 300명 용사를 주시면서 미디안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쫓겨가던 미디안 군대는 에브라임 산지로 도망을 쳤습니다. 기드온은 남은 적을 진멸시키기 위하여 에브라임 산지까지 따라갔습니다.
패잔병들은 이제 기력이 다 하였습니다. 기력을 다 상실한 미디안 패잔병들은 맥없이 에브라임 산지에 숨었습니다. 이 때 그 곳에 살고 있던 에브라임 족속들이 그 때서야 전쟁에 동참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멀리에서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던 이들이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 대장 오렙과 스엡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를 베어 들고 당당하게 기드온 앞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삿 8;1)
기드온은 성격이 온유한 농사군이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할 때 기드온은 이렇게 에브라임을 달랬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 8;2-3)
기드온이 이렇게 말했더니 에브라임의 노가 풀렸습니다.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렸습니다. 어떻게 말하면 상대방 노가 풀리고 하나가 될 수 있을 가요? 그리고 노한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할 수 있을 가요? 그 비결을 기드온으로부터 배울 수가 있습니다.
1. 나를 낮추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화가 잔뜩 나서 두 장군 목을 들고 와서 말하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기드온은 말했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 8;2-3)
이 말 한 마디에 에브라임 사람들 노가 다 풀리고 말았습니다. 기드온은 자기들은 시작하였고 에브라임은 끝을 잘 내주었다고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자기는 맏물 포도이고 에브라임은 끝물 포도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이 노할 때 나를 낮추며 말하는 것은 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5)
벤자민 프랭크린에게는 존경하는 스승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 스승은 학식도 많았습니다. 인격도 좋았습니다. 생활도 검소하였습니다. 그 스승 집에 들어가려면 문이 낮아서 머리를 많이 숙여야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프랭크린이 인사차 스승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들어 갈 때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 갔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하다가 프랭크린은 돌아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시간에 깜박 고개를 푹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그래서 나가다가 머리를 문에 세게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나갈 때 스승이 소리를 질렀었습니다.
<여보게. 머리를 숙이게.>
이를 본 스승이 말했습니다.
<자네가 이 세상을 살아 가노라면 부딪치는 일이 많을 걸세. 그러나 스스로 머리를 푹 숙이면 부딪치는 일이 없을 것일세.> 그 후 프랭크린은 인간관계에서 부딪칠 일이 생기면 늘 스승의 이 말이 생각이 나서 스스로 자제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포용성이 있는 정치가로 소문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노할 때 항상 나를 낮추는 말은 노를 풀리게 합니다. 기드온이 그랬습니다.
2. 상대방을 인정하여 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이 노하였을 때 그들을 인정하여 주는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 8;2-3)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마음껏 높이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겨우 시작하였고 당신들이 잘 마무리하였으니 당신들이 최고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이런 말을 할 때에 모두가 하나가 되고 노를 풀어 줄 수가 있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여인이 너무나 아파서 옆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자궁암같으니 서울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그 여인은 기절하였습니다. 가족이 엠브란스에 실고 세브란스 병원에 와서 진찰을 다시 받았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자매님은 자궁암이 아닙니다. 대수롭지 않은 혹입니다. 그냥 퇴원하여도 좋습니다.>
그 여인이 1,000만원을 내놓으며 말했습니다.
<수술하려고 가지고 왔던 돈입니다. 수술하고 치료받으려면 1,000만원보다 더 들겠지요. 감사합니다.>
의사는 그 돈을 암센터에 기증하였습니다.
몇 달이 지났습니다. 의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얼마 전 저의 어머니를 암이 아니라고 진찰하여 주었던 분의 딸입니다.>
의사는 마음이 철석 주저앉았습니다.
<혹시 오진하였다고 항의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 딸이 말했습니다.
<박사님! 고맙습니다. 박사님이 암이 아니라고 한 마디 하여 주신 이후로 우리 어머니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살고 계십니다. 고마워서 1,000만원을 연구비로 보냅니다.>
인정하여 주고 용기를 주는 말 한 마디는 인생을 달라지게 합니다. <암이 아닙니다>라는 말 한 마디가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옵니다.
나도 그런 체험이 있습니다.
아산 병원에서 검진을 받으려고 검사실로 갔습니다. 탈의실에서 검사복으로 갈아 입고 있는 데 검사를 마치고 나와 나와 반대로 검사복을 벗는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암이라고 하는 데 이 병원에서는 암이 아니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그에게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이 병원에서 암이 아니라고 하면 확실히 암이 아닙니다. 이 병원 그런 병에 우리 나라 최고 병원입니다. 확실히 믿으세요.> 그 할아버지 얼굴에 화색이 돋으며 말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믿으세요.> 그 할아버지는 내 말 한 마디를 의사 말 보다 더 믿는 눈치였습니다. 한 마디 말하여 주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양약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양이 되느니라>(잠 16;24)
남을 인정하여 주고 사랑하여 주는 말을 기드온이 하였더니 에브라임이 노를 풀었습니다.
3. 하나가 되게 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이 노하였을 때 모든 지파가 하나가 되는 말을 하였습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삿 8;2-3)
그래서 에브라임 족속은 노를 풀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에브라임 족속은 그런 근성이 있는 지파였습니다. 기드온 당시에도 전쟁할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끝에 가서 참여하고 이기고 나니까 자기들이 잘 한 것처럼 떠들어댔습니다. 그런데 이런 똑같은 일이 입다시절에 또 일어났습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암몬 족속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습니다. 입다가 생명을 걸고 나가서 싸웠습니다. 그 때에도 에브라임 사람들은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나가서 싸웠습니다.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자 또 와서 말했습니다.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삿 12;1)
이 때 입다는 화가 났습니다. 기드온처럼 하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입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삿 12;2-3)
그리고 건방지다고 에브라임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은 도망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입다는 끝까지 따라가며 마구 죽였습니다.
입다는 요단 나루터에 군사를 보내어 도망가는 에브라임 사람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그 때
십볼레라는 말을 하게 하였습니다. 십볼레라는 땅이름은 강가에 있었기에 <강물의 흐름>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레>라고 발음하지 못 하면 죽였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십볼레>라고 발음하지 못 하고 <씹볼레>라고 된 소리를 냈습니다.
마침 경상도 사람들이 <쌀>이라고 발음하지 못 하고 <살>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김 영삼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유세를 하면서 모 도시에 가서 말했습니다.
<이 곳에 터널을 간통(관통)하여 강간(관광)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이 때 십볼레에서 에브라임 사람을 죽인 수가 42,000명이었습니다(삿 12;6)
얼마나 기드온과 대조적이었습니까?
기드온은 하나되게 만들었고 입다는 에브라임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대조적인가요? 하나님의 뜻은 생명이지 죽음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되는 것이지 분리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모두의 손에는 돌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고 노하고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한 마디로 모든 노를 풀어 주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
아무도 돌로 치지 못 하였습니다. 흥분과 노를 가라앉히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과 그 여자 둘만 남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 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 8;11)
그래서 예수님은 노를 푸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악합니다. 나는 1942년 미국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아주 좋은 모험의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1506년 5월 20일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죽은 지 꼭 500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4일 콜럼버스에 대한 문서가 스페인 북부 발라돌리드 지역의 시만카스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3가지 증언이 들어있는 문서입니다. 나는 그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콜럼버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하류 계급 아들이다.>
이 말 한 마디가 모욕스럽다고 그런 말을 하였다고 그 여자 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발가 발가벗겨서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길거리를 돌았습니다. 그리ㅣ고도 성이 차지 않아서 잔혹한 고문을 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주민들을 재판 없이 처벌하였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물자를 공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려고 세례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산티아고 섬이라고 불렸던 지역은 콜럼버스 원정대의 본거지였습니다. 콜럼버스가 정복한 후 이 지역에서는 수십년간 1200만~2000만명에 이르는 원주민들이 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사람들이 전파한 질병에 희생되어 죽었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말 한 마디 들었다고 그렇게 잔인하였습니다.
이번 월드컵 사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단이 상대방 선수로부터 어머니와 누나를 에게 <창녀>라고 한 마디하였다고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머리로 상대방 가슴을 박아 버렸습니다.
나를 낮추는 말, 남을 높이는 말, 하나가 되게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기드온은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 왔을 때 바로 군대가 뒤따라 왔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하여 노하였습니다. 돌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매장지가 없어서 이 곳으로 인도하였느냐고 따졌습니다. 그 때 모세가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이같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과 사람을 하나가 되게 하는 말,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가 되게 하는 말, 서로 하나가 되게 하는 말만 하였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드온은 노한 사람들의 노를 풀어 주는 말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1. 나를 낮추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2. 상대방을 인정하여 주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3. 하나가 되게 하는 말을 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나는 몇 년 전에 브라질 히오데자네이로에 다녀 왔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예수님 동상이 서있습니다. 팔 하나만도 3톤이나 되는 큰 동상입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가 친선을 도모하며 평화의 상징으로 세운 예수님 상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수님 동상은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팔을 벌리고 서있습니다. 말하자면 칠레를 등지고 있습니다.
칠레 정치가가 대중앞에서 분노하면서 말했습니다.
<이것이 무슨 꼴입니까? 예수님 동상이 우리 나라를 등지고 있습니다.>
군중들은 모두 분노하였습니다.
이 때 유명한 편집 국장이 칠레 국민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조금도 노할 것이 없습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아르헨티나를 향하여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것은 잘 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 칠레보다 아르헨티나가 복음화가 덜 되었습니다. 더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말 한 마디에 칠레 국민들은 노를 풀었습니다.
항상 노를 푸는 말을 하는 입술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강문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