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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아시아에 복음이 전해진 이야기 (행14:19-28)
오늘 아침 설교의 내용을 세 마디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세상 곳곳에 심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 박자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선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포 삼열 선교사를 조선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포 삼열 선교사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심어 놓으셨던 사람들인 길선주, 이기풍 한경직 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다음에 이방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북쪽의 이방 땅을 바라보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와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가이사랴에 전하셨고,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의 피난민들과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복음을 안디옥에 전하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결국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북쪽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복음이 안디옥으로부터 서쪽으로 즉 소 아시아로 전해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복음 전파의 주역은 언제나 하나님이셨고 그 조역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과 눈과 손에 붙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곳곳에 심어 놓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복음이 어떻게 소 아시아에 전해졌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복음이 소 아시아에 전파되었습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쌔”(행13:2-5). 소 아시아의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세우시고 그리고 선교사로 파송하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제나 봉사나 전도나 선교를 할 때 우리가 착하고 훌륭해서 우리가 원해서 하는 줄로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시작도 진행도 마무리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고 성령님께서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사도 바울의 고백들입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보내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수리아의 안디옥을 떠나 배를 타고 구브로 섬에 이르러 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쌔”(행13:2-5). 두 사람은 다시 성령의 보내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의 버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다시 소 아시아의 안디옥에 이르러 거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바울과 바나바가 곳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실제로 복음을 전한 분은 주님 자신이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소 아시아의 중심부에 있는 이고니온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때도 실제로 복음을 전한 분은 주님 자신이셨습니다. 그 내용이 행14:1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을 읽습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여기 한 절에 주어가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두 사도가’가 주어인데 다음에는 ‘주께서’가 주어입니다.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한 사람은 분명히 두 사도였는데, 그곳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은혜의 말씀을 전하신 분은 주님 자신이셨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사도는 도구에 불과했다고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이것이 복음 전파의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두 사도가 말씀을 전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은혜의 말씀을 전하신 분은 주님 자신이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을 더 합니다.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이어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에 가서 복음을 전한 다음 저들을 파송했던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제1차 선교 여행을 마친 것이었습니다. 두 사도가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로 돌아와서 다음과 같이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한 모든 일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하신 일들입니다.”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행14:27,28). 여기서 두 사도가 지적한 것은 소 아시아 선교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일어난 일들이었다는 것이었고, 이방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믿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도가 선교사로 보내심을 받았는데 저들을 보내신 분은 성령님이셨고, 두 사도가 말씀을 전했는데 실제로 말씀을 전하신 분은 주님이셨고, 두 사도가 수고를 많이 했는데 실제로 선교의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의 주역은 성령님과 예수님과 하나님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두 사도들이 당한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복음이 소 아시아에 전파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행14:19). 복음이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전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전도자들의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 아시아 선교는 두 사도들이 당한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두 사도들을 통해서 이적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선교 사역은 두 사도들의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행13:50).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핍박이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행14:5-7). 이고니온에서의 핍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19-21). 루스드라에서의 핍박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소 아시아 곳곳에서 전도하다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핍박해서 쫓겨난 일도 있었고, 돌로 치려고 해서 도망을 친 일도 있었고, 어떤 때는 돌에 맞아서 거의 죽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적으로 전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적을 수단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고난의 삶과 고난의 죽음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19-21).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쉬지도 않고 이튿날 더베로 달려가서 복음을 전한 이유는 자기가 하루라도 쉬면 그만큼 복음이 덜 전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상처 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더베 성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상처 투성이가 된 바울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핍박과 고난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이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으니”(고후1:8-9).
이기풍 목사님도 제주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기풍 목사의 13년 동안의 제주도 복음화 사역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미신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고통스러웠습니다. 잠잘 곳도 얻지 못했고 먹을 것도 얻지 못해 때로는 산 기슭에 때로는 바닷가에 때로는 마구간에 쓸어져 기운이 없어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모래 사장에 쓸어져 있는 이기풍 목사를 해녀가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살린 일도 있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면 마치 그에게 가까이 하면 죽기라도 할 듯이 손을 흔들며 '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라 내 목이 다라 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는 너무도 힘이 들고 괴로워서 제주도를 떠나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주도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그 사실을 편지로 써서 인편에 마포 삼열 선교사에게 보냈습니다. 두어 달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기풍 목사의 편지를 잘 받았소이다. 그런데 당신이 내 턱을 때린 흉터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으니 이 흉터가 아물 때까지 더욱 분투하시오.’ 이기풍 목사는 그 편지를 받아 읽고서 그 자리에 쓰러져서 대성통곡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복음화는 물론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기풍 목사와 윤함에 사모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 아시아의 복음화도 물론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바울과 바나바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소 아시아의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이렇게 고백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복음 전파는 전도자들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소 아시아에 받아드려 졌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소 아시아 땅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첫째로는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고, 둘째로는 두 사도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로 이루어졌지만, 셋째로는 소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지 않으면 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곳곳에 복음을 듣고 받아드릴 사람들을 정해놓으셨습니다. 강변교회가 세워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듣고 받아드릴 사람들을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조축국씨, 조원자씨, 전영신씨, 사현자씨, 백명희씨, 김명숙씨, 김광자씨, 유홍숙씨, 한화룡씨, 조경애씨, 심옥초씨, 권중국씨, 채희병씨, 정소영씨, 박달안씨, 정정례씨, 최행덕씨, 백혜란씨, 이원배씨, 황규종씨, 신혜식씨 등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고 영생 얻을 자들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두 사도가 소 아시아 곳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을 사람들을 미리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의 문을 열어놓고 계셨습니다. 구브로 섬의 바보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그 곳의 총독 서기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행13:12). 두 사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비방과 방해가 많았지만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며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14:1). 두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한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고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는지라"(행14:8-10). 두 사도가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제자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20,21).
지금까지 소 아시아에 복음이 전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복음이 전해졌고, 둘째로는 두 사도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졌고, 셋째로는 소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므로 복음이 그곳에 받아드려 졌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복음을 전하실 때에도 주도적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선교사 마포 삼열 선교사 등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마포 삼열 선교사는 이기풍이 던진 돌에 턱이 부서지는 고통도 당했습니다. 그러니 마포 삼열 선교사를 통해서 길선주 이기풍 한경직 등이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변에 복음을 전하시는 일도 주도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흑암과 사망이 깃들고 있는 절망의 땅에 복음을 전하시는 일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아끼지 않을 전도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윤주홍 선교사는 아프간에 가서, 황인범 군은 캄보디아에 가서, 손영삼 선교사는 집시들에게 가서 고난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복음과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이 믿을 수도 구원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택하셔서 주님을 믿고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이고 감사와 찬양을 드릴 일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핍박과 고난과 수고도 아끼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
오늘 아침 설교의 내용을 세 마디로 요약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통해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세상 곳곳에 심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삼 박자 구원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조선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포 삼열 선교사를 조선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포 삼열 선교사를 통해서 구원하시기로 심어 놓으셨던 사람들인 길선주, 이기풍 한경직 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 다음에 이방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북쪽의 이방 땅을 바라보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와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가이사랴에 전하셨고,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의 피난민들과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서 복음을 안디옥에 전하셨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결국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북쪽으로 전해졌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복음이 안디옥으로부터 서쪽으로 즉 소 아시아로 전해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복음 전파의 주역은 언제나 하나님이셨고 그 조역은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과 눈과 손에 붙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곳곳에 심어 놓으신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복음이 어떻게 소 아시아에 전해졌고 그곳에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복음이 소 아시아에 전파되었습니다.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쌔”(행13:2-5). 소 아시아의 복음 전파는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세우시고 그리고 선교사로 파송하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제나 봉사나 전도나 선교를 할 때 우리가 착하고 훌륭해서 우리가 원해서 하는 줄로 착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시작도 진행도 마무리도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고 성령님께서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사도 바울의 고백들입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보내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수리아의 안디옥을 떠나 배를 타고 구브로 섬에 이르러 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쌔”(행13:2-5). 두 사람은 다시 성령의 보내심과 인도하심을 받아 배를 타고 밤빌리아 지역의 버가에서 복음을 전하고 다시 소 아시아의 안디옥에 이르러 거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한 바울과 바나바가 곳곳으로 다니며 복음을 전했지만, 실제로 복음을 전한 분은 주님 자신이셨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소 아시아의 중심부에 있는 이고니온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때도 실제로 복음을 전한 분은 주님 자신이셨습니다. 그 내용이 행14:1 이하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을 읽습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여기 한 절에 주어가 두 가지가 나옵니다. 처음에는 ‘두 사도가’가 주어인데 다음에는 ‘주께서’가 주어입니다.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한 사람은 분명히 두 사도였는데, 그곳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고 은혜의 말씀을 전하신 분은 주님 자신이셨다고 지적했습니다. 두 사도는 도구에 불과했다고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이것이 복음 전파의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두 사도가 말씀을 전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은혜의 말씀을 전하신 분은 주님 자신이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한 가지 말씀을 더 합니다.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이어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에 가서 복음을 전한 다음 저들을 파송했던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제1차 선교 여행을 마친 것이었습니다. 두 사도가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두 사도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로 돌아와서 다음과 같이 보고를 했습니다. “우리가 한 모든 일은 우리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하신 일들입니다.”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라”(행14:27,28). 여기서 두 사도가 지적한 것은 소 아시아 선교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일어난 일들이었다는 것이었고, 이방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믿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도가 선교사로 보내심을 받았는데 저들을 보내신 분은 성령님이셨고, 두 사도가 말씀을 전했는데 실제로 말씀을 전하신 분은 주님이셨고, 두 사도가 수고를 많이 했는데 실제로 선교의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의 주역은 성령님과 예수님과 하나님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두 사도들이 당한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복음이 소 아시아에 전파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행14:19). 복음이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전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한 전도자들의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소 아시아 선교는 두 사도들이 당한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두 사도들을 통해서 이적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선교 사역은 두 사도들의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행13:50).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핍박이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고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행14:5-7). 이고니온에서의 핍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19-21). 루스드라에서의 핍박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소 아시아 곳곳에서 전도하다가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핍박해서 쫓겨난 일도 있었고, 돌로 치려고 해서 도망을 친 일도 있었고, 어떤 때는 돌에 맞아서 거의 죽게 된 일도 있었습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적으로 전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적을 수단으로 복음을 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고난의 삶과 고난의 죽음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19-21).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쉬지도 않고 이튿날 더베로 달려가서 복음을 전한 이유는 자기가 하루라도 쉬면 그만큼 복음이 덜 전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돌에 맞아 상처 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더베 성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상처 투성이가 된 바울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당한 핍박과 고난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이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으니”(고후1:8-9).
이기풍 목사님도 제주도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핍박과 고난을 통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기풍 목사의 13년 동안의 제주도 복음화 사역은 수 많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미신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고통스러웠습니다. 잠잘 곳도 얻지 못했고 먹을 것도 얻지 못해 때로는 산 기슭에 때로는 바닷가에 때로는 마구간에 쓸어져 기운이 없어 정신을 잃기도 했습니다. 모래 사장에 쓸어져 있는 이기풍 목사를 해녀가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살린 일도 있었습니다. 길 가는 사람을 붙잡고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하면 마치 그에게 가까이 하면 죽기라도 할 듯이 손을 흔들며 '그만 두어라 그만 두어라 내 목이 다라 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기풍 목사는 너무도 힘이 들고 괴로워서 제주도를 떠나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주도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그 사실을 편지로 써서 인편에 마포 삼열 선교사에게 보냈습니다. 두어 달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기풍 목사의 편지를 잘 받았소이다. 그런데 당신이 내 턱을 때린 흉터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으니 이 흉터가 아물 때까지 더욱 분투하시오.’ 이기풍 목사는 그 편지를 받아 읽고서 그 자리에 쓰러져서 대성통곡하며 회개했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복음화는 물론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기풍 목사와 윤함에 사모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 아시아의 복음화도 물론 하나님의 주도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었지만 바울과 바나바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소 아시아의 골로새 교회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면서 이렇게 고백한 일이 있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복음 전파는 전도자들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에 의해서 복음이 소 아시아에 받아드려 졌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소 아시아 땅에 복음이 전파된 것은 첫째로는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졌고, 둘째로는 두 사도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로 이루어졌지만, 셋째로는 소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므로 이루어졌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받지 않으면 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곳곳에 복음을 듣고 받아드릴 사람들을 정해놓으셨습니다. 강변교회가 세워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듣고 받아드릴 사람들을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조축국씨, 조원자씨, 전영신씨, 사현자씨, 백명희씨, 김명숙씨, 김광자씨, 유홍숙씨, 한화룡씨, 조경애씨, 심옥초씨, 권중국씨, 채희병씨, 정소영씨, 박달안씨, 정정례씨, 최행덕씨, 백혜란씨, 이원배씨, 황규종씨, 신혜식씨 등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을 믿고 영생 얻을 자들로 정해 놓으셨습니다.
두 사도가 소 아시아 곳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믿을 사람들을 미리 준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의 문을 열어놓고 계셨습니다. 구브로 섬의 바보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그 곳의 총독 서기오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행13:12). 두 사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비방과 방해가 많았지만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며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14:1). 두 사도가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한 사람이 바울의 말을 듣고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는지라"(행14:8-10). 두 사도가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믿고 제자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20,21).
지금까지 소 아시아에 복음이 전해진 이야기를 했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주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복음이 전해졌고, 둘째로는 두 사도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졌고, 셋째로는 소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므로 복음이 그곳에 받아드려 졌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복음을 전하실 때에도 주도적으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선교사 마포 삼열 선교사 등의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통해서 이루셨습니다. 마포 삼열 선교사는 이기풍이 던진 돌에 턱이 부서지는 고통도 당했습니다. 그러니 마포 삼열 선교사를 통해서 길선주 이기풍 한경직 등이 믿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변에 복음을 전하시는 일도 주도하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여러분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흑암과 사망이 깃들고 있는 절망의 땅에 복음을 전하시는 일을 주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핍박과 고난과 수고를 아끼지 않을 전도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윤주홍 선교사는 아프간에 가서, 황인범 군은 캄보디아에 가서, 손영삼 선교사는 집시들에게 가서 고난과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복음과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이 믿을 수도 구원 얻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도전했습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택하셔서 주님을 믿고 영생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이고 감사와 찬양을 드릴 일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음 전파 사역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서 핍박과 고난과 수고도 아끼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행복한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