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70
인생 가을을 풍성하게 (요한복음12:23-26)
지난 해 우리교회가 헌금을 보내서 건축한 예배당 봉헌식을 위하여 30여명이 중국을 방문 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3년도부터 시작하여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거치면서 완공한 교회봉헌식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국현지에 도착한 우리일행은 뜻밖의 일을 경험하면서 당황하였습니다. 건축된 교회에는 몇몇 사람들만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기도만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한참 떨어져 있는 공원의 한적한 곳을 찾아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백두산을 관광하는 등 간단한 중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중국현지에 많은 교회건축을 주도한 선교사님과 현지의 목회자가 요청하여 이루어진 일인데 이렇게 되고 보니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국현지의 상황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돌아오는 우리의 여행길에 동행하셨습니다. 아쉬움을 안고 돌아오는 우리 일행의 마음속에 새로운 꿈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앞으로 더욱 크게,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북방 선교후원회”를 발족하게 하셨습니다. ‘북방’은 중국, 몽골, 북한, 러시아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역입니다. 복음의 불모지와 같은 북한을 비롯하여 13억 중국을 비롯한 이 지역에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은 곳입니다. 이 큰 일을 위하여 우리교회가 시작한 이 선교후원회는 지난 1년 동안 152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여 매달 회비를 모으고 있는데 약 2,000여 만 원을 모았다고 하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앞으로 이 선교후원회를 중심으로 선교부에서는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이 일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 4대 비전 가운데 하나인 “선교하는 교회”는 “우리교회 역사만큼 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를 세우고, 주님의 일꾼을 키워내는 일”로 이루어 갈 것입니다.
선교는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지상사역의 비전을 전해주는 소중한 말씀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12:24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의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예수님의 사역이 어떻게 완성되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한 알의 밀알’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 ‘밀알 정신’입니다.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심고 거두는 법칙을 통하여 “인생가을을 풍성하게” 하는 교훈을 주십니다.
1.밀알은 땅에 심겨져야 합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우리지만 적어도 농사를 짓는 원리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식물은 땅에 심겨져야 싹이 나고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도 믿고 있습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둔다.”
이 정도의 사실에 대하여 의심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바로 이 명확한 원리를 어기고 살아가는 사람들 때문에 어둡고 힘들게 됩니다. 악한 것을 심고 선한 것을 거두려고 합니다. 죄의 씨앗을 잔득 심으면서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심지 않고 많은 것을 거두려는 불로소득을 꿈꿉니다. 일하지 않고도 많은 소득을 얻는 것을 능력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세상의 온갖 비리를 낳고 있습니다. 그래서 뇌물로 거래를 하여 바다이야기를 만들고,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에 따르는 신뢰의 문제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훗날의 열매를 위하여 오늘은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9:10,11입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지만 그 하나님은 심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먹을 양식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서 11:1,6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가르치는 교훈이 바로 이것입니다.
마태복음25:26-30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심지 않은 사람의 어떤 변명도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해도 주님은 그 일에 대하여 전혀 듣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심지 않는 자와는 상관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좋은 것, 선한 것을 심어야 합니다.
갈라디아6:7-9입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어기면서도 행복을 추구한다든지, 축복의 결과를 기대한다면 정신 이상자일 것입니다. 미국 알콜중독방지회의 12단계 프로그램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신이상’은 “계속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는 말은 옳습니다.
좋은 씨앗을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맺고 거둡니다. 만약에 사과 씨앗을 심어 놓고 이렇게 기도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심은 사과나무의 씨앗이 배나무씨앗으로 바뀌게 하시고, 배가 주렁주렁 많이 열리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전능하시니 능히 하실 줄 믿습니다.”
2)많이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9:6입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많이 심으십시오.
3)바르게 정직하게 심어야 합니다.
심는 것도 규칙에 따라서 정직하게 심어야 합니다. 농부들이 씨를 뿌리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흩뿌림, 줄뿌림, 점뿌림이 그것입니다. 씨앗을 흩어서 뿌려야 하는 곳에서는 흩뿌림으로 해야 합니다. 줄뿌림으로 해야 하는 곳에는 줄뿌림으로 해야 합니다. 점뿌림으로 심어야하는 곳에는 점뿌림으로 심어야 합니다.
어느 한 아이가 아빠가 콩을 심으라고 하였습니다. 콩은 점뿌림으로 심어야 하는데 놀고 싶기는 하고 일은 많고 하니까 꾀를 부렸습니다. 얼마만큼 심다가 그만 바가지에 담겨져 있는 콩을 밭이랑 끝자락을 적당히 파서 콩을 쏟아 부었습니다. 그리고 콩을 다 심었다고 하고는 신나게 놀았습니다. 얼마가 지난 다음 콩 싹이 돋아나는데 밭이랑에는 콩이 나지 않고 한곳에서 소북이 싹이 올라왔습니다.
씨앗을 심는 사람들은 비록 더딜지라도 힘들지라도 말씀을 다라 심으면 때가 되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많이 거두게 됩니다.
몇 해 전에 감리교신학대학 목회학박사원에서 공부하는 한 조선족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중국에서 4대째 기독교 신앙을 이어온 신실한 신앙의 가문에서 성장하신 목사님과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앞으로 이 분과 함께 중국선교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나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기도해 왔습니다. 학위를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서 성실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중국한족교회를 개척하여 창립 1주년을 맞이한 이 교회는 현재 140여명이 모여 예배하고 있습니다. 금년 들어와서 그 목사님과 함께 작은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일들을 위하여 지난 7월과 지난 주간 두 차례 2박3일씩 현지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작은 씨앗 하나를 심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기는 하나님께서 이 일을 축복하셔서 심은 대로 좋은 열매들이 맺혀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심고거두는 법칙에서 ‘밀알의 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밀알 정신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2.씨앗은 먼저 땅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하여 하늘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은 곳,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빌립보서2:5-11의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정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그 영광을 버리시고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을 섬기려하고 섬기면 그 일에는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내가 섬김을 받으려 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내가 기대했던 대로 예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서운하고, 무리하게 상대방이 섬김을 받으려 하면 적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원수가 되기도 하고, 급기야는 싸우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어디서나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부부지간에도, 형제지간에도, 부자지간에도, 교우지간에도 섬기고자하면 변화가 일어나고 좋은 열매를 얻게 됩니다. 섬기려 하면 그가 누구이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용납할 수 있습니다. 존중히 여기게 됩니다. 그 사람을 세워드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밀알 정신입니다.
여러해 전 한 목회초년병이 기도원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마치던 날 몇몇 친구들이 한 편 부러운 마음으로, 또 다른 한 편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친구가 40일간 금식한 기도원에 올라갔습니다. 뼈만 남은 친구가 무슨 신령한 하늘의 진리를 말을 할까 기대했는데 그가 한 첫마디는 뜻밖이었습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염소’같던 교인이 기도하고 났더니 ‘양’이더라.”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그 교인들이 뿔난 염소인 줄 알아서 원수로 생각하고 싸우려고 했고 망하기를 바랐는데 기도하면서 내 욕심을 내려놓고, 섬기려는 마음으로 돌아가서 보니 그가 바로 주님의 양이었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말이 그 분의 목회를 바꾸어놓았습니다.
‘미치 앨봄’이 쓴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으로 만든 영화를 EBS에서 방영을 했습니다. 주인공 ‘에디’는 평생 바닷가에 있는 놀이공원 정비사로 일하다가 83세 생일을 맞은 날, 추락하는 놀이기구 밑에 있는 소녀를 구하려고 하다가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가 깨어난 천국에서 평소 그의 주변에 있었던 다섯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야기 합니다. 그 관계 속에서 세상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용서를 하기도 하고 용서를 받기도 하면서 그 상처들을 씻고 새 삶을 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낮아지면 모든 사람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용납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낮아져서 모든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되면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알게 되고 그 섬김과 존경의 마음에서 세상은 아름답게 열매를 맺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원수로 보일 때는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원수가 아니라, 형제로 보일 때에 비로소 사랑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 사랑 속에 생명과 성장과 열매가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이 만든다.” 지난 속회일꾼대회 때 예배를 드렸던 춘천교회 목사님이 주신 당신의 수필집 제목입니다. 우리 삶의 아주 평범한 것들 속에서 그 목사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이 작은 시골교회를 크게 만들고, 그 주변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낮아지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입니다.
이 사랑 속에서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이렇게 있음을 감사합시다.
3.씨앗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희생이 인생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맹인이었던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죄인으로 왕 따 당하였던 삭게오를 아브라함의 아들로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굶주린 5천명의 장정들을 위하여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뒤집힐 것 같은 배 안에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당신 자신을 위해서는 끝까지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의 뒤를 멀찍이서 따르면서 마지막까지 기적의 기대를 가졌습니다. 주님께서 최후에 반드시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만, 예수님은 끝내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죽으심으로 세상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10:45의 말씀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가 저와 여러분들을 오늘 이렇게 하나님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 죽으심으로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의 구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온 인류의 희망이 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의 은혜를 입습니다.
세상에서는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되면,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존경과 섬김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권리가 커지는 만큼, 책임도 커지고, 따라서 부담과 스트레스가 그만큼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39세의 나이로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흑인 인권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의 부인 ‘코레타 스콧 킹’은 “마르틴 루터 킹 주니어와 함께 한 나의 삶”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밤이고 낮이고, 온갖 사람이 전화를 해서 욕설을 퍼부었다. 즉시 이곳을 떠나지 아니하면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끝나는 전화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위험과 엉망이 되어버린 가정 생활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대로 마음이 맑아졌다. 즐거워졌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른다.”
킹은 그가 암살되기 전날인 1968년 4월 3일 밤 ‘맴피스’에서 한 마지막 연설의 일부입니다.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생길지 나도 모른다. 우리 앞에는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지금 내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미 정상을 등정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오래 살고 싶다. 오래 사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리고 산꼭대기 너머에서 나는 약속의 땅을 보았다. 내가 당신과 함께 그 약속의 땅에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오늘 밤 당신이 우리가 소중한 인간으로서 그 약속의 땅에 갈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그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눈은 하나님이 오시는 영광된 모습을 보았다.’”
마틴 루터 킹은 그 다음날 암살을 당함으로써 궁극적인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그가 끼친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을 성공리에 이루어내었습니다. 폭력 없는 평화적인 시위를 통하여 승리의 영광을 이루어 낸 것입니다.
“자신이 더 높은 리더십 수준으로 올라가고 싶으면 더 큰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그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밀알정신으로 흑인들의 인권 회복을 위하여 희생이 되었습니다. 그 죽음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가을에 인생의 풍성한 열매를 위하여 주님의 이 말씀을 가슴에 새깁시다.
내일을 위하여 좋은 씨앗을 많이 심읍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으십시다. 영혼구원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낙심하지 말고 씨앗을 심으십시다.
예수님의 밀알 정신을 본받아 낮아져서 섬기는 사람을 삽시다.
귀한 생명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사십시다.
출처/최이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