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신앙 올림픽입니다  (히 12:1-2)

인류의 평화 제전인 28회 아테네 올림픽이 내일까지 진행됩니다. 우리나라는 메달 가뭄으로 애타는 중에(금8,은11,동9)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은 특히 이라크 사태와 관련 해 정세의 불안함 때문에 그리스에서는 경호를 위해 15억 달러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이번 올림픽에 우리나라 삼성전자가 3억달러어치의 물품들을 후원하고, 현대가 1000만 달러를 후원했다고 합니다.
고대올림픽은 BC 776년부터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통상 이때를 올림피아의 원년으로 봅니다. 그후 약 1,500년 동안 중단되었던 고대올림픽 경기는 1894년 6월 23일 파리의 소르본 대학(파리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유럽 각국의 만장일치로 근대올림픽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1896년 유서깊은 근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13개국 311명으로 조촐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올해 아테네 올림픽은 108년 만에 아테네에서 다시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올해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202개국이 참가했으며, 15,000여명이 참여한 이름 그대로 ‘인류평화의 제전’이 된 것입니다. 참가국들 중에는 들어 보지도 못한 나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바누아투, 토고, 통가, 세이셀, 상투메프린시페, 세인트 빈센트, 팔라우, 엔틸리스제도, 모리셔서, 지부티, 쿡제도, 차드, 바르바도스 . . . .이런 나라들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는 부문들이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궁이라든지 태권도 부문에서는 점수를 짜게 주려는 듯한 모습을 면면이 보게 되었습니다. 속이 상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경계의 대상이 될 정도의 나라가 되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하기도 하는 것이라 뿌듯하기 까지 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금메달을 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어떤 경기이든지 경기를 보는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쉬운 금메달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메달의 가격은 얼마일까. 금메달이든, 은메달이든, 동메달이든 메달은 소중합니다. 그 메달을 따기 위해서 얼마나 땀을 흘리는지 모릅니다. 이 메달들은 돈으로 따질 수 없습니다. 4년 동안 세계 정상을 위해 땀흘린 선수들의 노력이야말로 그 어떤 가치로도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올림픽 금메달 속에는 겨우 6그램의 금이 들어 있어 110달러정도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은메달에는 66달러, 동메달에는 16달러의 가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올림픽의 메달은 그렇게 환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대한체육과학연구원이 `올림픽 메달에 대해 국민 경제적 가치’를 분석했는데
금메달이 561억원, 은메달 190억원, 동메달 120억원으로 매겨졌습니다.
연구원은 특히 지난 4년간 올림픽 관련 예산이 2천600억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환산하면, 현재 한국선수단이 아테네올림픽에서 따낸 메달(금8. 은 11. 동9)의 국민적 가치를 환산해 보면 금 4,488억원, 은2,090억원, 동1,080억원 등 총7,658억원이 되는 것입니다.
인생은 경주입니다. 시간도 흐르고 해도 바뀌지만 우리는 이 경주를 계속해야만 합니다.
이 경주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번만 주어집니다. 누구도 이 인생의 경주를 다시 뛸 수 없고 한번만 뛸 수 있는 경주입니다.
이 인생의 경주는 산책하듯이 할 수는 없습니다. 혼신을 다해 달려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고 영적인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도 항상 원수 마귀를 이겨야 하고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경주는 반드시 끝이 있고,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이 내일 있습니다. 42.195km 여기에는 승전의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BC 490년 페르시아군이 그리스를 쳐들어 왔지만 아테네군은 페르시아군을 크게무찔렀습니다.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이 6,400명의 병사를 잃은 데 반하여, 그리스측의 전사자는 192명에 불과하였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약 40 km를 달려 “우리는 이겼노라” 라고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고 절명하였다는데, 마라톤 경주는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생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908년 제4회 런던 올림픽대회 때 윈저궁전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거리 42.195km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마라톤의 정식 거리로 채택되면서 42.195km가 된 것입니다. 모든 경기에는 출발이 있고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 영적인 싸움9경기에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 끝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본문을 보면 운동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맹렬히 경주하는 모습을 그려 보이면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의 경주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경주가 인생의 모든 시련과 고난을 딛고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본문은 신앙의 경주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신앙의 경주자는 죄를 벗어야 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야 합니다. 거리끼는 죄를 벗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자의 출발점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라
본문에 보면 경기자가 출전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경기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1절 중반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1) 무거운 것을 버려야 합니다.
여기서 무거운 것은 체중이 될 수도 있고, 짐이나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뛰기 전에 몸을 간편하게 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달리기를 한다고 하면서 긴 드레스를 입고 폼을 잡고 나온다면 곤란합니다.
요즈음 스포츠 과학이라는 것이 뜹니다. 스포츠과학이라는 것이 모든 종목헤서 효과를 나타냅니다.
요즘은 선수 한 명이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선수의 노력과 더불어 첨단과학 기술을 동원한 훈련과 장비를 과학적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유승민 선수가 탁구 금메달을 딸 때 사용한 라켓은 코치인 김택수 선수가 일본에서 특별히 맞춰 온 것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동안 남자의 수영복은 삼각 팬티였는데, 선수들이 물의 저항을 조금이라도 덜 받게 하기 위한 업체들의 연구로 요즘에는 얼굴과 손발만 제외하고몸 전체를 덮는 전신 수영복이 유행처럼 되고 있습니다. 전신 수영복의 표면은 마치 상어의 표면처럼 수영복 표면에 돌기 구조가 있어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수영복도 아주 얇아졌습니다. 수영선수들 중에는 머리카락을 모두 밀어 버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머리카락이 장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하는데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기록을 내는데 머리가 길면 그만큼 저항이 커져서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초를 다투는 경기라면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할 것입니다.
육상에서도 그 힘을 발휘합니다. 첨단 기술로 개발된 운동화는 육상 선수의 능력이 100 % 이상 발휘될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이봉주 선수를 위해서 특수 제작된 운동화는 특별하답니다. 보통 마라톤 선수들의 신발 내부 온도는 43-44℃, 습도는 95% 정도입니다. 말 그대로 발에서 불이 나는것 같고 땀에 축축히 젖어 물집이 생기기 쉬운 상태입니다. 그러나 새로 개발된 신발은 신발 내외 공기의 통풍이 최대화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신발 내부온도는 38℃까지 낮추었고, 땀의 배출도 잘 되도록 설계되어 선수의 컨디션 유지를 돕고 있다는군요.
올림픽 마라톤 경주에서 맨발로 뛰어 우승을 한 맨발의 황제, 아베베라는 선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가 2연패를 하자 기자들이 몰려들어 우승의 비결을 묻자 그의 대답은 "그 비결은 몸을 가볍게 하고 달리는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경주를 더디게 하는 체중이라면 과감히 줄이십시오. 달리지 못하도록 만드는 세상의 집착에서 속히 벗어나십시오. 믿음의 경주를 가로막는 마귀의 유혹을 담대히 물리치십시오.
2)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려야 합니다.
본문에는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꼼짝 못하도록 얽어매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인생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를 얽어매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강력한 힘으로 붙잡아 넘어뜨리는 죄악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습관, 악한 것을 버리고 얽매인 것과 죄악을 던져버리고 나가야 합니다. 그 유혹들은 명예, 지위, 쾌락, 물질, 어떤 나쁜 습관들일지도 모릅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는데 불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의심은 필요치 않습니다. 교만도, 탐심도, 욕망도, 게을러서도 안됩니다. 악한 습관도 . . . 다 버려야 합니다.

2. 신앙의 경주자는 목표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달리는 사람에게는 다 목표 지점이 있습니다. 이번에 이봉주선수가 달리게 될 마라톤 코스는 죽음의 코스라고 합니다. 약 2,500년 전. 그리스병사 페이디피데스가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친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내달린 바로 그 길, 마라토나스∼아테네까지입니다.
해발고도 250m에 달하는 난코스, 아예 작은 산맥 하나를 넘는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합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지점까지 힘을 얼마나 쓰고 어느 지점 부터는 힘을 아끼고 어느 지점부터는 승부를 가리겠다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이라는 계획이 있습니다. 이봉주 선수도 그 계획을 마스터 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목표 지점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목표 지점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바로 그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달려갑니다. 또한 예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여 도움도 받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4-26)
경주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목표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결코 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보장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는 물위를 저벅저벅 걸었지만, 바람을 바라보았을 때는 무서워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마14:31)라고 책망하십니다.
믿음이 적은자란?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을 쳐다봐서는 안됩니다. 사람을바라보고 교회와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환경바라보고 교회나오는 성도가 되어서도 안됩니다. 환경 좋은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것들을 바라보고 나오기 때문에 신앙의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낙심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입습니다. 오직 우리가 바라봐야 할 분은 예수님 뿐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봐야 합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 그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나와야 할 것입니다.

3. 경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대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다른 재주나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보통 사람들한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뛰어난 인내력이 있어서 성공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업가, 강철왕 카네기(Andrew Carnegie:1835-1919)는 “승부를 가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다”라고 말했습니다.
달리기 경주에서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기에서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달리다 보면 피곤할 때도 있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달리기 경주자들은 목적지까지 가기도 전에 지치고 피곤해집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그래서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때는 숨이 차서 꼭 죽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히12:3) 라고 말씀합니다.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라고 하였습니다. 끝까지 달린 사람에게 상과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모든 선수들이 다 훌륭합니다. 그런데 그 선수들 중에 배드민턴 단식에서 은메달을 딴 손승모 선수는 아쉽지만 참 훌륭한 선수입니다.
그는 2년 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가 오른쪽 발 아킬레스건을 다쳤고 염증이 생기는 아픔이 있었지만 완치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훈련 과정에서도 수시로 통증이 왔지만 코칭스태프에게 아프다는 말도 못한 채 정상을 향해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경기 도중 인대 강화 주사와 진통제 등을 맞으면서 경기를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그 인내를 훌륭하게 평가하고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경주중의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 힘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참아야 합니다. 인내 . . .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명을 참으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부끄러움의 십자가입니다. 영광의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3절에는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이를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대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인내를 통해서 성공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대개 많은 사람들은 쉽게 포기합니다. 재능이 있어도 인내하지 못해서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합니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인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도중에 포기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도, 자녀를 잘 교육시키기 위해서도, 직장에서 인정받고 진급하기 위해서도, 사업 성공을 위해서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려울 때는 더욱 인내가 필요합니다. 요즘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는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특히 삼사십대 중산층 이민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경제위기탈출형’들도 있고 ‘부정부패 환멸형’ ‘자녀 교육형’등 다양합니다. 이민간다고 별 수 없습니다. 인내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하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약1:2-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시련과 연단은 인내를 만들어 내고, 인내는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4. 신앙의 경주에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2절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갈5:22-23절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성령의 열매 중 마지막이 절제입니다. 그 만큼 굉장히 중요합니다.
권투하는 사람들을 보니 시합을 하기 전에 체중을 점검합니다. 그래서 제한 체중을 넘어가면 몸을 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시합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체중조절이 중요합니다. 선수는 자신을 조절하기 위해 먹지 못하고, 잠자지 못하고, 쉬지 못합니다.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요셉은 절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하였을 때, 그는 절제의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욥은 입을 절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말하고 싶은 대로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런 아내의 일침에도 욥은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절제를 하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이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를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또한 벌거벗은 채 그리로 돌아가리라. 주신 이도 주시오, 가져가신 이도 주시니 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소서,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도 아니하고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아니하였더라“ (욥1:20-22)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욥은 말을 절제함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우리가 다 많은 것에서 실족하나니 만일 말에 실족하지 아니하면 완전한 사람이요 능히 온 몸도 제어하는 완전한 사람이요, 능히 온 몸도 제어하는 사람이라 보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순종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 함이요, 이로써 우리가 말들의 온 몸을 돌리느니라”(약3:2-3)
신앙의 경주를 하는 사람들은 절제해야 합니다. 시간을 절제해야 하고, 감정을 절제해야 하며, 돈의 사용을 절제해야 하며, 욕망을 절제해야 하며, 행동을 절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절제의 능력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절제하는 힘을 길러야 하는 것입니다. 절제를 생각해야 하며, 절제를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달리는 신앙의 이 코스는 멀고도 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죄를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바라보며, 인내와 절제로써 경주자의 자세를 갖추면 능히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출처/임경택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