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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세워갑시다 (에베소서 2:19-21)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유명한 일화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화를 통해 오늘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형식과 허상은 그 내용과 어떤 관련이 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는 연말이 되면 새해 설계를 합니다. 새해에는 무슨 행사를 할까, 성도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흥분시킬 이벤트는 없을까 고심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 교회라면 주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영혼구원과 주님의 제자 양육에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고 건물이 크고 웅장하기만 한 교회도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교회 설립 기념주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생일인 셈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생일이 있습니다. 그 날을 맞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일을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를 원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생일을 거창하게 맞이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뻑적지근한 생일이 있었다면 조선왕조 500년의 왕통을 말아먹은 고종의 생일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생일을 ‘만수성절’이라고 이름짓고 그날을 국가적인 경축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생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만조 백관에게 공식적으로 뇌물을 받았으며 허기진 백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잔치를 베푼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생일잔치를 이렇게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오늘만이라도 이곳에 왜 교회가 필요한가, 그리고 교회에 나는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나는 누구인가? 나는 교회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봅시다.
요한계시록 11:1-2에 보면 한 천사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을 상징적 의미로 이해한다면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첫째, 제단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희생제물과 같이 교회와 주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 그 안에서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는 왔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진단해 봅시다. 나는 교회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혹시 어쩔 수 없이 교회는 와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관심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교회에 나와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사람, 교회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의 제물이 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다시 본문 2:19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眷屬)이라.” 그렇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나 저나 이방인이 아닙니다. 손님도 아닙니다. 다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성도요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인데 교회에서는 손님노릇 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손님과 가족은 어떻게 다릅니까? 손님은 음식 맛이 없으면 투덜거리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손님은 식당이 지저분하고 불결하면 짜증을 내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손님은 직원들이 불친절하면 다투고 그 식당엔 발걸음을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주인이나 가족은 음식 맛이 없으면 왜 그럴까 고민하고 연구합니다. 주인이나 가족은 식당이 지저분하고 불결하면 빗자루와 걸레를 가져와 청소를 합니다. 주인이나 가족은 불친절한 직원들이 있으면 타이르고 꾸짖어 친절히 대하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진단해 봅시다. 나는 교회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그저 설교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온 손님입니까? 아니면 외인도 아니요 손님도 아니요 다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우리 교회의 권속입니까?
2. 우리 교회의 기초는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초를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마 7:25). 그렇습니다. 건물의 기초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집은 바람이 거세게 불거나 지진이 나면 힘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사건이 있습니다.
1985년 9월 19일 오전 7시 18분, 많은 시민들이 직장으로 달려가던 아침 시간에 진도 7.8의 강진이 인구 1,800만의 멕시코 시티를 강타했습니다. 지진 진행 시간은 4분 40초, 순간 건물들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 공포의 지진은 네 차례나 계속됐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 사망 실종된 사람은 3만명 이상, 이재민은 30만명 이상, 빌딩 도괴는 1,300동 이상이었습니다. 첫 지진 때 무너진 산부인과 병원에서만 1백명의 산모와 80명의 신생아 시체가 발견되었고 시체 보관실이 만원이어서 노천에 시신을 안치하고, 도시는 시체 썪는 냄새로 뒤덮였습니다.
며칠 후인 10월 14일 진도 6의 지진이 일본 동경을 습격했습니다. 그러나 단 1명의 사망자도, 단 1건의 화재나 건물 붕괴도 없었습니다. 분석 결과 지반 탓도 있지만 멕시코 건축업자들이 설계대로 충실하게 짓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건물이 무너졌음이 판명되었고, 미국 건축회사가 지은 건물은 붕괴된 율이 극히 적었다고 합니다.
기초가 튼튼한 집인가 튼튼하지 못한가 하는 것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진이 나거나 바람이 불 때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교회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튼튼한 교회, 기초가 튼튼한 가정, 기초가 튼튼한 신자는 환난의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우리 교회의 터 즉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입니다.
여기 선지자란 구약시대의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선지자를 말합니다(엡 3:5). 만약 구약 선지자들을 의미했다면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선지자가 있었을까요? 예, 물론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고(행 13:1, 15:32) 가이사랴에 살고 있었던 빌립 집사의 네 딸들은 모두 처녀로 예언하는 자(행 21:9) 즉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한 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곧 교회의 터요 기초가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교훈하신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터는 전통일 수도 없고 교회 지도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가르치고 성경을 바로 배우며 실천하는 교회는 터가 견고한 교회입니다. 성경말씀을 배우고 그 기초 위에 서 있는 신자는 설령 환난의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서 있습니다.
3. 우리 교회는 무엇으로 세워져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기초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초만 세워졌다고 해서 건물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 기초는 건물을 짓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모퉁이 돌’이 아니라 ‘모퉁잇돌’이 표준어입니다)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 2:20-21). 이 성전의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산 돌이며 요긴한 모퉁잇돌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4-8). 모퉁잇돌이란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주춧돌을 말합니다. 이 돌에서 출발하여 돌들을 쌓아 가는 건물의 기초석입니다. 모퉁잇돌, 즉 기초석이 놓여지는 위치와 방향에 따라 건물의 모양이 달라지고 각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병 고치는 신유의 예수님이 모퉁잇돌 되십니다. 어떤 교회는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를 대변하시는 예수님이 모퉁잇돌 되십니다. 어떤 교회는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시는 예수님이 모퉁잇돌 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떠한 모습을 주춧돌로 삼으시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견고한 터와 모퉁잇돌만 있으면 건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건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돌을 쌓아야 하고 이 많은 돌들이 모두 튼튼해야 합니다. 한 개의 돌이라도 약하여 깨지면 건물은 금이 가고 맙니다. 이처럼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튼튼하게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튼튼하지 못하고 병들면 견고하여 든든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돌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낱개낱개가 아무리 튼튼하고 좋아도 잘 연결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는 교회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리 신령하고 똑똑하고 유능해도 이들이 서로 사랑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틈이 생기고 갈라져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아직 교회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직 공사중입니다. 현재 건축이 진행중입니다. 까닭에 부족도 많고 허물도 많고 연약한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꾸준히 지어져 갑시다. 우리 교회가, 우리 자신이 허물이 많다 해도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완성될 그 날을 바라보면서 꾸준히 지어져 갑시다 .
출처/황의봉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입니다. 오래 전에 이 사원을 방문했던 방문객들의 입에서부터 이런 흥미 있는 일화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의 삶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아 주에서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여신도 한 사람이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이 유명한 일화로서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과 내력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화를 통해 오늘 우리가 겉으로 드러내고 있는 이 모든 형식과 허상은 그 내용과 어떤 관련이 되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뒤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교회는 연말이 되면 새해 설계를 합니다. 새해에는 무슨 행사를 할까, 성도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흥분시킬 이벤트는 없을까 고심을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 교회라면 주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영혼구원과 주님의 제자 양육에 좀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아니고 건물이 크고 웅장하기만 한 교회도 아닙니다.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교회일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교회 설립 기념주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생일인 셈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생일이 있습니다. 그 날을 맞는 사람들은 자기의 생일을 다른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를 원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생일을 거창하게 맞이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뻑적지근한 생일이 있었다면 조선왕조 500년의 왕통을 말아먹은 고종의 생일일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생일을 ‘만수성절’이라고 이름짓고 그날을 국가적인 경축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생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만조 백관에게 공식적으로 뇌물을 받았으며 허기진 백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잔치를 베푼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생일잔치를 이렇게 거창하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오늘만이라도 이곳에 왜 교회가 필요한가, 그리고 교회에 나는 왜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나는 누구인가? 나는 교회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 봅시다.
요한계시록 11:1-2에 보면 한 천사가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하였습니다. 이것을 상징적 의미로 이해한다면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보겠습니다.
첫째, 제단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희생제물과 같이 교회와 주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둘째, 그 안에서 경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성전 밖 마당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교회는 왔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진단해 봅시다. 나는 교회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혹시 어쩔 수 없이 교회는 와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관심 대상에서도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교회에 나와 진실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사람, 교회와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의 제물이 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다시 본문 2:19을 봅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眷屬)이라.” 그렇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나 저나 이방인이 아닙니다. 손님도 아닙니다. 다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성도요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인데 교회에서는 손님노릇 하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손님과 가족은 어떻게 다릅니까? 손님은 음식 맛이 없으면 투덜거리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손님은 식당이 지저분하고 불결하면 짜증을 내고 다시 오지 않습니다. 손님은 직원들이 불친절하면 다투고 그 식당엔 발걸음을 끊어버립니다. 그러나 주인이나 가족은 음식 맛이 없으면 왜 그럴까 고민하고 연구합니다. 주인이나 가족은 식당이 지저분하고 불결하면 빗자루와 걸레를 가져와 청소를 합니다. 주인이나 가족은 불친절한 직원들이 있으면 타이르고 꾸짖어 친절히 대하도록 합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진단해 봅시다. 나는 교회에서 어떤 사람입니까? 그저 설교말씀을 듣기 위해 찾아온 손님입니까? 아니면 외인도 아니요 손님도 아니요 다른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우리 교회의 권속입니까?
2. 우리 교회의 기초는 무엇인가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기초를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마 7:25). 그렇습니다. 건물의 기초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한 집은 바람이 거세게 불거나 지진이 나면 힘없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사건이 있습니다.
1985년 9월 19일 오전 7시 18분, 많은 시민들이 직장으로 달려가던 아침 시간에 진도 7.8의 강진이 인구 1,800만의 멕시코 시티를 강타했습니다. 지진 진행 시간은 4분 40초, 순간 건물들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 공포의 지진은 네 차례나 계속됐습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 사망 실종된 사람은 3만명 이상, 이재민은 30만명 이상, 빌딩 도괴는 1,300동 이상이었습니다. 첫 지진 때 무너진 산부인과 병원에서만 1백명의 산모와 80명의 신생아 시체가 발견되었고 시체 보관실이 만원이어서 노천에 시신을 안치하고, 도시는 시체 썪는 냄새로 뒤덮였습니다.
며칠 후인 10월 14일 진도 6의 지진이 일본 동경을 습격했습니다. 그러나 단 1명의 사망자도, 단 1건의 화재나 건물 붕괴도 없었습니다. 분석 결과 지반 탓도 있지만 멕시코 건축업자들이 설계대로 충실하게 짓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건물이 무너졌음이 판명되었고, 미국 건축회사가 지은 건물은 붕괴된 율이 극히 적었다고 합니다.
기초가 튼튼한 집인가 튼튼하지 못한가 하는 것은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진이 나거나 바람이 불 때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교회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가 튼튼한 교회, 기초가 튼튼한 가정, 기초가 튼튼한 신자는 환난의 바람이 불어도 쉽게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우리 교회의 터 즉 기초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입니다.
여기 선지자란 구약시대의 선지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시대의 선지자를 말합니다(엡 3:5). 만약 구약 선지자들을 의미했다면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하지 않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라고 표현했을 것입니다. 신약시대에도 선지자가 있었을까요? 예, 물론 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었고(행 13:1, 15:32) 가이사랴에 살고 있었던 빌립 집사의 네 딸들은 모두 처녀로 예언하는 자(행 21:9) 즉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고 한 것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이 곧 교회의 터요 기초가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교훈하신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터는 전통일 수도 없고 교회 지도자가 될 수도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오직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로 가르치고 성경을 바로 배우며 실천하는 교회는 터가 견고한 교회입니다. 성경말씀을 배우고 그 기초 위에 서 있는 신자는 설령 환난의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무너지지 않고 견고히 서 있습니다.
3. 우리 교회는 무엇으로 세워져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기초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초만 세워졌다고 해서 건물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그 기초는 건물을 짓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모퉁이 돌’이 아니라 ‘모퉁잇돌’이 표준어입니다)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 2:20-21). 이 성전의 모퉁잇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배로운 산 돌이며 요긴한 모퉁잇돌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2:4-8). 모퉁잇돌이란 건물 전체를 떠받치는 주춧돌을 말합니다. 이 돌에서 출발하여 돌들을 쌓아 가는 건물의 기초석입니다. 모퉁잇돌, 즉 기초석이 놓여지는 위치와 방향에 따라 건물의 모양이 달라지고 각도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병 고치는 신유의 예수님이 모퉁잇돌 되십니다. 어떤 교회는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를 대변하시는 예수님이 모퉁잇돌 되십니다. 어떤 교회는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시는 예수님이 모퉁잇돌 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어떠한 모습을 주춧돌로 삼으시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견고한 터와 모퉁잇돌만 있으면 건물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건물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돌을 쌓아야 하고 이 많은 돌들이 모두 튼튼해야 합니다. 한 개의 돌이라도 약하여 깨지면 건물은 금이 가고 맙니다. 이처럼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튼튼하게 바로 세워져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튼튼하지 못하고 병들면 견고하여 든든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돌들이 서로 잘 연결되어야 합니다. 낱개낱개가 아무리 튼튼하고 좋아도 잘 연결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는 교회의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무리 신령하고 똑똑하고 유능해도 이들이 서로 사랑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틈이 생기고 갈라져 결국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나 아직 교회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아직 공사중입니다. 현재 건축이 진행중입니다. 까닭에 부족도 많고 허물도 많고 연약한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꾸준히 지어져 갑시다. 우리 교회가, 우리 자신이 허물이 많다 해도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완성될 그 날을 바라보면서 꾸준히 지어져 갑시다 .
출처/황의봉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