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교회  (요17:21-26)


지난 주일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담임목사의 위임예식이 있는 날 날씨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예상을 뛰어넘는 인파로 대성황을 이루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예식에 참여했던 모두에게 "아! 위임예식이라는 것이 이렇게 이루어질 수도 있구나. 역시 새문안은 다르다" 하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강력한 인상과 새로운 인식을 준 것 같습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이렇게 감동적이고 은혜로운 위임식은 처음 봤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큰 행사가 장로님들을 위시해서 온 교우들의 열심과 정성 가운데 준비되고 잘 마쳐질 수 있었음을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수고와 협력을 아끼지 않으신 교우 모두에게 또한 축하하며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예식이 성공적으로 치루어졌고 그 때에 축하와 칭찬이 쏟아졌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저 듣고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과제와 무거운 짐을 안겨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위임예식에서 순서를 맡으셨던 분들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한 바이지만 우리 새문안교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단지 하나의 교회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싫든 좋든 한국교회 전체와 한국사회, 나아가서는 세계를 향한 어떤 책임을 갖고 있고 또 그러한 책임을 감당할 것을 밖으로부터 요구받고 있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우리들의 귀를 즐겁게 한 모든 좋은 말들은 잘 한다는 칭찬으로보다는 잘 하라는 당부로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하나의 행사를 잘 해냈다는 자만에 빠져 있을 수 없으며, 이제 새로운 출발선에 선 주자의 심정으로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거는 기대가 너무 크며 우리에게 지워주는 사명이 너무 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들을 실망시킬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된지 113주년을 맞는 주일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 교회의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이 시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다각도에서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그 가운데 한 가지 점을 말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는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나라를 증거할 하나님나라백성들의 무리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에게는 하나님나라의 진리, 하나님나라의 삶, 하나님나라의 삶의 기쁨을 우리의 말과 행동과 삶으로 이 세상사람들에게 보여줄 사명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나라가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입니까? 가장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주인이신 나라입니다. 조금 더 길게 말한다면, 인간의 3중적 관계가 바로 서는 것이 하나님나라이며, 이 인간의 3중적 관계가 바로 서는 곳에 하나님나라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3중적 관계란 어떤 것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고, 둘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며, 셋째는 사람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와의 관계입니다. 이제 이 관계들의 내용을 각각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인간으로서 바로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아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첫째로는 하나님을 인간과 만유를 창조하시고 또 보존하시는 이로 아는 것이며, 둘째로는 우리 인간과 함께하시며 교제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며, 셋째로는 우리에게 온갖 은혜와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으로 아는 것이며, 넷째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아버지가 자기 자식에게 갖는 지극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 사랑 때문에 친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놓으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인간으로서 바로 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우선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그에게 필연적으로 의존되어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에게 철저히 의존하며 그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일로 인하여 그에게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그에게 돌리며 영원히 그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란 바로 이러한 믿음과 삶인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사귀며 화평하고 하나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 본문말씀에 귀기울여야합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요한복음 17장은 그 전체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하여 잡히시기 전 하나님 아버지께 드린 기도입니다. 그중 1-5절은 예수님 자신에 관한 기도이고, 6-19절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기도이며, 오늘 본문은 20절에서도 말하듯이 예수님의 제자들로 인해서 믿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도, 즉 우리들을 포함한 모든 신자들을 위한 기도, 달리 말하면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 속에서 우리는 특별히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창세 전부터 아들과 아버지로서 사랑 가운데 모든 영광을 함께 나누는 사귐 속에서 하나이셨다는 것입니다. 21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라고 하며, 22절에서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라고 하고, 24절에서는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사귐과 하나됨이 하나님의 영원한 삶의 본질적 내용임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주님께서는 그 사랑과 영광을 우리에게도 나누어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22절을 보면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 했고, 26절 하반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함이니이다" 라고 합니다. 셋째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화평한 사귐 가운데 하나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21-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니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삼위로 계시면서도 세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이 신비는 우리의 언어와 논리를 뛰어넘는 것이고 아무리 설명해도 여전히 신비로 남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신비스런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분명한 가르침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삼위로 계시면서도 사랑의 교제 속에서 오직 한 분 하나님이듯이, 그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도 여러 사람이지만 각각 뿔뿔이가 아니라 사랑의 사귐 속에서 하나 되어 화목하게 살기를 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끝으로, 사람과 하나님의 다른 모든 창조세계와의 관계가 바로 서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지속적인 유익과 행복을 줄 수 있도록 올바로 사용되고 관리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지키는 일은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문제이며 하나님나라의 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의 사실들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해야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나라를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증거하는 일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들 사이의 관계, 창조세계와의 관계라는 이 3중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한 것입니다. 이 3중의 관계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모두 깨어졌던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모두 우리에게 회복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앞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분명하고 확고하게 해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안에 품고, 그 사랑 안에서 평화로운 사귐을 가지며, 그 사랑과 사귐 속에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목적이었으며,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길게 드리신 기도 속에서 간구하신 바였습니다. 이 주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며, 하나님나라의 삶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다 함께 그러한 교회 되고자 힘써야하지 않겠습니까?


출처/이수영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