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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위기 (본문 왕하 20:12-21)
히스기야는 훌륭한 왕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며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히스기야 왕도 본문에서와 같이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자신이 다스렸던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히스기야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도의 위기는 언제오는가, 성도가 어떻게 할 때 위기는 찾아오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바벨론왕이 보낸 사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보다 귀를 기울여 들었다는 것은 히스기야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는 사자의 말을 듣고 보물고의 금품과 향품등을 보였주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였던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병들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처들어왔을 때에도 그는 이사야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가 끝나고 육신의 죽을 병이 고침을 받고 난 후 바벨론왕의 특사가 친서와 보물을 가지고 공세를 폈을 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즉,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기 이제는 회복이 되고 성공을 하고 난 후에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의 바벨론왕은 호시탐탐 남유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벨론왕 특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히스기야로서는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죽게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암울했던 시기가 언제입니까? 바로 구약시대가 끝나고 세례요한이 나타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바로 암흑의 시대, 어둠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과거의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었으나,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위기입니다.
성도의 위기는 언제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입니다. 오히려 사람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보다 클 때, 사람의 말을 더 듣고자 할 때, 그 때가 바로 위기입니다. 지금 내 신앙의 삶이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쟁쟁하게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어가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어보다도 세상적인 언어에 더 익숙하다면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관에 익숙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듣고 그 언어에 끌려가게 되는 것을 당연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언어에 훈련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히스기야의 결정적인 위기는 바로 편지와 예물에 속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다왕국의 주변에는 두 왕국이 세권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바벨론과 앗수르였습니다. 이미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왕국 유다를 노리고 한번 쳐들어왔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앗수르 왕 산헤립은 창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바벨론왕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유다왕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히스기야왕이 정말 강한지 정탐하러 특사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히스기야가 사람의 말에 익숙하다보니 속았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거짓의 아들이며 위장술의 대가입니다. 그 사람이 가장 필요하고, 약한 부분으로 침투해서 시험하고 유혹합니다.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 위기는 생기게 됩니다. 시험이나 환란에 겁먹고 떨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공이나 행복, 출세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보물과 편지에 속아버린 히스기야 왕은 보여주어서는 안될 것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13절에 살펴보면 그는 왕궁과 나라안에 있는 것, 전부다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왜 히스기야는 보여주었을 까요? 여기서 보여 주었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살아난 히스기야로서는 바벨론 특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자랑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의 부와 국력만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가 이루어 놓은 양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군기고와 내탕고까지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여주어야 할 것이 있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진정 보여주어야 할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 보여줄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것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 나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위기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고 있을수록 더욱 근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더욱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공할 수록 평안할 수록 하나님께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사람의 말과 세상 것의 잠시 홀깃하여 위기를 맞이하였다 할지라도 다시한번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출처/오경남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히스기야는 훌륭한 왕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이며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히스기야 왕도 본문에서와 같이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자신이 다스렸던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위기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히스기야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도의 위기는 언제오는가, 성도가 어떻게 할 때 위기는 찾아오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바벨론왕이 보낸 사자의 말을 하나님의 말보다 귀를 기울여 들었다는 것은 히스기야의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13절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는 사자의 말을 듣고 보물고의 금품과 향품등을 보였주었다고 나와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였던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병들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처들어왔을 때에도 그는 이사야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가 끝나고 육신의 죽을 병이 고침을 받고 난 후 바벨론왕의 특사가 친서와 보물을 가지고 공세를 폈을 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즉,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기 이제는 회복이 되고 성공을 하고 난 후에는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의 바벨론왕은 호시탐탐 남유다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바벨론왕 특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인 히스기야로서는 결정적인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죽게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암울했던 시기가 언제입니까? 바로 구약시대가 끝나고 세례요한이 나타나기 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를 바로 암흑의 시대, 어둠의 시대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과거의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었으나,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위기입니다.
성도의 위기는 언제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입니다. 오히려 사람의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보다 클 때, 사람의 말을 더 듣고자 할 때, 그 때가 바로 위기입니다. 지금 내 신앙의 삶이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이 쟁쟁하게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어가 익숙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어보다도 세상적인 언어에 더 익숙하다면 우리는 세상적인 가치관에 익숙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듣고 그 언어에 끌려가게 되는 것을 당연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언어에 훈련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됩니다.
둘째,히스기야의 결정적인 위기는 바로 편지와 예물에 속았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 유다왕국의 주변에는 두 왕국이 세권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바벨론과 앗수르였습니다. 이미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남왕국 유다를 노리고 한번 쳐들어왔습니다. 이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앗수르 왕 산헤립은 창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오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바벨론왕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래서 유다왕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히스기야왕이 정말 강한지 정탐하러 특사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히스기야가 사람의 말에 익숙하다보니 속았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그리고 거짓의 아들이며 위장술의 대가입니다. 그 사람이 가장 필요하고, 약한 부분으로 침투해서 시험하고 유혹합니다.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 위기는 생기게 됩니다. 시험이나 환란에 겁먹고 떨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공이나 행복, 출세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마귀는 항상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지 못하고 세상적인 보물과 편지에 속아버린 히스기야 왕은 보여주어서는 안될 것을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13절에 살펴보면 그는 왕궁과 나라안에 있는 것, 전부다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왜 히스기야는 보여주었을 까요? 여기서 보여 주었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살아난 히스기야로서는 바벨론 특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자랑해야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자신의 부와 국력만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가 이루어 놓은 양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군기고와 내탕고까지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보여주어야 할 것이 있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진정 보여주어야 할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교회가 진정 보여줄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말아야 할것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 나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위기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을수록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고 있을수록 더욱 근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고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더욱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공할 수록 평안할 수록 하나님께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설령 우리가 사람의 말과 세상 것의 잠시 홀깃하여 위기를 맞이하였다 할지라도 다시한번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출처/오경남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