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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마 21:28-32)
대통령 경호원은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하여 국가원수의 신변을 보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대통령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대통령의 곁에 있습니다. 대통령의 곁에 있으면서 자신은 가리고 대통령만 드러나게 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위해가 가해지면 자신의 생명을 던져 대통령을 보호합니다. 그것이 경호원의 임무입니다. 만일에 사람들 앞에서 대통령보다 자신을 나타내려고 한다든지 대통령의 안위에 무관심하다면 그는 결코 경호원이 될 수 없습니다.
1981년, 미국의 40대 대통령 레이건이 힐튼호텔에서 있었던 미국 노동총연맹 연차 총회의 연설을 마치고 나와 전용차를 타려는 순간, 25세의 힝클리라는 정신이상자가 저격을 시도하였습니다. 힝클리가 쏜 첫발은 레이건의 가슴을 명중하였지만, 그 뒤 경호원이 대통령을 향해 몸을 날려 제 2탄부터 제 5탄까지 대신 맞았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몸을 던져 대통령을 위한 방탄막이 되었던 경호원들 덕분에 레이건 대통령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만일 경호원들이 목숨을 걸고 대통령을 지켜야 된다는 자신들의 책무를 소홀히 했던들 레이건 대통령은 그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목숨보다 국가원수의 안위를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경호원들 때문에 대통령과 미국을 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희생을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며, 명예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은 하나님의 포도원의 일꾼들입니다. 이 포도원은 하나님 나라인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키는 자, 즉 하나님 나라의 경호원들입니다. 그 책무가 대단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을 지키려다가 죽거나 불구자가 된 경호원들에게는 미국 정부가 훈장을 수여하였고, 지금까지도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연금이 지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상급은 국가에서 받은 보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당한 자들을 자녀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시며,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 땅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시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부족한 삶을 도구 삼아 이 나라와 열방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이 땅에서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것을 물어보고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포도원 일을 맡겼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맏아들은 간다고 대답만 해놓고 가지 않았고, 둘째는 싫다고는 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가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뜻대로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맏아들입니까, 아니면 둘째 아들입니까?
1. 하나님 말씀 앞에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더불어 논쟁하신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입성하여 성전을 정화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보며 심기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자신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자부해 왔는데, 젊은 랍비 하나가 성전 비리를 폭로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다못한 대제사장들과 장도들은 예수께 나가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3개의 비유를 들어 유대 지도자들의 위선을 폭로하였습니다. 그 비유는 '포도원 주인의 두 아들에 대한 비유'(마 21:28-31)와 '주인에게 거역하는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마 21:33-40), 그리고 '왕의 혼인잔치를 거절한 사람들에 대한 비유'(마 22:2-14) 인데 오늘 본문은 그 중에 첫 번째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통해 자칭 유대 지도자라 일컫는 자들이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비유들을 통해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엄청난 성장을 하였으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일찍이 유럽의 교회들이 경험한 현실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은 찬란한 문화를 이끌어 온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는데 만족하며, 몇몇 노인들과 함께 '문화재'나 '관광유적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일각에서는 그러한 1세계로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퇴조현상은 복음의 능력이 약하기 때문입니까? 교회 본래의 모습은 역동성과 생명력이 넘치는 것임을 우리는 사도행전 시대의 교회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로마의 압제 하에 탄압을 받았지만, 결국 로마 제국을 굴복시키고 세계 각지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이는 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한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포도원을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드리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교회가 오늘날 쇠퇴해가는 이유는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허망한 욕심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욕망이란 물거품과 같은 것이어서 욕망에 마음을 내어준 교회가 소멸의 길로 접어든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사야 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의 허무한 욕망을 따라 하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인생은 시드는 꽃이요 마르는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삶이 화려하게 보여도 결국 공동묘지에 한 줌의 흙으로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한 줌 흙으로 끝나지 않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해야 합니다.
포도원 주인인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아들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스케줄이 있고 계획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가서 일하라"는 말은 아버지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맏아들은 "아버지여 가겠소이다"(29절)라고 대답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순종이 표현되고 있는 이 즉각적인 대답은 일시적으로 아버지를 만족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대답은 했지만, 자기가 세워놓은 계획을 포기하거나 변경하면서까지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할 생각은 아예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맏아들은 대답과는 다르게 포도원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한편 똑같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은 둘째 아들은 "싫소이다"라고 솔직히 대답했습니다(30절). 아버지의 면전에서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한다는 것은 매우 불손한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둘째 아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는데, 갑작스런 아버지의 명령을 듣고 반감이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듣고 실망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곧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습니다. 뉘우쳤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려던 일을 접어두고, 아버지의 명령대로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습니까? 두 아들 모두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속이고 그 명령을 행하지 않은 거짓과 위선의 죄를 범했으며,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거절하는 무례를 범하였습니다. 맏아들은 예의바르기는 하지만 정직하지 않은 자이고, 둘째 아들은 정직하지만 고집이 센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한 사람은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명확했습니다. 맏아들은 위선적인 유대종교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유대 사회에서 세리와 창기로 대표되는 죄인들, 사회적 약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서기관, 바리새인 등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맹세하면서도 성전 밖에서는 그 맹세를 이행치 않는 위선을 일삼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위선적인 신앙으로는 그들이 죄인이라며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 세리와 창기보다 천국에 들어갈 가망성이 더 희박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하나님은 곧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으로 나타나십니다. 곧, 말씀을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척도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얼마나 많이 아는지,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얼마나 성공했는지가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느냐 하는 것이 그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도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깁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사무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존중히 여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것입니다(삼상 15:22). 여러분 모두 하나님 말씀을 존중히 여겨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포도원의 일꾼으로 평생을 헌신합시다.
본문에서 아버지가 두 아들을 시켜 일하라고 한 포도원은 하나님의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그 피 값으로 산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이 교회를 통해서 그동안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졌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물론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는 교회의 역사였고,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은 세계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였고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신앙이 유지되고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교회를 통한 복음전파의 사역은 '오늘' 가야만 하는 긴급한 명령입니다. 비록 '오늘' 우리들에게 그런 명령이 내려진다면, 갑작스럽게 들릴 지 몰라도, 그 명령은 다른 모든 일보다 우선 순위에 있는 명령입니다.
이 일에 대해 둘째 아들처럼 '싫소이다'라고 대답한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정과 사업도 일으켜야 하고, 자녀들 교육도 시켜야 하고, 결혼도 시켜야 하고, 시간도 없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만한 물질도 없어서 '오늘은' 하나님의 포도원에 갈 수 없다고 거절한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안개와 같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 4:14). 안개와 같은 우리 인생에서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는 말씀처럼, 우리의 삶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뜻이 있는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아버지를 속인 맏아들보다는, '뉘우치고 간' 둘째 아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었음을 기억하고, 이제라도 하나님의 포도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살았다면,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삶으로 뉘우치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순종하여 그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전병금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