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50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 (출12:1-14)
애 굽 왕 바로의 강퍅한 마음은 아홉 번의 거듭되는 재앙에도 조금도 숙으러 들지 않고 여전히 기세가 등등함은 물론이고 오히려 강퍅한 마음은 점점 더 극을 향하여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바로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제 최후의 심판인 사망의 재앙을 준비하셨습니다.
이러한 마지막 재앙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재앙의 피해자가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아끼 지 아니하셨다.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며 구원코자 하신 계획을 가지고 계시 며, 또 사악한 애굽 사람들에 대한 심판도 계획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계획은 한 마리의 유월절 어린양의 죽음을 통하여 갈라지는 것입니 다.
한 밤을 맞이하면서 어린양의 피가 문설주에 발려 있으면 죽음의 재앙이 지 나가고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가 발려 있지 않으면 죽음의 사신이 들어와 장 자와 생축의 첫 새끼를 다 죽이는 재앙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은 한곳은 구원의 길로 한곳은 멸망의 길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의 유월절 '유월'(逾越)은 영어로 '패스 오버'(Pass over), 즉 '넘어 간다'는 뜻입니다. 누구든지 염소나 양의 피가 있어야 죽음의 재앙이 Pass over하는 것처럼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속죄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주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죽음의 사자'가 '죄의 심판'이 Pass over되지만 주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애굽인과 같이 심판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은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1.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 출발의 근원이 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은 새로운 달력을 쓰는 것으로 새 출발을 되게 하 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단순한 새 출발만을 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속사적으로 보면 인류의 구원사의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2절에 나오는 "해의 첫 달"은 '아빕월'을 뜻합니다.
이 달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달력에 의하면 3-4월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아빕월'은 바벨론 포로 기를 격은 후에 '니산월'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달력에 의한 각 달의 이름을 말씀드리면, 말씀드린 대 로 3-4월은 아빕월, 4-5월은 시브월, 5-6월은 시완월, 6-7월은 담무스월, 7-8월은 압월, 8-9월은 엘룰월, 9-10월은 에다님월, 10-11월은 불월, 11-12월은 기슬루월, 12-1월은 데벳월, 1-2월은 스밧월, 끝으로 2-3월은 아달월이라 부른니다.
여기서 우리가 쓰는 두 달이 하나의 달로 묶인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달 력의 매월 첫날이 우리가 쓰는 달력의 첫날인 1일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대략 15일경 과 일치하기에 다음달 14일경까지가 한 달로 계산되기 때문이 다. 이 내용을 잘 알아두시면 앞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실 때 시간적 배경 을 잘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아빕월 14일이 지난 15일은 그들의 달력 첫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가 유월절이었다. 우리가 지키는 고난주간과 성금 요일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그 날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시작이었다. 우리도 날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사탄의 올무에서 풀려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십자가 밑에 엎드려 구원 얻는 순간 내 인생이 새로운 영적으로 태어난 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날마다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순간 절망이 물러가고 희망의 빛을 받 을 수 있습니다. 매여있는 사탄의 쇠사슬이 풀어지는 승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을 기점으로 새로운 달력을 준비 하 라고 하시고
3절에 보면 " 너희 매인이 어린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 여 어린양을 취하되" 하셨다.
2.영생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기 전에 어린양을 취하라고 하신 말씀은 구속 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영적으로 택함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탄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 린양을 대가로 치러야 합니다. 이 말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데는 어린 양이 필요합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요 1:29"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약시대의 우리에게는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피를 믿으 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린양은 흠 없고 일년 된 수컷으로 하되 라고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흠 없는 어린양은 하나님께 드리기에 육체적인 결함이 없는 가장 온전하고 아름답고 최상에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이는 죄로 얼룩진 인간은 안되고 절대 거룩하시며 본질상 죄인들과 엄격히 구분되시어 조금도 더러움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뿐 이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일 년 된 = 굳이 일 년 된 것으로 제한한 이유는 (1)그때가 가장 성장 상태 가 좋고 육질이 좋아 재물로서의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이며 (2)3절에 말씀처 럼 한 가족이 소화하기 알맞은 양을 공급해 주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를 죄악세상에서 구원하여 천국 백성 만드는데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이에는 없습니다는 깊은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수컷을 취한 이유는 장차 애굽 땅 모든 수컷이 초태생과 장자가 죽게 될 것이나 이스라엘에 속한 짐승의 초태생이나 사람의 장자에게는 죽음의 재앙 이 내리지 않을 것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듯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우리도 자신 을 스스로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산 재물이 되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습니다가 라고 하셨다. 3절에 이 달 열 흘에 너희 매인 양을 취하여 십 사일까지 즉 사일동안 간직하라고 했습니다. 10일날 양을 취하여 14일까지 4일 동안 매워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아무리 말씀대로 취했습니다 하더라도
(1) 4일간 지켜보면서 더 후회 없는 하나님의 만족하시는 재물이 되고 정성스 런 예물이 되게 하고자 점검하는 것입니다.
또 (2) 4일 동안 재물이 될 양을 관리하면서 자신은 구원받을 자격도 없고 노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이 양의 죽음으로 해방되는 기쁨의 고마 움과 감사함을 기리기 위함이 있습니다.
분명히 어린 자녀가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아빠, 이 양은 왜 따로 구별해 놓았나요?" 아빠는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모든 장자를 죽이신대 너도 장자니까 죽을 수 밖 에 없어. 그러나 이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면 하나님이 너 를 살려 주신다고 약속 하셨단다" 그 아이는 4일 동안 그 양을 바라보며 평생에 잊지 못할 고마움을 가질 것입니다.제일 예쁘고 제일 건강한 양이 자기를 대신해서 죽어야 했던 이유를 깨달은 아이의 마음에 어찌 고마움과 감사의 마음이 일지 않겠는가?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죄 값으로 사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야할 죄인임을 아십니까?
나의 죄의 값을 치르려고 흠 없고 점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 심을 아십니까?
그 예수님이 유월절 아침에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가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겼음을 믿는가요 정말 이것이 확실합니다면 여러분은 이 시간 "나의 구원은 주님의 절대적인 십자가의 죽으심으로만 이루어졌습니다"는 사실을 믿고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양을 잡을 때는 6절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라고 했습니다.
유월절 양은 어느 특정한 사람이 혼자 잡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별한 모 든 사람이 함께 잡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제사장 제도가 없었던 까닭이기 도 했지만 장차 어린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가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 직접 나갈 수 있는 만인 제사장에 대한 예표이기 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담대히 보좌 앞으로 나아 가 아바 아버지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에 의해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외에는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없게 되어있었습니다. 일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제사장의 중보를 통해서만 이루어졌습니다.
카톨릭에서는 죄를 사함 받으려면 신부에게 고해성사하고 신부는 하나님께 대신 기도를 올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으므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예배와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크고 놀라운 특권을 가졌으니 얼마나 감사하며 얼마나 감격한지 여러분은 지금도 느끼고 있습니까?
우리도 제사장이라는 특권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제사장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감당함으로 하나님과 세상에 책임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출처/김승동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