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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 (본문 눅2:25-39)
성경에는 노인 이야기가 매우 많습니다. 그만큼 노년기에 하나님이 인생을 향하여 이루시는 큰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성경에 있는 많은 노인에 관한 이야기 중에 가장 깊이가 있는 대표적인 두 노인으로 매우 복된 노년을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노년기는 행복과 보람이 충만한 삶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늙지 않는 노인
첫째로 시므온과 안나는 깊은 영성을 가진 노인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나이가 들어가는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깊은 영성을 소유한 노인입니다. 이것은 노년기 최고의 복의 조건입니다. 노인의 기도 한 마디는 젊은이들이 감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시므온을 향하여 "그는 의롭고 경건하며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고 했는데 성경에서 "기다린다"라는 말은 기도라는 의미로 새기기 바랍니다. 이것은 메시야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는 노인의 모습입니다. 노인의 무기는 깊은 영성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노인들은 젊은이 못지않는 영성과 무게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 교회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노인의 기도가 있는 가정도 복이 있습니다. 노인이 있다는 그 자체보다 노인의 깊은 기도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정의 보화요 재산이 되는 것입니다.
노인의 특성 중에 대표적인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기력이 약한 것입니다. 노인은 육체의 힘으로 하는 일은 도무지 나설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노년기에는 기회가 적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효용성이 적습니다. 그런데 시므온과 안나는 이 세 가지를 다 확보하고 있는 노인입니다. 하나님은 시므온에게 네가 죽기 전에 메시야를 볼 것이라고 하셨으며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는 인생의 목표가 있었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시므온은 매일 성전에 출입하면서 메시야를 만날 기회를 기다린 사람입니다.
우리는 흔히 노인이 되면 이런 면에서 항상 자신감을 잃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감을 거두시지 않습니다. 노년기에도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할 일이 있고 시므온과 안나같은 깊은 영성을 소유한 복된 노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노인
제가 어느 병원의 응급실에 가보니 복도에도 매트리스를 놓을 정도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응급실이 한가한 사회가 되어야 하지만 제일 분주하고 일이 많은 곳이 병원 응급실입니다. 그런데 둘러보니 젊은이와 장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응급실은 사고를 당하여 긴급한 상황으로 오는 곳인데 사고를 당하는 비율은 노인은 몇 분 되지 않고 모두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노년기를 볼 때 깊은 영성을 유지하는데도 기본적인 건강이 있어야 합니다. 기본적인 건강을 본문에서 암시하기를 성전에 출입하는 건강이라고 했습니다. 노인들은 성전에 출입하는 건강을 유지하는 선에서 건강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영성도 같이 보존이 됩니다. 본문을 보면 시므온과 안나는 성전에서 기도하며 금식하며 메시야를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결례를 행하러 갔을 때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에 출입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이 있으면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은 없을 정도의 기본 건강이 됩니다. 그러나 성전에 출입할 수 없을 정도의 건강은 영성을 유지하는데도 장애를 받습니다. 그만큼 노년기일수록 성전을 사모하고 성전에 나아오는 것이 큰 축복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그 축복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명에 사는 노인
두 번째 이 두 노인에게 있는 복된 사실은 사명을 받은 노인이라는 것입니다. 26절에 보면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임을 말합니다. 29절-32절에 보면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라고 하면서 성전에 안고 온 아기 예수님을 만난 노인들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34절-35절에서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고 마리아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예언해 줍니다.
38절에 보면 안나는 "아기에 대해서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누가복음 2장에서 시므온과 안나에게 아기 예수를 만나게 해주시고 그들이 예수를 만난 후 예수에 대해서 말하고 찬양하고 기뻐한 이 일을 다루고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왜 메시야가 두 노인의 입으로 증언을 받아야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 본문의 문맥을 보면 큰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사건을 비롯해서 동방박사들이 찾아오는 일이라든지 목자들이 찾아오는 것도 사건이지만 두 노인이 메시야를 만나는 것은 그보다 더 의미깊은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그 당시에 있어 매우 믿기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 당시로 돌아가 보면 일반대중들은 아기 예수가 이 땅에 났다는 것을 모르며 관심도 없습니다. 베들레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아기 예수가 났다는 사실에 대해 관심밖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대중들이 잊기 쉽고 무관심하기 쉬운 이 탄생을 역사 속에 확고하게 증언하기 위해서 두 노인을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메시야를 만나 증언하라는 사명을 노년기에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한 평생 동안 예수님을 기다리고 기도하며 메시야를 위해서 생애를 바쳐서 오랫동안 기다렸다가 아기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바로 역사성입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우연히 태어난 신화속의 인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두 노인에게 젊을 때부터 너희들이 죽기 전에 메시야를 볼 것이라고 계시로 미리 알려주시고 확고한 역사성을 그들에게 인지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노인은 그 당대의 마지막 선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입으로 이 아기가 메시야 라고 증언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로 인지되는 일에 있어 매우 의미깊은 일입니다. 시므온과 안나가 증언함으로 이 아기는 많은 사람 앞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 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 사실이 역사 속에 새겨지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므온과 안나는 무작정 오래 산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가지고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나이를 추산해 보면 상당히 고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고령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는데 26절에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추정해보면 시므온은 사실상 죽을 나이가 지났는데도 아직 살아있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 장수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연장된 시간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나의 나이는 대략 추산이 되는데 남편과 결혼생활을 7년 한 후에 과부된지 84년이니까 결혼 후 91년입니다. 결혼을 15세 전후로 했다고 해도 100세가 넘는 고령의 노인입니다. 그러나 고령의 노년기라고 할 일이 없고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목숨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순간까지 노년기는 하나님 앞에 해야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명을 잃어버리면 쉽게 늙어버리지만 사명을 붙잡으면 영적으로 늙지 않습니다. 노년기에도 하늘나라를 기다리는 기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자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매우 의미깊은 일입니다.
영원을 가진 노인
세 번째 복된 요건은 탁월한 영권을 가진 노인이라는 것입니다. 34절에서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라고 시므온의 영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포함한 요셉과 일행들이 성전에 왔는데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과 예수의 부모에게 축복했다는 말입니다. 즉 축복하는 영권을 말합니다. 노인이 갖고 있는 영권 중에 젊은이가 감히 할 수 없는 것이 축복의 영권입니다. 노인이 자손을 위해 축복하고 성도들을 위해서 하는 축복기도는 영권을 가지고 임합니다. 이것은 노인에게 복된 은혜의 조건입니다. 노인의 입에서는 축복기도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모두가 후대들이 복을 받는 거름이 될 줄로 믿습니다.
또 하나의 영권은 37절에 있습니다.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기도하므로 성전을 섬기는 안나의 기도를 말합니다. 시므온과 안나는 고령의 노인이지만 두 노인은 복된 노년기가 무엇인가 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맺는 말
저는 친척 중에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노인들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와 거리가 먼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노년기가 더욱 복된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젊을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는 것은 노년기의 행복의 조건임을 말합니다. 청년 때부터 창조자를 알고 그를 한평생 섬기면서 노년기를 맞이할 때 복된 노년기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노년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모르는 노인이라면 그에게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시므온과 안나를 보면 이 두 노인의 그 탁월한 인생의 가치는 깊은 영성, 하나님 앞에 받은 사명, 젊은이들이 따라갈 수 없는 영권을 가진 노인의 모습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행복한 노년기를 사는 노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어른 뿐 아니라 이 땅위의 크리스챤 노인들이 복된 노년기를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이용호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