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66
잠 31:10-31
본문의 말씀은 현숙한 여인에 대한 말씀입니다. 잠언서에는, 여자를 좋게도 묘사하고 바쁘게도 묘사하면서, 바가지 잘 긁는 여자는 탐탁치 않은 여자로 묘사했고, 아름다운 행위를 가진 여인을 현숙한 여인으로 묘사했습니다.
현숙한 아내를 가리켜 "황금자모"라고도 말합니다. 이는 여자의 덕행과 아내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현처(賢妻)는 남편의 면류관이요 진주보다 더 귀합니다.
잠언 31장은 르무엘 왕에게 그의 어머니가 훈계한 잠언입니다.(잠31:1), 르무엘 왕은 현숙한 이상적인 여인을 찾아 구했으나 결국은 자기 어머니가 제일 현숙한 이상적인 여인임을 깨닫고 어머니의 생활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현숙한 여인이 많습니다.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다 선민의 조상이 된 룻이 있으며, 금식기도로 동족을 구원한 에스더 왕후가 있고, 목숨 건 서원 기도로 아들을 받은 한나와, 그 외에도 라합, 마르다, 마리아, 아비가일, 리브가, 라헬 등이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아내 혹은 여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모두가 다 신랑 되시는 예수님의 신부들입니다. 또한 성도는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은 영적 어머니입니다. 성도는 가정을 품어야 합니다. 교회를 품어야 합니다. 나라를 품고, 민족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이 좋든 좋지 않든, 사랑해 주든 사랑해 주지 않든, 힘이 들든 힘이 들지 않든, 성도라면 현숙한 여인이 되어서 가정을 품고, 교회를 품고, 나라를 품고, 민족을 품어야 할 영적 어머니이다, 그 말인 것입니다.
영적 어머니가 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의 미래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현숙한 여인"이 될수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또 뿐만 아니라 이 땅은 바르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맑고 밝고 환한 사회, 살기 좋은 이 사회가 될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이 시간, 어떤 사람이 "현숙한 여인"인지 알아봄으로써 신랑 되시는 예수님께 인정받고, 세상에서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우리 모두 "현숙한 여인"이 됩시다.
1. 현숙한 여인은 남편의 좋은 내조를 하는 여인입니다.(10-11절)
본문 10-1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숙한 여인은 남편의 좋은 내조를 하는 여인입니다. "위대한 남자 뒤에는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여자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위대한 남자 뒤에는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한 아내가 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란, 남편에게 "믿음"과 "희망"과 "선"을 주는 사람입니다. "믿음"을 주는 사람, "희망"을 주는 사람, "선"을 주는 사람, 이런 사람이 "현숙한 여인"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인이나 어머니 때문에 잘못된 이도 많지만, 부인이나 어머니 때문에 출세한 이가 많습니다(23절). 남편에는 여러 여자보다 뛰어난 덕이 있는 여자입니다(29절) 우리는 주변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그 이면에는 내조를 잘 하는 좋은 아내가 있었다는 것을 흔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고, 아내를 믿고, 하나님을 믿게 해 줍니다. 이 믿음이 있는 남자는 잠깐은 넘어질지라도, 결국은 승리합니다. 지금은 잠깐 어려울지라도 종국은 승리할 수 있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0절-11절에서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숙한 아내를 둔 남편은 그의 직장과, 그의 사업과, 그의 하는 일에 실패가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출생지요, 요람이요, 최초의 학교요, 인생의 공동체요, 사람의 고향이요, 인생의 낙원입니다. 그러한 가정에서 서로 불신하는 것은 비극이요, 불행입니다. 지금은 불신의 시대라 가정도, 정부도, 사회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불신의 세계에서 사는 모습들 입니다. 그러나 부부는 서로에게 신뢰감을 주어야 합니다.
① 좋은 아내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남편을 믿어야 합니다.
남편을 신뢰하지 못하면 좋은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사라는 그 남편 아브라함을 뭐라고 했습니까? 베드로전서 3장 6절에 보니까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主)"라고 하면서 높여주었습니다. 물론 남편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정의 질서를 위해서 엡 5:22-23에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② 또한 좋은 아내는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남편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본문 12절에서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좋은 아내는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남편이 선을 행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물질에 눈이 멀어서 부부가 함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못 벌어도 남편이 바른 길을 가고자 할 때, 그것을 힘써 밀어 주고, 인정해 주고, 아내가 힘이 되어 줘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 때 남편은 나라와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또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본문 23절에서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로 더불어 성문에 앉으며 사람의 아는 바가 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좋은 아내를 둔 남편은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2.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여인입니다.(13-27절)
본문 13-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합니다. 또 열심히 일합니다. 땀 흘려 일합니다. 수고하고 일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해서 경제를 주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15절에 보니까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라고 그랬습니다.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서", 그 말이 뭡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그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눠주며"라는 말씀은 "가족들이 아침밥을 먹을 수 있도록 밥 준비를 잘 해 주며"라는 뜻입니다. 또한 "여종에게 일을 정하여 맡기며"라는 말씀은 "그 집안에 여종들이 있으면 일거리를 착착 나눠서 맡겨 준다"는 뜻입니다. '여종들이 일하겠지', 그러고 주인이니까 그냥 펑펑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주인 마나님이 먼저 일어나서, 먼저 깨어서 밥상을 차려주고, 그 여종들에게 일거리를 착착 나눠주면 그 가정은 산다, 그 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13절)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 밤에도 등불을 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15-18절) 가정 식구에 옷 손질을 잘하며 게을리 얻은 양식은 먹지 않습니다(21-27절).
하나님은 믿는 여성도님들은 특별히 가정의 일에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8:22에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은 자니라" 이는 현숙한 여인을 만난 자의 고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 21:9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했으니 이는 아내를 잘못 만난 자의 하소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성경대로 나라와 가정의 경제를 이끄는 성도가 너무나 부족합니다. 경영자, 노동자, 주부, 어린 아이까지, 학생들까지 세상의 방법을 따라 일하고, 세상의 방법을 따라 쓰고, 세상의 방법을 따라 먹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숙한 여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정한 이득이나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않는다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잠언 31장 27절에 보니까 “그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현숙한 여인은 거짓말해서 얻은 소득, 사기 쳐서 얻은 소득, 부정부패(不正腐敗)해서 얻은 소득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먹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해서 정당한 이윤을 얻습니다.
그래서 본문 18절에서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오랫동안 일한다.”라는 뜻입니다. 수고하고, 일하고, 땀흘려서, 그 수확을 가지고 먹는 여인이 어떤 여인이냐? "현숙한 여인"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현명한, 현숙한 성도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정직하고 열심히 일해서 이 땅의 경제를 주도하는 사람이 됩시다. 미국 경제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일본 경제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한국 경제가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의 불과 300만밖에 되지 않는 유대인들이, 지금 1,500만이라고 나와요. 유대인들은 전 세계의 경제를 탁 잡고 있습니다. 미국의 식량, 미국의 무기, 미국의 증권, 미국의 경제, 세계 경제를 탁 잡고 있는 이들이, 불과 1,5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유대민족이 전 세계의 경제를 탁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현숙한 여인, 현숙한 성도가 되어서 한국 경제를 잡고,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주관하는 유대인 같은 민족이, 유대인보다 더 위대한 민족이 됩시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또 나라의 경제위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公平)이 세워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삶이 됩시다.
3. 현숙한 여인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여인입니다.(20절)
본문 20절에서 “그는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밀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숙한 여인은 현숙한 여인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현숙한 여인이라고 하실까요? 예배 잘 드리고, 남편에게 잘 하고, 부모 공양을 잘 하고, 자기 자식을 잘 교육시키면, 이것이 현숙한 여인이라고만 말씀하시면 왜 안 될까요? 왜 굳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나님을 잘 섬겨야 현숙한 여인이라고 말할까요? 이에 대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25:40에서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소자(小子)에게 냉수 한 그릇 떠 준 것도 곧 나에게 한 것이다.(마 10:42) 어려운 사람, 고통당하는 사람, 외로운 사람, 벌거벗고 사는 사람, 배고픈 사람, 병든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찬양을 드리는 것만이 아니라, 어렵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과 사회를 참으로 부요케 하는 것은, 흩어 구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보다 더 부자가 되는, 오늘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길이 뭐냐? 구제하고 도와주는 것입니다. 잠언서 11장 24절입니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시편 37편 26절에 보니까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사람을 도울 때, 그들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예수를 주로 영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 뿐 아니라 자손들이 잘 된다고 주님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4. 현숙한 여인은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여인입니다.(22절)
본문 2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숙한 여인"은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여인입니다. 자신을 관리하지 못하고 가꾸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성공시킬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시간을 잘 관리하고, 자신의 겉과 속을 아름답게 가꿉니다. 그래서 본문 22절에서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방석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석은 어디 있는 것입니까? 안방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현숙한 여인은 자기 집에서 몸단장을 잘 하고, 자기 집에서 맵시단장도 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가족에게 사랑 받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사랑 받는 아내, 자녀에게 "우리 엄마가 최고야" 하고 인정받는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 또 부모님에게도 사랑스러움을 받는 며느리가 된다는 것, 딸이 된다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현대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겉을 가꾸고 꾸미는데 만 많은 투자를 합니다. 겉만 그것도 안타깝게 자기 집에서 화장을 별로 안 합니다. 밖에 나갈 때 두드리고, 붙이고, 바르고, 그리고 야단법석으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귀하게 보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뭐냐? 사랑하는 자기 남편에게, 사랑하는 자기 가족에게, 부모들에게, 자녀들에게까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 그 말인 것입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과 정신 그리고 마음을 가꾸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벧전 3:3-4에서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영혼입니다. 마음입니다. 생각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그 뿐이 아닙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후세를 위해서, 자손을 위해서, 하늘나라의 면류관을 위해서, 시간을 관리하고 물질을 투자해야 된다, 그 말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말씀하십니다.
현숙한 여인은 참된 아름다움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더라도, 신랑이 언제 오시더라도,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준비했다가 주님을 만나는 그런 성도가 현숙한 여인인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 충만하고,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말씀으로 자신을 가꾸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5. 현숙한 여인은 다른 사람에게 지혜와 사랑의 법을 가르치는 여인입니다.(26절)
본문 26절에서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숙한 여인은 다른 사람에게 지혜와 사랑의 법을 가르치는 여인입니다. 좋은 것을 나만 듣고, 나만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베풀어 준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줄 때, 그 사랑이 더 뜨거워지고, 더 커지고, 위대해지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여인은 얼굴만 예쁘다고 미인이 아니라, 지혜와 사랑을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아름다운 여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말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약 3:4,5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은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했습니다. 혀는 사공에 키와 같고, 불과 같습니다. 혀로 죽고 사는 길이 있습니다.
현숙한 여인은 웅변가와 같은 입에 있지 않고, 매질보다 눈물로, 설교보다 기도로, 카보다 미소로, 권위보다 사랑으로, 교훈보다 감동으로, 채찍보다 위로로, 증오보다 사랑으로 다스립니다. 이런 어머니에게서 성장한 자녀들이 자기 어머니를 평하기를 “이름 중에 제일은 어머니 이름이요, 마음 중에 제일은 어머니 마음이요, 눈 중에 제일은 어머니의 눈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아이를 낳을 줄만 알았지, 아이를 바르게 기를 수 있는 어머니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선생은 있으나 스승은 없고, 권력가는 있으나 참된 지도자는 없다, 그런 말도 있습니다. 진정한 스승, 바른 지도자, 참된 어머니는 지혜와 사랑의 법을 가르칩니다. "이것은 해야 된다. 이것은 하면 안 된다." 말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소 실천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 2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지혜와 예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보이고, 온 몸으로 체험케 하는 것입니다. 육체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영혼이 잘 되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전 12:13에 보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경외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현숙한 아내는 “하나님을 잘 섬기자. 부모 공경을 잘 하자. 가족, 이웃을 사랑하자. 나라를 사랑하자. 자연을 보호하자. 인류를 위해 봉사하자.”라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듣고, 실천하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이웃들에게, 새로 온 성도들에게 이것을 가르치는 것, 이것이 가정에서 현숙한 여인이요. 또 교회에서 현숙한 성도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인정받는, 축복된 사람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늘의 지혜와 예수님의 사랑이 풍성해지도록 우리는 또 돌보아 주고, 또 돌보아 주고, 돌보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로 가셔서 베드로를 끝까지 책임지신 것처럼, 우리도 한 영혼을 끝까지 사랑으로 세워 주는, 성공시켜 주는, 풀어놓아 다니게 하는 삶이 됩시다.
6. 현숙한 여인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여인입니다.(28,29절)
본문 28,29절에서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 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숙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여인입니다. 옛 어른들은 한 집안에 사람이 잘 들어오면 그 가문이 잘 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복 있는 사람이 성읍에 가면 성읍이 복을 받고, 복 있는 사람이 들에 가면 들이 복을 받습니다(신 28:3). 현숙한 여인이 한 가정에 들어가면, 그 가정이 복을 받습니다. 현숙한 여인이 구역에 가면, 그 구역이 복을 받습니다. 현숙한 여인이 교회에 오면, 그 교회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바다는, 바닷물은 썩지 않습니다. 바닷물은 얼지도 않습니다. 왜 그러냐? 2.8%의 소금 때문에 그렇습니다.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염분이 불과 2.8%밖에 되지 않습니다. 2.8% 때문에 바다가 썩지 않고, 바다가 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2.8%의 소금 때문에 저 큰 바다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처럼, 성도 된 우리 한 사람 때문에 이 사회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이 땅의 빛과 소금이 되어서 신랑 되신 예수님께 칭찬 받는 성도가 됩시다.
본문 28, 29절에서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덕행 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여러 여자 보다 뛰어난다 하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현숙한 여인은 자기 자녀에게도 칭찬 받고, 남편에게도 칭찬 받고, 부모에게도 칭찬 받습니다. 가족에게도 칭찬 받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에게도 칭찬 받습니다. 본문 31절 에 보니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백성들에게, 많은 동네 사람들에게, 많은 국민들에게 칭찬을 받으리라"고 그랬습니다.
7.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인입니다.(30절)
"현숙한 여인"은 어떤 사람이냐?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인입니다. 현숙한 여인의 첫째 조건이 뭐냐?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30절 하반 절에 보니까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운 것도 헛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돈이 많은 것도 헛되고, 권세가 있는 것도 헛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고, 인기가 있는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성도는 칭찬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고, 여호와를 경회하는 여자는 남펴이 신뢰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자녀가 성공합니다. 로이스의 믿음은 유니게 같은 현숙한 딸을 가졌고, 유니게 같은 여인은 디모데 같은 위대한 주의 종을 배출하였습니다(딤후 1:3-8). 그래서 '빌리센디'는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녀는 지옥의 세력이 이런 어머니에게서 빼앗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춤추러 가는 여자와 예배당에 가는 여자 중 누구를 더 칭찬하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아내를 가진 남편은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어머니를 가진 자녀는 복이 있습니다. 미가서 6:8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했습니다.
인류의 첫 가정의 실패는 여인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한 여인이 하나님을 바로 섬기면 그 가정과 사회까지도 복음화 될 수 있습니다. 나 한 사람 열심히 믿는다고 달라질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나 한 사람이 먼저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신앙이 되면, 가정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되고, 나라가 변화되고, 사회가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르게 살므로 말미암아 가정을 변화시키고, 그 사회를 바꾼 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을 통해 동네가 몽땅 구원 받고, 예수 믿고 변화되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남편을 5번이나 이혼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그가 복음을 전하고 증거하자마자 온 동네가 구원받았습니다. 성경에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 39절을 보니까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생 라합이 변화되니까 온 가족이 다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보다, 기생 라합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신부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믿음을 지키면, 실천신앙으로 살아가면, 가정이 살고, 교회가 부흥하고, 나라가 살고, 민족이 사는 역사가 틀림없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현숙한 여인은 ① 남편의 좋은 내조를 하는 여인이며 ②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는 여인이며 ③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여인이며 ④ 자기 관리를 잘 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는 여인이며 ⑤ 다른 사람에게 지혜와 사랑의 법을 가르치는 여인이며 ⑥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여인이며 ⑦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현숙한 여인은 구약 시대에만 필요만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도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룰 현숙한 여인 같은 "한 사람"인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한 사람만 있으면 가정도, 교회도, 국가도, 사회도 얼마든지 살 수 있으며, 얼마든지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탓할 수가 없어요. 지도자도 탓할 필요가 없어요. 어떤 공동체도 탓할 필요가 없어요. 남을 비난할,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나부터, 설교하는 목사인 나부터, 설교를 들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부터 하나님의 뜻에 맞는 "현숙한 여인"이 됩시다.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다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교회도 살고, 인천도 살고, 나라, 대한민국도 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한반도, 남북한 7,500만 동포가 모두 다 주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현숙한 여인"이 됩시다. 틀림없이 살 길이 열립니다. 우리 모두가 현숙한 여인과 같은 삶을 살아서 여러분의 가정을 변화시키고,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