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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축복이다 (역대상 16:7-15)
우리 인생은 항상 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복이란 무엇입니까? 실은 이것조차도 모르면서 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복입니까? 권세와 명예를 얻는 것이 복입니까? 건강한 것이 복입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는 아닙니다. 돈이 있어 타락한다면, 권세를 가지고 남을 핍박한다면, 건강하여 약한 자를 억누른다면 그게 어디 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시73:28)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라고. 진정한 복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란 하나님의 모든 주권을 인정하며 그의 행하시는 모든 범사를 인정하는 사람에게만 있습니다. 불평 속에는 마귀가 역사합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도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다윗이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안전하게 도착한 것을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너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가 하신 일을 백성에게 알리라"(8절) [언약궤]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상징합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들인 것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감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두려울 것이 없고 염려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그 자체로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합3:17-19)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는 말씀이 바로 이런 상황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감사의 축복을 어떻게 누려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노래하라" 합니다.
(9절)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기쁨으로 주님을 노래하는 삶이 축복 받은 삶입니다. 노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기쁜 사람이 합니다. 기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에 취해 있기 때문입니다. (엡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세상에 취해 있기에 그때는 즐겁지만 그 뒤로는 더욱 슬프고 좌절과 절망이 찾아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오직 성령에 취하는 길입니다. 성령충만의 첫 번째 조건은 (엡5:19)에 있듯,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입니다. 그것은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 안에서 기뻐하며 찬송하는 길입니다.
힘 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지 않는 사람의 생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은 영적 존재입니다. 즉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짐승이나 새는 찬양할 줄 모릅니다.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 찬양입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이 채워지지 않으면 창세기 처음의 상태대로 흑암과 혼돈과 공허 속에 빠져갑니다.
"그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라는 것은 나에게 역사하신 그분의 역사를 날마다 인정하며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남들에게 자랑하며 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인도와 보호하심을 알려야 합니다. 그게 축복 받은 성도의 삶입니다. 노래하고 자랑하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축복 받은 자만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축복 받은 바의 삶으로 기쁨이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둘째, "구하라" 합니다.
(10절)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높이는 것과 여호와를 구하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첫 간구도 그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바로 이걸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기도하는 자는 즐겁게 됩니다. 세상은 찾으면 찾을수록 공허하지만 하나님은 찾으면 찾을수록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그의 영으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11절) "여호와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그에게 구할 것은 두 가지인데 그것은 [능력과 얼굴]입니다.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만이 도움이 옵니다. (시121:1)에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 줄을 압니다. 우리가 그에게 능력을 구할 때 가장 적합한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도깨비 방망이쯤 생각하는지 필요할 때만 찾고 그것이 채워지면 하나님을 또 멀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어떤 화려한 일보다는 당신과 진실한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를 더 원하십니다. 주님을 바라고 구하는 것이 바로 축복입니다. 누가 대통령과 친구라면 굉장히 으스댈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구입니다.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한 축복이 어디 있습니까?
셋째, "기억하라" 합니다.
1) 구원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12절) "그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라고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보이셨던 사건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도 구원을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마찬가지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자신을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잊으면 감사하는 삶의 태도가 아닙니다. 배은망덕한 사람이나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구원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자야말로 축복의 사람입니다.
2)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15절) "너희는 그의 언약 곧 그가 천대에 걸쳐 명하신 말씀을 항상 기억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집니다. 세상은 절대로 돈 가진 자의 생각대로, 권력에 따라, 정치가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것이 천대는커녕 3대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은 천대에까지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말씀을 항상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벧전1:24-25)에 분명히 증거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사람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나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남아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계시니 감사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함께 하시니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의 말씀 때문에 감격하고 감사하는 축복된 사람입니다.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할렐루야!
감사하는 자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도 감동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자는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 자요, 감사하는 자는 주의 능력과 얼굴을 찾는 자요, 감사하는 자는 주의 은혜와 말씀을 항상 기억하는 자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옷이요, 불평은 마귀의 옷입니다. 늘 감사하는 축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