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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자 (벧전 4:12-16)
여러분! 주님을 진정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이 신부이기 때문에 주님을 진정 사랑해야 하니다. 그런데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이 주시는 은혜만이 아니라 그의 고난에도 진실로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이 번 고난 주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라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럼 어떻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일까요?
1, 참 신앙을 갖는 것이 곧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딤후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왜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참 진리대로 행하시다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장로들의 유전대로 적당히 하셨다면 핍박이 없었을 텐데 성경의 원 진리대로 사시려다가 핍박을 당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당시 사람들처럼 세리나 창기 등 죄인을 미워해야 하는 데 사랑하셨습니다. 혹은 고통 하는 병자를 보고도 안식이라는 핑계로 못 본체 하면 괜찮을 텐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쳐 주셨습니다. 혹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든 말든 자기를 숨기셨다면 핍박이 없을 텐데 진리대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예수 모른 체 적당히 처세하면 핍박이 없을 텐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니까 핍박이 오게 됩니다. 술을 안 마신다고 옷에다 술을 붓고, 바쁜데 주일성수한다고 구박 듣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금을 바로 내다가 탈세자들에게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네가 정직하게 내니까 우리들이 탈세한 것이 다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요셉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었는데 애매하게 고난을 당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뜻대로 했더라면 고난이 없을 텐데 하나님 앞에서 범죄 하지 않고 바로 살려다가 고난이 왔습니다. 이런 외부적인 고난만이 아니라 진리대로 바로 살려고 하면 우리 속에서 옛사람이 총공격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한 고난임을 아시고 이기시기 바랍니다.
2. 고난에 동참하려면 주님의 고난을 묵상해야 합니다.
빌2:5-7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했습니다.
이런 고난 주간에 경건한 사람들은 금식하며 주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이 기간에는 사치스런 일이나 자기를 위한 일을 자제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고난에 참예하고 묵상하기 위해서입니다. 프란시스는 주님의 고난을 얼마나 묵상했든지 몸에 못자국과 창자국이 생겼다고 합니다.
3. 주의 고난에 동참함은 철저히 내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갈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엡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우리도 거기 참여하여 함께 죽었고 다시 사실 때 우리도 거기 참여하여 다시 산바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에 굳게 서서 날마다 나를 죽이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빌3:10에“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했습니다. 은혜 받아 예수님과 함께 내가 죽어지는 것 이것도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4. 우리를 연단시키는 시련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벧전4:12-13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꿩 먹고 알 먹고 훈련도 받고 상급도 받고, 그러므로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 고난에 참예하려면 고난당하는 자를 도와야 합니다.
마25:40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마 25장의 심판대의 좌우편에 양과 염소 아시지요? 양은 세상에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고 칭찬 받은 사람들이고 염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착각이 있었습니다. 소자들에게 한 것이 곧 주님에게 한 것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당하는 사람들에게서 주님의 모습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권사님께서 철야기도를 하면서 날마다 예수님을 만나 보기를 원했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든지 예수님께서 “내일 12시에 너희 집을 찾아 가마” 하셨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은 집안을 쓸고 닦고 방석을 내놓고 음식을 마련하고 분주히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12시에 웬 거지가 밥 좀 달라고 찾아옵니다. 지금 예수님 맞이할 준비도 바쁜데 웬 거지가 찾아오니까 권사님은 그 거지를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오시마고 하신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 오신다고 하시고서 안 오십니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어제 12시에 네 집을 찾아갔었느니라. 그런데 너에게 쫓겨나서 들어가지 못했다” 하시더랍니다. 그제서야 권사님은 어제 그 거지가 예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천사를 대접했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변장하시기도 하시지만 변장하지 않더라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병들었을 때 찾아가보고 옥에 갇혔을 때 돌아보고 배고플 때 먹여주고 입혀주어야 합니다. 약 5:13에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이렇게 해 주는 것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은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것입니다.
골1: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했습니다.
왜 교회를 위한 수고가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함입니까? 주님께서 하시다가 남기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왜정 말기 신사참배 문제로 5년 동안 감옥에서 고초 당하시다가 결국 순교를 하셨는데 순교하시기 직전에 쓰신 고난의 명상록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옵니다. 거기 보면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이제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내가 당하는 수욕을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 영광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떤 말로 대답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십자가를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으리이까?" 했습니다.
6.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은 복음 전도하는 것입니다.
딤후2:3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그리고 딤후2:9에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계1:9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이렇게 교훈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2-16) 이처럼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의 은혜는 물론 고난에도 참예함을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한성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