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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교회 (마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
어디를 가다 보니까 “5분 앞서 가려다 50년 앞서 간다”는 교통 표어가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고, 인심은 조석변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 인심은 시시분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빠른 시대가 왔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지구의 도는 속도가 빨라졌는지 시대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쨌든 인간은 누구나 앞서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앞서려다가 죄인 된 아담이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창조주이신 전능자 하나님을 앞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천사도 하나님을 앞서가려다가 사단으로 변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앞지르려다가 죄인 된 것뿐만 아니라 일생을 망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앞서가는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이름이 드러나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입니까? 어떤 이들은 앞서가는 교회란 교회 건물을 많이 짓거나 물적 자원이 많아서 대지를 확보한 무조건 큰 교회인 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앞서가는 교회는 다음의 특징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알아주는 교회입니다.
신자도 마찬가지로 어느 누구의 신앙이 좋다고 인간이 알아주는 것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신자가 앞서가는 신자인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고, 바울은 “내가 사람에게 좋게 하랴 사람의 기쁨을 구하랴 내가 사람의 기쁨을 구하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나님과의 대신 관계와 사람과의 대인 관계를 바로 맺어야 올바른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은 사회도, 교회도, 개인도 모두 앞서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앞서가는 방향이 어디며, 무엇인지도 모르고 너나 할 것 없이 앞서가려고만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지금 한국의 건설업이 미국에 건너가서 미국 사람이 5년 걸리는 공사를 한국 사람은 2년이나 2년 반이면 다 해내고, 미국 사람에게 맡기면 백만 달러 드는 것도 한국 사람은 30만 달러면 완성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한국 사람에게 청탁이 넘어오는데 한국의 건설업자들은 서로 맡으려고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국가는 죽는 줄 모르고 경제적으로 앞서 보겠다고 외국에 가서까지 이렇게 덤핑하는 처사는 결코 앞서가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목표가 아무리 좋아도 방법이 나쁘면 좋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저는 물질적인 목표를 세워서 앞서가고 권력을 목표로 해서 앞서가는 것이 앞서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고 나가는 것이 앞서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푯대는 천국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갈 때에 피곤한 생활과 고달픈 인생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앞서 간다는 것이 순서의 차서에 있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 나라는 포도밭이 많아서 포도를 딸 때면 일군이 부족하고 우기가 자주 오기 때문에 기한 내에 따지 않으면 포도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기가 오기 전에 빨리 따기 위해서 아침에 일하고 나온 사람을 다시 들여 보내곤 합니다. 어떤 포도밭 주인이 8시간, 9시간 일한 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고 늦게 와서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그 주인이 저들을 포도원에 들여 보낼 때는 얼마만큼의 양을 일해야 한 데나리온을 준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루 일을 하면 한 데나리온을 준다고 약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에 1976년 2월부터 나왔다고 해서 신앙이 앞서고 요즘에 나왔다고 해서 뒤선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 앞서고 뒤선 것을 어떤 직분을 빨리 맡았거나 교회가 빨리 성장하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으나 직분을 맡은 자들은 더 열심히 주를 위해서 충성하라고 직분을 준 줄 믿습니다. 그들이 정말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직분을 맡았어도 성령을 통하지 않은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1에 사데 교회를 향하여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어도 실상은 죽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성령의 임재가 없다는 것이고, 성령의 임재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는 생명이 산 생명이 되려면 하나님의 생명과 결합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죽은 자는 어떤 자를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돈이 많고 권력이 있고 이목구비가 반듯하게 생기고 육신이 건강하다 할지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속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양식도 없습니다.
2. 앞서가는 교회는 성령으로 행하여 성령의 역사를 믿고 나가는 교회입니다.
주일날이면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교회는 나오지만 영이 죽은 자들은 불신앙자입니다. 이들은 교회에 다녀도 성경을 이론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성경을 생명의 양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를 시작했을 때 제 수단과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켜 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63년 된 교회에 부흥회를 갔었는데 교인이 15명이었고 33년 된 교회를 갔을 때는 교인이 40명에다가 목회자도 없이 서로 싸우는 교회였습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았더니 성령을 거역하는 교회였고, 성령에 대한 말은 언급하지도 않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14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육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앉으면 기도하지 않고 좌담회 하고 말씀을 상고하는 것보다 농담하다 끝나고 세상 말하다가 끝을 냅니다. 이러한 교회는 영적인 신령한 것을 멸시하고 도외시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고 거역합니다. 대부분 신학의 첨단을 걷는다, 해방 신학이다, 자유 신학이다 운운하며 교회가 사회 참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회들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무시하고 성령의 역사를 도외시하는 교회는 다 앞서가는 교회 같지만 결국은 교회문을 닫고 퇴보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앞서가는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교회입니다.
3. 앞서가는 교회는 성령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지혜 있는 자, 지식 있는 자, 믿음 있는 자, 말씀 있는 자, 병 고치는 자, 능력 있는 자, 예언하는 자, 통역하는 자, 영 분별하는 자가 모두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받은 그 자체에서 머무르면 잘못입니다. 교회를 하나의 은사를 중심으로 하여 이끌어 간다면 이단이 되거나 무당 신앙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에 에워싸여서 모든 은사의 역사가 일어났지만, 특히 말씀에 의한 은사의 역사와 신유의 역사, 회개의 역사, 거듭남의 역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고린도전서 12:4에 믿음, 지혜, 지식, 신유, 능력, 예언, 영 분별, 방언, 통역의 은사보다도 갈라디아서 5:22에 나온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기 더 원합니다. 그러나 이 9가지 열매보다도 더 귀한 로마서 12:7 이하에 있는 섬기는 은사, 봉사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권유하는 은사, 구제하는 은사, 부지런한 은사…등의 은사받기를 더 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교회는 로마서 12장의 은사로 돌아가야 될 줄 믿습니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이 은사가 우리 교회에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부터입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를 나와도 구원받기 위해서나 거듭나기 위해서나 은사받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주신 은혜로 섬기고 구제하고 권유하고 가르치는 교회가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달라고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주는 교회, 복음을 주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4. 앞서가는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근본적인 사업이며, 하나님 나라의 활동입니다. 그러나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영혼의 가치를 알아야 남의 영혼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영혼의 가치는 영생이요 구원입니다. 천국을 발견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를 다녀도 영혼의 가치를 모르면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허전하고 쓸쓸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말씀을 통하여 영혼의 가치를 알고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될 줄 압니다. 고린도전서 9:16에서 바울은 만약에 자기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출애굽기 32:32에서는 모세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의 영혼을 소중히 여긴 나머지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까지 하면서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이 열정이 우리 교인 마음마다 불일 듯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내적으로는 교회 안에서 서로 섬기고 궂은 일에 앞장서서 서로 봉사하고, 외적으로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정말 앞서가는 교회도 되 줄 믿습니다. 선교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내 가정부터 구원시키는 것이 최고의 선교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더욱 열심을 내어 주님을 섬기고 신자끼리 서로 섬기며 봉사하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내 가정과 이웃,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든지 복음이 필요한 곳에 기도와 물질로 선교함으로써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앞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