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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교회 (마태복음 10:34~39)
장마철에 홍수가 나서 시뻘건 물이 무섭게 흘러갈 때 보면 큰 나무, 드럼통, 스티로폼 등 생명 없는 물건들은 물결 따라 둥둥 떠내려가지만 생명을 가진 물고기들은 피라미 같은 작은 물고기들도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작은 머리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생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성경 진리는 세상 풍조의 물결을 따라 흘러갈 수가 없습니다. 저항할 땐 저항하고 싸울 때는 싸워야 참된 신앙이요, 주님의 생명을 가진 참된 교회라고 봅니다. 전혀 저항이 없는 신자나 교회는 생명이 없는 죽은 신자, 혹은 죽은 교회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하며 아무에게서도 공격을 받지 않는 목사는 잘못되었다. 그것은 그가 올바른 교리를 지니고 있지 못한 증거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공격을 받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우리가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드는 목사가 되지 않도록 지켜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저항과 투쟁이 없는 교회, 아무런 핍박도 받지 않고 충돌도 없는 크리스천이나 교회는 올바른 교리나 신앙을 가졌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평화를 위해 목사에게 칼을 쥐어주신다. 하나님은 목사가 세계 속에서 평화의 사자가 되어 거짓 평화의 세계에서 계속하여 투쟁의 사자가 되게 하신다”라고 했습니다. 개혁교회의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1563) 제32문항인 “너는 왜 크리스천이라고 불리는가?”의 해답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그로써 그이 기름부음에 동참하며 그와 함께 내가 그의 이름을 증거하며 나를 그에게 산 제물로 바치고 자유로운 양심을 가지고 이생에서 죄와 마귀에 대항해 싸우며 그 후에 영원히 그와 함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것이기 때문이다”
사도신경 끝부분에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하는 대목에서 “거룩한 공회”가 영어로는 “가톨릭(Catholic)”으로 되어 있어서 큰일 난 것같이 놀라는 분이 있는데 “가톨릭”이라는 뜻은 영어사전에 “보편적인, 우주적인, 만인에 공통되는” 등의 뜻이 있습니다. 우주적인 교회, 만민의 교회는 하나이고 서로 교통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합니다. protest란 말은 “저항하다, 반항하다, 항의하다, 주장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여졌는가 하면 중세기에 타락한 천주교가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느라고 “면죄부”(indulgence)까지 파는 것을 보고 마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써 붙이고 종교개혁을 시작했기 때문에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라는 말은 “기독교”라고 부르고 천주교는 “가톨릭”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좌우간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라고 한 것은 잘못된 교리에 대해서 “항의하고 반항했다”라는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아도 교리를 지키고 성경 진리를 수호하려면 “저항”과 “반항”이 필요한 것입니다.
왜 저항과 싸움이 필요할까요?
1. 예수께서 분쟁을 일으키려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군과 천사들이 합창하기를 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고 예수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했는데 분쟁은 여기에 배치되지 않느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0장 34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하셨는데, “검”은 “분쟁”, “다툼”, “싸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절에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35-36절)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화평은 마귀와 타협하고 불의와 타협하고 죄와 타협하면서 가지는 화평이 아니라 마귀와 싸우고 죄와 충돌하고 불의와 분쟁한 후에 오는 참된 화평입니다. 이런 화평은 영원한 화평이며 천국에서 누리는 복된 화평입니다.
2. 마귀와 화평할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은 마귀와의 전쟁을 선포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창세기에 벌써 하나님은 원수 마귀와의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동정녀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오신 예수님을 의미하고 그 예수님이 사탄과 싸워 승리할 것과 사탄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그 몸을 상하게 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큰 용이라고도 하고 옛뱀이라고도 하는 마귀 사탄이 땅으로 내어쫓겨 온 천하를 유혹하고 참소하며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로 더불어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사탄은 패배하고 영원한 불못에 던지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0~12절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는 사탄 마귀와 영적 싸움을 날마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공산주의는 사탄의 사상입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이며 주님의 교회들을 다 파괴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죽이고 투옥하는 사탄의 사상이며, 남의 것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살인자이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공산주의는 사탄, 붉은 용의 사상입니다. 그런 고로 우리는 영적으로 무장하여 싸워야 합니다.
김정일은 작은 적그리스도이며 공산주의는 satanism인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미명 하에 엄청난 돈을 갖다주고 있고 많은 교회 목사들과 천주교의 사제들도 그편을 들고 많은 돈을 갖다 퍼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돈을 가지고 굶어 죽고 얼어 죽는 백성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핵무기를 만들고 최신 전투기를 사들여 전쟁을 일으켜 대량살상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마귀를 사랑하라”는 말은 없습니다. 마귀는 대적하고 싸우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라고 했지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서 4장 7~8절에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하고 마귀는 대적하라고 했지 마귀를 사랑하고 돈 퍼다 주라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마귀와는 타협해서는 안 되고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
3. 죄와 싸워야 합니다
평화가 아무리 좋아도 죄와 타협하며 얻는 화평은 화평이 아니라 마귀에게 항복하는 것이며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우상숭배하고 귀신 앞에 절하지 않기 위해서 조상 앞에 절하지 않고 제사하지 않고 투쟁하다가 집에서 미움을 받고 매를 맞고 쫓겨나면서 고난을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상숭배의 무서운 죄를 범치 않기 위하여 주기철 목사님을 비롯한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감옥살이를 하며 온갖 고통을 받다가 순교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 1938년 9월 9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평양 총회에서 홍택기 총회장을 비롯한 많은 목사들이 “신궁요배는 우상숭배가 아니라 국민의례다”라고 합리화시키며 무서운 죄를 범했습니다. 6․25 전쟁의 참화는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4. 왜 싸우지 못하는가?
① 사람들의 미움이 두려워서
평화롭게 좋게좋게 지내는 것이 좋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가며 예수님 믿을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족, 친족들에게 미움을 받으면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려워서 죄와 타협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0장 37절에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이 두려워서 순교하지 못하고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② 죽는 것이 두려워서
육신의 목숨은 잠깐이고 천국과 지옥은 영원한 것인데 당장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안전을 위해서 영원한 천국을 포기하고 죄와 타협하고 마귀와 타협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9절에 “또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 10장 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12:4)라고 했습니다. 모슬렘 국가나 공산국가에서 예수님을 믿고 사람 앞에 시인하는 것은 직장도 잃고 목숨도 잃어버릴 위험까지 감수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렵다고 입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3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목숨도 하나님의 섭리와 허락이 없이는 결코 잃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9절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하시고 우리의 머리칼 하나 떨어지는 것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떨어진다고 하시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하셨습니다.
③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서신앙의 지조를 버리고 죄와 타협하는 이유의 하나는 인기가 떨어지고 물질의 손해를 볼까봐 마귀에게 항복하고 죄와 타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8절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할 때 생명의 위협도 받고 출교도 당하게 되고 명예도 다 잃게 되었지만 굴하지 않고 “보름스(Worms)에 있는 모든 집 기왓장들이 마귀가 되어 나를 공격할지라도 나는 그 자리에 서겠다”라고 했으며 “재물과 친척도 갈테면 가라, 잠깐 살다 죽는 생명도, 이 죽을 몸도 죽일테면 죽여라. 그래도 하나님의 진리는 살아있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라”(Let gooods and kindred go. This mortal life also. The body they may kill. God's truth abides still. His kingdom is forever)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했고, 11장 13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영원한 천국을 위해 세상 것을 포기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