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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향한 교회의 자세 (창 13:14-18)
여러분, 역사는 누구에 의해서 주도되었는가? 토인비 등 수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역사는 창조적 소수에 의해서 주도되어 왔다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많은 다수가 역사를 이끌어 나갈 것 같은데 실제로는 소수의 사람들이 다수를 이끌어 나가며 역사를 주도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독교적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신학자들 역시 동일한 이야기를 한다. "역사는 하나님이 소수의 무리를 도구로 하여 다수를 이끄는 방식으로 주도해 나가신다."
그래서 어떤 기관, 어떤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조사해 보면 대개 80%의 사람들은 변화를 관망하는 자들, 10%는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 나머지 10%가 변화를 주도해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소수를 도구로 삼아서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어 나가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수의 집단에게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남보다 먼저 미래를 바라보고 남보다 더 넓은 안목으로 미래를 주시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과 행동과 생각은 그 시대 사람들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거나 심지어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과거로 돌아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는가? 현재에만 머물러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는가? 미래가 없는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역사를 주도해 나가고 영혼구원 문제를 잘 감당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참으로 미래지향적인 교회, 미래지향적인 성도가 되어야 하겠다.
많은 신학자들이 동의하지만, 저도 성경에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을 한 사람 꼽으라고 한다면 아브라함을 들고 싶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제나 지금 가나안 땅을 나그네 같이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자신, 땅도 없고, 많은 자손도 없는 자신만을 바라보게 하시지 않았다. 언제나 저 앞에 미래의 수많은 영적 자손, 미래에 후손들이 차지할 그 좋은 땅, 이것을 바라보고 살게 하셨다. 때문에 아브라함은 언제나 미래를 약속하시고 보여주신 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며 살아갔던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오늘 아브라함을 미래지향적인 사람이 되도록 이끄신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생각해 보며 우리 교회도 미래지향적인 교회가 되어가야 하겠다.
오늘 본문 14절 후반부에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이 말씀 속에서 내일을 향한 우리 교회의 자세, 세 가지를 생각해 보겠다.
1.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은 멀리 바라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지금 현재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가나안 땅의 한 조각도 얻지 못했다. 자녀도 하나 얻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런 현재의 모습만 바라보고 생각한다면 아브라함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지금 현재의 아브라함의 상태 그것만을 바라볼 때에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눈을 들어 바라보라고 하신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지금 너 자신의 연약한 현재 상태만 바라보지 말고 멀리 바라보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에 크게 창대하게 될 너 자신과,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너의 후손, 이것을 바라보고 살라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근시안적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한치 앞도 내다볼 줄 모르는 교회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저 먼 미래를 예측하고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다.
여러분, 흔히들 21세기는 어떤 시대라고 말하는가?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그것을 대략 네 가지만 말씀드려 볼까요?
①21세기는 세계화 시대다. 3T, 즉 교통(Transportation), 장거리 통신(Telecommunication), 관광(Tourism)의 발달로 인해 전세계는 하나의 공동체로 일일 생활권이 형성될 것이다. 현재 미 공군에서는 시속 1만 7천 마일의 항공기(음속의 25배)를 개발하고 있는데, 이 비행기는 서울에서 뉴욕까지 2시간만에 도달할 수 있는 미래형 교통수단이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다니엘서 12:4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는 그야말로 지구촌을 형성하게 된다.
②21세기는 정보화 시대다.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통신 수단들을 통해 전세계의 최첨단 정보를 집에 앉아서도 한순간에 다 습득할 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이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요.
③21세기는 전문가 시대다. 미래 사회는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식 사회가 될 것이다. 더욱 우수한 제품들, 새로운 지식이 계속 출현함으로 제품의 수명과 지식의 수명이 매우 짧아지고 있다. 휴대폰 하나만 보더라도 2, 3년 사이에 5, 6종의 보다 발전된 기종이 생산되어 처음 것은 다 폐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는 노력하지 않는 사람,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실력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할 수밖에 없는 시대인 것이다. 탈락하게 되고 뒤쳐지게 되는 것이다.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을 쓴 미래학자 리프킨은 21세기 노동 현상을 이렇게 예견했다. "2025년이 되면 전세계 노동력의 2%만이 하위 노동자로 남게 될 것이고, 20%는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차지하고, 나머지 78%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여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21세기는 초전문가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지요.
④21세기는 비인간화 시대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인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복제인간"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마치 원고를 복사기에다 놓고 똑같이 복사하듯,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어 필요한 곳에 대량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발표했던 인간 복제 회사 클로네이드의 복제 인간 탄생 주장은 사기일 가능성이 크지만, 여하튼 복제 인간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존재"이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은 아닌 것이다. 결국 인륜, 도덕이 파괴되고 심각한 비인간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러분, 이렇게 21세기는 세계화 시대, 정보화 시대, 전문가 시대, 비인간화 시대, 이러한 시대라고들 말하는데, 이런 시대를 내다보며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하겠는가? 도전하고 준비해야 되겠지요. 이렇게 장기적인 안목으로 멀리 내다보고, 먼 미래를 내다보고 오늘을 준비하며 나아가는 교회, 바로 그 교회가 미래지향적인 교회인 것이다.
특히 우리 한국교회의 미래를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21세기에는 교회의 노인화 시대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회 안에 젊은이들과 주일학교 학생들은 사라지고 노인들만 앉아 있는 교회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마치 서양 교회를 닮아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지요.
여러분, 앞으로 교회의 노령화 시대가 올 것이라면 우리 삼거리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런 시대가 올 것을 미리 내다보고 오늘 주일학교 교육과 청년들 지도에 정열을 쏟는 교회, 바로 이런 교회가 미래지향적 교회가 아니겠는가? 사람을 기르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길 중의 하나이니까 말이다.
칠순이 넘은 노부부가 돌밭을 갈고 감나무를 심고 있었다. 지나가던 길손이 물었다. "지금 그 감나무를 심어서 언제 그 열매를 먹겠습니까?" 노인이 대답하는 말이 "한 십 년 후면 따먹겠지요." "그러면 그때까지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것 같습니까?" "나야 그때까지 못살지 모르지요. 그러나 내 후손들이 따먹어야 할 것 아닙니까? 내 할아버지가 심은 감나무에서 내 아버지가 따먹었고 내 아버지가 심은 감나무에서 내가 따먹었으니 이제 내가 심는 감나무에서 내 후손이 따먹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게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중에야 어떻게 되겠지요. 그건 그때 가서 자기들이 할 일이고 지금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런 태도만큼 무책임한 태도가 없고 잘못된 태도가 없다. 여러분,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고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을 양성해 놓는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여러분,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람을 양성하는 것은 곧 우리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건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요 진정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멀리 내다보고 오늘 준비해 나가는 교회, 이것이 내일을 향한 우리 교회의 자세가 되어야 될 줄로 믿는다.
2.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은 넓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은 네가 서 있는 그 자리만 바라보지 말고 후에 네 자손이 차지할 가나안 땅 전체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한쪽만 바라보지 말고,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말고 사방을 바라보라. 다시 말해 넓게 바라보라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민족은 독특한 문화, 뛰어난 과학 등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많은 뛰어난 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보다 뒤졌다. 일본보다 뒤졌다. 우리 나라가 왜 뒤쳐졌는가? 북쪽, 다시 말해 중국을 향해서는 문을 개방하고, 다른 쪽을 향해서는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즉 옛날 조선시대 우리 나라는 중국을 큰 나라로, 어머니 나라로 섬기면서 중국만 바라보고 중국만 배우고 살았다. 동서남북을 다 바라보고 배우지 아니하니까, 한쪽밖에 안보고 사니까 결국 우리 민족은 뒤쳐진 것이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사실인가?
여러분, 영어에 뉴스라는 단어는 NEWS로 표기한다. N - north(북), E - east(동), W - west(서) S - south(남)의 약자다. 즉 뉴스는 동서남북에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뜻이다. 우리는 동서남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다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동서남북을 다 볼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시야가 넓어져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진정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넓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앞서 달려가고 있는 교회들이 어떻게 뛰고 있는지, 어떻게 교회를 활기 있게 만들어나가고 있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 교회 저 교회를 다 보아야 한다. 가서 배워야 한다.
저기 고현교회도 가보고, 신현교회도 가보고, 저기 서울의 유명한 교회들도 가서 탐방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교회들은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고 준비하고 있는지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넓게 바라보면서 미래를 열어 가는 교회, 이것이 바로 내일을 향한 우리 교회의 자세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도행전 1:8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땅 끝까지 바라보고 살게 하셨다. 유럽을 영적으로 변화시킨 존 웨슬리가 뭐라고 했는가?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
제가 부산에 있을 때 주일학교 오후 특별활동 시간에 한 여선생님이 아이들 한 20명쯤을 앉혀놓고는 아주 열심히 정열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 여선생님, 지구본을 갖다 놓고 손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을 짚어가면서 아이들에게 세계선교에 대한 꿈을 심어주고 있더라고요. 이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
넓게 바라보고,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배우고 준비하는 교회,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는다.
3.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것은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말씀은 가나안 땅을 주겠다, 많은 자손을 주겠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보지 아니하면 아무 것도 안 보인다. 볼 것도 못 보게 되는 것이다.
미국의 신발 업체인 나이키사가 아프리카 지역에 신발을 판매하기 위해서 바이어를 보내어 시장조사를 하게 했다. 먼저 갔던 바이어가 아프리카 사람들을 살펴보니 신발을 신고 다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그러니 회사로 알려 오기를 "이곳 사람은 전부 신발을 신지 않습니다. 그러니 신발을 도무지 팔 수가 없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그후에 또 다른 바이어를 보내었는데 그 사람도 가서 보니 흑인들이 전부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보고는 뛸 듯이 기뻐하며 본국으로 시장조사 결과를 보내왔다. "여기 사람은 신발을 한 사람도 신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저들이 우리 회사의 신발을 신으면 무진장으로 신발을 팔 수가 있습니다."
하나도 못 판다는 것과 무진장으로 팔 수 있다는 것의 차이. 여러분, 보는 눈의 차이라는 것은 이렇게까지 다른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바라보면 사람이 커진다. 인격이 커진다. 꿈이 커지고 목표가 커지고 생각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 영안이 열리면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밝은 미래를 기대하고 오늘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저는 믿는다. 교회는 철저하게 믿음만큼 자란다. 교회는 목사의 믿음만큼 자란다. 성도들의 믿음만큼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지 않았는가? 믿음을 가지고 우리 교회의 미래를 바라보시기 바란다. 오늘도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준비해 나아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미래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다리는가?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는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가? 그럴 필요가 없다. 어느 책에서 이런 명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적은 오늘도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그러나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 준비만 잘하면 미래는 결코 두려운 시대가 아니다. 준비만 잘하면 미래는 우리의 시대가 될 것이다.
내일을 향한 우리 교회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멀리 내다보고 준비하는 교회가 되자. 넓게 바라보고 준비하는 교회가 되자. 믿음으로 바라보고 준비하는 교회가 되자. 그리하여 내일을 힘차게 열어 가는 주도적 교회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