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7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기쁨 (전도서 5:18-20)
한 랍비의 전승에 의하면 솔로몬이 젊었을 때에는 ‘아가’를 썼고, 중년에는 ‘잠언’을, 노년에는 ‘전도서’를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대 랍비들뿐만 아니라 중세시대의 많은 교부들은 “헛되고 헛되다”는 전도서 기자의 첫마디를 곡해하여 ‘세상을 격멸하고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권하는 금욕주의의 입문서’로 사용했습니다.
전도서는 종종 쾌락주의적인 책으로, 혹은 회의주의적인 책으로 간주되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전도서의 저자는 세상을 격멸하지도 우상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삶과 기쁨을 한껏 누리라’고 합니다.
세상이 죄악과 부조리로 가득하며 허무의 힘에 짓눌려 타락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게 만드셨으며, 인간에게는 기쁨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기쁨과 슬픔이 늘 교차하는 교차로와 같습니다.
우리가 어느 쪽에 더 강조점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솔로몬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따사롭습니다.
빛은 아름다운 것이며 태양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것이라고 말합니다(전11:7).
‘가능한 많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기쁨을 거두어들이라’는 것이 그의 권면입니다.
그렇다면 이 허무한 세상에서 어떻게 기쁨을 거두어들일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그 비결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기쁘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기쁨은 하나님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 명예가 있고 가정에 사랑이 충만해도, 그것이 하나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써 인간이 당하게 되는 삶의 불편과 고통과 고뇌를 삶의 기쁨을 견고하게 해주는 요소로 이해했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기쁨을 기쁨으로 알게 해주고 기쁨을 기쁨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래서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복중에 가장 큰 복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삶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인간이 세상과 갖는 관계’는 본래 ‘삶을 즐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신앙과 삶의 기쁨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결합되어있는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살전5장16절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선물로 항상 기뻐할 만큼 기쁨의 요인들을 우리 삶에 축복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셨으니 그것을 찾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기쁨은 인간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전2:24-25절 말씀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즐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심을 알고 의지할 때 인생의 기쁨을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열심히 수고하며 살아야 합니다.
인생의 가장 완전한 기쁨은 하나님께서 주신 한정된 생애동안 하늘 아래서 애쓰는 온갖 노고 속에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18).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것을 거두며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문의 말씀이 ‘쾌락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쁨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시차원에서 이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인간의 기쁨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계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에게는 인생의 참된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잠언을 기록한 지혜 자가 깨달은 바에 의하면, 게으르며 지혜 없는 자의 밭은 결국 잡초로 뒤덮여 소출을 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잠24:30-34).
개미처럼 지혜로운 인간은 감독하는 자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때가 되면 일터에 나가 노동을 하며 그 결과를 즐김으로써 삶을 풍성히 누릴 줄 압니다.
노동이란 ”창조자가 인간을 위해 예비하신 축복을 가지고 오는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이 귀한일이든 천한 일이든, 묵묵히 최선을 다 하는 삶은 아름답고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내면의 기쁨을 주십니다.
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전도서의 주제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 이 한 말씀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모든 문제는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로 귀결된다는 것이 히브리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사상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만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해주고, 그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인간을 기쁨의 삶으로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경외하다’라는 뜻을 가진 “야레”라는 동사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특별히 세 가지 사항과 관련되어 나타납니다.
(1), 하나님의 행하심의 완벽하심입니다.
전3:14절은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완전하고 초월적인 하나님과 그분의 업적을 깨닫는 순간 인간은 전율을 느끼며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의 행위와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전5:7절은 “꿈이 많으면 헛된 것이 많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는 자의 말과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 되어 허공을 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삶에 참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의 웃음은 한낱 울리는 징에 불과한 것입니다.
(3), 악인과 의인을 대조시켜 나타납니다.
전8:12-13절은 “내가 정녕히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 앞에서 경외하는 자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 앞에 경외하지 아니함이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형통할 것이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실패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형통한자에게 어찌 기쁨이 없겠으며 실패한 자에게 어찌 기쁨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이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비록 제아무리 비관적이고 허무한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면우리는 기쁨을 거두어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인생의 기쁨이 넘치게 하는 비결입니다.
또 열심히 수고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대가를 주십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 안에서 하늘에 기쁨을 거두어들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유풍덕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