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
인생을 바꾸는 말 (마12:36-37, 말2:17)
우리의 마음은 '창고' 또는 '곳간'과 같습니다. 이 창고에 무?! 昰? 쌓여 있느냐에 따라서 그 쌓여진 것이 입을 통하여 말의 형태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쌀이 쌓여진 창고에서는 쌀이 나오고, 보리가 쌓인 창고에서는 보리가 나오는 것처럼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쌓여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창고에는 선한 생각, 신앙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날마다 내 마음의 창고를 살펴보아서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예수님, 좋으신 성령님, 거룩한 말씀으로 가득 채우고, 사랑의 마음, 선한 마음으로 가득 채워서 입을 열 때, 말을 하게 될 때 언제나 마음속에 쌓여진 선한 것이 늘 튀어 나와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을 살리고, 다른 사람을 세워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장악하기가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은총을 우리 안에 주셨는데 그것이 곧 말입니다. 마음과 생각은 말을 들으면 그 말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고 그 말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믿음의 집을 건축하는 말
원래 타락한 인간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역하고 의심하는 존재였기에 믿음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또 들을 때 믿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더욱 믿음의 생각으로 충만해! 져서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보지 못한 하나님, 보지도 못한 세계가 말을 들은 후 우리 마음과 생각이 이것을 믿는 믿음으로 집이 지어지고 변화된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은 곧 말씀이시기 때문에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말은 마음과 생각을 지배합니다.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입에서 나온 말은 사라지지 않고 작은 에너지 덩어리가 되어 나의 주위를 감쌉니다. 그래서 내 주위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나의 말들이 가득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내가 그동안 해 놓은 말의 에너지를 느끼게 됩니다. 나 또한 상대방이 한 말의 에너지를 감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그냥 상대방의 얼굴만 봐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감사, 기쁨, 만족, 행복, 사랑, 웃음, 좋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주위에 밝은 기운이 가득하여 그냥 그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평소에 불평, 불만, 험담, 거짓말, 욕설, 돈돈돈타령, 변명만 하는 사람은 그 옆에만 가도 어두운 기운이 훅! 밀려와서 숨이 막히게 됩니다. 평소에 예수님~ 찬양, 기도, 영광, 순종, 말씀 주님을 높이며 주님과 대화하는 사람의 옆에는 은혜가 충만합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하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한마디의 말
한 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진실로 다른 사람의 가슴속에서 한 점 별빛으로 빛나는 말 그 말만으로도 어떤 사람은 일생을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반면, 또 다른 한마디의 말이 있습니다. 비수처럼 다른 사람의 가슴을 헤집는 말, 그 말로 인해 어떤 사람은 일생을 어둡게 암울하게 보낼 수 도 있습니다.
말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말 한마디에 마음의 위안이 되는가 하면 말 한마디에 한 평생을 원망과 분노에 묻혀 살게 되기도 합니다. 말은 한번 내뱉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의미 없이 하는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을 고통과 절망으로 빠뜨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말을 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똑같은 뜻의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전하는 것, 진정한 마음으로 전하는 것, 담담한 마음으로 전하는 것, 이것은 참으로 세련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꼬이지 않은 마음, 같은 사람으로 보는 마음, 열린 마음, 이런 마음들이 세련됨을 이룹니다. 같은 뽕잎도 누에가 먹으면 비단이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어 나옵니다. 같은 말도 어떤 사람의 입을 거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빛깔을 띠게 됩니다. 마음이 꼬이면 혀도 꼬이고 마음이 풀리면 혀도 풀립니다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말을 하는 방법
사람은 창조의 신비를 알면 세상에서 실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순히 생각 속에서 나오는 말을 하게 되면 생각에 따라 말이 좌우됩니다. 악한 것이 생각을 지배를 하면 악한 감정에 악한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선한 것이 생각을 지배를 하면 선한 감정에 선한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말에 실수를 하지 않는 비결이 숨어있습니다. 두 눈은 말을 하기 전에 상대의 눈을 두 번 보고 확인을 하라는 것이고, 두 귀는 말을 하기 전에 상대의 말을 두 번 듣고 확인을 하라는 것이고, 두 코 구멍은 말하기 전에 상대의 말을 두 번 걸러내고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 입술의 구멍이 하나인 것은 한번만 말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 보고, 두 번 듣고, 두 번 옳고 그름을 걸러내고, 한번 만 말하라는 얼굴 구성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산다면 자신을 보호하고 말에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두 눈으로 두 번보고, 두 귀로 두 번 듣고, 두 코로 두 번 생각하고, 두 발로 두 번 현장 확인하고, 두 손으로 정리해서 한 입으로 한 번만 말하면 말에 실수가 없고 세계를 정복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사용해야 할 언어는 바로 창조적인 언어
1) 창조적인 언어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말입니다. 야고야고보 사도는 "한 입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형제를 저주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한 샘에서 쓴 물과 단물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께 영광이 돌아가는 말이 창조적인 언어입니다.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습니다. 불평하며 원망의 결국은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창조적인 언어생활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큰 기쁨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신앙적인 언어가 무엇입니까?
① 찬송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찬송을 기뻐 받으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으로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감사로 찬송해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부르는 자에게 기쁨과 평안이 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죽고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의 입을 크게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앙고백의 말을 할 때 삶도 복되게 변화될 것입니다.
② 기도는 약속과 보장이 있는 신앙고백의 언어입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 지니라"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을 시인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교양 있는 말을 하는 정도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말, 생명의 말,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언어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흑암의 나라의 언어는 불평일 뿐입니다. 악한 영은 결코 우리의 입술에서 단물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지 않습니다. 불평하게 하고, 한숨짓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창조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살리는 언어, 생명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적인 언어입니다.
3) 긍정적인 언어입니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언어부터 긍정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언어가 긍정적으로 바뀔 때 여러분의 삶도 긍정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그렇게 긍정할 만한 세상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좋은 것을 보려고 노력하시고 긍정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될 때 여러분의 삶도 그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신앙적인 언어를 사용합시다. 긍정적인 언어, 믿음의 언어로 창조적인 언어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말
말이 전달 매체로 소중하기는 하지만 말이 너무 무서운 세상이 되어갑니다. 지나가는 말, 허튼 소리, 말이 안 되는 소리, 불경한 소리, 이런 말들이 인간관계를 떼어놓고 싸움을 시키고 감정을 상하게 하니 정말 말이 무섭다는 게 피부로 와 닿습니다. 좋은 말, 향기로운 말, 교양 있는 말, 지혜로운 말, 이런 말들이 화합과 단결, 평화와 위안, 격려와 진실이 담겨져 세상을 밝고 명랑하게 물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 좋은 글엔 사람이 모입니다.
많은 말 중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말은 격려의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격려의 말을 예술이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당장 화가나 작가가 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격려의 예술가는 될 수가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멋진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 먹어도 두 달은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식을 못 먹어서 배고픈 것이 아니라 격려와 칭찬과 긍정적인 말에 목말라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피하고 긍정적인 말을 합시다. 불평과 원망의 말, 상처 주는 말은 멈추고 좋은 말, 칭찬의 말, 격려의 말, 긍정적인 말을 하도록 합시다. 격려는 기적을 낳습니다. 격려하면 받는 사람의 기쁨이 크지만 격려하는 사람에게도 기쁨이 남습니다. 격려는 꽃과 같아서 그것을 주는 사람의 손에도 향기의 일부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진정 말을 잘 한다는 것은 말의 매끄럽고 거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위안이 되고 양식이 될 수 있는 말, 그리고 말의 향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두고두고 생각나게 하는 말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말이 많은 것과 말을 잘 하는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말이 많아도 알맹이가 없다면 수다에 불과합니다. 말을 잘 하는 것은 말재주가 아니라 말속에 들어있는 지적 향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꾸준한 노력으로 지적 향기를 발산해야 합니다. 교양거리가 풍부한 말에는 누구나 귀 기울 일 것입니다.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미키 마우스의 월트 디즈니를 아실 것입니다. 1920년 그는 실패와 좌절 가운데 방황하였습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낙심하고 있느냐? 출판사에 만화 원고를 들고 찾아가서 취직을 구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가망이 없나 봅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교회 창고에서 지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면서 격려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버려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항상 잊지 말고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허름한 창고에서 그 말씀 붙들고 꿈을 키웠습니다. 창고에는 쥐가 많았습니다. 그는 쥐를 아름다운 쥐로 새롭게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그림이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미키 마우스가 된 것입니다. 세상 그 어떤 것으로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역전의 인생 드라마를 살게 만들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명을 살립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보는 것만큼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자신에게 선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말은 꿈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꿈을 꾸는 것이나 믿음의 눈으로 꿈을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인생을 향해 믿음의 말을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에는 엄청난 창조의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를 입으로 말하는 순간에 말의 내용이 생명을 얻습니다. 이것은 영적 원리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그날의 색깔을 정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쁜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기쁨으로 하루를 마칠 수 있습니다.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믿음과 승리의 말을 선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 말을 통해 우리의 꿈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단순히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은 수비만 잘하고 공격은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축구 경기에서 계속 수비만 하면 어떻게 점수를 내고 승리 하겠습니까? 공을 빼앗았으면 몰고 나가서 골대에 공을 넣어야 이깁니다. 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정적인 말을 삼가는데서 그치지 말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읽고 감상하라고 수많은 약속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게 아니고 우리가 그 말씀을 과감히 선포하여 승리와 건강, 희! 망, 풍성한 삶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말을 위한 기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를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기도 했을 언어의 나무.
주여! 내가 지닌 언어의 나무에도 멀고 가까운 이웃들이 주고 간 크고 작은 말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둥근 것, 모난 것 밝은 것, 어두운 것 향기로운 것, 반짝이는 것 그 주인의 얼굴은 잊었어도 말은 죽지 않고 살아서 나와 함께 머뭅니다,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할 말은 참 많은 것도 같고, 적은 것도 같고 그러나 말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살이 매일매일 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해도 슬기로운 말의 주인 되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도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 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린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과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운 삶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아멘
시편 142편 3절에 있는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도 기도할 수 있어야겠습니다.“여호와여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주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 주시옵소서”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