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7
말씀을 묵상하라 (시 1: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시편 1편을 중심으로 두 번 설교를 하였습니다. 첫째 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둘째 날은 '형통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한번 더 이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를 할까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묵상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묵상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행복과 형통의 길이라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풍성한 생명을 얻고 누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여기서 시절에 따라 온갖 과일을 맺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창세기 3장 22절에 나오는 '생명나무'를 연상케 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 나무는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창 2:17)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최초의 인류는 선과 악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선과 악을 알지 못하면, 사람이 어떻게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하게 살 수 있습니까? 그저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잘 한 일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선과 악도 분별할 줄 모르던, 어리고 순진하던 사람이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범죄는 잘 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와 같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최초의 인류는 구태여 선과 악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사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이 여자에게 금지된 열매를 따먹으라고 유혹했을 때, "그 열매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고 말했습니다. 물론 뱀의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범죄한 이후에 사람은 하나님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하는 일은 뱀의 말대로 하나님과 같은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고민하고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곧 선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2장 22-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생명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천사들에게 불칼을 주셔서, 인간이 생명 나무에 가지 못하도록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나무 둥지에서 잘려나간 나무 가지나 나뭇잎은 당장은 싱싱할 지는 몰라도, 서서히 마르고 썩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인간이 곧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지고 부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죄는 사망을 낳았습니다. 영원한 죽음, 영적인 죽음,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잃은 인간이 어떻게 생명을 다시 되찾을 수 있습니까? 생명 나무를 되찾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명 나무는 어떻게 되찾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의 영혼 속에는 생명나무가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말합니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을 보니, 장차 실현될 하늘 예루살렘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열 두 가지 실과를 맺고, 그 잎사귀가 온 인류를 치료한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생을 얻은 성도는 바로 이 땅에서 하늘의 생명 나무의 열매를 미리 따먹는 복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풍성한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풍성한 생명을 선사하는 복된 백성입니다.
2. 이제 말씀 묵상의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말씀을 묵상하기 위한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바빠서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처럼 경제 불황이 심각한 시절에 물론 할 일이 많아서 바쁜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바쁘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립니다. 너무 바빠서 부모형제 간에 소식을 주고받거나 왕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설령 그가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망각한 사람입니다. 성도가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계심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망각하는 사람은, 설령 그가 세상에서는 존귀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멸망할 짐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 일로 너무 바쁘다 보면, 결국 그의 심령은 황폐해지고 맙니다. 소음과 분주함 때문에 그의 삶은 점점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고 망가집니다. '바쁘다'는 뜻을 갖는 한자 망(忘)은 마음 심(心)과 망할 망(亡)이라는 두 글자가 합성된 글입니다. 그러므로 '바쁘다'는 것은 '마음이 망가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쁜 중에서도 항상 조용한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묵상할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시간과 장소를 따로 떼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에 바쁠수록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시간과 공간, 여러분만의 광야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예로 들면, 성경을 읽거나 쓰는 것은 음식을 입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묵상은 음식을 잘근잘근 씹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음식을 입안에 많이 넣어도 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에 약 10분 이상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구절을 반복해서 암기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더 생생히 깨닫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말씀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말씀 속의 인물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살펴보십시오. 말씀을 묵상하려면,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이 좋습니다. 의자에 앉을 때에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팔과 손은 무릎에 가지런히 놓으십시오. 바닥에 앉을 때에는 무릎 위에 성경을 얹어놓으십시오. 가급적 눈을 감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 다음에는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묵상이 음식을 입안에 넣어 씹는 일이라면, 기도는 음식을 맛보는 일입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시고,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기도를 하다 보면, 음식이 힘을 주듯이 말씀도 여러분에게 놀라운 힘과 기쁨을 줍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됨을 느낍니다.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혹은 쓰고) 묵상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더 한층 느끼고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소망이 더욱 넘칠 것이고, 기쁨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와 사명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통을 더 큰 은총의 통로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 거룩하고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생명이 날로 풍성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날로 풍성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심으로써, 행복하고 형통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저는 시편 1편을 중심으로 두 번 설교를 하였습니다. 첫째 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둘째 날은 '형통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 행복한 사람, 그리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한 사람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한번 더 이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를 할까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묵상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묵상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행복과 형통의 길이라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풍성한 생명을 얻고 누리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말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여기서 시절에 따라 온갖 과일을 맺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창세기 3장 22절에 나오는 '생명나무'를 연상케 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나무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 나무는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창 2:17)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의 최초의 인류는 선과 악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선과 악을 알지 못하면, 사람이 어떻게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하게 살 수 있습니까? 그저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천진난만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말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잘 한 일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선과 악도 분별할 줄 모르던, 어리고 순진하던 사람이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똑똑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차라리 범죄는 잘 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와 같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최초의 인류는 구태여 선과 악을 구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사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창세기 3장 5절에서 뱀이 여자에게 금지된 열매를 따먹으라고 유혹했을 때, "그 열매를 따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고"고 말했습니다. 물론 뱀의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범죄한 이후에 사람은 하나님처럼 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하는 일은 뱀의 말대로 하나님과 같은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려고 고민하고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이 곧 선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구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2장 22-24절을 보면,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이 생명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 동산에서 추방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천사들에게 불칼을 주셔서, 인간이 생명 나무에 가지 못하도록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나무 둥지에서 잘려나간 나무 가지나 나뭇잎은 당장은 싱싱할 지는 몰라도, 서서히 마르고 썩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인간이 곧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죽어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그의 영혼은 점점 피폐해지고 부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죄는 사망을 낳았습니다. 영원한 죽음, 영적인 죽음,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낳았습니다.
그렇다면 생명을 잃은 인간이 어떻게 생명을 다시 되찾을 수 있습니까? 생명 나무를 되찾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생명 나무는 어떻게 되찾을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는 사람의 영혼 속에는 생명나무가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요한복음 1장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말합니까?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은 곧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장 1-3절을 보니, 장차 실현될 하늘 예루살렘에는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가 열 두 가지 실과를 맺고, 그 잎사귀가 온 인류를 치료한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생을 얻은 성도는 바로 이 땅에서 하늘의 생명 나무의 열매를 미리 따먹는 복된 사람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풍성한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풍성한 생명을 선사하는 복된 백성입니다.
2. 이제 말씀 묵상의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말씀을 묵상하기 위한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바빠서 성경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처럼 경제 불황이 심각한 시절에 물론 할 일이 많아서 바쁜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바쁘다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립니다. 너무 바빠서 부모형제 간에 소식을 주고받거나 왕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설령 그가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망각한 사람입니다. 성도가 너무 바빠서 하나님의 계심을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망각하는 사람은, 설령 그가 세상에서는 존귀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멸망할 짐승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 일로 너무 바쁘다 보면, 결국 그의 심령은 황폐해지고 맙니다. 소음과 분주함 때문에 그의 삶은 점점 어지러워지고 더러워지고 망가집니다. '바쁘다'는 뜻을 갖는 한자 망(忘)은 마음 심(心)과 망할 망(亡)이라는 두 글자가 합성된 글입니다. 그러므로 '바쁘다'는 것은 '마음이 망가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바쁜 중에서도 항상 조용한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생각하고 묵상할 시간을 내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시간과 장소를 따로 떼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에 바쁠수록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시간과 공간, 여러분만의 광야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스며들게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예로 들면, 성경을 읽거나 쓰는 것은 음식을 입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묵상은 음식을 잘근잘근 씹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음식을 입안에 많이 넣어도 씹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읽은 다음에 약 10분 이상 묵상하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구절을 반복해서 암기하십시오. 그리고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때까지 계속 묵상하십시오. 말씀을 더 생생히 깨닫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말씀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말씀 속의 인물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말씀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살펴보십시오. 말씀을 묵상하려면,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이 좋습니다. 의자에 앉을 때에는 발을 바닥에 내려놓고 팔과 손은 무릎에 가지런히 놓으십시오. 바닥에 앉을 때에는 무릎 위에 성경을 얹어놓으십시오. 가급적 눈을 감는 것이 좋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그 다음에는 기도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묵상이 음식을 입안에 넣어 씹는 일이라면, 기도는 음식을 맛보는 일입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았다면,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시고,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기도를 하다 보면, 음식이 힘을 주듯이 말씀도 여러분에게 놀라운 힘과 기쁨을 줍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됨을 느낍니다. 무한한 행복과 기쁨을 누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여러분이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혹은 쓰고) 묵상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력을 더 한층 느끼고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소망이 더욱 넘칠 것이고, 기쁨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존재와 사명을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통을 더 큰 은총의 통로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 거룩하고 온전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생명이 날로 풍성해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날로 풍성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심으로써, 행복하고 형통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