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
복음은 구원의 능력 (로마서 1:8 ~ 17)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8-17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 가운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은 우리의 정체성을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전의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다음의 우리는 정체성에 있어서나 신분에 있어서 다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인 로마서 1장 7절에서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두 가지 표현으로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과 ‘성도’ 입니다.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감격해서 내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전에 우리는 지구에 팽개쳐진 한줌의 모래알 같은 존재였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이 땅에서 살고 있고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마귀의 영향권 안에서, 죄의 속박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복음을 들으면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오늘 아침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확인하시고 감사를 체험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람은 성도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죄인입니다. 마음속의 죄성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과 행동과 태도와 습관과 인격에 결함이 있습니다. 또한 죄성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죄를 범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불완전한 존재요 유한한 존재요 스스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아무 자격이 없는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고 오늘도 사랑하시고 영원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듣고 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다 덮어 버리시고 우리를 값없이 은혜로 의롭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죄성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지은 죄가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죄가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영원한 평화가 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 평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는 영원히 하나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 영원한 평화를 이제부터 영원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달라졌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사람이 아니요 복음을 듣기 전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제는 구원받고 성도가 되어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하나님의 시민이 된 것을 믿고 사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요 성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일생동안 함께 하실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처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땅에서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돌보십니다. 마지막 내 인생을 마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로 나를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평화는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평화뿐만 아니라 날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을 통해 이 땅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땅의 시민이 하늘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우리들에게 이 사랑을 전해 줍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분이 영원히 변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다.
복음은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의 변화는 그 복음을 전하고 싶게 만듭니다. 전도를 하고 싶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중심으로 점차적으로 번져 갑니다. 로마 교인들도 그랬습니다. 바울이 편지하기를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8절) 즉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세계 방방곡곡에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가문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입니다. 처음 복음을 들은 여러분 때문에 형과 동생이 예수를 믿게 되고 아버지, 어머니가 예수를 믿게 되고 친척, 친구, 온 집안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정체성의 변화를 체험하면 자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이 믿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 교인들은 물론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변화되어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최근에 어느 어머니가 아들을 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들은 아주 똑똑한 젊은 의사더군요.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을 안했으면 탐나는 신랑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아들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이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구원을 받고 복음을 알고 난 후 이 아들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을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잘 먹혀들지가 않아요. 이 아들은 똑똑한 아들입니다. 머리가 좋고 아는 것도 많고 질문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예수 믿는데 있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30분가량 대화를 나눴습니다. 무엇이 자기 마음에 걸리는지 쭉 이야기를 하기에 제가 노트를 꺼내서 일일이 적었습니다. 모두 15개의 질문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으로 ‘이거 큰일 났구나! 이걸 어떻게 다 대답을 하지!’ 했습니다.
이 15개의 질문이 왜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아들은 성경도 6개월 동안 읽어봤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잘 안 들어왔다고 합니다. 왜 안 들어왔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영적(靈的)인 책을 학적(學的)으로, 육적(肉的)으로, 철학적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린도전서 2장 14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영적인 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지요. 의학을 음악적으로 이해하려 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술은 미술적으로, 음악은 음악적으로, 신앙은 신앙적으로 이해를 해야 이해가 됩니다. 영적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그 가슴 속에 영원한 생명, 영적인 생명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들이 예수 믿기를 원합니다.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 아들이 장자이기 때문에 가문에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복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복음을 다 들은 아들은 “목사님, 제가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예수를 믿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 손을 붙잡고 같이 기도하며 “아멘” 했을 때 어머니의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했는데 오늘 자신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믿음이 생기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죄로 물들어 있던 사람이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평화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니까 그 사랑스러운 자식이 나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로마의 교인들이 믿음을 전한 것처럼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얻은 여러분의 믿음도 꼭 전파되기를 원합니다. 나로부터 시작되어 내 가족 모두가 나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깨닫는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모두 다 힘쓰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로마에 갈 좋은 길을 얻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3절)
의인은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땅, 땅, 땅!” 세 번을 치시고 “이제부터는 의인이다!” 선포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입은 사람은 “나도 내 주위에서 영적인 열매를 맺고 싶다”고 바랍니다. 의인은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 자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생명나무인데 생명나무에 전도의 열매, 구원의 열매가 몇 개나 달려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우리가 죽으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도 차도 은행구좌도 책도 아무 것도 못 가져갑니다. 단 한 가지, 여러분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여러분과 함께 영원히 갈 것입니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남편과 아내, 자식과 형제들, 내 친구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은 생명나무라. 사람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구원받는 축복이 꼭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어느 동네 입구를 지나는 길에 아마 배가 출출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마침 근처에 아주 잘 자란 무화과나무 하나가 있어서 “저기 가서 무화과 열매 좀 따 먹고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가가보니 잎은 청청한데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맺어야 가치가 있지, 무화과가 없는 그 나무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저주했다고 했습니다. 열매가 없어 아무 쓸모없는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에는 생명이 달려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생명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오후에 다시 그쪽으로 돌아 나올 때 그 나무를 보니 그만 나무가 다 비틀어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매 없는 나무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예수님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의 신분을 바꿔 주시고 저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셨으니 저를 좋은 생명의 나무로 만들어 주옵소서. 내 삶속에 생명이 주렁주렁 달리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에까지 그 생명들이 나와 함께 가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나 제 가족, 또 어느 누구를 위해서나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이 기도를 좋아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바로 여러분 자신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은총을 전해줄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고 구원 받았고 하나님 앞에 헌신했고 정체성이 달라졌기 때문에 대대손손이 하나님의 큰 은총을 체험하는 가문의 조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종말이 나타나고 예수께서 재림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주님 앞에 모일 때 그곳에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전도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에게 전도의 열매가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내 가족들의 전도의 열매, 친구들의 전도의 열매가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4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는 다 소중한 존재들이요 귀하고 영원한 존재들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변합니다. 듣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나 들은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초청했고 설명해 주었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6절) 하였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에 이르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여러분 이번 주말 토요일 5시에 장경동 목사님을 모시고 이 자리에서 재미있게 복음을 들을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 자신이 오시고, 여러분 주위의 사랑하는 가족들, 그 동안 기도했던 사람들을 모시고 오세요. 우리가 2천500명의 이름을 써 놓고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서 생명의 열매가 여러분의 생명의 나무에 달리는 이번 주말이 되기를 원합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 중에서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8-17
복음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 가운데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은 우리의 정체성을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전의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다음의 우리는 정체성에 있어서나 신분에 있어서 다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인 로마서 1장 7절에서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두 가지 표현으로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과 ‘성도’ 입니다.
복음을 들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감격해서 내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전에 우리는 지구에 팽개쳐진 한줌의 모래알 같은 존재였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 때문에 이 땅에서 살고 있고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마귀의 영향권 안에서, 죄의 속박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의 복음을 들으면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오늘 아침에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이제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확인하시고 감사를 체험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그 사람은 성도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죄인입니다. 마음속의 죄성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과 행동과 태도와 습관과 인격에 결함이 있습니다. 또한 죄성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죄를 범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불완전한 존재요 유한한 존재요 스스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아무 자격이 없는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사랑하셨고 오늘도 사랑하시고 영원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듣고 내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다 덮어 버리시고 우리를 값없이 은혜로 의롭다 인정해 주셨습니다.
죄성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지은 죄가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는 죄가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영원한 평화가 있습니다. 막을 수 없는 평화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는 영원히 하나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서 영원한 평화를 이제부터 영원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달라졌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달라졌습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사람이 아니요 복음을 듣기 전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제는 구원받고 성도가 되어 거룩한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한 하나님의 시민이 된 것을 믿고 사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대상이요 성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우리 일생동안 함께 하실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처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땅에서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인도하시고 돌보십니다. 마지막 내 인생을 마칠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로 나를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평화는 우리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평화뿐만 아니라 날마다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을 통해 이 땅에서도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땅의 시민이 하늘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우리들에게 이 사랑을 전해 줍니다.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분이 영원히 변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다.
복음은 우리의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의 변화는 그 복음을 전하고 싶게 만듭니다. 전도를 하고 싶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중심으로 점차적으로 번져 갑니다. 로마 교인들도 그랬습니다. 바울이 편지하기를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8절) 즉 로마에 있는 성도들의 믿음이 세계 방방곡곡에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은 가문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입니다. 처음 복음을 들은 여러분 때문에 형과 동생이 예수를 믿게 되고 아버지, 어머니가 예수를 믿게 되고 친척, 친구, 온 집안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정체성의 변화를 체험하면 자기가 어떻게 변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이 믿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 교인들은 물론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자였습니다. 그러나 변화되어 하나님의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최근에 어느 어머니가 아들을 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아들은 아주 똑똑한 젊은 의사더군요. 결혼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을 안했으면 탐나는 신랑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 아들 때문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들이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구원을 받고 복음을 알고 난 후 이 아들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을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데 잘 먹혀들지가 않아요. 이 아들은 똑똑한 아들입니다. 머리가 좋고 아는 것도 많고 질문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에게 “예수 믿는데 있어서 제일 어려운 부분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30분가량 대화를 나눴습니다. 무엇이 자기 마음에 걸리는지 쭉 이야기를 하기에 제가 노트를 꺼내서 일일이 적었습니다. 모두 15개의 질문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으로 ‘이거 큰일 났구나! 이걸 어떻게 다 대답을 하지!’ 했습니다.
이 15개의 질문이 왜 생겼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그 아들은 성경도 6개월 동안 읽어봤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잘 안 들어왔다고 합니다. 왜 안 들어왔습니까?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영적(靈的)인 책을 학적(學的)으로, 육적(肉的)으로, 철학적으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린도전서 2장 14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영적인 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지요. 의학을 음악적으로 이해하려 해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미술은 미술적으로, 음악은 음악적으로, 신앙은 신앙적으로 이해를 해야 이해가 됩니다. 영적인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그 가슴 속에 영원한 생명, 영적인 생명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들이 예수 믿기를 원합니다.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 아들이 장자이기 때문에 가문에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복음을 전해 드렸습니다. 복음을 다 들은 아들은 “목사님, 제가 예수를 믿고 싶습니다. 예수를 믿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 손을 붙잡고 같이 기도하며 “아멘” 했을 때 어머니의 눈에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했는데 오늘 자신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복음을 깨닫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믿음이 생기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 죄로 물들어 있던 사람이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평화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나니까 그 사랑스러운 자식이 나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전해지기를 원합니다. 로마의 교인들이 믿음을 전한 것처럼 이제 새로운 정체성을 얻은 여러분의 믿음도 꼭 전파되기를 원합니다. 나로부터 시작되어 내 가족 모두가 나와 같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깨닫는 도구로 쓰임받기 위해 모두 다 힘쓰길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든지 로마에 갈 좋은 길을 얻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3절)
의인은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죄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의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땅, 땅, 땅!” 세 번을 치시고 “이제부터는 의인이다!” 선포해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총을 입은 사람은 “나도 내 주위에서 영적인 열매를 맺고 싶다”고 바랍니다. 의인은 생명나무라.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는 자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생명나무인데 생명나무에 전도의 열매, 구원의 열매가 몇 개나 달려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우리가 죽으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도 차도 은행구좌도 책도 아무 것도 못 가져갑니다. 단 한 가지, 여러분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여러분과 함께 영원히 갈 것입니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남편과 아내, 자식과 형제들, 내 친구들,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의인은 생명나무라. 사람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니라.”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영원히 구원받는 축복이 꼭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어느 동네 입구를 지나는 길에 아마 배가 출출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마침 근처에 아주 잘 자란 무화과나무 하나가 있어서 “저기 가서 무화과 열매 좀 따 먹고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가가보니 잎은 청청한데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무화과를 맺어야 가치가 있지, 무화과가 없는 그 나무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나무를 저주했다고 했습니다. 열매가 없어 아무 쓸모없는 나무였기 때문입니다. 생명나무에는 생명이 달려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생명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오후에 다시 그쪽으로 돌아 나올 때 그 나무를 보니 그만 나무가 다 비틀어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매 없는 나무는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예수님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 저의 신분을 바꿔 주시고 저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 주셨으니 저를 좋은 생명의 나무로 만들어 주옵소서. 내 삶속에 생명이 주렁주렁 달리게 하시고 영원한 나라에까지 그 생명들이 나와 함께 가게 하여 주옵소서.” 저는 우리 성도들이나 제 가족, 또 어느 누구를 위해서나 이와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저는 이 기도를 좋아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바로 여러분 자신이 수천 대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은총을 전해줄 수 있는 분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었고 구원 받았고 하나님 앞에 헌신했고 정체성이 달라졌기 때문에 대대손손이 하나님의 큰 은총을 체험하는 가문의 조상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역사의 종말이 나타나고 예수께서 재림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주님 앞에 모일 때 그곳에 여러분 때문에 여러분의 후손들이 큰 민족을 이루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많은 전도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에게 전도의 열매가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에게도 내 가족들의 전도의 열매, 친구들의 전도의 열매가 있기를 원합니다. 복음은 누구에게나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14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하나님께는 다 소중한 존재들이요 귀하고 영원한 존재들입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변합니다. 듣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나 들은 사람은 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복음을 들었기 때문에, 누군가 나를 초청했고 설명해 주었고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6절) 하였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에 이르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
여러분 이번 주말 토요일 5시에 장경동 목사님을 모시고 이 자리에서 재미있게 복음을 들을 것입니다. 먼저 여러분 자신이 오시고, 여러분 주위의 사랑하는 가족들, 그 동안 기도했던 사람들을 모시고 오세요. 우리가 2천500명의 이름을 써 놓고 지금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으로 인해서 생명의 열매가 여러분의 생명의 나무에 달리는 이번 주말이 되기를 원합니다.
출처/김삼환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