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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언 (누가복음 24:1~12)
무디 선생이 어느 날 장례식 설교 준비를 하려고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은 어떻게 설교하셨나 하고 찾아보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를 모두 살려주었기 때문에 장례식 설교가 없더랍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부활이 되셔서 죽음을 정복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천지창조 이래 유일한 사건이며 사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무덤 문을 열고 살아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 십자가와 부활의 교리가 가장 중요한 교리입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어도 이 두 교리 중 어느 하나라도 믿지 않는다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인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뒤집어 놓으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리니”라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인류 최대의 사건이므로 역사의 연대를 말할 때 예수님을 중심으로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지 않습니까? 무신론 국가인 공산국가들도 이 서력 기원을 사용하고 예수님을 안 믿는 모슬렘 국가에서 이 기원을 사용합니다. 러시아 말로는 “주일”과 “부활”을 같은 말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의 죄도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부활과 내세를 믿기 때문에 저 나라를 위해서 이 나라를 버리기도 하고 육신의 생명을 버리고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곡식알이 죽었다 다시 살지 않느냐
여러분, 봄에 옥수수나 콩 같은 곡식 알갱이를 심으면 썩어 없어지고 맙니까? 아니지요. 그 곡식 알갱이는 죽지만 그 생명을 근거로 수십 배, 수백 배, 다시 살아 열매를 맺지 않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35~38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부활하는 몸은 이 몸, 이 살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신령한 몸(spiritual body)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몸이 계속 사는 것(continuation)이 아니라, 재창조되는 것(reconstruction)입니다. 곡식 알갱이가 땅에 떨어져 죽었다 다른 알갱이로 수십 배, 수백 배 다시 사는 것을 보면서 왜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옮겨진 무덤의 돌문의 증언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에 바위로 된 돌무덤에 넣은 후 아무나 손 못 대게 봉인하고 법인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무장한 로마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데 주일 새벽에 지진이 나면서 천사가 돌문을 굴려버렸습니다. 수직하던 자들은 놀라서 죽은 자같이 되었습니다. 지진과 천사가 옮겨놓은 셈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이 살아났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향유를 가지고 오면서 “이 큰 돌문을 누가 옮겨주리요” 하고 걱정을 하며 와서 보니 돌문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까 빛나는 천사 둘이 있다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24:5-6)하고 일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거짓말을 퍼뜨렸는데 무서운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훔칠 수 있으며 큰 돌문이 봉인한 체 닫혀 있는데 어떻게 훔쳐가겠습니까? 지진이 나면서 천사가 돌문을 굴려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오기 위해 옮긴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 2절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라고 했습니다.
3. 잘 개켜진 수의가 증언합니다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 다음에는 번데기 껍질이 남듯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 시신을 쌌던 수의와 얼굴을 쌌던 수건이 잘 정돈되어 개켜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6~7절에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달리 처리되었다면 세마포와 수건이 따로따로 잘 정돈되어 개켜 있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수의와 수건이 예수님의 부활을 잘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4. 초대교회 신자들의 변화가 증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문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될 때 무서워서 다 도망가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고 요한 외의 모든 제자들이 다 순교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만들어낸 이야기 같으면 초대교회 신자들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또 순교하면서 목숨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의심 많던 도마는 옆구리에 창자리가 있고 양손에 못 자국이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는 무릎 꿇고 고백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My Lord, My God)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못지않은 엄청난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했으니까요.
사도 바울은 교회의 최대 원수였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해다가 옥에 가두고 또 돌로 쳐 죽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첫 번 순교자, 스데반을 죽일 때 총지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180° 방향전환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전하다가 결국 목숨 바쳐 순교했습니다. 부활 진리를 위해 순교했습니다.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사람들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5. 500명이나 일시에 부활의 주님을 보았습니다
어떤 환상이나 환각 상태였다면 한두 사람이라면 가능하지만 어떻게 500명이나 일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볼 수가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 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500여 명이 일시에 환각이나 환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고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고 180° 변했던 것입니다.
6. 주일을 지키고 신약성경의 존재가 증언합니다
수천 년 동안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오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모여서 예배드리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을 존중히 여기던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버리고 부활하신 주일로 바꾸게 된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안 믿는 공산국가에서도 주일을 지키고, 러시아어로는 주일과 부활은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또 주일을 지키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계가 지키는 주일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7. 예언의 성취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나온 것처럼 인자가 무덤 속에 있다가 살아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41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실 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사건도 영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월절 안식 다음날(주일)에 첫 이삭 한 단을 요제(제사장이 흔들어 드리는 제물)로 드리는데 이것은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즉 안식일 다음날 주일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신 것은 구약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첫 열매를 안식일 다음날부터 50일째 되는 날, 새 소제를 드리는 이 날을(레23:15-16) 칠칠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른 곡식을 거두어드리는 때입니다. 바로 이 칠칠절을 오순절이라고 하는데 이 날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성령 받고 나가서 영혼을 추수하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성경의 예언대로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성경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하신 일이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사람들은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historical fact)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 Rudolf Bultman 같은 사람은 성경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라는 학설을 발표했는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도 아니려니와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건의 의미만 찾자고 하는 것입니다. “비신화화(非神話化)”란 말 자체가 성경을 하나의 신화로 보고 그 기사의 의미만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크리스마스도, 많은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는 것이지 실제 예수님이 재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이단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성경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것처럼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사탄의 권세, 사망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이제 그를 믿는 자들은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생명의 부활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인류 최대의 원수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하신 말씀대로 죽음을 무서워하고 죽음의 종노릇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이 없고 내세가 없다면 고생하며 예수님 믿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1679년에 홉스(Hobbes)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전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면 나의 생명을 단 하루만이라도 연장시켜 주는 자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 나는 지금 어둠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루가 아니라 1년이나 100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생명의 부활을 주시는 것입니다.
감베타(Gambetta)라는 불신자는 죽으면서 “나는 잃어버린 자이다. 이제 내가 그것을 부인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하며 죽었습니다. 케르사라는 사람은 “나는 살아서 모든 것을 예비하였으나 죽음을 대비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죽게 되었는데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라고 했고, 토마스 페인(Thomas Pain)이란 무신론자는 죽어가면서 그가 쓴 무신론책자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책,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를 쓴 것을 후회하면서 “내가 쓴 이 책이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그 책을 모두 거두어들일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리스도시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후회하며 탄식했습니다.
죽음을 해결하고 영생을 얻는 길은 늦기 전에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무디 선생이 어느 날 장례식 설교 준비를 하려고 성경을 보면서 예수님은 어떻게 설교하셨나 하고 찾아보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를 모두 살려주었기 때문에 장례식 설교가 없더랍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부활이 되셔서 죽음을 정복하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요, 생명의 종교입니다.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사건은 천지창조 이래 유일한 사건이며 사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무덤 문을 열고 살아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서 이 십자가와 부활의 교리가 가장 중요한 교리입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녔어도 이 두 교리 중 어느 하나라도 믿지 않는다면 구원을 못 받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인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했는데 이것을 뒤집어 놓으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리니”라는 말씀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인류 최대의 사건이므로 역사의 연대를 말할 때 예수님을 중심으로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지 않습니까? 무신론 국가인 공산국가들도 이 서력 기원을 사용하고 예수님을 안 믿는 모슬렘 국가에서 이 기원을 사용합니다. 러시아 말로는 “주일”과 “부활”을 같은 말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부활 사건은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의 죄도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부활과 내세를 믿기 때문에 저 나라를 위해서 이 나라를 버리기도 하고 육신의 생명을 버리고 순교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부활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곡식알이 죽었다 다시 살지 않느냐
여러분, 봄에 옥수수나 콩 같은 곡식 알갱이를 심으면 썩어 없어지고 맙니까? 아니지요. 그 곡식 알갱이는 죽지만 그 생명을 근거로 수십 배, 수백 배, 다시 살아 열매를 맺지 않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35~38절에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부활하는 몸은 이 몸, 이 살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신령한 몸(spiritual body)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몸이 계속 사는 것(continuation)이 아니라, 재창조되는 것(reconstruction)입니다. 곡식 알갱이가 땅에 떨어져 죽었다 다른 알갱이로 수십 배, 수백 배 다시 사는 것을 보면서 왜 부활이 없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옮겨진 무덤의 돌문의 증언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에 바위로 된 돌무덤에 넣은 후 아무나 손 못 대게 봉인하고 법인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무장한 로마 군인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데 주일 새벽에 지진이 나면서 천사가 돌문을 굴려버렸습니다. 수직하던 자들은 놀라서 죽은 자같이 되었습니다. 지진과 천사가 옮겨놓은 셈입니다. 여인들이 예수님이 살아났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시신에 발라드리려고 향유를 가지고 오면서 “이 큰 돌문을 누가 옮겨주리요” 하고 걱정을 하며 와서 보니 돌문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까 빛나는 천사 둘이 있다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눅24:5-6)하고 일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거짓말을 퍼뜨렸는데 무서운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훔칠 수 있으며 큰 돌문이 봉인한 체 닫혀 있는데 어떻게 훔쳐가겠습니까? 지진이 나면서 천사가 돌문을 굴려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오기 위해 옮긴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8장 2절에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라고 했습니다.
3. 잘 개켜진 수의가 증언합니다
마치 번데기가 나비가 되어 날아간 다음에는 번데기 껍질이 남듯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 시신을 쌌던 수의와 얼굴을 쌌던 수건이 잘 정돈되어 개켜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6~7절에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가 달리 처리되었다면 세마포와 수건이 따로따로 잘 정돈되어 개켜 있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수의와 수건이 예수님의 부활을 잘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4. 초대교회 신자들의 변화가 증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문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될 때 무서워서 다 도망가 숨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했고 요한 외의 모든 제자들이 다 순교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만들어낸 이야기 같으면 초대교회 신자들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또 순교하면서 목숨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의심 많던 도마는 옆구리에 창자리가 있고 양손에 못 자국이 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는 무릎 꿇고 고백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My Lord, My God)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 못지않은 엄청난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했으니까요.
사도 바울은 교회의 최대 원수였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체포해다가 옥에 가두고 또 돌로 쳐 죽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첫 번 순교자, 스데반을 죽일 때 총지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180° 방향전환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전하다가 결국 목숨 바쳐 순교했습니다. 부활 진리를 위해 순교했습니다. 만들어낸 이야기라면 사람들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5. 500명이나 일시에 부활의 주님을 보았습니다
어떤 환상이나 환각 상태였다면 한두 사람이라면 가능하지만 어떻게 500명이나 일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볼 수가 있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3~8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 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500여 명이 일시에 환각이나 환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살아나신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고 기독교를 핍박하던 사도 바울도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고 180° 변했던 것입니다.
6. 주일을 지키고 신약성경의 존재가 증언합니다
수천 년 동안 토요일, 안식일을 지켜오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모여서 예배드리게 된 것이 오늘날까지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을 존중히 여기던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버리고 부활하신 주일로 바꾸게 된 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안 믿는 공산국가에서도 주일을 지키고, 러시아어로는 주일과 부활은 같은 말이라고 합니다. 또 주일을 지키는데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계가 지키는 주일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7. 예언의 성취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4절에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다가 나온 것처럼 인자가 무덤 속에 있다가 살아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41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실 때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사건도 영적으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유월절 안식 다음날(주일)에 첫 이삭 한 단을 요제(제사장이 흔들어 드리는 제물)로 드리는데 이것은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즉 안식일 다음날 주일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신 것은 구약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첫 열매를 안식일 다음날부터 50일째 되는 날, 새 소제를 드리는 이 날을(레23:15-16) 칠칠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른 곡식을 거두어드리는 때입니다. 바로 이 칠칠절을 오순절이라고 하는데 이 날에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성령 받고 나가서 영혼을 추수하라는 뜻입니다.
이 모든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50일째 되는 오순절에 성경의 예언대로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성경의 예언대로 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속죄의 죽으심과 부활은 하나님이 오래 전부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하신 일이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사람들은 이것이 역사적인 사건(historical fact)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 Rudolf Bultman 같은 사람은 성경의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라는 학설을 발표했는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역사적인 사건도 아니려니와 그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건의 의미만 찾자고 하는 것입니다. “비신화화(非神話化)”란 말 자체가 성경을 하나의 신화로 보고 그 기사의 의미만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크리스마스도, 많은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자는 것이지 실제 예수님이 재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이단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성경의 예언대로 십자가에 죽으셨고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신 것처럼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므로 사탄의 권세, 사망 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이제 그를 믿는 자들은 주님 재림하시는 날에 생명의 부활을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인류 최대의 원수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4~15절에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하신 말씀대로 죽음을 무서워하고 죽음의 종노릇하는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이 없고 내세가 없다면 고생하며 예수님 믿을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1679년에 홉스(Hobbes)라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전 세계를 소유하고 있다면 나의 생명을 단 하루만이라도 연장시켜 주는 자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 나는 지금 어둠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하루가 아니라 1년이나 100년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생명의 부활을 주시는 것입니다.
감베타(Gambetta)라는 불신자는 죽으면서 “나는 잃어버린 자이다. 이제 내가 그것을 부인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하며 죽었습니다. 케르사라는 사람은 “나는 살아서 모든 것을 예비하였으나 죽음을 대비하지는 않았다. 이제 나는 죽게 되었는데 나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라고 했고, 토마스 페인(Thomas Pain)이란 무신론자는 죽어가면서 그가 쓴 무신론책자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책,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를 쓴 것을 후회하면서 “내가 쓴 이 책이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그 책을 모두 거두어들일 수만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리스도시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후회하며 탄식했습니다.
죽음을 해결하고 영생을 얻는 길은 늦기 전에 우리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출처/김홍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