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 (요한복음 9:4-7)
이게 무슨 낭비인가? - 짐 엘리엇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나와 내 삶과 내가 사는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고통과 슬픔과 상처까지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와 주권 속에 있는 것입니다.
1956년 미국을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짐 엘리엇이라는 청년을 비롯한 5명의 젊은이들이 신학교를 마치고 간단한 짐만을 챙겨서 남미의 에콰도르라는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떠났습니다. 당시 에콰도르에는 아콰족이라는 잔인하고 독하기로 이름난 부족이 살고 있었는데 바로 그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떠난 것입니다.
조그마한 소형비행기를 타고 해변에 내린 이들은 해변가에 텐트를 치고 곧바로 아콰족에게 복음을 전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를 시작한 지 닷새쯤 갑자기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이들에게서 소식이 없자 선교 본부에서는 혹시 하는 생각에 비행기를 보내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 해변에서 다섯 명의 청년들이 무참하게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들이 복음을 전하려고 했던 아콰족에 의해 살해당한 것입니다.
그 당시 타임지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얼마나 분노했는지 모릅니다. 그 기사의 타이틀은 “What a Waste!”(이게 무슨 쓸데없는 낭비인가!)였습니다. 이 젊은이들이, 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멀리 남미까지 가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아야 했는가! 그러면서 신학교와 선교 본부와 하나님을 비난했습니다. 왜 이 청년들이 이처럼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마치 인생을 낭비해 버리는 것 같은 죽음을 맞아야 했을까요?
우리는 왜 우리 인생에 이처럼 이해하지 못할 죽음과 고난이 찾아오는가를 의아해 합니다. 제자들처럼 사람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며 불쌍하다는 감성적인 대응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3절에서 예수님은 감상주의와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제자들에게, 환경을 탓하지 말고 사람을 탓하지 말고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보라고 사고의 대전환을 촉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는데 머무르게 하신 것이 아니라, 곧바로 ‘너희도 나와 같이, 나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새로운 삶의 방향을 주셨습니다. 4a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 날 때부터 소경이 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신가?’를 바로 이 소경 거지를 통해서 나타내 보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일을 예수님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어둠에 갇혀 있던 소경 거지를 보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어두움에 갇힌 자에게 빛을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절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죽어가는 자에게 생명을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운명을 극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불평과 불만과 원망과 좌절을 쫓아내고, 기쁨과 감사와 찬송이 터져나오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동역자로 불러주신 것입니다. 이 일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그러면 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야합니까? 4절.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첫째 이유는 ‘지금이 낮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일하자고 하시는 지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낮이지만 곧 밤이 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할 수 있는 시간이 항상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낮이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를 말합니다. 또한 밤이란 예수님께서 관원들에게 붙잡혀 심문을 당하고 고통당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를 말합니다. 제자들이 낮에는 예수님과 함께 일할 수 있지만, 밤이 되면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쳐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낮과 밤은 언제입니까? 우리에게 낮이란 생명이 있을 때를 말하고 밤이란 죽음의 때를 말합니다. 낮이란 젊어서 힘이 있을 때를 말하고, 밤이란 늙어서 힘이 없을 때를 말합니다. 낮이란 건강할 때를 말하고, 밤이란 질병으로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 때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 생명을 살리는 일은 정말 분초를 다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시급한 일입니다. 매 분, 매 초마다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까? 정말 병원 응급실처럼 항상 비상사태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우리 인생은 아침에 파릇 파릇 돋아나지만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유한합니다. 끝이 있습니다.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 인생에 시시각각 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생은 하루 하루가 모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분명히 알고 안타까움과 아까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짧고 단회적인 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삶 속에 묻어나와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낮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시각각 밤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지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고 흥청망청 써버려도 인생이 마냥 길 것 같고 우리를 기다려줄 것 같지만...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인생은 덧없이 짧습니다. 우리에겐 밤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여야 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하여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must do”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초청해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유한한 우리가, 흙으로 지어진 우리가, 흙으로 돌아갈 우리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하나님의 일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의 사역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죽어가는 영혼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구원하고, 그 심령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기도의 물을 주고, 자라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추수터에서 탁월한 일꾼으로 쓰이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하나님의 일은 마태복음 28:18-20절에서 더욱 분명하게 명령되었습니다. 그 일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사도행전 1:8절에서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이 일을 해야 하는 가를 명령하셨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입니다. 이것은 순서가 아니라 동시다발의 의미입니다. 예루살렘을 다 전도하면 유대를 전도하고, 유대를 다 전도하면 사마리아로 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서 복음전도와 말씀양육의 사역이 동시에 일어나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있는 곳에서, 또 우리 도시에서, 또 내가 멸시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도, 또한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을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할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제 우리 영암교회와 우리 성도님들도 예수님의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의 뿌리를 놓고, 기도의 터를 다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새가족모임을 시작하며 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져야할 십자가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창세기를 통해 믿음의 뿌리를 놓고, 요한복음을 통해 제자의 삶을 배우고, 사도행전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비록 시작은 미약해 보이지만, 뿌리를 깊이 놓으면 놓을수록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지속적으로 영암교회의 말씀 역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기도 없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운동도 말씀의 역사요 기도의 역사였습니다. 부흥사경회를 통해서 다져진 말씀의 뿌리가 기도의 양분을 공급받아서 이루어진 열매가 바로 대부흥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평양 대부흥 운동이 기도와 체험만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로 흐르지 않았고,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죄를 자백하고, 훔친 물건을 돌려주고,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실천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부흥 운동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말씀과 기도는 항상 함께 가야 합니다. 말씀이 빠진 기도는 감정의 잔치로 끝나게 되어 매일 기적을 쫓아다니고, 예언기도 한다는 무슨 권사님을 찾고, 기도로만 모든 병을 고치려하고, 병원에 가면 마치 믿음 없는 사람인 것처럼 얕잡아보고 무시하게 됩니다. 오죽하면 ‘기도해야 하나 병원에 가야 하나’라는 책까지 나왔겠습니까? 또한 기도가 빠진 말씀은 지식의 잔치로 끝나게 되어 매일 말씀을 가지고 내가 재판관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역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되, 여러분도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주일설교 인터넷에, 다시 동영상으로 재방송, 다시 구역예배에서 적용, 공부해서 내 심령에 한 말씀을 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한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며 기도하는 것이 바로 참된 믿음의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균형잡힌 믿음의 모습입니다.
또한 우리는 직접적으로 전도함을 통해 복음 역사를 섬겨야 합니다. 로마서 10장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면서, 그런데 듣지도 못한 이름을 어떻게 믿고, 어떻게 부르겠냐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묵묵히 선행을 행하면 그게 전도라고 말씀하시는데 맡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전도에는 선한 행실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기에 분명히 예수님을 전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들은 관원들에게 매를 맞고 위협을 당하면서도 ‘우리는 보도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반드시 입으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부터 선교회를 연령별 전도회로 바꾸었습니다. 봄이 되면서 각 전도회에서 매월 한번 이상씩 전도의 계획을 세우고 길거리로 전철역으로 학교 앞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전체적으로 10월에 전도집회를 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내가 예수님의 생명을 전해야 할 사람을 마음에 품는 태신자 운동을 특별새벽기도 기간 중에 펼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다같이 부활 주일에는 새생명을 잉태하고 하나님께 이 생명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부르짖으며 일년동안 씨를 뿌리고 땀을 흘려 잘 가꾸어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거둘 수 있기를 기도해야겠습니다.
내가 세상의 빛이로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5절.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의로운 해이시며 치료하는 광선이시기 때문입니다(말 4:2). 모든 인생은 예수님을 만나야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고 영적 질서를 회복하며 참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도 원동력이 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다가도 내 속에서 일어나는 어두움 때문에 포기하고 주저앉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평생에 과연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밭 한 귀퉁이에 배추 씨앗 하나를 심는 일에 비할 수 있을까? 나의 연약함이 과연 하나님의 일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전도할까? 어떻게 말씀을 가르칠까? 어떻게 기도할까?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 하나의 신앙도 제대로 못해서 때때로 죄를 짓고 넘어지는데, 어떻게 어두움을 몰아내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좌절과 낙망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 힘으로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어두움을 내 힘으로 몰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그렇게 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과연 몇 명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습니다. 바다 속에 모래알을 던져 넣으며 바다를 메꾸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빛이 아니라 예수님이 빛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승리합니다. 반드시 승리하며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고 만유회복의 빛을 비추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찬란한 태양 빛이 내 속의 어두움을 몰아내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의 빛이 세상의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실 것입니다. 바로 그 확신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인 것입니다. 그 확신이 나로 하여금 말씀을 붙들게 하고, 그 확신이 나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고, 그 확인이 나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하는 원동력인 것입니다.
결 론 - 하나님의 일엔 낭비가 없다
에콰도르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가 닷새 만에 허무한 죽음을 맞이한 다섯 명의 젊은이들! 그런데 그들에게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의 주머니에는 권총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신변보호를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을 뽑지 않고 그대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신문이 “이 얼마나 무모한 낭비인가!”하는 기사를 실었을 때, 짐 엘리엇의 아내인 엘리자베스는 그들의 죽음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오히려 ‘나의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내 남편은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 뿐입니다. 다시는 내 남편의 죽음을 낭비라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며, 짐 엘리엇의 글과 일기들을 공개했습니다. 거기에는 깜짝 놀랄만한 말들이 두 가지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는 19살 때 쓴 글입니다. “"하나님, 제가 감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부족한 나의 나무토막 같은 인생에 주여 불을 붙여 주소서. 제가 주를 위해 탈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주께서 소멸시키십시오. 이 몸은 주의 것입니다. 나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완전하고 풍성한 삶을 원합니다. 바로 주님과 같이....” 그리고 10년 뒤인 29세에 에콰도르에서 죽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일기장의 한 쪽 구석에 적혀 있는 글이었습니다. “영원히 썩어지지 않을 것에 바치는 희생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짐 엘리엇과 같은 사람들을 미쳤다고, 어리석다고 말합니다. 광신자라고 부릅니다. 믿어도 적당히 믿어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짐 엘리엇은 이미 19살 때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의 모든 삶을 드리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들이 죽은 후 이 젊은이들의 아내 다섯 명은 한 두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아이들을 부둥켜 안고 남편이 순교한 그 나라를 찾아갔습니다. ‘우리 남편들이 못다한 일들을 우리들이 마저 해야 한다.’ 그들은 복음을 들고 그 잔인하기 짝이 없는 아콰족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생명을 바친 헌신으로 아콰족은 복음을 듣게 되었고 생명의 빛으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 당시 아콰족의 추장이었던 사람이 빌리 그레함이 주도하는 한 예배에서 간증을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분들에게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들은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처럼, 그분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한 그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결코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자녀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짐 엘리엇처럼,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하나님의 일을 할 특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밤이 오기 전에, 내 인생에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해야 합니다. 인생은 짧고 하나님의 일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의 역사, 기도의 역사, 전도의 역사에 주님과 함께 일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출처/김성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