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6
사랑을 따라 구하라 (고전14:1-19)
1. 고린도 교회에는 방언 하는 사람도 많고 예언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서로 자기가 받은 은사가 더 크며, 교회에서 더 큰 일을 한다고 자랑하며 자기와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러 은사들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가장 부러워하며 최고로 선망했었는데 이는 알아들을 수 없고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말로 기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언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 방언 이외의 은사들을 무시하기까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공중 예배를 매우 혼란스럽게 하여 교회를 무질서의 도가니로 몰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도 바울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사랑을 따라 은사를 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남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려는 유치한 생각을 버리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는 성숙한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방언은 개인의 신앙에 확신과 기쁨을 심어주며, 예언은 교회 공동체에 희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사도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방언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방언을 통해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도움을 받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방언을 통해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방언을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어야 영적인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할 때는 통역을 하라는 것입니다. 통역을 할 수 없을 때는 혼자 있을 때 방언 하라는 것입니다. 통역되지 않은 방언보다는 예언이 유익한 것입니다. 방언은 통역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지 않아서 아무런 유익을 끼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공중 예배시에 대표 기도하는 사람이 방언 기도를 하고 그 기도에 대한 통역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에 화합하는 아멘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중 예배시 대표기도는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고전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고전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전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대부분의 교인들은 강해 설교보다는 간증 설교나 간증을 듣기를 더 원하고 더 감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배우나 탤런트, 가수 등의 신앙간증 집회에는 훨씬 더 많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은 다분히 감성적이어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간증 설교를 선호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이 전혀 개입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일어난 예기치 않은 신앙적이고 기적적인 사건의 전말에 더 흥미 있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내용보다는 그 간증 속에 나타난 신비스러운 요소에 만족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방언을 가장 선호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교인이 방언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아주 신령한 사람으로 간주하며 영적 권위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외면한 자요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신령치 못한 사람으로 매도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무리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신비스럽고 기적적인 신앙체험을 했다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불에 태워질 쭉정이요 가라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유창하고 신령한 방언을 많이 한다 해도 신앙 생활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교과서만으로 충분한 사람은 여타의 참고 도서나 보충 교재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으로 충분한 사람은 그 말씀만으로도 열매맺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신자가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골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고전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성도가 먹고 자라게 되는 생명의 양식, 생명의 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성숙해지는 것이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때로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있다해도 인내의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게 될 때 구원에 이르게 되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딤후3: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딤후3: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참으로 성경이야말로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넉넉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언입니다. 어떤 신통한 은사를 받아서 삶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시원하게 해결하려고 은사 위주의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서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삶의 지혜와 힘과 용기를 얻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건실한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골고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부활 승천의 영광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성경(예언)대로 나시고 성경(예언)대로 죽으시고 성경(예언)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성경대로 사실 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신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가나안 땅에 이르는 지름길, 왕도는 없습니다. 천국 가는 길에 왕도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길과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천국에 갈 자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신자의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비례하여 성숙해지는 것이지 은사의 소유에 비례하여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신앙이란 그의 부르심의 소망,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부르시며, 부르신 지위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들을 아는 것이 예언입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 중에서도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열심과 충성을 다하며 희생하므로 열매를 맺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므로 세계 통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요,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골1: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안에 모든 부요와 지혜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미 비밀이 아니지만 믿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비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함과 소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에도 위축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차 누릴 그 영광의 풍성한 소망으로 인하여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며 승리 생활을 하게 됩니다.
"(골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엡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앞날을 하나님이 자신한테만 보여 주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며, 복음을 전하며 장차 누릴 영광의 소망이 풍성함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옛날 남북 전쟁 때 남부군이 군자금으로 감추었던 금괴를 찾으러 서부로 갔다가 금괴를 찾게 되었는데 둘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둘 다 변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은 똑같이 나누기로 했는데 다른 한 동료가 배신을 한 것입니다. 그 친구가 먼저 권총을 뽑았고 우리가 아는 시나리오대로 주인공이 재빨리 돌아서 먼저 쏘았습니다. 정당방위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배신하고 자기를 먼저 쏘려는 악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동지였던 친구를 쏘았다는 자책감에, 가서 부둥켜안고 '아니, 내가 어쩌다 자네를 쏘았나. 세상에 이런 비극이 있나, 미안하네.' 그러자 배신했던 친구가 죽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야, 자책하지 말게. 이 세상에 가장 사랑하는 친구 손에 죽는 축복을 나 외에 누가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말을 하고 죽습니다. 죽는 마당에 이를 악물고 악악거리고 죽으면 죽은 다음에 발길질이나 한 번 더 당하지 이익 볼 게 뭐 있겠습니까? 기왕 죽게 되었으니 선심을 쓰는 것입니다. 나 같은 행복한 사람은 없네. 친구 손에 죽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울 수 있겠나? 사람은 한번 세상에 태어나 한번 죽는 것이 하나님의 정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창3:19)......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왕 태어나 한 번 죽을 인생,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비록 고난과 역경, 핍박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과 불의한 세력이 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을 망칠 것 같고 내가 복을 받지 않으면, 내가 나서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예언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누가 어떻게 하든 세상은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갑니다. 사로 잡혀간 이스라엘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이제 하만의 악독한 꾀로 인하여 다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구원을 청합니다. '너는 왕비이므로 우리 민족 중에는 네가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 네가 힘을 써서 우리 민족을 구원시키도록 해라.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네게 왕비의 자리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서를 붙입니다. '네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일랑 아예 버려라.'
"(에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에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네가 안하면 안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세가 없으면 출애굽 사건이 없고 엘리야가 없으면 갈멜산 전투의 승리가 없고 세례 요한이 없으면 예수님이 오시지 못하고 사도 바울이 없으면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가 없고 하는 이런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없습니다. 모세가 없어도 이스라엘은 해방될 수 있고, 엘리야가 없어도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세례 요한이 없어도 얼마든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사도 바울이 없어도 세계 복음화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이 세상 역사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만이 시행되는 것입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것이 예언입니다. 예언을 하려고 하거든 이러한 예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마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눅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그러므로 덕을 세우는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은사가 풍성하시되 덕을 세우는 사랑을 따라 각양 은사가 풍성하시길 기원합니다.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한 가지라도 말씀대로 생활하여 열매를 맺어 자신과 교회에 덕을 세우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동휘목사 설교 중에서
1. 고린도 교회에는 방언 하는 사람도 많고 예언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들은 서로 자기가 받은 은사가 더 크며, 교회에서 더 큰 일을 한다고 자랑하며 자기와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러 은사들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가장 부러워하며 최고로 선망했었는데 이는 알아들을 수 없고 신비스럽게 느껴지는 말로 기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방언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어 방언 이외의 은사들을 무시하기까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공중 예배를 매우 혼란스럽게 하여 교회를 무질서의 도가니로 몰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도 바울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사랑을 따라 은사를 구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를 남용하여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려는 유치한 생각을 버리고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는 성숙한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고전14: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방언은 개인의 신앙에 확신과 기쁨을 심어주며, 예언은 교회 공동체에 희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사도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 그러나 방언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방언을 통해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도움을 받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방언을 통해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방언을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어야 영적인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할 때는 통역을 하라는 것입니다. 통역을 할 수 없을 때는 혼자 있을 때 방언 하라는 것입니다. 통역되지 않은 방언보다는 예언이 유익한 것입니다. 방언은 통역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그 내용이 전달되지 않아서 아무런 유익을 끼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않는다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공중 예배시에 대표 기도하는 사람이 방언 기도를 하고 그 기도에 대한 통역이 없다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에 화합하는 아멘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중 예배시 대표기도는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고전14: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고전14: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고전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고전14: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대부분의 교인들은 강해 설교보다는 간증 설교나 간증을 듣기를 더 원하고 더 감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배우나 탤런트, 가수 등의 신앙간증 집회에는 훨씬 더 많이 모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 신자들은 다분히 감성적이어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간증 설교를 선호합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계획이 전혀 개입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일어난 예기치 않은 신앙적이고 기적적인 사건의 전말에 더 흥미 있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내용보다는 그 간증 속에 나타난 신비스러운 요소에 만족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방언을 가장 선호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어떤 교인이 방언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아주 신령한 사람으로 간주하며 영적 권위자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방언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외면한 자요 하나님의 간섭이 없는 신령치 못한 사람으로 매도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무리들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신비스럽고 기적적인 신앙체험을 했다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불에 태워질 쭉정이요 가라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유창하고 신령한 방언을 많이 한다 해도 신앙 생활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교과서만으로 충분한 사람은 여타의 참고 도서나 보충 교재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으로 충분한 사람은 그 말씀만으로도 열매맺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전14: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신자가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골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고전3: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전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고전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성도가 먹고 자라게 되는 생명의 양식, 생명의 떡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성숙해지는 것이며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경건하게 살고자 할 때 때로 핍박과 고난과 역경이 있다해도 인내의 믿음을 가지고 말씀대로 살게 될 때 구원에 이르게 되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딤후3: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딤후3:11)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딤후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3: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딤후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참으로 성경이야말로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넉넉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언입니다. 어떤 신통한 은사를 받아서 삶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시원하게 해결하려고 은사 위주의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서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삶의 지혜와 힘과 용기를 얻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건실한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앙 생활입니다. 신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골고다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부활 승천의 영광이 없습니다. 십자가는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요 계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성경(예언)대로 나시고 성경(예언)대로 죽으시고 성경(예언)대로 다시 사셨습니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성경대로 사실 때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4)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신8: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신8: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가나안 땅에 이르는 지름길, 왕도는 없습니다. 천국 가는 길에 왕도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길과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천국에 갈 자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언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성경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 신자의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비례하여 성숙해지는 것이지 은사의 소유에 비례하여 성숙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엡1: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를 알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언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신앙이란 그의 부르심의 소망,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부르시며, 부르신 지위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것들을 아는 것이 예언입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예수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 중에서도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열심과 충성을 다하며 희생하므로 열매를 맺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때 억울해 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진 교회를 통해 세계를 하나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므로 세계 통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요,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골1:25)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하나님의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안에 모든 부요와 지혜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미 비밀이 아니지만 믿지 못하거나 믿지 않는 자에게는 비밀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함과 소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어떤 일을 당해도,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에도 위축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차 누릴 그 영광의 풍성한 소망으로 인하여 항상 감사하며 기뻐하며 승리 생활을 하게 됩니다.
"(골2:2)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골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엡1: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1: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앞날을 하나님이 자신한테만 보여 주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며, 복음을 전하며 장차 누릴 영광의 소망이 풍성함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예언입니다. 옛날 남북 전쟁 때 남부군이 군자금으로 감추었던 금괴를 찾으러 서부로 갔다가 금괴를 찾게 되었는데 둘이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둘 다 변한 것이 아니라 주인공은 똑같이 나누기로 했는데 다른 한 동료가 배신을 한 것입니다. 그 친구가 먼저 권총을 뽑았고 우리가 아는 시나리오대로 주인공이 재빨리 돌아서 먼저 쏘았습니다. 정당방위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배신하고 자기를 먼저 쏘려는 악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동지였던 친구를 쏘았다는 자책감에, 가서 부둥켜안고 '아니, 내가 어쩌다 자네를 쏘았나. 세상에 이런 비극이 있나, 미안하네.' 그러자 배신했던 친구가 죽으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야, 자책하지 말게. 이 세상에 가장 사랑하는 친구 손에 죽는 축복을 나 외에 누가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말을 하고 죽습니다. 죽는 마당에 이를 악물고 악악거리고 죽으면 죽은 다음에 발길질이나 한 번 더 당하지 이익 볼 게 뭐 있겠습니까? 기왕 죽게 되었으니 선심을 쓰는 것입니다. 나 같은 행복한 사람은 없네. 친구 손에 죽는 것이 어디 그렇게 쉬울 수 있겠나? 사람은 한번 세상에 태어나 한번 죽는 것이 하나님의 정한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창3:19)......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히9: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왕 태어나 한 번 죽을 인생,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비록 고난과 역경, 핍박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과 불의한 세력이 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획을 망칠 것 같고 내가 복을 받지 않으면, 내가 나서지 않으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예언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누가 어떻게 하든 세상은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갑니다. 사로 잡혀간 이스라엘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이제 하만의 악독한 꾀로 인하여 다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모르드개가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구원을 청합니다. '너는 왕비이므로 우리 민족 중에는 네가 제일 높은 자리에 있다. 네가 힘을 써서 우리 민족을 구원시키도록 해라.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네게 왕비의 자리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단서를 붙입니다. '네가 이 일을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른 방법으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일랑 아예 버려라.'
"(에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에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네가 안하면 안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세가 없으면 출애굽 사건이 없고 엘리야가 없으면 갈멜산 전투의 승리가 없고 세례 요한이 없으면 예수님이 오시지 못하고 사도 바울이 없으면 로마에 복음을 전할 수가 없고 하는 이런 것은 하나님의 역사에 없습니다. 모세가 없어도 이스라엘은 해방될 수 있고, 엘리야가 없어도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고, 세례 요한이 없어도 얼마든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며, 사도 바울이 없어도 세계 복음화는 반드시 이루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것이 하나님의 예언입니다. 이 세상 역사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만이 시행되는 것입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것이 예언입니다. 예언을 하려고 하거든 이러한 예언을 하시기 바랍니다.
"(마24: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눅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그러므로 덕을 세우는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은사가 풍성하시되 덕을 세우는 사랑을 따라 각양 은사가 풍성하시길 기원합니다.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한 가지라도 말씀대로 생활하여 열매를 맺어 자신과 교회에 덕을 세우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동휘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