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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협력자 (요삼 1:1-8)
사람은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몇가지 소원들이 있습니다. 그중의 가장 강력한 소원중의 하나는 남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코마네치를 길러내었던 루마니아의 벨루아 모터리 감독은 희망이 없어서 다른사람에게 버림을 받았던 메루릴 레턴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재능과 그의 재질을 보고 그를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그 감독의 인정을 받은 매루릴 레턴은 그에게서 힘을 얻고 많은 노력을 한 끝에 마침내 L.A. 올림픽에서 체조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인정을 받는 것은 삶의 최고의 재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에게 인정을 받으면 총리도 하고, 장관도 할 수 있습니다. 사장에게 인정을 받으면 회사의 중역도 될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자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우리 주님께 인정받는 삶입니다. 우주 만물의 주권자이신 우리주님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신다면 아마 그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를 여기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능력이 없고 부족한 목사이지만 다만 한가지 목표는 내가 어떻게 해서 우리 주님한테 인정받는 목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위해서 오늘까지 주 앞에 서 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인정을 하는 성도가 이름이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가이오 예수입니다. 성경에서는 가이오라고 하는 이름이 세군데 더 나와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23절과 고린도전서 1장 14절과 사도행전 19장 29절에 같은 그 이름이 나와 있는데 동인한 인물인지는 모르지만, 어떻든 이 본문에 나와 있는 가이오는 사도 요한에게 인정을 받았는데 성도의 가장 모범되는 신앙을 가진자로 그리고 또 요한앞에 굉장히 지극한 사랑을 받는 모습으로 기록된 것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요한삼서 1장 1절을 보면 것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요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고 쓰여 있습니다. 사랑하는 데 그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편지한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앞에 설 때에 주님이 우리를 보시고 내가 너를 참으로 사랑한다고 참으로 사랑한다고 그런 칭찬, 그런 격려를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된다면 얼마나 축복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가이오의 이름은 것기쁨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가 은혜를 받으면 기쁨을 소유하게 되고, 기쁨으로 살고, 기쁨으로 충성하고, 기쁨으로 주의 일을 힘쓸 때에 우리가 인정도 받고 사랑도 받고 칭찬도 받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사도요한이 이 가이오를 어떤 부분에서 인정을 했는가를 살펴 봅시다. 먼저는 가이오의 건강한 믿음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여기 2절을 보면 것사랑하는 자여 너의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기도한다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 영혼이 잘되었다 하는 말은 너의 믿음이 건강하다 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너의 믿음이 건강한 것처럼 네가 다른 것도 다 잘되어서 네가 하는 일도 건강하고 사업도 건강하고 모든 것이 건강하기를 바라고 네 육신의 건강도 이루어지기 바란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교회앞에서 건강한 믿음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성도가 주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입니다. 교회는 믿음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지위가 높다고 교회에서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믿음으로만이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이고 우리는 믿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늘 힘쓰고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으로 인정을 받은 이 가이오는 얼마나 사도요한의 사랑을 받습니까? 그래서 참으로 사랑하는 가이오에게 내가 참으로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네 믿음이 건강한 것 같이 네가 모든 것이 잘되고 네 육신도 강건하기를 내가 정말로 바란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간절한 축복의 소원입니까? 우리 주님앞에 이 축복의 소원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있는 자녀가 공부를 잘하고 인격이 훌륭하다면 그 부모가 자녀를 향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것나는 정말로 네 인격이 훌륭한 것처럼 네가 착실하고 성실하고 공부를 잘하는 것만큼 네가 세상에 나아가서 모든 것이 잘되고 네 몸도 그렇게 건강하기를 바란다.라고 말씀하지 않겠어요? 우리 주님앞에 그렇게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두 번째 그가 인정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진리안에서 행동하고 진리를 증거하였다.겄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읽어 봅시다. 것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네가 네 자녀들이 진리안에서 행한다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가 되십니다. 진리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것진리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교훈을 받들어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사는 것을 가리켜서 우리가 진리안에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컵에 물을 가득 채우면 조금만 흘려도 물이 넘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우리 모습과 예수님의 뜻이 무엇일까?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에 어떻게 하실 것인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늘 살아 간다면 우리의 믿음은 그대로 밖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예수님을 닮은 말을 할 것이고 우리의 행동은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을 할 것이고 우리의 모든 태도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태도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옥한음 목사님이 하신 설교 테이프를 차안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의 교회에 어떤 자매가 결혼을 했는데 그 결혼한 가정의 시어머니가 불교를 평생 믿었습니다. 그리고 불교 신도회의 부회장까지 하신 분이라고 기억이 됩니다. 그런데 이 분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얘들아, 내가 죽거들랑 목사님모시고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루거라. 라고 하는 말에 자녀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것아니요. 어머니! 어머니가 평생 섬기던 그 불교를 왜 버리십니까? 것아니다. 나는 내가 지금 우리 막내 며느리를 보니까 이 며느리가 믿는 하나님이 참 신인 것을 내가 깨달았다. 내가 이제는 며느리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을련다.라고 했답니다. 여러분 이것이 진리안에서 행하는 성도의 모습인 줄로 믿습니다.
가이오는 모든 성도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것형제들이 와서 너희에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안에서 행한다고 그렇게 나한테 이야기 해주니 내가 너무너무 기쁘고 좋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일가 친척들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바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열심있는 신앙을 한국교회가 강조하지요. 그러나 열심있는 신앙만이 바른 신앙은 아닙니다.
여기에 덧붙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인정받는 신앙이라야 바른 신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족에게, 형제에게, 이상하게 보이면 안됩니다. 그런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에 어떤 젊은 청년들중에는 직장생활도 하지 않고 수년동안 교회일만 열심히 해서 그 부모들이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런 분은 교회의 일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의 일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일 할수 있는데도 일하지 않고 능력이 있는데도 그 능력대로 땀흘려 일하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지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말씀하시기를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서,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아야 됩니다. 이 가이오는 그의 모든 이웃들에게서 인정을 받습니다. 그것을 사도요한에게 가서 이야기합니다. 가이오가 너무너무 봉사를 잘 하고 있습니다라고. 교회의 직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인정받고, 가까운 이웃에게서 인정받고, 불신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아무게 장로님은 참 믿음의 사람이라고. 그렇게 인정받아야 될 줄 압니다. 그러면 이 가이오가 진리안에서 행한다고 인정받은 구체적인 삶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전도자들을 접대하고 그들의 뒷바라지를 잘했다라는 것입니다. 5절과 6절을 읽어 봅시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앞에서 너희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여기에 나와있는 나그네는 누구입니까? 초대교회의 전도자들 즉 순회 전도자들 입니다. 그때는 오늘날처럼 교회가 조직화되어 있지 못하고 제도화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순회전도자들이 전도하면서 다녔습니다. 그들은 전도를 하러 다녀도 아무도 그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7절에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하니라."라고 쓰여 졌습니다. 그당시에는 여관시설이나, 숙박시설도 없는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먹을 것과 숙소를 제공하고, 그들을 뒷바라지하고 그들의 여비를 보태주는 일들은 교회가 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주님께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도 지키는 것이지마는 복음전파에 후원하는 것이고 전도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일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요한이 이 일을 힘쓰는 가이오를 보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것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수하면 그것이 참 잘 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바른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바른 믿음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일꾼들과의 좋은 관계를 가지고 그들을 접대하고, 그들을 위로해주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는 것이라고 저는 분명히 확신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여기에서 여러분의 믿음이 진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녀가 언제 부모에게 진정한 자녀의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까? 그가 배우고 힘이 있을 때에 부모를 잘 받들어서 자녀로서의 진정한 본분을 다 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애쓰고 헌신하는 주의 종들을 대하는 여러분의 태도가 바로 여러분의 믿음의 태도인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데 다 잘해도 이것을 잘 못하면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잘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목사님께 사례를 드리는 일을 월급 주는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목사는 월급받는 것 아닙니다. 목사에게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례를 하는 것이고,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대접하는 양으로 드리는 겁니다. 받는 목사도 대접으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나한테 왜 월급 작게 주나? 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대접으로 받고 여러분은 대접으로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은혜받은 증거가 어디에서 나타나는 것입니까?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봉사하는 곳에 나타나는 겁니다. 주님은 이런 성도를 사랑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여름에 영국을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후 권재민장로님 이야기를 드렸습니다. 이분이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사표를 내고 의류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조그만 차에다가 옷을 조금 싣고 상점으로, 백화점으로 다니면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짧은 영어로 신학을 공부하려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게 기도를 했습니다. "주님! 내가 신학을 해야 됩니까? 말아야 합니까? 주님, 응답해 주십시오." 계속 기도했을 때에 주의 음성이 마음 속에 들어 왔다고 합니다. 가는 선교사만 선교사인가? 보내는 선교사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군대가 싸울 때에 전방부대가 있는 것인가? 후방부대가 있어야 싸울 것 아닌가? 너는 보내는 선교사가 되어야 된다라고. 그래서 그는 신학을 그만 두고 사업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점심식사가 자동차안에서 비스켙 한통과 커피 한잔이었습니다. 그는 배고픔을 참고 땀흘려 고생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한국에서 영국으로 온 선교사들은 모두 초대하여 대접했답니다. 하나님은 그 장로님을 기뻐하셨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희들이 방문을 했을 때에 보니 골프장있는 마을에 넓은 대지와 집안의 테니스장이 있는 전원같은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중국과 방글라데시에 수 천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는 큰 의류공장의 사장으로 열심히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희들도 그 집에서 대접을 잘 받았답니다. 주의 종을 잘 대접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는 증거를 또한 보여주십니다. 제가 가끔 이야기했지마는 대우그룹의 사장으로 계셨던 윤흥섭집사는 그루터기교회를 개척하셨고 그 교회의 집사님입니다. 이분은 하나님일을 항상 먼저 합니다. 교회도 개척해서 선교하고 또 대기업의 사장으로서 바쁜 가운데서도 선교사들의 후원을 위한 이사회에도 거의 빠지지 않고 모이십니다. 그런데 1988년말에 대우그룹을 사임하고 대우그룹에 속해 있는 아주대학교 이사장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대우그룹이 해체되었고 대우그룹의 모든 사장과 임원들 다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아주대학교 이사장으로 계시니까 아무런 제재를 받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주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종을 대접하고 선교에 동참하는 일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8절을 읽읍시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를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겂 주의 종들, 주의 전도자들, 선교사들을 대접하는 것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동역자가 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초창기때부터, 월세를 지불하면서도 선교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붙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서 우리교회도 이만큼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면 선교의 동역자가 되어야 되겠는데 선교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에밀부로네가 말하기를 "불은 붙어야 불이고 꺼진 불은 불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불은 꺼지면 불이 아닙니다. 불은 붙어야 불인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교회인 것입니다. 선교하고, 전도할 때에 성도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꺼진 불은 불이 아닙니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의 본분을 벗어난 것입니다. 평소에 전도하지 않는 성도는 자기의 본분을 버린 것입니다. 주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주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전도요. 선교입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는 우리가 동역자로 동참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선교지에 가지 못하는 대신에 헌신된 선교사를 보내는 것이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리안에서 행하는 성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협력할 수 있습니까? 먼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영적인 싸움이며 영적인 전투이기 때문에 기도의 후원없이는 절대로 선교가 되지를 않습니다. 기도의 후원이 있으면 소련이 무너지는 역사가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하교회가 얼마나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것은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직접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왜그렇습니까? 전세계 모든 성도들이 그것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제가 또 중국에서 만난 한 지하교회의 지도자에게 몇가지 질문을 했었습니다."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느냐고?" 그분이 하는 말이 "예, 목사님 제가 7년전에 밤에 잠을 자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언제, 누가 찾아오거든 만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전도자를 만났습니다. 그분이 성경책 주는 것을 읽었습니다. 그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고 지하교회를 지도하고 있습니다.겄 이런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선교는 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선교의 후원기도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후원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정적으로 후원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질축복을 구하고 있습니까? 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물질의 축복을 받았으면 그물질의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때에 축복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몸을 가지고 있지요. 몸을 무엇하라고 주신 것입니까?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몸은 일을 하면 건강하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일을 하지 않고 방탕하고 음란한 생활을 해 보십시요. 어떻게 되겠습니까? 몸은 병들어서 못 쓰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도 정당하게 사용할 때에 하나님이 그 물질위에 축복해 주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왜 선교사들에게 재정적인 후원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이 선교사들에게는 물질을 안주셨습니다. 역사이래 주의 종들에게 물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사에게나 엘리야에게도 물질을 안주셨습니다. 지금 저는 우리 선교사들 후원하는 일, 파송하는 일들을 직접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너무나 생생하게 보여집니다. 훈련 잘 되고, 교육 잘 받고, 준비가 잘 되었는데 후원하는 교회가 없는 선교사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외국으로 선교하러 나갑니다. 잠비아에서 선교사로 15년동안 봉사하셨던 이주한선교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5년전에 잠비아에 갈 때 자신을 파송한 2개의 교회가 있었는데 선교비를 2번만 주었답니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까지 전세계를 다니면서 열심히 선교를 하고 계십니다. 선교하러 갈 수 없는 우리에게는 선교 대신 그들을 후원할 수 있는 힘을 주신줄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재정적인 후원을 보내드림으로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가 동참하고, 동역하고,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할려고 우리에게 물질의 힘도 주신 줄로 우리는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깨달은 분들은 이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 번째, 선교지를 방문하시고 격려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왜그러냐하면 선교사는 외롭습니다.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고분분투해야 합니다. 편지를 보내고 작은 정성 보내주시고, 방문해서 그들이 수고하시는 것을 눈으로 보고 칭찬해주고 격려해주고 인정해주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지 모릅니다. 수 년전에 우리 교단의 선교부 목사님들이 남미의 파라구아이에 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파라구아이에 있는 선교지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6시간 정도 가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귀찮고 힘이 들어 파라구아이에 있는 선교지까지 가지 않고 그곳의 선교사들에게 국경으로 나오라고 했답니다. 우리교회의 이정백집사님의 동생 이정근 목사님이 있는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은 높은 사람들이 나오라고 하니까 나와야 했습니다. 물론 만났습니다. 그렇지만 선교사님들이 돌아가셔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교단의 선교부가 그럴 수 있습니까? 놀러 다니고 관광하라고 보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선교사들을 찾아와서 정리해 주고 위로해 주라고 보냈는데. 가서는 선교사님들에게 상처만 주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너무 분개했습니다.
여러분! 미전도 부족들을 향해서 젊음을 바치고 나가는 선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얼마전에 강경희 선교사 가정이 티벳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후원 교회가 약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갔습니다. 여러분! 우리 국내에는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 많은 목사님들이 시골에서 수고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큰 교회의 목사가 되면 성공했다라는 말을 쓰는데 여러분은 그런 말 쓰지 마십시요. 하나님앞에서 성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앞에서 성공이라는 것은 진실하게 일하는 그 목사가 성공한 것입니다. 여러분! 큰 교회의 목사는 다 하나님앞에서 상이 많고 시골 교회의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평생 수고한 목사님들은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까? 그런 예수를 누가 믿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반지 중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가장 작은 다이아몬드 밖힌 바로 그곳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작은 것일수록 하나님앞에서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존경해햐 합니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는 주의 종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기도해 주고 후원해 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최고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주권자이신 하나님 우리 주님에게 인정받는 것입니다. 언제 인정받습니까? 진리안에서 행할 때 인정받습니다. 진리안에서 행하는 구체적인 삶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즉, 주의 종들을 받들어 섦기면서 복음전파를 위해서 마지막까지 협력자가 되는 일입니다. 나 자신이 빛을 나타내고 소금의 역할을 잘 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 덕을 세우는 일. 이것이 진리안에서 덕을 세우는 일인 것입니다. 이시대에 가이오가 누구입니까? 바로 선교사를 후원하고 주의 종들을 후원하여 보내는 선교사, 보내는 성도들이 이 시대의 가이오인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함께 계시고 이렇게 살아가는 성도에게 그를 사랑하시는 증거를 보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이오처럼 진리의 사람. 진리를 위해서 수고하고 또 진리를 위해서 함께 수고하는 우리 모두가 다 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