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선택과 책임 (창 2:9)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대해서 정의를 쉽게 내리기 어려워합니다. 신앙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사람마다 나름대로 신앙을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신앙에 대한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최초 인간에게 신앙을 알아보는 절대 기준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택입니다. 선택은 인생이 자기 신앙을 표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 신앙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선택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알아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 앞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생명나무의 실과는 먹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 선택의 문제에서 실패를 했던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아담과 하와 뿐 아니라 모든 인생에게 신앙의 문제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때문에 신앙생활을 선택의 구조로 보면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열심의 문제 이전에 선택의 문제요, 충성 이전에 바로 선택의 문제입니다. 인생에게는 언제나 선택의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생은 결국 자기 선택을 붙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인생에게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보면 믿음은 선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달아보시는 저울이 바로 선택이라는 저울이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고향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가나안을 선택하느냐, 사람의 경험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느냐, 자녀를 선택하느냐 하나님을 선택하느냐 등 언제나 그의 믿음은 선택의 문제로 점검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믿음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다니엘도 믿음은 선택의 문제였습니다. 산해진미 좋은 음식과 검소한 삶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그의 믿음이요 권세와 기도 가운데서 기도를 선택한 것이 믿음이요 우상에게 절하는 것과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풀무불에 들어가는 것 중에 선택을 강요받는 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핍박과 환란의 시대에 신앙은 언제나 선택을 통해서 점검을 받아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신앙을 선택의 문제로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길을 가는 행인과 같은 사람이라는 대 전제를 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걸음을 걷는다는 면에서는 동일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길을 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걷는 능력이 아니라 바른 길을 볼 줄 아는 능력인 것입니다. 미국-길을 잃었다,
선택이 잘못된 사람은 결국 달릴수록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고 열심히 갈수록 그 열심 때문에 그 자신의 삶을 망치게 되고 그 열심 때문에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구별하라고 했습니다. 성도에게 먼저 할 일은 선택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나중 할 일은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성도는 언제나 자신의 신앙을 선택을 통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신앙은 열심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보여 주어야 할 신앙의 내용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내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를 분명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는가 삶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택이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선택에 실패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생명나무의 실과를 선택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선택하고 결국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결코 자신의 재주와 지혜로는 바른 길을 알 수 없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있는 지식과 경험이 때로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택이 정말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선택하고 싶은 것일수록 사람에게 해가 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일수록 사람들이 선택하고 싶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몸에 좋은 약이 입에는 쓰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러한 격언들은 좋은 선택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우리 삶에 많이 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본즉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울 뿐 아니라 지혜롭게 할만한 모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속은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선택이 어려운 이유가 그기에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내게 유익을 줄 것 같은 것들이 실제로 나를 죽이는 것이 될 수 있고 겉으로는 내게 행복을 줄 것 같은 것들이 실제로는 내 영혼을 어둠에 빠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세는 노아 시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노아 시대는 선택에 실패한 세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으로 인하여 그들의 가정은 하나님이 없이 육체가 된 것입니다. 그들의 선택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택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람의 선택은 궁국적으로 영적인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결혼-
선택은 그 결과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바로 책임을 말합니다. 선택이라는 말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언제나 함께 공유하는 것입니다. 선택은 순간에 이루어지지 마는 그 결과는 영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선택의 문제는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주제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어떤 일에 재주가 부족하다거나 힘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택이 언제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선택이 잘못된 것은 전부를 잃게 되지만 재주나 방법이 부족한 것은 결정적인 부족은 아닙니다.
선택이 중요한 이유는 선택하는 자는 그 선택의 결과를 자신이 받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선택한 것이 심판이 된 것은 선악과의 결과가 바로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은 마치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성도는 선택의 순간을 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선택의 결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선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감동을 주는 선택은 아마도 원저공과 심프슨 부인에 대한 이야기 일 것입니다. 원래 윈저공은 영국의 에드워드 8세로 영국의 왕이 되었으나 이혼녀 심프슨 부인과 결혼을 했기 때문에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불드윈 수상의 강력한 반대를 받게 됩니다. 왕좌를 택할 것이냐 사랑을 택할 것이냐를 놓고 번민하던 에드워드 8세는 미련 없이 왕좌를 버리고 심프슨 부인을 선택했고 그는 원저공이란 신분으로 강등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원저공의 선택을 위대한 선택이요 사랑의 승리라고 칭송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뒤에 그들의 삶은 그렇게 행복하거나 복되게 보낸 것은 아니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원저공은 노년에 심프슨 부인의 잔소리가 싫어서 별거를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인생들이 선택의 결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선택했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생명나무로 나가는 길을 잃었습니다. 인생은 결국 죄악이라는 어두운 광야에서 헤매이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실존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류에게 새로운 생명 나무를 심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하나님이 이 땅 위에 세우신 생명 나무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게 하나님은 단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꿈이 있는 교회
여러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꿈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만 하면 꿈과 비젼을 가질수 있고, 또 그것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꿈을 갖는데 어떤 꿈을 갖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꿈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세상을 향하는 순간부터 그 꿈은 허무하고 의미없는 꿈이 될 수 밖엔 없습니다. 믿음은 무엇이 믿음입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인생을 걸기를 바랍니다. 꿈이 있는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교회의 비전
1. 365일 예배드리는 교회(히10: 25)
오늘날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읽고, 듣지 않으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말씀의 거울을 통해 매일 마음을 바르고 깨끗이 하여서 예수와 복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더불어 사는 공동체 (행2:42- 47)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까지도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교회는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안에서 한 가족이 되고, 교회 직영 사업을 통해 청장년의 일자리 마련, 노후생활 보장 등의 꿈과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의와 평강과 희락이 넘치는 교회(롬14: 17)
하나교회는 의롭고(선하고), 근심, 걱정, 두려움이 없고 기쁨과 찬송이 넘치는 교회입니다.
4.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마22:37- 39)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이러한 꿈과 비전이 있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합니다. 연락바랍니다.
출처/한태완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