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
행복을 위한 선택 (창 13:9 - 12)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가운데 하나는 선택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수없이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여러 사람이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선택하여야 합니다. 백화점에 가서 옷 한 벌을 살 때에도 어떤 옷, 어떤 색상을 택할 것인가? 진학하는 이는 학교와 학과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선택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부모나 조국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직업, 배우자, 살 수 있는 주택 등 선택하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있습니다. 알고 보면 삶은 선택입니다. 대신 선택은 중요합니다. 오래 전에 전자제품 광고에서 순간의 선택은 10년을 좌우한다는 선전이 있었습니다. 어떤 선택은 10년이 아니라 일생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면 배우자 선택의 경우를 보아도 외모나 가문 혹은 그 가정의 경제적인 부를 보고 선택하였다가 일생동안 후회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선택을 잘못해서 영원히 불행하게 된 이들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선택을 잘한 사람이 있습니다. 롯과 비교하여 볼 때 아브라함입니다. 선택하는 데는 많은 것 중에 하나를 고르는 게 있고 두 가지 중에 이 것이냐 저 것이냐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 상품적 선택입니다. 자동차를 산다고 할 때 어느 회사 어느 차종을 선택할 것인가?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다릅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데 아브라함은 잘하였습니다. 선택을 잘 합시다.
바른 선택을 위하여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1.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롯이 잘못 선택한 것은 자기 중심이었습니다. 창세기 12장의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도 실수를 하였습니다. 경제문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도 않고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내를 누이동생이라 하였습니다. 창세기 12:20절을 보면 “바로가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얻은 게 물질적인 부(富) 였습니다. 자랑스럽게 얻은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 물질을 분배하는데 선택권을 아브라함은 포기하고 롯에게 주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롯의 삼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것도 부모와 같은 삼촌입니다. 그럼에도 우선권을 삼촌에게 주지 않고 자기가 행사하였습니다. 사람이란 윤리와 도덕도 있어야 합니다. 삼촌 먼저 택하세요. 그래야 도리 아닙니까? 저야 선택권이 없습니다. 삼촌께서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못해도 자기가 먼저 요단 온 들을 저기는 제가 갖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선택은 포기에서부터 되는 건데 이권 앞에서는 혈안이 되어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성자와 같이 살려고 하면 성자의 마음과 성자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인으로 살려고 하면 예수님의 생각과 그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노사문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곤욕을 치룹니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생각보세요. 삼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롯은 소돔성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내를 잃고 사위가 불에 타죽고 자기는 딸들과의 이상한 관계가 되어 모압과 암몬의 자손을 낳게 되었습니다. 어느 여인의 고백입니다.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술에 취하고 여자에게 섭한 말만합니다. 여자들은 남편이 하는 말에서 쉽게 노여움을 탑니다. 자기 자신이 무엇이 부족하여 이런 남편과 산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집을 나갈 마음이 생깁니다. 그 여인은 어린 딸을 들쳐업고 집을 나갑니다. 택시를 타고 친정 집 가까이 와서 내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때 택시 기사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린아이를 데리고 여기까지 오셨군요. 남편과 싸우셨나 봐요.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가는 게 어떨까요? 이런 시간에 친정으로 가면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어요. 돌아가는 택시 비는 받지 않을 거니까요. 그 말을 듣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초조해진 자기의 모습을 기사가 보고 충고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선택하는 것 같아도 부모에게 걱정을 끼쳐서는 안 된다. 그때 속으로 다짐하였기 때문에 돌아왔고 지금은 아주 행복하답니다.
적은 욕심이나 자존심을 버려야 합니다. 나 중심으로 선택하는 게 일시적으로 덕을 보는 것 같아도 잘못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롯은 먼저 선택을 하였으나 잘못 선택하였습니다.
2. 평화를 위한 선택이어야 합니다.
분쟁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물질입니다. 가난한 때보다 부자가 되었을 때 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다고 했습니다.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게 물질입니다. 물질이 많으면 편리하고 좋은데 가족들간에는 문제와 시비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한 집에서 같이 산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대가족제도하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재산관리는 달리하였습니다. 요즘 신세대부부들은 같이 돈벌이를 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돈 관리를 따로 하는 집이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동소유였습니다. 소유가 많으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의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비극입니다. 갈등은 해소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소할 수 있습니까?
1) 문제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깨닫고 이것을 고치겠다는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질병은 빠른 시간 내에 고쳐야 후환이 없는 것 같이 갈등은 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갈 데까지 가보자 이런 오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2) 긍정적인 대화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화해야 합니다. 아무리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도 다투면 좋지 아니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제언을 들어보세요. 우리는 한 골육이라 서로 다투게 하지말자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삼촌인데 너는 그러면 안되지 않느냐 그런 대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한 골육이다. 우리는 화목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문제로 불화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대화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생활철학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화목과 평화를 얻기 위한 것으로 선택의 원리로 결정하였습니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 평화와 화목을 찾기 위한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고 하였습니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7) 하였고, 화평케 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화목하기 위하여 선택 하도록 하였습니다.
3.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사람을 선택할 때에도 외모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면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8)
커다란 저택에 화재가 났습니다. 집주인은 겁에 질려 홀로 뛰쳐나왔습니다. 갑자기 불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 들어 가서 귀중품이 들어있는 보석상자를 안고 나왔습니다. 아! 다행이다. 이것을 가져왔으니 내 귀고리, 목걸이, 팔찌, 보석을 다 가져온 셈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보니까 아이들이 창가에서 있어요. 그제야 아니 내 아들 내 딸 그러면서 소리쳤습니다. 결국은 아이들이 희생당했습니다. 불 속에서 자녀들은 잊어버리고 보석상자만 생각하고 그것을 가져와서 좋다고 하던 이 여인은 현명합니까?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 에 선택이 달라집니다.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는 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위한 결혼대상자를 구할 때 무엇보다 돈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돈이 없으면 사람대접 받지 못하고 고생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격적인 면에 가치를 두는 이가 있습니다.
사람 하나 분명하면 좋다는 이론을 가진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은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역사에 가장 크게 미친 두 분야가 종교와 경제라고 하였습니다. 종교가 가치입니다. 영이 잘되는 것 영혼이 구원받는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영적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의 행복을 위하여 영원한 축복을 버리겠습니까? 세상의 즐거움 놀이 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선택하면 영생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보다 은 30을 선택하고 영원히 후회하는 불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를 돈으로 계산합니까? 물질문제로 예수를 버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양주 2병에 자기 땅을 팔았던 인디언과 같은 사람입니다. 무슨 이야긴가 하면 1700년경 네덜란드 사람 몇이 지금 미국 뉴욕 맨하탄(Manhattan) 섬 남부에 이주해 왔습니다. 당시 그 섬의 주인이었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여기가 우리의 땅이니 나가라 하였습니다. 오갈 데 없는 처지의 네덜란드 사람들은 땅을 자기들에게 팔라고 간곡하게 애원하였습니다. 그 땅을 임자가 있을 때 팔아야지 하고 인디언들이 생각을 하고 흥정에 들어갔다 값은 양주 2병이었습니다. 300년이 지난 후에 오늘날은 그 땅이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장자의 권한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장자권은 보이지 않고 팥죽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돈 얼마 때문에 예수와 멀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보이는 땅 소돔은 여호와의 동산 같았습니다. 우리는 이곳보다는 보이지 않는 헤브론을 선택할 수 있는 영적인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4. 사명적인 것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권추구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명예를 위한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한 예를 들면 여자가 결혼하여 가난은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친정 집이 어떻다느니 네 가문이 형편없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 결혼생활이 깨집니다. 명예는 사람의 기를 살려 주고 모든 것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폭군 네로도 오늘의 올림픽 같은 국제경기대회를 로마에서 열어 자신이 네 개의 금메달을 받았답니다. 명예는 돈과 직결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사명적인 면에서 생각하고 그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국회는 세계적인 석학 아인슈타인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임했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인슈타인은 정중하게 사양하였습니다. 이유는 대통령을 할만한 인물은 많이 있으나 물리학을 가르칠 학자는 그리 많지 않아요. 이스라엘의 수장 벤그리온도 어느 날 갑자기 수상직을 사임했습니다. 기자들이 몰려와서 사유를 묻습니다. 그는 키브츠 농장에서 일할 일꾼이 부족합니다. 수상은 내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으나 땅콩 농사는 아무 나 하는 게 아닙니다.
위대한 사람은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명을 망각하고 명예만 추구하다 보면 그것을 잡지 못합니다. 명예를 피해 가면 오히려 그것이 따라 온답니다. 감투라고 하면 세상의 모든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이가 있습니다.
지혜 있는 사람은 사명을 우선으로 선택합니다. 솔로몬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아버지 다윗 다음으로 왕이 되자 즉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줄고 그때 그는 백성을 바르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너는 수도 부도 구하지 아니하고 이것을 구했으니 네가 구한 대로 주고 구하지 아니한 것도 주겠노라”(왕상 3:5-12)하셨습니다. 사명을 다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사명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사명에 초점을 맞추어 보세요. 우리에게 물질적인 부요가 필요합니다. 건강도 있어야 합니다. 왜 그게 필요한가요? 사명에다가 초점을 맞추세요. 건강해야 봉사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부요가 있어야 마음껏 헌금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꽃 한 송이도 사명이 있는데 하물며 그리스도인으로 그것도 하나님의 선택받은 직분 자로서 귀한 사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수행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소원해야 합니다. 어부이면 어부로 농부이면 농부로 예술가이면 예술가로서의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위하여 선택하는 자는 바른 선택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사명은 기도였습니다. 헤브론 마므레 상수리 나무아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가 아들을 얻고 소돔 성이 불로 심판 받게 될 때에 롯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5. 선택의 원리는 육적인 게 아니라 영적이어야 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 롯은 선택을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잘못 선택한 것입니다. 육적인 눈으로 보이는 대로 선택하였습니다.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창13:10)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믿음이라는 게 전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창 13:4, 18)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록 소돔 고모라와 같지 못한 땅이지만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하였습니다.
소돔 도시보다는 기도하기 좋은 곳은 헤브론이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내가 롯이라면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입니까? 사람은 항상 미래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앞을 보고 살아야 합니다. 앞을 보고 살아가라고 앞으로 가게 하였습니다. 눈도 앞에 있고 앞만 보고 살아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좋아 보이는 것이 미래에 화가 되기도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항상 앞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미래를 위하여 영적인 것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습니까?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혹 돈이 아닙니까? 심리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사람이 깨어있는 동안에 시간의 80%는 돈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돈 그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원리를 지켜야 합니다. 화목을 우선으로 하여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분명한 판단력을 가지고 선택하여야 합니다.
사명을 위한 선택이 되고 영적인 것을 선택함으로 후회 없는 아브라함 같은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 멘 ~
출처/백장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