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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 (출애굽기 17:8~16)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는 약 30여 곳에서 부족 간에 전쟁이 있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전쟁의 도전이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 사람들은 세 가지를 아주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핵 전쟁, 두 번째는 테러, 세 번째는 마피아라고 합니다. 모두가 폭력이고 무력과 관계된 위협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한반도에도 핵의 문제, 핵의 공포, 핵 전쟁의 불씨가 일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전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에는 언제나 승부가 있고 승자의 영광이 있는 반면 패자의 비참함이 있습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투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아말렉 전투는 매우 상징적이고 교훈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처음 맞이하는 전투입니다. 그리고 이 전투는 실전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전투는 우리에게 영적 전투의 모형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아말렉은 그 당시 이스라엘을 늘 괴롭혔던 이방족속이지만 아말렉과 같은 영적인 장애물이 오늘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앙의 장애물은 다 아말렉으로 상징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아말렉의 도전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냥 우리가 보고 방관해서 안 됩니다. 아말렉은 전투로 이겨야 됩니다. 이스라엘의 아말렉 전투는 매우 중요한 길목에서 일어난 전투입니다. 이 아말렉을 이김으로서 이스라엘은 시내산까지 나아가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의 또다른 관계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우리가 주목할 몇 가지 승리의 비결이 있습니다.
자기 역할을 다함
첫째는 모두가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피곤하여 이 손이 내려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양쪽에서 들고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땅위에 교회의 모형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입니다. 아론과 훌은 대제사장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말씀의 대표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과 제사장의 역할이 있는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군대들과 함께 전장에 나가서 전투를 합니다. 여호수아가 전투하고 있는 이 모형과, 모세와 아론과 훌이 산에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는 모형, 이 두 가지가 오늘 지상교회를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영적으로 전투하는 기도의 측면과, 직접 전장에 나가서 전투하는 실전의 측면이 함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오늘도 이렇게 함께 모여 공동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모여 예배드리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투하여 이기고 난 다음에 단을 쌓고 여호와 앞에 제사하고 여호와닛시의 기념을 하는 그 모형이 오늘 우리의 예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우리는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습니다. 모세가 아론과 훌과 더불어 기도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영적인 능력이 분출되고 있고 이 능력이 성도들로 하여금 다 삶에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도하는 것과 여호수아가 전투하는 것은 이원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배하고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기더라고 했습니다. 영적전투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맡은 역할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다 교역자일 수 없고 장로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각각 받은 직임과 사명과 하나님 앞에 그릇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 자리가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사지가 뒤틀려 있는 불구자입니다. 그는 말도 잘 못합니다. 그는 건강을 잃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경쟁할만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아무런 평가를 받지 못하는 버림받은 존재입니다. 그만큼 송명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볼품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송명희는 그의 시에서 놀라운 신앙을 우리 앞에 보여줍니다. 그가 말하는 생명의 고백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살아야 될 사명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자리에 있어도 나는 살아야 될 가치가 있고 내 존재의 뜻이 있다고 자기 존재의 긍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지만 나는 살만한 가치가 있고, 내게도 사명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모든 것을 잃은 존재지만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우리 성한 사람을 향하여 놀라운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사명이 있습니다.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역할이 있습니다. 아말렉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자기 역할에 다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모세대로, 아론과 훌은 아론과 훌대로, 여호수아는 여호수아대로, 군인들은 군인대로, 백성은 백성대로 모두가 함께 순종하고 협력하고 협동하면서 아말렉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전쟁의 승패를 나누었습니다. 손을 들고 기도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전적 의지함
첫째는 하나님을 전적 의지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여호와여, 여호와의 능력이 아니만 우리는 이길 수 없습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여호와여, 우리로 승리케 하옵소서’ 아말렉을 쳐달라고 여호와께 전적 의지하는 신앙고백이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 간절한 기도입니다. 팔을 들고 기도하는 일이 얼마나 힘드는지 실험해 보면 압니다. 10분만 들고 있어도 팔이 저려옵니다. 한 시간만 지나면 팔에 마비증이 일어납니다. 줄로 동여매어 들고 있어도 똑같은 현상입니다. 누가 잡아주어도 팔을 들고 한 시간만 지나면 팔에 마비증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모세가 손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었는가? 성경에 명백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도 모세는 지난밤에 산에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 기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보면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다”고 했습니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양쪽에서 잡아 올려서 해가 지도록 전투하여 이길 때까지 팔을 내리지 않고 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기도입니다. 간절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기도의 손이 높이 올라가는 신앙생활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손을 여호와를 향하여 뻗쳐야 합니다.
지금 들려오는 뉴스는 우리에게 반가운 뉴스가 아닙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온갖 계략을 다하고 있고, 이 한반도에 세계가 주목하는 뉴스감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손을 들어야 합니다. 이 모세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접목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바로왕을 다스린 하나님,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신 하나님입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 백성과 접목이 되는 역할을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는데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은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쓰여져야 되는데 이 쓰여지는 역할,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은사가 분출되는 역할은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아말렉을 이기는 군사력, 능력을 분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실제적입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분출시킬 수가 없습니다. 기도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의 힘을 가지고 하고 돈의 힘을 빌려 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일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사의 10배, 20배, 100배의 능력을 발휘합니다. 돈의 힘으로 하는 사람은 돈을 가진 한계이상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그 돈의 10배, 20배, 100배의 일을 해 나가는 하나님의 능력의 분출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협동의 힘
김장독에 김치를 가득 담아서 땅에 묻어놓고 겨우 내내 끄집어내서 먹습니다. 그런데 끄집어낸 김치는 초겨울에 수고하여 담아야 됩니다. 담아서 가득채워 놓아야 겨우 내내 끄집어내어 먹을 게 있습니다. 빈 독을 묻어놓고는 끄집어 낼 게 없습니다. 담궈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필요할 때마다 끄집어내어 사용하는 은사가 우리 안에서 분출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합동사역의 위대함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사분란한 이 기도의 역사, 이 전쟁의 역사, 이것은 하나님 교회가 끊임없이 반복하여 추구해야 되는 교회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바나바가 있고, 누가가 있고, 디모데가 있고, 에바브로디도가 있고, 디도가 있고, 그에게 루디아가 있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있고, 오네시모가 있었습니다. 협동의 힘입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하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혼자의 위대함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교회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거기에 옥문이 열리고 베드로가 석방되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협동의 힘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부족합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가 묶어진 이 공동체는 매우 강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능력을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바로 아말렉 전투를 이기게 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믿음입니다. 이스라엘은 공동체의 믿음으로 역사하는 위대한 일들을 이루었습니다. 홍해를 건너는 일, 아말렉을 이기는 일, 여리고를 정복하는 일 이 모든 역사들은 이스라엘의 공동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믿음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믿음을 사용합니다. 우리 모두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합니다.
맺는 말
본문에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투하여 이기고 나서 모세가 여호와 앞에 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단을 쌓고 기념하여 ‘여호와닛시’, 여호와는 나의 승리의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에 언급은 없지만 모세가 단을 쌓고 여호와닛시의 기념을 한 행사는 위대한 승리의 축제를 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닛시의 기념, 성도들이 가정마다, 직장마다, 직업마다 여호와닛시의 기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깃발이 펄럭이기를 바랍니다. 깃발은 모든 사람이 다 보도록 높이 들어 꽂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시다, 우리가 이 축복을 간증하기 바랍니다. 모두가 다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이용호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