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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일관의 신앙 (히브리서 6:11~12)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서 불러내시고 세상 사람과 구별해서 자신의 자녀로 삼으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고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각자 예수 믿은 동기도 다르고 믿게 된 과정도 다양하지만, 동일한 것이 있다면 배후에 우리를 불러내신 하나님의 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를 세상 사람과 구별해서 예수 믿도록 하셨을까요?
우선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을 얻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나라에 가서 그분이 누리는 생명과 모든 지복을 그분과 함께 영원토록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만 해도 황홀하고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또 현실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동안 창조자와 구원자되신 하나님을 기쁘
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짧은 한 생을 살 동안 가장 고상한 목적 가운데 살도록 부르셨고 그러한 삶을 명령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 드리는 것입니다. 이 현실적인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몇 년 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허들경기에서 1위와 3위를 차지한 디버스와 엔퀴스트가 레이스를 마친 후 감격적인 포옹을 나누었습니다. 우승한 디버스는 엔퀴스트에게 우승 자리를 내주며 "그대가 자랑스럽다"고 울먹였습니다. 이날 두 사람이 나눈 포옹은 각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엔퀴스트는 지난 4월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았고 의사는 "경기출전이 불가능하다"고 했으나 항암주사를 맞고 출전해 3위에 입상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디버스 역시 10년전 갑상선 종양에 걸려 "운동불가" 판정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시력이 약화돼 정상적인 생활도 어려웠던 그녀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역경을 극복하고 이날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로 거듭난 것입니다.
그 시상대는 역경을 이긴 두 용사를 위한 자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뜻하지 않은 고난과 역경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역경에 따른 반응은 다양합니다. 우리는 신문을 통해 인간
승리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의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는 특별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해 버립니다. 사실 사람의 의지란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바뀔 만
큼 변덕스러운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인간의 의지로도 그렇게 큰 일을 해 낼 수 있다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어떤 장애물과 역경도 우리를 가로막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혼자서 인생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많은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이유를 붙여 각종 핑계를 대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진짜 장애물은 시련을 두려워하여 미리 포기하려는 우리 안에 감추어진 두려움입니다. 가나안을 정탐하러간 열두 명은 똑같은 것을 보았지만 두 명만이 믿음으로 말했을 뿐 나머지는 "우리는 도저히 저들을 이길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의 밥이다"라고 말하며 약속의 땅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시각으로 여러분 앞에 놓인 여러 가지 일들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가운데 있습니까? 그리고 그 상황 가운데에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운동불가 판정을 받은 암환자가 항암주사까지 맞아가면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시력이 약화되어 정상적인 생활조차 어려운 종양환자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작은 장애물에도 쉽게 포기하고, 단념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제 새로운 시각으로 인생을 바라보십시오. 어떤 문제가 여러분 앞을 가로막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시 18:29)"
1. 변화를 꿈꾼다-여기서,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나부터 우리가 지난 수련회에서 한 것은 변화를 위한 꿈이었습니다.
일본의 도요타 자동차는 세계 3위의 자동차 생산회사이다. 43%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던 도요타는 95년경에 점유율 37%까지 떨어지고 대부분의 재무수치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원인을 진단해본 결과, 당시에 암처럼 번져가고 있었던 “일본식 대기업병” 때문이었다. 사원들 모두가 충성스럽기는 했지만 단지 “회사를 위하여”라는 막연한 기치 아래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문제였다. 단순한 충성심만을 가지고 획일적으로 움직여가던 이 회사의 조직이 “New Office Way 21 운동”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변화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나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를 바꾸고 주위를 바꾼다”였다.
오늘 우리의 목회 현장 역시 도요타가 경험한 것과 유사한 위기에 처해있다. 주변의 환경과 상황이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마치 “보수”인 것처럼 착각하는 지도자들이 허다하다. 이제 변화되어야 한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어갈 때 미래의 비전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변화를 위해 지도자된 목회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음은 존 맥스웰 목사의 Reality leadership 세미나에서 발췌한 것이다.
1) 지속적이며 개인적인 변화가 지도자로서의 당신의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결심하라.
사람은 변화된다. 리더십 스타일도 변화된다. 존 맥스웰은 자신의 리더십이 어렸을 적에는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리더십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독재형의 리더십으로 발전했고 현재는 팀웍을 중시하는 리더십으로 발전해 왔다고 고백한다. 당신과 나도 변화되고 있다. 변화를 위한 모든 문제 해결의 주체는 바로 나이다. 나로부터 변화가 이루어져야 함을 확신하고 여기서,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나부터 변화되는 것이 삶의 스타일이 되도록 하라.
2) 변화는 일시적인 스트레스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라.
불란서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Andre Gide)는 “아주 오랫동안 해변을 볼 수 없는 힘든 일에 자발적으로 헌신하지 않고는 새로운 대륙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변화는 스트레스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라면 반드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하고 이러한 스트레스 속에서도 효과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다른 쪽에 가보도록 우리를 이끄신다. 이런 때 우리에게 찾아오는 스트레스는 당연한 것이고 잠시 동안만 주어지는 것이다.
3) 변화를 위해 기꺼이 값을 치루기로 작정하라.
만약 변화가 당신에게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니다. 존 맥스웰이 심장병으로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그에게 “살고 싶다면 심각하게 다이어트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그가 초코렛과 피넛 버터를 끔찍하게 좋아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포기한다는 것은 엄청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 대가를 치루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가치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4) 모든 것을 다 변화시켜서는 안된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는 모든 것을 다 바꾸자는 말이 아니다. 변화를 거부해야 할 것도 있다. 존 맥스웰의 경우 첫 번째는 믿음에 대한 헌신, 두 번째는 자신의 아내 마가렛과 가족에 대한 헌신, 그리고 세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지도자로 커가도록 돕는 일에 헌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변화되어서는 안될 리스트는 되도록 짧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본질적인 것에는 변하면 안되지만 모든 비본질적인 것에는 융통성이 필요하다.
5) 당신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사람들도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라.찰리 브라운의 만화에 이런 대목이 있다. 찰리와 루시가 담장에 기대어 서서 대화를 하고 있다. 루시가 꿈을 꾸듯 말한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찰리가 묻는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거니?” 루시가 대답하기를 “너로부터 시작하고 싶다.” 사람들은 자신만 빼고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싶어한다.
우리가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인간임을 드러내야 한다. 솔직해져야 한다. 따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당신이 변화되는 것을 보게 하라. 그러면 그들도 그만큼 변화되기가 쉬워질 것이다. 당신이 변화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도 요청하지 말라. 변화,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여기서,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나부터 시작하자.
시간을 내어서 더 나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당신 자신에게 있어서 변화되어야 할 부분에 대해서 돌아보라. 그 내용을 적어놓고 이러한 분야에 변화를 일으키도록 헌신해보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에서 바울은 변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로서 섬겨본 경험있는 사람들은 지속적인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압니다. 그러나 많은 사역자들이 방법이나 행동과 같이 겉에 드러나는 면에만 치우쳐 변화를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결코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 깊숙이부터 시작되는 변화입니다.
2. 진정한 변화의 원리
진정한 변화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마음을 새롭게 할 때 일어납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삶의 변화를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시작하는 변화를. 그러므로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지한 질문을 던지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개인적인 삶 속에서 변화의 경험을 거쳐야 합니다.
다음의 내용은 존 맥스웰(John Maxwell)이 제시한 지도자의 내적 변화의 과정을 돕는 간단한 원리입니다.
1) 가치를 형성하는 당신의 생각을 바꾸라.
리더십의 출발선은 지도자의 성품(character)입니다. 지도자의 마음이야말로 변화의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이전과는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 한, 마음의 변화를 받지 않는 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가치관이 바뀝니다. 어린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어린이 사역의 방향과 모습을 결정짓습니다. 마음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 초점있는 삶을 위해 당신의 우선순위를 바꾸라.
이것은 지도자로서의 헌신(commitment)에 관한 문제입니다.
헌신의 정도를 측정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의 지출명세서이고 또 하나는 시간표입니다. 시간표는 당신의 시간계획이 어떤지를 보여줄뿐만 아니라 당신의 진정한 우선순위가 어디에 놓여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당신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급한 일의 횡포에 이리저리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역을 기획하며 기도하고 사람들과 조직을 업그레이드 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효과적으로 살아가는 지도자는 다른 사람들을 또 다른 지도자로 개발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둡니다.
3) 당신의 기대하는 바에 대한 믿음을 바꾸라.
이것은 지도자의 확신(conviction)의 문제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지를 결정짓는 것은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보여주는 약속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소망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당신이 섬기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믿음은 그들에게 거는 당신의 기대를 바꾸어놓습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를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무엇을 믿느냐가 어떤 지도자가 되는지를 결정합니다
4) 당신의 관점을 분명하게 만드는 태도를 바꾸라.
태도는 지도자의 역량(capacity)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취하는 태도는 당신의 자리를 결정합니다. 만약 부정적인 태도로 사역에 임한다면 자신의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태도는 선택입니다. 긍정적이며 희망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은 절대 자연스럽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그렇게 선택하면 좋은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5) 결과를 향상시키는 습관으로 바꾸라.
습관은 행동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습관으로 결판납니다. 말로만 사람들을 이끌 수는 없습니다. 한두번의 속임수로 사람을 이끌 수 없습니다.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나게 마련이고 행동은 습관을 형성합니다. 습관은 자신이 믿고 확신하는 바에 자신의 행동을 드리는 것(contribution)입니다. 좋은 글을 남기고 싶다면 매일 매일 글쓰는 일에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당신이 달성하기 원하는 사명을 위해 오늘 시작해야 할 습관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변화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부터 시작합니다. 변화는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시작됩니다.
마음의 변화로부터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고, 나와 타인을 기대하는 수준이 바뀌게 되고, 태도와 습관을 바꾸게 되면 우리로부터 거룩한 영향력이 타인에게 흘러갈 것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Inside Out의 변화를 지금 경험해 보십시오.
3. 일관성 있는 노력
우리가 시종일관 하나님 앞에 성실하려면 몇 가지 실천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점점 바빠지고 경쟁도 살벌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멀어지고 맙니다. 모든 것이 나의 생각 속에서 맴돌고, 다음 목적을 향해 뛰다 보면 10년, 20년이 지나가 버립니다. 이런 유혹 많은 세상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도 만만치 않고 천국까지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변덕이 많은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유혹이 없을 때는 교회도 열심히 나오고, 성경도 읽어보려고 애를 쓰고, 안 믿는 사람을 만나면 전도도 하면서 나름대로 열심을 기울입니다. 그러
나 어떤 유혹이 와서 자신도 모르게 '꽝!' 하고 쓰러져 버리면 성경도, 기도도 팽개쳐 버리고 나중에는 술도 한 잔 마셔보면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버립니다. 한 마디로 신앙생활에 일관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우리가 한 생을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오늘 2부, 3부에 간증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에 의하
면 어려서 학습 받고 40년 만에 세례 받는 형제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예수 믿는 것과는 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암이 들고, 사업이 망하고, 이제는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어버리자 '주여!'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좋을 때, 마음이 뜨거워질 때, 그리고 설교에 감동을 받으면 잘 해 보다가 이내 잘 안되거나 마음이 식어버리고 감동이 식어지면 옛날로 돌아가 기가 일쑤입니다. 이렇듯 일관성 없이 변동이 심한 신앙생활을 하기가 쉽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자세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이런 신앙생활에 젖어 있는 분이 있습니까? 기분에 따라, 여건에 따라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오늘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은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지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신앙태도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것은 신앙생활 하는 데에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변덕이 심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조령모개(朝令暮改) 식으로 아침 저녁으로 말을 바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습니까? 인간관계가 다 파괴되고 맙니다. 변덕이 심해 믿을 수가 없으면 아무도 자기 곁에 오지 않습니다. 사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면 원칙과 목적이 분명하고, 보기에도 고개를 끄덕일 만큼 믿어줄 만할 때 그 사업이 잘되는 것이지, 기분대로 사업한다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어떤 브랜드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쉽게 선택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전자제품 하나를 사도 어떤 브랜드라고 하면 별 다른 생각없이 쉽게 구매를 합니다. 그 브랜드 제품을 사서 몇 년 써보다가 다시 새로 사야 되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곳으로 갑니다. 곧 '그 브랜드는 항상 질이 좋다. 고객을 만족시키는 상당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뢰도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는 브랜드는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식사를 하러 갈 때도 저절로 발걸음이 옮겨지는 식당이 있습니다. 수많은 식당들이 즐비한 길거리를 지나면서 하필이면 그 식당을 자주 애용합니까? '그 식당에 가면 내 입에 맞는 음식이 있다, 잘 해 준다.'는 나름대로의 신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 식당이 일관성 있게 고객을 대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이런 일관성을 요구하는데, 하물며 '구원을 받겠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는 매우 고상한 목적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마음가짐과 태도에 있어서 일관성이 없다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정리합니다. 일관성이란 변덕스러운 기분이나 갑작스러운 변화, 일시적인 유행과는 거리가 먼 꾸준함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내 기분이나 세상 돌아가는 것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나와는 무관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마음자세는 꾸준해야 합니다. 항상 동일해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곁길로 가게 하는 세상에서 모든 유혹에 맞서 낮이고 밤이고 제자리에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일관성입니다.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도 어제처럼 나로 하여금 행동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일관성입니다.
그저께 하나님 앞에서 한 행동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계속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해 하고 짜증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태도, 이것이 일관성입니다. 신앙생활은 이같은 태도를 견지할 때 은혜를 받을 수 있고 자신이 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항상 일관성을 가지고 대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찾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필요할 때에도 항상 그분은 그 자리에 계시고,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분을 찾으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일관성입니다.
자신이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우리를 향해 그와 같은 일관성을 가지고 자신을 찾기를 원하시고, 또 자신을 경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일관성이 있습니까?
첫째는 부지런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그리고 12절에도 '게으르지 아니하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이 부지런해야만 일관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에도 말씀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부지런함이 없이는 우리의 행동을 시종일관 동일하게 유지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100번을 결심해도 게으른 사람은 그 결심대로 실천하지 못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분들, 특별히 젊은이들을 보면 게으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게으름은 망국의 병입니다.
예수 믿고 나면 그 게으름도 뿌리가 뽑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내 몸에 익었던 게으른 습관이 나중에는 파괴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을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새로워졌는데 몸은 여전히 게으르다면 그 사람은 완전히 변화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이렇게 섬기겠다, 나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렇게 매일 하겠다.'고 100번 일기를 쓰고 결심을 해도 게을러서 실천하지 못하면 그 다음부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을 미워하십니다. 개미보다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게으른 것을 팔자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일사분란하게 신앙생활 하려면 부지런해야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바빠야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뒤떨어지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보다 시간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안 하므로 그만큼 시간이 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그만큼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들과 똑같이 열심히 하면서 교회에 와서 성경 공부, 제자훈련, 각종 봉사, 예배에도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제대로 신앙생활 하려면, 그리고 사회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두 세 배로 부지런해야 합니다.
금년 초에 나는 이렇게 신앙생활 하겠다고 작심해 놓고는 12월에 이르러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그 원인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게을러서 중도에 집어치웠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일관성 있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12절에 보면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이 본문의 내용은 특별히 아브라함을 중심에 두고 하는 말인데, 15절을 보면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1장 4절에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기 원합니까? 일관성 있는 신앙생활을 해서 구원받고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정말 오래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응답이 없어도 오래 참을 줄 알아야 됩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도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지라도 오래 참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인내심이 없이는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보면 성격이 급해서 도무지 참지를 못합니다. 옛날에는 약이 없어서 손가락만 아파도 2, 3일을 끙끙 앓으며 견뎠습니다.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치통이 있어도 진통제가 없었으
므로 이를 꽉 다물고 참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이가 못 견디고 쑥 빠져버리곤 합니다.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고통을 이기려고 하는 저항력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뚝심을 가지고 참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조금만 아파도 약 한 알만 먹으면 고통이 가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참는 연습을 도무지 할 틈이 없습니다. 자연히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어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생기면 참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기도생활 하다가도 마음에 안 들면 중단해 버리고, 성경을 읽다가도 별 다른 것이 없으면 참지 못하고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인내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약1:4)는 말씀도 있습니다. 인내하지 않으면, 끝까지 견디지 못하면 환란이나 고난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난 뒤에 숨겨놓으신 축복들을 다 놓쳐 버리고 맙니다. 끝까지 참는 자가 승리합니다. 끝까지 참으면서 걸어가는 자가 시종일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이렇게 게으르지 않고 인내하면서 시종일관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축복해 주십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저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쉽게 말하면 하나님 앞에 시종일관 견고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바로 하면 하나님께서 하늘의 평강
을 부어주시고, 또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을 받아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아름다운 주의 자녀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또 우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백성 삼고자 불러주셨는데, 우리는 험한 세상에서 시종일관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지 못했음을 회개합니다.
너무 게을러서 하나님 앞에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기도 하고, 인내하지 못해서 신앙생활에 변덕을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일관된 신앙생활, 견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의 축복을 누리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손종국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