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0
주님만 바라보는 신앙 (욥 1:13-22)
18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복음의 일꾼 톱 레이디 목사님이 계십니다. 톱 레이디목사님은 38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소천 하셨지만 그분은 찬송가 503장 “고요한 바다로”를 지은 분입니다. 가사들을 보면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찬송가처럼 우리 인생에서는 순풍, 역풍이 있습니다. 시편 23편의 말씀처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즉 기쁨, 즐거움, 고난과 어려움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한평생 행복보다는 불행, 형통보다는 고난이 더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틀림없이 닥쳐오는 고통을 이기며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첫째,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올 고난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즉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절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라는 말씀에서 말하는 “하루”는 정해진 날이 아닙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날입니다. 그날에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날에 그렇게 기막힌 일이 생길 것이라고 꿈에라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예고 없이 일이 닥친 것입니다. 15절에서 말하는 “갑자기”라는 말은 모든 불행과 재난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을 말합니다.
욥의 몸에 병이 났습니다. 여기서 욥에게 닥친 고난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한꺼번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에게 그와 같은 불행이 찾아오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29장 18절을 보면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선종하리라. 나의 날은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선종이라는 것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겠다는 말입니다. 욥은 자신에게 낙관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낙관적으로 살던 욥에게 전혀 예측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당혹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통과 시련도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옵니다.
둘째, 우리에게 찾아올 고통과 고난은 때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욥은 올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욥 자신은, 왜 자신이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욥의 경우와 같이, 인생을 살면서 알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의인이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악인은 떵떵거리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것은 인생의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욥은 21장에서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이유를 모르는 고난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고난도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죄를 범하여 스스로 끌어들이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아간은 도둑질해서, 다윗은 간음과 살인으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고난과 죄 때문에 받는 고난,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 있습니다.
셋째, 그러면 이런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고난을 극복하는 첫 번째 비결은 우리도 항상 고난당할 것을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믿으면 무조건 무병장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욥처럼 의인이 이유 없이 고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고난이 꼭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난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따라서 인생에 찾아오는 어려움, 고난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대신 고난을 예방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요,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게으르지 않는 것이고, 죄와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이기는 또 한 가지의 비결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고난 중에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시고, 현재의 고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이 예고 없이 갑자기 닥쳐와도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고난 속에서 범죄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출처/강용규목사 설교 중에서
18세기 영국에서 활동했던 위대한 복음의 일꾼 톱 레이디 목사님이 계십니다. 톱 레이디목사님은 38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소천 하셨지만 그분은 찬송가 503장 “고요한 바다로”를 지은 분입니다. 가사들을 보면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 찬송가처럼 우리 인생에서는 순풍, 역풍이 있습니다. 시편 23편의 말씀처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즉 기쁨, 즐거움, 고난과 어려움도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는 한평생 행복보다는 불행, 형통보다는 고난이 더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틀림없이 닥쳐오는 고통을 이기며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첫째,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올 고난을 예측하지 못합니다. 즉 내일 일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절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라는 말씀에서 말하는 “하루”는 정해진 날이 아닙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날입니다. 그날에 무서운 사건이 일어났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욥은 그날에 그렇게 기막힌 일이 생길 것이라고 꿈에라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예고 없이 일이 닥친 것입니다. 15절에서 말하는 “갑자기”라는 말은 모든 불행과 재난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을 말합니다.
욥의 몸에 병이 났습니다. 여기서 욥에게 닥친 고난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입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한꺼번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고난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욥은 자기에게 그와 같은 불행이 찾아오리라고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29장 18절을 보면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선종하리라. 나의 날은 모래같이 많을 것이라”라고 말합니다. 선종이라는 것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겠다는 말입니다. 욥은 자신에게 낙관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낙관적으로 살던 욥에게 전혀 예측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서 당혹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통과 시련도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옵니다.
둘째, 우리에게 찾아올 고통과 고난은 때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욥이 당한 고난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욥은 올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욥 자신은, 왜 자신이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욥의 경우와 같이, 인생을 살면서 알 수 없는 일 중의 하나가 의인이 당하는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악인은 떵떵거리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것은 인생의 수수께끼입니다. 그래서 욥은 21장에서 “어찌하여 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 세력이 강하냐”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는 이유를 모르는 고난이 있습니다.
반면에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는 고난도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죄를 범하여 스스로 끌어들이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아간은 도둑질해서, 다윗은 간음과 살인으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고난과 죄 때문에 받는 고난,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 있습니다.
셋째, 그러면 이런 고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고난을 극복하는 첫 번째 비결은 우리도 항상 고난당할 것을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 믿으면 무조건 무병장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욥처럼 의인이 이유 없이 고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모든 고난이 꼭 죄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난은 언제든지, 누구에게든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따라서 인생에 찾아오는 어려움, 고난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는 것입니다. 대신 고난을 예방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함께 하는 것이요, 교만하지 않는 것이요, 게으르지 않는 것이고, 죄와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을 이기는 또 한 가지의 비결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은 고난가운데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고난 중에 감당할 힘을 주십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시고, 현재의 고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해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고난이 예고 없이 갑자기 닥쳐와도 예수님만을 바라보면서 고난 속에서 범죄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 지켜주시고 함께 하시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출처/강용규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