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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오물을 제거하라 (엡 4:25-32)
요즘엔 공기와 물과 산천초목이 많이 오염되었다.
그래서 넓은 미국땅에서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것은 너무나 큰 특권이다.
코와 눈이 따가울 정도로 대기 오염이 심각한 필리핀의 마닐라 거리를 걸어 보라.
그리고 도시에서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을 그대로 마시기가 상당히 꺼려지고,
가까운 해안에서 잡은 생선은 오염의 가능성이 많다고 하여 먹기가 께름직하다.
이런 환경 오염보다도 더 악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정신적이며 영적인 오염이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어떤 교리 체제나 의식이 아니라, 생명이요 영원한 구원의 근거이다.
하나님을 도외시하는 종교는 그 예식과 행사가 아무리 거창해도 허무한 것이고,
예수를 부인하는 기독교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철저해도 근거를 잃은 것이다.
또한 윤리를 무시한 기독교는 자칫 사이비나 이단이 되기 쉽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생활 신앙에도 더러운 오염물질이 섞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에 믿고 영접한 것은 곧 자신이 죽고 이제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사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이 곧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신앙이다.
그래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
우리의 공적이나 노력이 조금도 필요가 없고, 다만 마음을 다해서 주 예수를 믿으면 된다.
그렇지만 그 신앙이 잘 성장하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려면 값을 지불해야 한다.
값을 치루지 않는 신앙은 갓난 아이같이 무책임하고 미숙한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군대에서나 회사에서도 남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은 그 만큼 책임이 크다.
회사의 말단 사원이나 군대의 졸병은 윗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월급받으면 그만이다.
출근 시간에 맞춰서 나가고, 퇴근 시간이 되자 마자 회사를 빠져 나오면 된다.
그렇지만 그 회사의 사장은 회사 안팎에서 밤낮으로 고민하고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와 같이 앞서 가는 그리스도인은 악을 떠나는 용기와, 선을 추구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
신앙 성숙에 장애가 되는 것은 아무리 아깝게 느껴져도 끊어 버릴 수 있고,
경건 생활에 유익한 것이라면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교회 생활을 오래 했어도 왜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낮은 바닥에서 일어서지 못하는가?
왜 많은 교인들이 헌신의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하고 의심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대개 아직 끊지 못한 것이나 떠나지 못한 옛 것들이 그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달려 나가고 높이 뛰고자 하는 결단의 용기와 믿음의 도약이 필요하다.
성경에서나 역사적으로나 게으르고 핑계가 많은 신앙인이 영적인 지도자가 된 적이 없고,
불순종하고 자기 교만에 빠져서 방종하는 그리스도인이 영적인 열매를 맺는 일이 없다.
문을 나서다가 옷자락이 문틈에 낀 것을 모르고 달리려고 하면 옷이 찢어지거나 넘어진다.
뒤의 것을 놓지 않고 어떻게 앞으로 달려 가겠는가?
진실한 신앙을 위해서 버려야 할 일곱 가지 오염 물질을 먼저 보자.
첫째로, "거짓을 버리라"(4:25).
이 세대에는 거짓말이 너무 많다. 재판에서 선서를 하고도 여전히 거짓말하고,
증거가 드러나도 끝까지 아니라고 버티는 것이 상책으로 여기는 세상이다.
일단 거짓말로 위기를 넘긴 후에 다른 거짓말로 빠져 나가는 것이 세상 방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단이 거짓말의 아비라고 말씀하시면서,
진실하고 정직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강력하게 교훈하신다.
어느 은행에서 있던 일이다. 은행원들에게 진급 문제가 심각하게 고려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점심 시간에 은행장이 잠시 구내 식당을 들렀다가, 진급 대상이 오른 어느 직원이
빵에 한 개 씩 넣어야 하는 버터를 슬쩍 두 개 넣는 것을 보았다. 돈받는 사람은 그것을
못 보았는데, 마침 은행장이 그것을 보았다. 결국 그는 진급에서 탈락되었다. 작은 것에
부정직한 사람에게 돈을 맡길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은행장은 말했다고 한다.
"분 외의 말을 하는 것도 미련한 자에게 합당치 아니하거든 하물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잠 17:7).
그리스도인은 영광스런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신분을 보장받은 자들이다.
아름다운 신분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의 입에서 창피한 거짓말이 나오지 않게 하라.
둘째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4:26).
화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자주 내는가 가끔 내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참는가 아니면 발산하고 폭발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올바른 이유에서, 알맞은 정도와 알맞은 때에 알맞은 방법으로 화를 내기는 어렵다.
그렇게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크게 실수하거나 후회할 일이 적을 것이다.
유명한 알렉산더 대제는 자기가 원하는 땅을 공격하여 엄청나게 정복한 왕이다.
그런데 어느 날 술에 취한 장군 친구가 자기를 보고 농담하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난 그는 크게 분을 내면서 창을 뽑아서 그를 단순히 위협만 하려고 했는데,
실수로 어려서부터 함께 지내던 제일 가까운 그 친구를 죽이고 말았다.
후에 그는 병들어 누워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친구를 죽인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많은 나라를 점령하고 빼앗은 용사였지만,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인 Elmer Gaits가 사람이 호흡에서 나오는 액체를 냉각시켜 보았다.
얼마 후에 보니 그 밑에 무엇인지 가라앉은 것이 보이는 것이다. 침전물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그 색깔이 사람의 감정에 따라 다른 것을 발견하였다.
크게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의 호흡에서 나온 액체는 짙은 갈색이 되고,
슬픈 마음을 가진 사람의 호흡은 회색이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후회할 때 내어 뿜는 숨결의 색깔은 복숭아같은 핑크빛이었다.
그 중에 화낼 때 나온 짙은 갈색의 침전물을 흰쥐에게 주사하니 몇 분 안에 쥐가 죽었다.
그는 사람이 분을 낼 때에는 그 호흡에서 독소가 생기게 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한 시간 내내 화를 내면 80명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독이 방출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 뿐 아니라 남의 생명에도 손해를 끼치는 분노를 주님이 녹이시도록 기도하자.
만일 화가 날 때마다 모두 화를 내야 한다면, 세상이 온통 싸움판이 되고 만다.
어떤 사람은 화를 참지 말고 쏟아 버려야 건강에 좋다고 말하지만, 그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자신을 학대하거나, 이웃을 괴롭히는 방법이 아니라,
보다 건설적이며 서로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는 분노 해결 방법을 생각해 보라.
한 아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1차 세계 대전이 어떻게 일어났어요?
"응, 독일이 벨지움을 침략하면서 시작된 것이지."
그러자 아이의 엄마가 "여보, 아이에게 진실을 말해 줘요. 어떤 사람이 살해당했기
때문에 발발된 것이잖아요."
아이의 아빠가 기분이 상해서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지금 아이가 당신에게 묻는 거요, 나에게 묻는 거요. 왜 쓸데없이 참견을 하는 거요?"
화가 난 아이 엄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서 방문을 쾅 닫았다.
이어서 부엌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심하게 들리면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상황을 눈치챈 아이는 "아빠, 전쟁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더 말하지 않아도 돼요. 알았어요."
부모가 다투는 것을 본 아이가 이미 다 알아 차린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 19:11).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 7:9).
셋째로, "마귀가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4:27).
마귀는 우리 생각과 행동에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독가스처럼 스며들려고 한다.
아주 작은 문제에 뒤엉키게 하여 나중에는 스스로 올무에 걸리게 하기도 한다.
믿는 자들이라도 넘어뜨리려는 것이 마귀의 작전이요 목표인 것이다.
사람마다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딘가 헛점이 있고, 어디엔가 틈이 나기 쉽다.
어떤 사람은 돈 문제에 헛점이 많아서 종종 돈 문제로 시험에 들고,
어떤 사람은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해서 신앙이 견고하게 서지 못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나태하거나 방심하여 마귀에게 자주 공격을 받기도 한다.
동물원에 있는 사자는 사납고 무섭지만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그 사자는 쇠창살로 된 울타리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귀는 아주 작은 틈만 있어도 그리로 파고 들어와 우리를 공격한다.
한 마디의 격려의 말로 인생에 환한 빛을 비춰 줄 수도 있지만,
한 마디의 부정적인 말로 인생이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하라.
죽음을 두려워하는 환자에게 의사의 한 두 마디의 말이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가?
만일 회복의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내린다면 어느 환자가 살 희망을 갖겠는가?
반면에 치료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면 환자들은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받을 것이다.
독가스처럼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이 우리 삶을 갉아 먹는 마귀를 철저하게 막으라!
악과 마귀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거기서 덕을 보는 자이다.
그래서 돈벌이를 위해서 아이들과 청소년에게 해가 되는 영화와 음악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것은 자기 자녀들에게도 동일하게 무서운 영향을 끼친다.
어느 과자 공장에서 몸에 해로운 화학약품에 과자에 넣어 제조했다가 발각된 적이 있다.
어느 날 그 회사 사장의 아이가 자기가 만든 과자를 먹는 것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무얼 먹냐? 죽으려고 그러냐?"
마귀가 틈타고 들어올 만한 구멍이 우리 생활 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지는 않은가?
공개되면 부끄러운 어떤 숨겨진 것은 없는가? 바로 그것을 단단히 막아야 한다.
넷째로, "도적질하지 말라"(4:28).
어떤 사람은 잃어버리지도은 물건을 잘 찾는다. 도적질한다는 뜻이다.
군부대에서는 휘발류를 빼돌리기도 하고, 사병들을 위한 부식을 장교들이 빼먹기도 한다.
공사에 필요한 건축 자재를 빼돌리거나 싸구려로 하여 부실 공사가 자주 일어나고,
그 결과로 아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일이 얼마나 많았는가?
요즘에는 컴퓨터에 거짓 정보가 많아서, 거기에 속으면 큰 손실을 입거나 고생을 겪는다. 요즘엔 이런 식으로 메일이 오면 아주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보낸 E-Mail에 대한 회신이다. 즉시 열어 보라."
만일 이 말에 속아서 그대로 그 메일을 열었다가는 엄청난 바이러스에 걸려서
입력된 자료가 몽땅 없어지거나, 자료가 온통 뒤죽박죽이 된다.
그래서 그런 전자 우편이 오면 즉시 지워버리는 것이 최선의 대책이다.
어느 대형 마켓을 하는 분의 말을 들어 보니,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물건이 없어진다고 한다.
고객이 마켓 안에서 직접 먹기도 하지만, 직원 중에서도 물건을 빼돌린다는 것이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도둑보다 집 안의 도둑이 더 심각하다는 말도 한다.
그래서 주인은 직원을 감시해야 하고, 그것이 발각되면 해고시킬 수 밖에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도적질하는가?
비록 남의 것을 직접 훔치거나 도적질을 하지는 않아도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것을 훔친다.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리지 않는 것은 그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한다.
하나님께 드릴 시간이나 재물이나 재능을 드리지 않는 것도 책망받을 일이다.
다섯째로, "더러운 말을 입 밖에 내지 말라"(4:29).
우리 모두는 매일 너무 말을 많이 하며 그래서 말에 실수가 많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을 생각없이 해 놓고,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마치 땅바닥에 쏟아진 물처럼 다시 담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말이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듣기 거북한 욕이 나오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아무리 화가 나고 상대방이 잘못했어도 그것을 욕으로 갚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된다.
남의 허물을 들춰 내고, 상처를 주는 비판을 하는 것이나, 음담패설은 절대 금물이다.
그리고 근거없는 말을 퍼뜨리고, 신앙을 무너뜨리는 말은 혀를 깨물면서 삼가자.
더러운 말은 그것을 듣는 사람을 더럽게 할 뿐 아니라,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럽게 한다.
감사와 찬송과 칭찬의 말을 하는 입으로, 썩은 물같이 더러운 말을 하지는 않는가?
한 샘에서 맑은 물과 더러운 물을 같이 솟아나게 할 수는 없다.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섞여 있는 물은 결코 정결한 것이 못된다.
화가 나거나 정말 못마땅하여 한바탕 퍼붓고 싶은 때가 있으면,
나를 향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면서 참는 것을 훈련하자.
그래서 성경은 오래 참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덕인지 자주 언급하고 있다.
여섯째로,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되게 하지 말라"(4:30).
성령님은 인격체이셔서 근심도 하시고 기뻐하시기도 한다.
성령을 근심되게 하면, 우선 자기 자신 속에 기쁨 대신에 근심이 쌓인다.
그리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같은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대개 우리의 육신적이며 세상적인 생각과 행동이 성령을 근심되게 한다.
기도하며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단 흥미있고 돈생길 일인지를 본다면 낭패한다.
깊이 고려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는 것도 성령을 근심하게 할 위험이 많다.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생활이 주위 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못할 때에 성령은 근심하신다.
마치 학교에 보낸 자녀가 말썽을 부려서 교사로부터 경고장을 받아 오거나,
자녀를 바로 키우라고 부모에게 연락이 오면 그 부모가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되게 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요 신앙적인 오물이다.
일곱째로, "악한 생각과 행동을 다 버리라"(4:31).
이제 위에 언급한 모든 것을 종합하여, 악한 것이라면 행동만 아니라 생각도 버리는 것이다.
마음에 생각만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간주하는가?
성경은 아주 단호하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것과 같다고.
이런 높고 고귀한 기준에서 결코 자신을 너무 낮추지 말고,
누추하고 악한 것을 과감하게 잘라 버리자. 강한 믿음에는 언제가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선량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결코 사납고 악질적인 사람이 되지 말자.
교인들의 잘못된 행동들이 전도에 얼마나 많은 장애를 주는지 우리는 다 안다.
불신앙인들 자신은 아무렇게나 살지만, 성도들을 향해서는 바로 살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 만큼 우리에게 무엇인가 다른 점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 성격이 직설적이며 급한 자라도, 그 마음 바탕에 악한 생각을 품지 않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은 괜찮다고 말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스럽지 못하고,
경건 생활에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면, 용감하게 끊고 떨쳐 버리는 결단을 하라!
이제 더 성숙한 신앙을 위해서 꼭 있어야 할 네 가지의 영양소를 보자.
첫째로,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4:25).
어느 식당에서 있던 일이다.
웨이터가 물었다. "디저트로 무얼 드시겠습니까?"
첫째 사람은 "난 괜찮소."라고 말하고,
둘째 사람은 "난 배가 너무 불러서..."라고 말하고,
셋째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것을 있어도 더 못 먹겠소."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그때 웨이터가 "원래 디저트는 주문하신 식사에 따라 나오는 것인데요."라고 말하니,
다 배가 부르다고 하던 세 사람의 대답이 갑자기 바뀌었다.
첫째 사람은 "그럼 난 아이스크림."
둘째 사람은 "난 애플 파이로 주시오."
셋째 사람은 "난 초콜렛 케익으로 하시오."
아마 돈을 덜 내려고 배부르다고 한 것이 틀림없다.
서로 정직하고,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라.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놓고 비난하거나 깎아 내리는 말은 결코 하지 말자.
그리고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들을 소문대로 말을 옮기지 말자. 항상 과장하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입에 파숫군을 세워, 우리 입에서는 진리만 말하도록 훈련하자.
둘째로, "구제하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고 선한 일을 하라"(4:28).
남의 수고의 덕만 보고 사는 사람은 어느 날 그것이 모두 자기 짐이 된다.
도움만 자주 받고 사는 것은 결국 자기 어깨에 무거운 것들을 쌓는 것과 같다.
공짜를 좋아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지만, 공짜가 후에는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한 수고 뿐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서도 땀을 흘리자.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 자기의 것을 희생하는 중에는 돈을 주는 것만 아니라,
시간을 내 주고, 찾아가 주고, 위로의 말을 해주고, 또 대신 땀을 흘리는 것도 있다.
특히 년말이 되어 도움의 손길이 여기 저기서 올 것이다.
너무 인색하게 하지 말고, 적은 것들이라도 함께 나누는 믿음의 여유를 가지라.
상당히 쌀쌀한 겨울 아침에 어느 노인이 구세군 자선 남비의 종을 들고 흔들고 있었다.
그의 뒷 모습으로 보니 연세가 많아 보였는데, 앉아서 종을 흔들고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목발을 집는 불구 노인인데, 목발을 벽에 세워 놓고 앉아서 섬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가 쓰기 위해서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한 봉사이기에 귀하다.
자기 손으로 수고한 것으로 남을 섬기는 일이 주님께는 귀하게 계산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
"덕을 세우는데 유익한 선한 말을 하라"(4:29).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잠 20:15).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이것도 잠언(18:21)의 말씀이다.
의사들이 환자의 혀를 들여다 보고 질병의 상태를 상당히 많이 알아 내 듯이,
우리는 그 사람의 혀끝의 말을 듣고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함께 며칠 아니면 단 몇 시간만이라도 함께 지내 보면 그 사람을 상당히 많이 알 수 있다.
그래서 요즘에는 미국 대기업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에 여러 날에 걸쳐 면접을 한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대화도 하고, 그룹에서 토론도 해보고, 또 같이 여행도 한다고 한다.
이것은 화려한 이력서를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신빙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버스를 타면서 뒤에 따라오는 친구들의 삯까지 내며 "2인 분요" 했다.
그는 음식점의 웨이터였다.
또 어느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받은 사람이 주방을 향해 소리쳤다.
"여기 다섯 분이 다 개래." 보신탕 집에서 있던 일이다.
남에게 유익하고 선한 말을 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두 소년이 한 친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 애는 공부를 너무 못해." 그러자 한 친구가 말한다. "그렇지만 마음이 착하잖아."
"그 애는 농구를 못하잖냐." 그러자 다른 친구가 말한다. "그래도 반칙은 안한다."
"그 애는 되게 못생겼어." 그러나 다른 친구가 말한다. "그래도 항상 웃고 살잖아."
이렇게 부정적이 말에 긍정적인 말도 대구해 줄 때에 그것이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이 된다.
"서로 인자하여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라"(4:32).
아름다운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또 한 가지 필요한 것이 용서하는 마음이다.
서로 원수를 갚고, 한 마디도 지지 않고, 조금도 손해보려고 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예수님의 용서를 받은 사람은 서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더 배워야 한다.
"서로 죽일 때의 마음은 짐승의 마음이고,
서로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만,
서로 용서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조금만 더 참아 주면 그렇게 심각한 지경까지 가지 않을 일들이 많고,
한번만 더 이해해 주면 부부 사이에 갈라지는 일들이 훨씬 더 감소될 것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직후에 Chamberline 경이 몇 가지 서류를 가져 와서,
여왕의 서명을 요청하였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의 사형 최종 결정건도 있었다.
당시 18세에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은 당황하면서 "내가 이걸 서명해야 하는가?" 물었다.
서명하시거나 특별히 용서한다는 것을 결정해야 판결이 난다는 말을 들은 빅토리아는
"그를 용서하라"고 서명했고, 후에 그는 누구보다도 존경받는 여왕으로 다스렸다.
우리의 신앙에도 오물이 끼기 쉽다.
우물에 더러운 것들이 빠지면 마을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고,
음식에 오물이 들어가면 식중독에 걸리 듯이,
신앙에서 오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추잡한 기독교인이 되고 만다.
기도와 말씀과 믿음으로 우리 신앙과 삶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청결한 삶을 살아서,
세상에서 천국의 향기를 풍기며 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자.
출처/박광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