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2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요한복음 4:20~26)
구약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으되, 소나 말과 같은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람만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다 만드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면서 이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곱째 날은 다른 날과 달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0:8~11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구별하여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므로 특별히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12~17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엿새동안은 열심히 일을 하되, 제 칠일은 큰 안식일로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므로, 세상일에서 손을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복을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엿새동안 세상에 나가 열심히 살다보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장사로 혹은 사업으로 혹은 노동으로 일에 몰두하며, 정신없이 바쁘게 사람을 만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모르게 죄를 많이 범하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 못할 짓을 하게 되면 그 날은 더러운 날이 됩니다. 더구나 계속적으로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면 자연히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 칠일을 안식일로 정해주시고, 특별히 이날만은 세상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하므로 해서 다시금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새롭게 되어져서 다시금 거룩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로부터 신약교회들이 구원의 소망과 부활의 소망을 주신 이날을 기억하고 “주의 날”이라 부르며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주일은 참으로 귀한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림으로 축복을 받게 되는 이유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는 시간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1.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첫째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를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겸손해지고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어 감사하게 되고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충성된 일꾼신자가 됩니다.
2. 깨달은 만큼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성품이 변합니다.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마귀의 형상을 닮았던 사람이 점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며,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주십니다.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 마귀와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환난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경건의 능력도 주십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하고 복음을 위하여 순교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성수주일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우상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또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예배를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나와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는 교회에 나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만이 언제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은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어떤 시간에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어느 장소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는 것은 특정한 시간인 주일에 특정한 장소인 교회에서 먼저 예배드리는 사람이 될 때만 가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은 은혜를 받아서 믿음이 좋아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 어디를 가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사람이지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예배드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1.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한 예배는 영적 예배로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사람이 아닙니다. 우상이나 어떤 건물도 아닙니다. 더더욱 십자가는 아닙니다. 오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에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설교자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설교를 잘하느니 못하느니, 목사님이 지난주간에는 검은 가운을 입었는데, 오늘은 흰 가운을 입었다느니, 인물이 좋으니 나쁘니…”하는 식으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오직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예배시간에는 예배당의 건물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천장에 등이 몇 개인가? 꽃꽂이가 좋으냐 나쁘냐?”등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신령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롬 12:1).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집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19~20에서도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평소에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감으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리소스톰은 17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하여금 나쁜 것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눈은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혀로 하여금 누추한 말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악한 말을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혀가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손이 무법한 일을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손이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손으로 다른 사람을 도우십시오. 그리고 나를 향해서 비난하고 욕하는 자들을 내 입으로 축복하십시오. 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머리로는 그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그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제물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롬 12:2).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대체로 마음이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마음이 악한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이 되어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2.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되거나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진심이 담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5살에 왕좌에 올라 장장 72년을 집권했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부강해졌고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했습니다. 그는 베르사이유 궁전과 루브르 궁전을 건축했으며, “짐은 국가다”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였으며 일명 태양왕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 당시 페넬론이라는 궁중설교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왕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에 도착했을 때, 예배당에는 페넬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왕이 왜 예배당이 텅 비어 있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페넬론이 대답하기를 “저는 오늘 예배에 임금님이 참석하지 못하신다고 광고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진정으로 예배하러오고, 누가 왕에게 아첨이나 하려고 오는지 친히 보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없지 않아 많이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헨리 워드 비쳐 목사는 유명한 설교자로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배시간 전에 미리 나와 기다렸다가 예배당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훌륭한 설교자였으며, 그의 여동생 스토브 부인은 “엉클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써서 노예제도의 참상을 폭로한 유명작가이기도 합니다.
비쳐 목사는 노예제도의 부당성과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회개를 외치는 용감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날도 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예배당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쳐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생소한 목사님 한 분이 강단에 서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설교자가 “여러분 중에 헨리 비쳐 목사님을 예배하러 오신 분은 다 나가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신 분만 앉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겸연쩍어진 사람들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린다는 기초적인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예배를 드리러 온 것이 아니라 설교만 들으러 온 사람들입니다. 설교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대표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지 않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이기 위해 사람을 의식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드리고,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릴 때,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마 18:20).
미국의 보스톤 지역에서 A.J. 골든 목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사무실에서 설교를 준비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도 주일이 되어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교인 가운데 특별히 삼십 대로 보이는 아주 낯선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했고 꼭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 교인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 낯선 사람은 끝까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진 목사님은 안내위원에게 그 낯선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안내위원은 당연하다는듯이 “아! 그 사람이요. 알고 말고요. 예수님이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깬 골든 목사님은 그 후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항상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과 함께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믿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꿈 속에 나타났던 예수님을 전해들은 교인들도 이 사실을 믿고 은혜롭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은혜가 충만한 교회로 부흥발전하며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젊은 목사 가운데 한 분은 교회개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교인이 몇 명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날마다 부흥을 위해 눈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야기도 중에 교인들이 몇 명 없었지만 예수님이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시고 그 주위에 천사들이 가득차 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후 은혜를 받은 이 목사님은 비록 몇 명 안 되는 적은 숫자의 교인이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몇 천명이 모이는 큰 교회로 부흥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하는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천국은 예배가 있는 곳이고 지옥은 예배가 없는 곳입니다. 이처럼 남한은 마음대로 모여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북한은 예배가 없어진지 오십 년이 넘었습니다. 예배할 때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시간 은혜 받으면 능력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 살게 되고 축복이 임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정필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구약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육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으되, 소나 말과 같은 피조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사람만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도록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다 만드신 후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면서 이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곱째 날은 다른 날과 달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거룩한 날로 구별하셨다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20:8~11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구별하여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므로 특별히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12~17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엿새동안은 열심히 일을 하되, 제 칠일은 큰 안식일로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므로, 세상일에서 손을 놓고 하나님을 예배하며 복을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엿새동안 세상에 나가 열심히 살다보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장사로 혹은 사업으로 혹은 노동으로 일에 몰두하며, 정신없이 바쁘게 사람을 만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알게 모르게 죄를 많이 범하게 됩니다.
이렇게 죄를 범하고 하나님 앞에 못할 짓을 하게 되면 그 날은 더러운 날이 됩니다. 더구나 계속적으로 이런 날들이 반복되다 보면 자연히 타락하게 되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결국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제 칠일을 안식일로 정해주시고, 특별히 이날만은 세상일을 멈추고 하나님을 예배하므로 해서 다시금 하나님을 기억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새롭게 되어져서 다시금 거룩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로부터 신약교회들이 구원의 소망과 부활의 소망을 주신 이날을 기억하고 “주의 날”이라 부르며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주일은 참으로 귀한 날입니다. 이날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신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성전에 나아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림으로 축복을 받게 되는 이유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받는 시간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1.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첫째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만 죄를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십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겸손해지고 거룩하게 살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어 감사하게 되고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는 충성된 일꾼신자가 됩니다.
2. 깨달은 만큼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성품이 변합니다.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마귀의 형상을 닮았던 사람이 점점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시작하며,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주십니다.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 마귀와 세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환난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경건의 능력도 주십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하고 복음을 위하여 순교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십니다.
성수주일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떤 형상을 만들어 놓고 절하는 우상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또 어디든지 계시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예배를 하든지 상관없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에 나와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는 교회에 나와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만이 언제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은 “여러분,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고 어떤 시간에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어느 장소에서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가 되는 것은 특정한 시간인 주일에 특정한 장소인 교회에서 먼저 예배드리는 사람이 될 때만 가능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은 은혜를 받아서 믿음이 좋아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 어디를 가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사람이지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은 어디를 가도 예배드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1. 신령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한 예배는 영적 예배로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대상이 사람이 아닙니다. 우상이나 어떤 건물도 아닙니다. 더더욱 십자가는 아닙니다. 오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배시간에는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설교자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설교를 잘하느니 못하느니, 목사님이 지난주간에는 검은 가운을 입었는데, 오늘은 흰 가운을 입었다느니, 인물이 좋으니 나쁘니…”하는 식으로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오직 설교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예배시간에는 예배당의 건물에 마음을 빼앗겨서도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천장에 등이 몇 개인가? 꽃꽂이가 좋으냐 나쁘냐?”등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신령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특히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롬 12:1).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집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19~20에서도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평소에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감으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크리소스톰은 17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의 눈으로 하여금 나쁜 것을 쳐다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눈은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혀로 하여금 누추한 말이나 다른 사람을 향한 악한 말을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그 혀가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손이 무법한 일을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손이 산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손으로 다른 사람을 도우십시오. 그리고 나를 향해서 비난하고 욕하는 자들을 내 입으로 축복하십시오. 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머리로는 그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그 삶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제물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롬 12:2).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마음이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대체로 마음이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마음이 악한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마음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물이 되어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2.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거짓되거나 형식적인 예배가 아닌 진심이 담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5살에 왕좌에 올라 장장 72년을 집권했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나라가 부강해졌고 경제적으로 크게 번영했습니다. 그는 베르사이유 궁전과 루브르 궁전을 건축했으며, “짐은 국가다”라고 호언장담할 정도였으며 일명 태양왕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 당시 페넬론이라는 궁중설교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왕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에 도착했을 때, 예배당에는 페넬론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왕이 왜 예배당이 텅 비어 있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때 페넬론이 대답하기를 “저는 오늘 예배에 임금님이 참석하지 못하신다고 광고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진정으로 예배하러오고, 누가 왕에게 아첨이나 하려고 오는지 친히 보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들이 없지 않아 많이 있습니다.
19세기 미국의 헨리 워드 비쳐 목사는 유명한 설교자로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배시간 전에 미리 나와 기다렸다가 예배당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훌륭한 설교자였으며, 그의 여동생 스토브 부인은 “엉클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써서 노예제도의 참상을 폭로한 유명작가이기도 합니다.
비쳐 목사는 노예제도의 부당성과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회개를 외치는 용감한 설교자였습니다. 그날도 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예배당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 없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비쳐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생소한 목사님 한 분이 강단에 서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나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설교자가 “여러분 중에 헨리 비쳐 목사님을 예배하러 오신 분은 다 나가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신 분만 앉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겸연쩍어진 사람들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 드린다는 기초적인 사실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예배를 드리러 온 것이 아니라 설교만 들으러 온 사람들입니다. 설교는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한 부분에 불과합니다.
대표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하지 않고 사람들을 의식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도 있고,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이기 위해 사람을 의식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태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드리고, 찬양을 해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찬양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릴 때,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마 18:20).
미국의 보스톤 지역에서 A.J. 골든 목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설교자였습니다. 그가 어느 날 사무실에서 설교를 준비하다가 깜박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도 주일이 되어 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교인 가운데 특별히 삼십 대로 보이는 아주 낯선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했고 꼭 만나보고 싶어졌습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 교인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 낯선 사람은 끝까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다급해진 목사님은 안내위원에게 그 낯선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안내위원은 당연하다는듯이 “아! 그 사람이요. 알고 말고요. 예수님이지요”라고 답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깬 골든 목사님은 그 후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항상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과 함께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믿고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꿈 속에 나타났던 예수님을 전해들은 교인들도 이 사실을 믿고 은혜롭게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하여 은혜가 충만한 교회로 부흥발전하며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제가 잘 아는 젊은 목사 가운데 한 분은 교회개척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교인이 몇 명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습니까. 날마다 부흥을 위해 눈물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야기도 중에 교인들이 몇 명 없었지만 예수님이 맨 앞자리에 앉아 계시고 그 주위에 천사들이 가득차 있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후 은혜를 받은 이 목사님은 비록 몇 명 안 되는 적은 숫자의 교인이었지만 있는 힘을 다해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몇 천명이 모이는 큰 교회로 부흥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배하는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천국은 예배가 있는 곳이고 지옥은 예배가 없는 곳입니다. 이처럼 남한은 마음대로 모여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예배를 드릴 수 있지만, 북한은 예배가 없어진지 오십 년이 넘었습니다. 예배할 때마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시간 은혜 받으면 능력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아가 살게 되고 축복이 임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늘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정필도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