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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 (막 3:13-19)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
오직 예수! 우리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주 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완전한 모범을 보이신 분이시며, 제자들에게는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신 완전한 선생이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자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제자를 부르셨고,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들여 양육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세운 12사도들을 통하여 전 세계를 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께서 열 두 사도를 임명하시는 목적과 그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열 두 사도를 세우시는 것으로 제2차 갈릴리 사역을 개시하셨습니다.
주님의 제1차 갈릴리 사역도 예수께서 첫 네 제자를 부르신 것으로 시작하였고(막 1:16-20), 제3차 갈리리 사역 또한 12사도를 파송하신 것(막 6:7-13)으로 시작하셨던 것을 보면, 주님의 사역에 있어서 제자들의 훈련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줍니다.
성도는 제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우리가 참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스승이십니까? 제자 된 우리는 그분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서 새가족과 초신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양육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스승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다 자세하게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제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시는 스승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동거하시면서 삶을 구체적으로 나누셨습니다.
14절,“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본 절은 에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예수님의 제자 선정의 첫 번째 목적은 ‘동거’입니다. 참된 제자는 예수님과 동거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거하고 주님을 수종드는 가운데 주님의 인품, 삶의 방식, 고난을 비롯한 인생 문제의 대처 방식,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 등 주님의 모든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거하시면서 함께 삶을 나눔으로 그들의 체질을 개선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던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지 않습니까?
주님은 신학교 하나를 세워서 3년 정도 일주일에 3,4일 정도 강의하고 졸업시키는 정책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침식을 같이 하시면서 하루 종일 함께 사셨습니다. 장차 초대 교회의 초석이 될 사도들은 이렇게 하여 탄생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에게 관심을 쏟으시던 주님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주님은 제자들을 선택하기 위하여 세속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 앞에 나온 자들은 예수님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루살렘 당국자들에게서 파송을 받아 예수를 감시하기 위해 왔습니다.
헤롯당원들 역시 헤롯의 지시로 사찰 행각을 벌이기 위해 왔습니다.
갈릴리 군중들은 이들과는 좀 다르지만, 그들 역시 병을 치유받기 위한 私的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아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된 자라면 이들과는 달라야 했고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개인을 철저히 희생하는 자여야 했고, 예수님은 이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직의 첫 번째 의무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인물 중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 그 이름이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창 5:21-22,“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4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 기록만 보면 에녹은 누구보다도 한 평생을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이에 반해 창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들은 인류 문명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축산업의 선구자도 있었고, 음악가도 있었고, 철기를 만드는 엔지니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녹에 비하면 비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기록인 히브리서에 보면 가인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는 반면, 에녹에 대해서는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히 11:5).
여러분,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에녹의 어떤 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까? 바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점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세상에 무엇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성공적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논할 때 그가 세상에서 이룬 업적을 놓고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인생 평가 기준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얼마나 어떻게 동행하였느냐에 달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과 동거하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제자로 인정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 거하기를 힘쓰십시오.
주의 몸된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다른 성도들의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힘쓰시고, 그 주님께 영향받기를 힘쓰십시오. 여러분의 체질이 바뀌기까지 쉬지 마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더 많은 시간동안 의미 있는 교제를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천국 일꾼으로 체질개선 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2.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스승
예수님은 당신께서 불러 세운 제자들과 동거하시면서, 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주님은 부족한 자들을 위대한 일꾼으로 키워주시는 스승이십니다.
16절,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여러분, 예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제자들의 명단을 일견해보면 당시의 사회 지도층 인사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비젼이 얼마나 원대합니까? 온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며 사탄 왕국을 점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일꾼을 세우시는 과정에서 왜 이와같이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정당을 결성하거나 사람들이 어떤 사회단체를 만들 때에는 대개의 경우 지명도가 높은 사람을 영입하고자 애를 씁니다.
이것은 교회 단체나 기독교 기관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잘 알려지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들어 있어야 외부사람들의 인식도 좋아지고 또 후원을 받기도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구성을 면면히 살펴보면, 이름 없는 어부들과 비난받는 세리, 그리고 당시 반정부 세력이었던 열심당원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사람들로 사도단을 구성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고, 기독교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들을 부르셔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를 한낱 다혈질에 감정의 기복이 심한 성격의 어부의 자리에서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의 자리까지 세워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 중 불같은 성격 때문에‘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까지 가졌던 야고보와 요한을 철저하게 변화시켜 위대한 순교자요 사랑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요한은 이후 다섯 권의 책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 요한 일서는 사랑의 서신으로 불려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 뿐입니까?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 -- 이름만 들어도 정다운 감동을 주는 이들입니다.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고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 -- 이들은 모두 후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맹활약하다가 모두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된 참 종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아무 것도 아닌 우리들을 부르셔서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극대화 시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새 피조물되게 하셔서 주의 몸된 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십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님은 제자들 모두를 새로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다만 제자들 중 가룟 유다는 변화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다가 결국은 주님의 원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만일 주님의 손에 의하여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주님께 자원하여 우리를 맡겨드린다면, 우리의 미래도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꾼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으로 밝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자원하여 주님께 헌신한다면,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게 하시고, 마지막 시대 엄청난 사역을 우리에게 맡겨주실 것입니다.
3.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시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부르신 제자들을 강한 훈련을 통하여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셨습니다.
14절,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선정하신 둘째 목적은 ‘파송’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파송된 제자들은 전도해야 했고, 필요시 귀신을 내어쫓기도 해야 했습니다.
본문은 축귀사역뿐 아니라 병 고치는 사역이 포함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본문은 귀신을 내어쫓는다든가 병을 고친다든가 하는 어떤 이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단순히 관념적 구원만을 강조하지 않고 실제적 삶의 질의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결국 사탄의 세력의 축소라는 점을 강력히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영적 전투인 것입니다(엡 6:12).
이처럼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세우셔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양육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손에 잡힌 자들이 어떻게 용감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성장해 왔는지 우리는 잘 알아야겠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능력 있는 증인의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한 곳에 모여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주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 저들 위에 강력히 임하셨고, 저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제 교회는 주님의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용광로의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3년동안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동거하며 양육하시던 바로 그 일을 교회가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여러분, 주님의 계획, 주님의 정책이 보이십니까? 주님은 신약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능력 있는 군사로 만들기 시작하셨고, 이것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자로 계시던 예수님의 마지막 제자훈련은 십자가 고난이었습니다. 3년동안 제법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 왔던 제자들도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참 제자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알고 보니 간사한 신앙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제자들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깊은 심연을 지나 광명한 대양으로 나아와 부활의 능력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어느 성도가 항상 심중에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하는 불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얼마를 힘겹게 가다보니 한 곳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어디서 음성이 들려오길 "네가 진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 골라 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살펴보니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만 십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 졌습니다. 이 황금으로 된 십자가는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다시 소리가 들리길 "다시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 꽃이 활짝 피어있는 십자가였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도 나고 해서 골라 졌습니다. 이 십자가는 무겁지는 않은데 지고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할 수 없이 다시 내려 놓았습니다.
꿈을 깬 그 성도는 그날부터 자기의 십자가가 가장 가볍고 좋다고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왜정말기 신사참배 문제로 5년동안 감옥에서 고초를 당하시다가 결국 순교를 하게 됩니다. 순교하시기 직전에 쓰신 목사님의 고난의 명상록이 이순겸 목사님께 전해져서 그 기록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이제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내가 당하는 수욕을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 영광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떤 말로 대답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십자가를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으리이까?"
♬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근심 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영광 버리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 가오리다
여러분! 십자가를 체험하지 않고는 능력 있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장으로 이끌어 가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과 고난을 만나더라도 결국 이를 극복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성장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서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완전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이미 만나신 여러분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그분의 손에 붙잡혀 생활을 통하여 힘든 훈련을 받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동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주님 당신의 모습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죽었던 자리에서 살아난 자들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 능력을 일깨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원하여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초대교회 사도들을 변화시키셨던 주님은 기꺼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파송하여 전도케도 하시고 사탄 왕국의 세력을 분쇄케도 할 수 있도록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십니다. 우리에게 십자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먼저 우리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키우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이런 위대한 주님의 사역이 바로 우리 교회를 통하여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교회의 사역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순오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이며/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러라 "
오직 예수! 우리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구주 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완전한 모범을 보이신 분이시며, 제자들에게는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신 완전한 선생이십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제자에 관한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제자를 부르셨고, 제자 한 명 한 명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들여 양육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이 세운 12사도들을 통하여 전 세계를 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께서 열 두 사도를 임명하시는 목적과 그들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열 두 사도를 세우시는 것으로 제2차 갈릴리 사역을 개시하셨습니다.
주님의 제1차 갈릴리 사역도 예수께서 첫 네 제자를 부르신 것으로 시작하였고(막 1:16-20), 제3차 갈리리 사역 또한 12사도를 파송하신 것(막 6:7-13)으로 시작하셨던 것을 보면, 주님의 사역에 있어서 제자들의 훈련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줍니다.
성도는 제자의 삶을 사는 자입니다. 우리가 참 제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스승이십니까? 제자 된 우리는 그분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주님의 몸으로서 새가족과 초신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양육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하여 우리의 스승 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다 자세하게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제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시는 스승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동거하시면서 삶을 구체적으로 나누셨습니다.
14절,“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본 절은 에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예수님의 제자 선정의 첫 번째 목적은 ‘동거’입니다. 참된 제자는 예수님과 동거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기거하고 주님을 수종드는 가운데 주님의 인품, 삶의 방식, 고난을 비롯한 인생 문제의 대처 방식,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 등 주님의 모든 가르침을 배워야 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거하시면서 함께 삶을 나눔으로 그들의 체질을 개선시키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던 장면을 상상해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지 않습니까?
주님은 신학교 하나를 세워서 3년 정도 일주일에 3,4일 정도 강의하고 졸업시키는 정책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침식을 같이 하시면서 하루 종일 함께 사셨습니다. 장차 초대 교회의 초석이 될 사도들은 이렇게 하여 탄생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에게 관심을 쏟으시던 주님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주님은 제자들을 선택하기 위하여 세속을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제까지 예수님 앞에 나온 자들은 예수님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루살렘 당국자들에게서 파송을 받아 예수를 감시하기 위해 왔습니다.
헤롯당원들 역시 헤롯의 지시로 사찰 행각을 벌이기 위해 왔습니다.
갈릴리 군중들은 이들과는 좀 다르지만, 그들 역시 병을 치유받기 위한 私的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아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된 자라면 이들과는 달라야 했고 다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개인을 철저히 희생하는 자여야 했고, 예수님은 이 기준을 가지고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직의 첫 번째 의무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인물 중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 그 이름이 길이 기억되고 있습니다.
창 5:21-22,“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24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이 기록만 보면 에녹은 누구보다도 한 평생을 평범하게 살았습니다. 이에 반해 창 4장에 나오는 가인의 후손들은 인류 문명에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축산업의 선구자도 있었고, 음악가도 있었고, 철기를 만드는 엔지니어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에녹에 비하면 비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의 기록인 히브리서에 보면 가인의 후손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는 반면, 에녹에 대해서는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히 11:5).
여러분, 평범하기 그지 없었던 에녹의 어떤 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까? 바로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점입니다.
인생의 성패는 세상에 무엇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성공적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논할 때 그가 세상에서 이룬 업적을 놓고 평가하지만, 하나님의 인생 평가 기준은 그 사람이 하나님과 얼마나 어떻게 동행하였느냐에 달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과 동거하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제자로 인정하고 계신다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로 주님과 함께 거하기를 힘쓰십시오.
주의 몸된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다른 성도들의 속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만나기를 힘쓰시고, 그 주님께 영향받기를 힘쓰십시오. 여러분의 체질이 바뀌기까지 쉬지 마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동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와 더 많은 시간동안 의미 있는 교제를 나누고 싶어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천국 일꾼으로 체질개선 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2.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스승
예수님은 당신께서 불러 세운 제자들과 동거하시면서, 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주님은 부족한 자들을 위대한 일꾼으로 키워주시는 스승이십니다.
16절, “이 열 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절,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여러분, 예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제자들의 명단을 일견해보면 당시의 사회 지도층 인사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비젼이 얼마나 원대합니까? 온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키며 사탄 왕국을 점령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일꾼을 세우시는 과정에서 왜 이와같이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정당을 결성하거나 사람들이 어떤 사회단체를 만들 때에는 대개의 경우 지명도가 높은 사람을 영입하고자 애를 씁니다.
이것은 교회 단체나 기독교 기관들의 경우도 예외가 아닙니다. 잘 알려지고 인정받는 사람들이 들어 있어야 외부사람들의 인식도 좋아지고 또 후원을 받기도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구성을 면면히 살펴보면, 이름 없는 어부들과 비난받는 세리, 그리고 당시 반정부 세력이었던 열심당원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사람들로 사도단을 구성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고, 기독교의 독특성이 있습니다.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자들을 부르셔서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깨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 베드로를 한낱 다혈질에 감정의 기복이 심한 성격의 어부의 자리에서 초대교회의 위대한 지도자의 자리까지 세워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 중 불같은 성격 때문에‘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까지 가졌던 야고보와 요한을 철저하게 변화시켜 위대한 순교자요 사랑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요한은 이후 다섯 권의 책을 기록하였는데, 그 중 요한 일서는 사랑의 서신으로 불려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 뿐입니까?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 -- 이름만 들어도 정다운 감동을 주는 이들입니다.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고 다대오와 가나안인 시몬 -- 이들은 모두 후일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 맹활약하다가 모두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된 참 종들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아무 것도 아닌 우리들을 부르셔서 우리 속에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극대화 시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새 피조물되게 하셔서 주의 몸된 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십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님은 제자들 모두를 새로운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다만 제자들 중 가룟 유다는 변화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다가 결국은 주님의 원수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만일 주님의 손에 의하여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한다면, 그리고 주님께 자원하여 우리를 맡겨드린다면, 우리의 미래도 제자들처럼 하나님 나라의 일꾼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으로 밝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자원하여 주님께 헌신한다면,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게 하시고, 마지막 시대 엄청난 사역을 우리에게 맡겨주실 것입니다.
3.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시는 스승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부르신 제자들을 강한 훈련을 통하여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셨습니다.
14절,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들을 선정하신 둘째 목적은 ‘파송’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파송된 제자들은 전도해야 했고, 필요시 귀신을 내어쫓기도 해야 했습니다.
본문은 축귀사역뿐 아니라 병 고치는 사역이 포함되어 있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본문은 귀신을 내어쫓는다든가 병을 고친다든가 하는 어떤 이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단순히 관념적 구원만을 강조하지 않고 실제적 삶의 질의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란 결국 사탄의 세력의 축소라는 점을 강력히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의 영적 전투인 것입니다(엡 6:12).
이처럼 우리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 세우셔서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양육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손에 잡힌 자들이 어떻게 용감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성장해 왔는지 우리는 잘 알아야겠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능력 있는 증인의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침내 오순절이 되어 한 곳에 모여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주님은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께서 저들 위에 강력히 임하셨고, 저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제 교회는 주님의 제자들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용광로의 역할을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서 3년동안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동거하며 양육하시던 바로 그 일을 교회가 감당하기 시작했습니다.
행 2:42,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여러분, 주님의 계획, 주님의 정책이 보이십니까? 주님은 신약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제자들을 능력 있는 군사로 만들기 시작하셨고, 이것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자로 계시던 예수님의 마지막 제자훈련은 십자가 고난이었습니다. 3년동안 제법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어 왔던 제자들도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참 제자가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알고 보니 간사한 신앙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제자들에게 수치와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깊은 심연을 지나 광명한 대양으로 나아와 부활의 능력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어느 성도가 항상 심중에 `내가 진 십자가는 너무 무거워.' 하는 불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꿈에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언덕길을 올라갔는데, 얼마를 힘겹게 가다보니 한 곳에 여러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어디서 음성이 들려오길 "네가 진 십자가가 무겁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여기 많은 십자가 중에서 하나 골라 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살펴보니 번쩍 번쩍 빛나는 조그만 십자가가 있어 그것을 골라 졌습니다. 이 황금으로 된 십자가는 일어서기조차 힘들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다시 소리가 들리길 "다시 골라 보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역시 조그만 십자가인데 아름다운 장미 꽃이 활짝 피어있는 십자가였습니다. 아름다운 향기도 나고 해서 골라 졌습니다. 이 십자가는 무겁지는 않은데 지고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시가 등을 어찌나 찌르는지 할 수 없이 다시 내려 놓았습니다.
꿈을 깬 그 성도는 그날부터 자기의 십자가가 가장 가볍고 좋다고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가 낳은 위대한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은 왜정말기 신사참배 문제로 5년동안 감옥에서 고초를 당하시다가 결국 순교를 하게 됩니다. 순교하시기 직전에 쓰신 목사님의 고난의 명상록이 이순겸 목사님께 전해져서 그 기록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고난을 이제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이제 내가 당하는 수욕을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 영광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어떤 말로 대답하리이까?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십자가를 어찌하였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으리이까?"
♬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근심 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영광 버리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 가오리다
여러분! 십자가를 체험하지 않고는 능력 있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고난의 장으로 이끌어 가시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시련과 고난을 만나더라도 결국 이를 극복하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성장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서현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완전한 스승이신 예수님을 이미 만나신 여러분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그분의 손에 붙잡혀 생활을 통하여 힘든 훈련을 받고 계시는 성도 여러분에게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동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주님 당신의 모습으로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죽었던 자리에서 살아난 자들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 능력을 일깨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자원하여 변화되기를 원한다면, 초대교회 사도들을 변화시키셨던 주님은 기꺼이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파송하여 전도케도 하시고 사탄 왕국의 세력을 분쇄케도 할 수 있도록 능력 있는 제자로 양육하십니다. 우리에게 십자가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먼저 우리를 능력 있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키우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겠습니다.
이런 위대한 주님의 사역이 바로 우리 교회를 통하여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교회의 사역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순오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