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이루러 오신 예수   (엡2:12,13)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에베소서 2 : 12, 13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죄악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이 일을 계획하시거나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본래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 : 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목적으로 오셨다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예수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는 '구원'이란 뜻입니다. 그는 이 땅에 오셔서 33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사시는 동안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수행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구체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막힌 담을 헐기 위해서 오신 예수

우리는 전에 죄로 인해서 죽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풍속을 좇고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마귀를 따른 자들입니다. 또한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하여 하나님 앞에서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던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 : 1 이하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인해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로 인해서 죽은 자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가운데서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본래 죄를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미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와 상관이 없으신 분입니다. 즉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와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죄를 가진 모습으로는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2 : 17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은 곧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은 것을 말합니다. 그 이후로 죄라는 것이 모든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벽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죄와 허물이 담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할 수도 없고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죄는 갈라놓는 일을 합니다. 분리하게 하고 나누이게 하며 떼어놓습니다. 더 나아가서 죽음을 가져오게도 합니다. 바로 죄라는 것 때문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분리를 가져왔고 높은 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59 : 2에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 담을 헐어 버려야 하나님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연합할 수 있습니다. 화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담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허물 수도 없습니다. 그 동안 사람들은 이 담을 헐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선한 일에 힘썼고, 자기 수양에 공을 들였으며, 지식을 쌓아 보기도 했고, 남을 위해 희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하는 노력, 베푸는 선, 정성을 드리는 자기수양 등 이 모든 것은 무효입니다. 오직 죄 없으신 분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 비로소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27 : 51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누구나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려 있다는 것이요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이요 담이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 : 11, 12에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5 : 1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혔던 담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고 화평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담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면서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담은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둘로 하나를 만드시는 화평의 주인이십니다. 에베소서 2 : 13 이하에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이 무너졌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무너지면 인간 사이에 막힌 담도 무너지게 됩니다. 인간 사이의 담이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의 담이 무너져야 해결됩니다. 하나님과의 담을 그대로 두고는 인간 사이의 담은 절대로 허물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 제물되기 위해서 오신 예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막힌 담을 비집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 소나 양같은 제물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 제물은 인간의 죄를 영원히 사하지 못합니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또 죄를 지으면 다시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단번에 십자가에 드리심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10 : 4에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5절에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고 했습니다. 그 한 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0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에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일서 4 : 10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인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가 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 : 17에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53 : 5에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세상과 하나님을 화목하게 하는 화목 제물로 내어 놓아야 합니다. 로마서 12 : 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제물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 : 18, 19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세상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 : 20 이하에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명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3. 하나가 되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과도 하나가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 : 18 이하에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고 했고, 21절 이하에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 : 3에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부부간에도 온전히 한 몸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가 하나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부부는 결코 온전한 한 몸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결하여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이 되어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과도 그렇습니다.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고, 지체가 되고,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참여하는 자가 된다고 에베소서 3 : 6에 말씀했습니다. 이방인들과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는 모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처럼 분열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끼며 사는 민족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 되기보다는 분열하는 것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나라는 정치가와 백성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학생과 스승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는 노사가 하나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부가 하나 되어야 하고 부모와 자식간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습니까? 힘으로 됩니까?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능으로 됩니까? 능력이나 기적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돈으로 됩니까? 돈으로 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할 때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 : 2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기 위하여 겸손과 온유의 삶을 사셨고, 오래 참음과 사랑 가운데서 끝까지 우리를 용납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큰 은혜로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한다면 큰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하나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4. 자기의 분량을 알자

우리는 개개인이 그리스도의 지체이지 몸은 아닙니다. 이 지체가 연합하였을 때 비로소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개개인이 각자가 한 몸이라면 결코 하나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각 지체이기에 한 몸으로 연합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지체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4 : 7에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했고, 11절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2 : 4이하에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직분을 왜 주신 것입니까? 은사를 주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에베소서 4 : 12에서 말씀하신 대로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자기의 분량에 맞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혹은 마디로서 서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자 받은 분량대로 헌신해야 합니다. 각자가 맡은 분량을 잘 감당할 때에 우리의 몸은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 해가 다 가고 새로운 해가 오고 있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면서 우리도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가정의 막힌 담을 헐어 버립시다. 혹 아내와 남편 사이에 막힌 것이 있으면 털어 버립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가로막힌 것이 있으면 뚫읍시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도 가로막힌 것을 헐고 무너뜨립시다. 막힌 것을 가지고, 쌓인 것을 가지고, 깨진 것을 가지고 화목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말고 하나 된 기쁨과 감격으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화평을 이루기 위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사도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그러면 가정이 하나 되고, 직장이 하나 되고, 교회가 하나 되며 더 나아가서 나라가 하나 되는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