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6
제자의 삶 (마태복음 16:21-28)
* 논지 : 교회 지도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이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의 기본 자격)
우리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마귀의 시험을 당당하게 물리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생애의 사역이 시작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일 첫번째 하신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라고 하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곧 이어서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택하시는 이야기들이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 고난 예고 (21-23)
1.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닷가에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부르고 택하셨습니다. 공생애의 여러 가지 사역 중에 중요한 한가지 시역이 제자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헌신의 힘을 기울여서, 제자들을 양육했을 때에, 이제 제자들이 얼마나 양육이 되었는가 한번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나서, ‘그런,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잘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 이제 제자들이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를 아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이제 어떻게 사역을 해야 될지를 미리 알려주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21절 말씀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곧 닥칠 고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날 것을 가르쳐 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병든 자를 고치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 왔습니다.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많은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난과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기를 많이 받고, 영광을 얻게 된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아직 있지도 않을 일을 미리 알려주신 것은 고난이 닥쳐올 때 제자들이 당황하고, 무서워서 달아나지 않도록 미리 가르쳐 주고 미리 준비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2)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향한 계획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우리 교회학교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새벽기도회 시간을 가졌는데, 이 점에 대해 계속해서 한 주간 동안 설교했습니다. ‘비전이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이 비전입니다. 예수님의 비전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한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서 죄인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이 해야 될 일이고 비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될 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고난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고난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걸음, 한걸음 그 고난을 향해서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여러 가지 많은 사역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한마디로 줄이면, 고난을 당하는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2. 베드로의 만류(22)
1) 이런 말씀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니까,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만류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제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놀랬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기에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 그대로 이 여세를 몰고 가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고, 그 나라, 그 민족을 구원하시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시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재현하리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도 거기에 대충 껴 묻혀서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에, 자기들도 높은 자리를 얻어서 출세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자기들의 기대와는 영 다른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면 이 나라, 이 민족은 어떻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겁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상상하기 조차 싫은 일이었습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강력히 따졌습니다. 고난이나 죽음 같은 것이 있었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아마, 베드로나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해서 일종의 배신감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또 우리가 거기에 묻혀서 출세하리라 쫒아 왔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했을 때,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 민족의 재건과 자기들의 출세와 이 모든 것들이 무참히 짓밟혀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망이 굉장히 컸겠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대해서 강력히 항의하고, 따지고, 자기들의 생각을 주장했습니다.
3. 예수님의 책망 (23)
1) 베드로의 이러한 강력한 만류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같이 강력하게 나왔습니다. 베드로가 얘기하는 것을 혹독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이 얘기하는 것에, 어떤 타협점이 없었습니다. 어떤 의견을 모을 만한 접점이 없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제자들의 생각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혹독하게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욕할 때에 ‘사탄’이라고 욕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앞에서 거침돌 노릇을 하지 말고 훼방하지 말라’고 책망하시고, 앞장서서 일하던 베드로를 뒤로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얼마나 간교한지요, 사탄은 지금, 예수님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 그룹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 고난 같은 것은 그만 두고, 고난을 피하시고, 영광을 얻읍시다’라고 예수님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시고, 그 근본적인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23b)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순종할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람 생각, 사람 계획, 사람 뜻대로 나아갈 생각이냐고 책망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불이익이 되느냐, 혹은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따져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한테 손해가 된다고,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사람인 자기 생각에 맞게, 자기 편리한대로, 자기 쉬운 대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배역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나. 제자의 삶 (25-26)
1.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제자들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신 것이 24절의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지니라’.(24)
여러분, 제자가 뭡니까? 제자는 선생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정신을 따라가고 선생님을 배우고, 선생님을 본받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계획이나, 뜻, 생각들을 모두 내려 놓고,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한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러하다면, 제자도 역시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다면, 제자들도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해야 마땅한 것이지요. 제자의 삶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같이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우리도 높은 자리에 오르리라는 이기적인 탐욕과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민족적인 희망들, 이런 모든 자기 목표, 자기 관심사, 자기 계획들을 모두 다 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의 가치관을 내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이라는 것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명예를 가지고, 영광을 얻는 것이 제자의 삶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죽이고, 희생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요즘에 베스트셀러인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조창연 씨가 쓴 소설인데, 아버지가 아들을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부성애를 그린 소설입니다. 가시고기라는 것은 조그만 민물고기인데, 특이한 점은 암놈이 알을 낳을 때에 바위틈에 알을 낳고는 그냥 가버린다고 합니다. 보통은 짐승들이 암놈이 새끼를 낳은 다음에 잘 보살피는데, 가시고기는 그렇지 않아서 암놈은 알을 놓고는 그냥 가버립니다. 그러면 숫놈이 그것을 돌보고 보호합니다. 적이 와서 자기의 새끼를 침공하면 목숨을 걸고 자기의 새끼를 보호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새끼들을 정성스레 키웁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자기 새끼들을 키우면, 새끼들이 모두 자라 자기의 갈 길을 가버립니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는 힘이 다 빠져서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가시고기는 이렇게 자기 새끼들을 위해서 전적으로 희생합니다. 새끼들을 위해 자기의 몸을 버리는 것이지요. 엄마나 아빠나, 부모님들을 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렇게 자기의 몸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오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부연해서 설명하신 말씀이 25절, 26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라고 설명하십니다. 이 얘기는 세상의 여러 가지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냐, 무슨 보물이나, 명예보다는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세상의 여러 가지 영광을 얻으려다가 생명을 잃으면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생명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생명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버리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버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완전히 버린 다음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다 내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린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역시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고, 그 생명은 자기를 부인하고,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내 계획과 뜻과, 세상 영광들을 모두 내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도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제자가 먼저 되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도 못 되었는데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도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지도자도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게 될 때에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다. 마지막 날의 사건 (27-28)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지만,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시고, 천사들과 함께 왕으로서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왕으로 오시면, 그 때 여러 가지 판가름이 나는 것이지요. 그 때 고난이 싫어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사람,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해서 제자의 삶을 살아간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라. 결론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삶입니다. 자기 일, 자기 계획,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을 앞세우는 삶입니다. 이렇게 제자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자기를 부인하고 제자의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주님 오실 때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 중에서
* 논지 : 교회 지도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이어야 한다. (교회 지도자의 기본 자격)
우리 예수님께서 겸손하게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마귀의 시험을 당당하게 물리쳤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생애의 사역이 시작되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일 첫번째 하신 설교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라고 하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곧 이어서 제자들을 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택하시는 이야기들이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 고난 예고 (21-23)
1.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바닷가에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부르고 택하셨습니다. 공생애의 여러 가지 사역 중에 중요한 한가지 시역이 제자들을 양육하고, 가르치고, 키우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헌신의 힘을 기울여서, 제자들을 양육했을 때에, 이제 제자들이 얼마나 양육이 되었는가 한번 시험을 해보았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나서, ‘그런,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인지를 아주 정확하게 잘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 이제 제자들이 내가 누군지, 무슨 일을 해야 할 지를 아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이제 어떻게 사역을 해야 될지를 미리 알려주시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21절 말씀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곧 닥칠 고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제 3일에 살아날 것을 가르쳐 주시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 병든 자를 고치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 왔습니다.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많은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고난과 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기를 많이 받고, 영광을 얻게 된 것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사역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라는 것을 미리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아직 있지도 않을 일을 미리 알려주신 것은 고난이 닥쳐올 때 제자들이 당황하고, 무서워서 달아나지 않도록 미리 가르쳐 주고 미리 준비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2)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향한 계획이 있습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우리 교회학교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기도하는 새벽기도회 시간을 가졌는데, 이 점에 대해 계속해서 한 주간 동안 설교했습니다. ‘비전이 무엇이냐?’ 바로 하나님이 나를 향한 계획이 비전입니다. 예수님의 비전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향한 계획이 있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어서 죄인들의 죄를 다 짊어지고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이 해야 될 일이고 비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무엇을 해야 될 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고난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고난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걸음, 한걸음 그 고난을 향해서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여러 가지 많은 사역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한마디로 줄이면, 고난을 당하는 것이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었습니다.
2. 베드로의 만류(22)
1) 이런 말씀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니까,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만류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제자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너무나 놀랬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기에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인기를 얻고 있으니까, 그대로 이 여세를 몰고 가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고, 그 나라, 그 민족을 구원하시고, 다윗 왕국을 재건하시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재현하리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기들도 거기에 대충 껴 묻혀서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에, 자기들도 높은 자리를 얻어서 출세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자기들의 기대와는 영 다른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면 이 나라, 이 민족은 어떻게 되는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겁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상상하기 조차 싫은 일이었습니다.
2) 그래서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께 강력히 따졌습니다. 고난이나 죽음 같은 것이 있었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아마, 베드로나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해서 일종의 배신감을 가졌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민족을 구원하고, 또 우리가 거기에 묻혀서 출세하리라 쫒아 왔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했을 때,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기 민족의 재건과 자기들의 출세와 이 모든 것들이 무참히 짓밟혀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실망이 굉장히 컸겠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대해서 강력히 항의하고, 따지고, 자기들의 생각을 주장했습니다.
3. 예수님의 책망 (23)
1) 베드로의 이러한 강력한 만류에 대해 예수님께서도 같이 강력하게 나왔습니다. 베드로가 얘기하는 것을 혹독하게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이 얘기하는 것에, 어떤 타협점이 없었습니다. 어떤 의견을 모을 만한 접점이 없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제자들의 생각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혹독하게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을 욕할 때에 ‘사탄’이라고 욕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앞에서 거침돌 노릇을 하지 말고 훼방하지 말라’고 책망하시고, 앞장서서 일하던 베드로를 뒤로 물리치셨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얼마나 간교한지요, 사탄은 지금, 예수님 제일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그 그룹 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님, 고난 같은 것은 그만 두고, 고난을 피하시고, 영광을 얻읍시다’라고 예수님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시고, 그 근본적인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23b)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하는데, 하나님께 순종할 생각을 하지 않고, 사람 생각, 사람 계획, 사람 뜻대로 나아갈 생각이냐고 책망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순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 불이익이 되느냐, 혹은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따져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한테 손해가 된다고, 힘들다고, 고통스럽다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사람인 자기 생각에 맞게, 자기 편리한대로, 자기 쉬운 대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배역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나. 제자의 삶 (25-26)
1.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을 가진 제자들에게 제자의 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치신 것이 24절의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쫒을지니라’.(24)
여러분, 제자가 뭡니까? 제자는 선생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선생님의 정신을 따라가고 선생님을 배우고, 선생님을 본받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계획이나, 뜻, 생각들을 모두 내려 놓고,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한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그러하다면, 제자도 역시 선생님을 따라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다면, 제자들도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해야 마땅한 것이지요. 제자의 삶이란 것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예수님같이 자기를 부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우리도 높은 자리에 오르리라는 이기적인 탐욕과 이스라엘의 재건이라는 민족적인 희망들, 이런 모든 자기 목표, 자기 관심사, 자기 계획들을 모두 다 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의 가치관을 내버리고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이라는 것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명예를 가지고, 영광을 얻는 것이 제자의 삶이 아닙니다.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죽이고, 희생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요즘에 베스트셀러인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조창연 씨가 쓴 소설인데, 아버지가 아들을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부성애를 그린 소설입니다. 가시고기라는 것은 조그만 민물고기인데, 특이한 점은 암놈이 알을 낳을 때에 바위틈에 알을 낳고는 그냥 가버린다고 합니다. 보통은 짐승들이 암놈이 새끼를 낳은 다음에 잘 보살피는데, 가시고기는 그렇지 않아서 암놈은 알을 놓고는 그냥 가버립니다. 그러면 숫놈이 그것을 돌보고 보호합니다. 적이 와서 자기의 새끼를 침공하면 목숨을 걸고 자기의 새끼를 보호합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새끼들을 정성스레 키웁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자기 새끼들을 키우면, 새끼들이 모두 자라 자기의 갈 길을 가버립니다. 그러면, 아빠 가시고기는 힘이 다 빠져서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가시고기는 이렇게 자기 새끼들을 위해서 전적으로 희생합니다. 새끼들을 위해 자기의 몸을 버리는 것이지요. 엄마나 아빠나, 부모님들을 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이렇게 자기의 몸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오늘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을 부연해서 설명하신 말씀이 25절, 26절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라고 설명하십니다. 이 얘기는 세상의 여러 가지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 아니냐, 무슨 보물이나, 명예보다는 생명이 가장 중요하다. 만일에 어떤 사람이 세상의 여러 가지 영광을 얻으려다가 생명을 잃으면 그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생명이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생명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버리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버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완전히 버린 다음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다 내 맡기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버린 그를 사랑하시고, 그에게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동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역시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고, 그 생명은 자기를 부인하고, 죽이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할 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비우는 것입니다. 내 계획과 뜻과, 세상 영광들을 모두 내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도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제자가 먼저 되야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도 못 되었는데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도 역시 그리스도의 제자와 같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내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지도자도 역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우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 지도자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게 될 때에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다. 마지막 날의 사건 (27-28)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날의 사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지만,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영광을 가져오시고, 천사들과 함께 왕으로서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왕으로 오시면, 그 때 여러 가지 판가름이 나는 것이지요. 그 때 고난이 싫어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사람,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사람, 제자의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해서 제자의 삶을 살아간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라. 결론
우리 예수님께서 제자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삶입니다. 자기 일, 자기 계획,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일을 앞세우는 삶입니다. 이렇게 제자의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자기를 부인하고 제자의 삶을 살아감으로 우리 주님 오실 때에 영원한 생명을 얻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출처/이철신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