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8
천국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 (요14:1-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시므로 우리 죄인들에게 가져 오신 가장 큰 선물은 우리들의 죄 사함과 구원을 완성하신 일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지옥에 갈 우리들을 천국으로 데려 가시게 된 일입니다. 물론 아무나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진심으로 믿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진심으로 순종하고 진심으로 헌신하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게 됩니다.
오늘 아침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시므로 우리 죄인들에게 가져 오신 가장 큰 선물인 천국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천국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4:17).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면서 하신 말씀도 천국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에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내 보내시면서 제일 먼저 분부하신 말씀도 “천국이 가까왔다” 고 전파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마10:7). 그래서 제자들은 가면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파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2년 동안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28:30,31).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서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천국을 증거하다가 그의 생을 마쳤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살았고, 우리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들도 천국을 바라보고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천국이 우리들에게 기쁨이고 축복인 것을 세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천국은 주님을 만나 보는 곳이고 앞서 간 성도들을 만나 보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중세 성도들의 삶의 목적은 ‘비지오 데이’(Visio Dei) 즉 하나님을 만나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도 하고 높은 기둥 위에 올라가서 기도도 했습니다. 중세의 성도들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근세 선교 운동의 선구자였던 데이빗 브레이너드도 선교를 하면서도 주님을 만나 보기를 간절하게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브레이너드는 천국을 너무너무 간절하게 사모했습니다. 인디언들의 친구요 선교사였던 데이빗 브레이너드는 자기의 젊음을 인디언 선교를 위해서 모두 불태운 다음 천국을 사모하며 주님 만나 뵈올 것을 간절하게 사모했습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과 가슴은 주님과 천국을 사모하는 것으로 가득했습니다. 그의 기도와 일기는 온통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간절한 그리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아 새 예루살렘이여! 내 영혼이 갈망하노라.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여! 이 땅에서 구속 받은 사람이 아니면, 누구도 배울 수 없는 그 복된 노래여! 주여, 나 홀로 나그네로 있아오니 이 땅에 아무런 위로가 없는 때문이니이다.”(1742.4.25). “오늘 아침 잠에서 깨어 났을 때 내 마음은 하나님과 하나 되고 싶은 갈망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천국은 가까이 있었다. 내 영혼은 이미 멀리 날아오르고 있었다.”(1743.3.7). “죽음이여, 오게나 자네의 끈에 입맞추리니 죽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 겁날 것 조금도 없어, 영원한 곳으로 가는 길일뿐”(1743.8.23). 브레이너드는 인디언들을 위해서 그의 젊음을 모두 불태우다가 그의 육신은 완전히 탈진해 졌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디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일기를 썼습니다. 그의 마지막 일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나는 지금 영원의 문턱에 서 있다. 나는 지금 죽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영광을 얻기 위해 천국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천국을 사모하는 것은 하늘 나라의 한 모퉁이에 서서 모든 영광과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기 위해서이다. 이것만이 나의 부르짖음이요 탄식이요 소원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는 것! 그리고 그를 영원토록 기쁘시게 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내 영혼이 갈망하는 것이다.” 브레이너드는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그의 약혼녀인 제루샤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였습니다. “나는 그대와 차마 이별할 수 없소. 그러나 우리는 행복한 영원을 함께 누릴 것이요. 나의 영혼은 오늘 하나님의 품에 고이 안기오. 나는 그의 영광을 바라보고 싶소. 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그는 1747년 10월 9일 2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제루샤는 넉 달 가량 지나서 닷 새 정도의 짧은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 주님 품으로 그리고 브레이너드의 곁으로 갔습니다.
천국은 주님을 만나 보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만나 볼 천국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그의 심정을 피력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13:12).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찬송가 작사의 여왕 패니 크로스비도 주님을 눈과 눈으로 만나 뵈올 천국을 사모하면서 이렇게 간증한 일이 있습니다. “목사님, 제가 태어날 때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 있었다면 저는 맹인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천국에 이르렀을 때 내 눈이 제일 먼저 보고 좋아할 수 있는 얼굴이 나의 주님의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Because when I get to heaven, the first face that shall ever gladden my sight will be that of my Savior!" 천국은 나를 위해서 지옥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나를 구원해주시고, 한 평생 나의 걸음을 걷게 하시며 나를 사랑하신, 나의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그리고 눈과 눈으로 대하여 만나 보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고대가를 지어 부르면서 주님 만나 뵈올 날을 간절하게 사모하면서 하루하루를 사셨습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옵소서.”
천국은 주님만 만나 뵈옵는 곳은 아닙니다. 앞서 간 모든 성도들을 만나 보는 곳이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모두 만나 보는 곳입니다. 사도 요한이 천국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곳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온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습니다(계7:9,10). 그곳에서 우리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만나 볼 것이고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님도 만나 볼 것입니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도, 일사 각오의 주기철 목사님도 만나 볼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사람 한경직 목사님도, 기도와 말씀의 사람 박윤선 목사님도 만나 볼 것입니다. 저를 가장 사랑하시던 저의 어머니와 저의 아버지도, 그리고 제가 슬픔과 아픔으로 뜨겁게 사랑하던 저의 어린 아들 철원이도 반갑게 만나 볼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저의 집 사람과 함께 철원이의 묘를 다녀왔습니다. 저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77년 10월 철원이를 무덤에 묻고 돌아와서 이런 글을 쓴 일이 있습니다. “아빠는 너의 몸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노회에 들러 강도사 인허를 받았단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목사 안수도 받게 될 것이다. 너의 몫을 이 아빠가 다 해주마! 아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다가 보고 싶은 철원이 얼굴을 기쁨으로 대하게 될 그날만을 기다리겠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참으로 고맙다. 아빠는 너의 무덤 앞에 다음과 같은 비문을 세우려고 한다. ‘고난의 의미와 천국의 평화를 가르치고 먼저 주님 품으로 간 어린 아들 철원이가 영화로운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여기 편히 쉰다.’ ” 천국은 주님을 만나 뵈옵는 곳이고 앞서 간 모든 성도들과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을 만나 보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의 최대의 기쁨이고 최대의 축복입니다. 제가 천국을 점점 더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것은 나를 위해서 지옥의 형벌을 받으신 나의 주님을 만나 뵙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기 위함이고,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하시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뵙기 위함이고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어린 아들 철원이를 만나보기 위함입니다. 천국은 만남과 봄의 장소입니다. 그래서 기쁨과 축복의 장소입니다.
둘째, 천국은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담과 우리들의 죄 값으로 각종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있습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고통이 있고, 미움과 저주의 고통이 있고, 분쟁과 전쟁의 고통이 있고, 질병과 장애의 고통이 있고, 이별과 죽음의 고통이 있습니다. 천국은 이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는 곳입니다. 낙원이 회복되고 우주가 회복되는 곳입니다. 사도 요한은 천국의 모습을 하늘과 땅과 피조물이 모두 새로워지는 곳으로 묘사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22:2-5).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 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를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7:16,17). 천국은 에덴의 회복입니다. 하늘과 땅의 회복이고 우주의 회복입니다. 모든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삼킨 바가 되는 곳이고 생명과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과 찬양과 행복이 가득하게 되는 곳입니다.
저의 어린 아들 철원이가 이따금씩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아빠, 하늘이 보여! 아빠, 예수님이 오셨어.” “아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머리에 가시관 쓰시고 피 흘렸지! 손에도 발에도 못박히어 피 흘리셨지! 아빠, 예수님은 나보다 더 아프셨지!” “아빠, 나 천국 가고 싶어. 엄마 아빠 누나 다 같이 천국 가고 싶어. 천국에 가면 구주 예수님이 나 아픈 것 완전히 다 고쳐주시지.” 저는 철원이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저의 가슴은 너무도 귀한 아픔으로 가득히 미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천국은 만남의 장소이고 천국은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는 곳이고 기쁨과 행복의 장소입니다. 우리의 병든 몸과 병든 영혼이 주님처럼 온전하게 변화되는 곳입니다.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임함이라”(요일3:2).
셋째, 천국은 상급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기쁨과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의 말씀을 다 하신 다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5:12)고 말씀했습니다. 천국에서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여야 할 이유 중의 하나는 천국에서 우리가 받을 상이 크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에서 욕을 먹고 핍박을 당한 자는 천국에서 받을 상이 크다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세상에서 맡은 일에 충성한 종들이 천국에 이를 때 저들을 칭찬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세상에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전도와 봉사의 일을 충성스럽게 한 주님의 종들이 천국에 이를 때 이렇게 칭찬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예수님은 또한 세상에서 불쌍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편 사람들이 천국 문에 이를 때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4-36). 주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지극히 작은 일에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편 것들을 다 기억하셨다가 우리가 천국 문에 이를 때 우리를 칭찬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구제에 힘을 썼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주님의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도르가도 고넬료도 루디아도 마게도냐 교회의 성도들도 브리스길라도 모두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주님의 칭찬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전도하여 예수를 믿게 된 빌립보 교회 성도들과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이 천국에서 받을 면류관이요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2:19,20).
여러분들이 전도해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몇 명이라도 있으면 그들이 바로 여러분들이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받을 면류관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시간을 내고 몸을 내어서 전도하고 구제하고 봉사한 것들이 비록 보잘것없는 지극히 작은 것들이라도 여러분들이 천국 문에 이를 때 여러분들이 받을 칭찬과 상급이 될 것입니다. 저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연변의 이영숙 회장과 저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부산의 박희선 집사와 부천의 박범순 집사와 그의 두 딸은 제가 천국 문에 이를 때 받게 될 면류관들이 될 것입니다. 조춘국 집사도 김선희 목사도 박달안 집사도 모두 제가 천국 문에 이를 때 받게 될 면류관들이 될 것입니다. 얼마나 황송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마지막 편지 마지막 장에서 천국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기쁨의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딤후4:7,8).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생명을 다 바쳐서 기도와 전도와 구제와 봉사와 수고를 했다 해도 그것이 천국에서 상을 받을 공로나 가치는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와 전도와 구제와 봉사와 수고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로 상달되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받은 상급이 되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와 부활의 공로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생명을 다 바쳐서 핍박을 받고 순교를 한다 해도 그것이 천국에서 상급을 받을 공로나 가치가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핍박과 순교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로 상달되는 것은, 우리가 받은 상급이 되는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와 부활의 공로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받을 상급과 면류관은 모두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 우리는 주님의 죽으심과 살으심을 영원토록 찬양하고 영원토록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아침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시므로 우리 죄인들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기쁨과 축복을 가져오셨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천국은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만나 뵙는 기쁨과 축복의 장소이고 앞서 간 모든 성도들과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는 기쁨과 축복의 장소입니다. 천국은 고통과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는 곳이고 그대신 생명과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과 찬양과 행복이 가득하게 되는 곳입니다. 천국은 또한 우리들이 한 것이 너무 보잘것없지만 우리들이 한 기도와 전도와 구제와 봉사와 수고에에 대한 큰 상급이 있는 곳입니다. 너무너무 황송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부활의 주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다 일어나서 155장 1절을 부르고 그리고 222장을 부르겠습니다
출처/김명혁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