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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복-믿음 (갈3:7-14)
중국의 고대 수도인 서안은 진시왕의 거대한 무덤으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 무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화청궁이라는 궁궐이 있습니다.
이곳은 당현종으로 하여금 국사에 소홀히 할 정도로 사랑을 받아,
중국의 클레오파트라라고 하는 양귀비가 머물렀다고 하는 궁궐입니다.
이곳은 원래 온천으로 유명한 곳인데,
현재 발굴복원중에 있는데, 발굴된 곳 가운데, 큰 목욕탕이 있어서,
아마도 양귀비가 목욕한 곳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큰 목욕탕을 보면서, 가이드들은 양귀비가 무척 뚱뚱한 여성이었다고 말합니다.
여러 증거들을 볼 때에도,
양귀비는 서역풍의 글레머였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당나라 시대의 미인이란
버드나무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서양의 몸무게 나가는 미인스타일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무게가 듬직하신 여성분들은 모두 다 양귀비를 닮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몸무게는 작고, 키는 큰 여성이 미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미라는 것이 시대마다, 또 사람마다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치관이란 것이 절대적이 아니어서,
바뀌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들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인사를 할 때에, 저 사람이 생각하는 복이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금년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이 금년에 돈 많이 버세요로 알아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금년에 건강하세요라고 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며,
금년에 출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세요라고 들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복의 개념이 다르다가 보니,
우리들 성도들이 전도할 때
예수믿고 복받으세요라고 말하며, 전도할 때에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자칫하면 오해할수도 있게 됩니다.
예수믿고 복받으란 말을 '예수 믿으면 돈 많이 벌게 된다더라'고 들을 사람도 있고,
'예수 믿으면 건강하게 된다'고 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예수 믿으면 천당에 간다는 말로 들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했을 때, 틀린 말씀이 아니라, 진실인데,
이 때에, 복이란 도대체 어떤 복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 받을 것'이란 큰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나왔는데,
기대했던 복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기대했던 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 신앙이 잘못되었는가하여,
온갖 복을 다 내려 준다고 하는 기도원이나 이상한 집회를 찾아 다니다 실망하는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했을 때,
믿음으로 우리 성도들이 받게 되는 복은 어떤 복인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우리들은 예수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받게 되는 그 복이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 믿음으로 받게 되는 첫 번째 복은 '의롭게 되는 복'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시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이 말씀에 의하면, '이방이 믿음으로 의로 정하실 것이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방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게 되는데,
그 복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복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큰 복은 의롭다 함을 얻는 바로 이 복입니다.
그리고, 이 의롭게 되는 축복위에
비로서, 다른 복들도 의미가 생겨지고, 그 효력도 발휘하게 됩니다.
의롭다고 할 때에,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의의 개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강력한 원수가 나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먹는 음식이 제대로 소화가 될 수 있으며,
그가 음악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그의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원수와 빨리 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참된 마음의 평화의 안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런 예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남서울대학교에서 가족캠프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온 가족 가운데,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원수관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대덕연구단지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트 박사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아들도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 아들은 집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지옥에 들어가는 것같을 것입니다
부모와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한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불편할 것이며,
그렇다고, 다른 곳에 갈 수도 없기에,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인간들에게 있어서
세상살이는 고난과 싸움과 슬픔과 눈물뿐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스런 인생살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며,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간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는지 모릅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주는 그 축복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회복하였을 때,
그는 아들로서의 지위도 회복하게 되었고,
굶주림과 추위와 죽음의 위협에서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회복하였을 때,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그 어떤 소망도 있을 수 없고,
그 어떤 즐거움도 찰라적인 기쁨일 뿐,
진정한 행복은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의롭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축복인 것이지요
2. 믿음으로 받게 되는 두 번째 복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복'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렇게나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중동의 많은 이스람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역시,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모두다
유대교의 성지며, 이스람교의 성지이며, 동시에 기독교의 성지입니다.
창조사학회에서 제작한 셈족의 루트를 찾아서란 비디오와 책을 보니,
아브라함의 고향이라는 우르에는 아브라함의 탄생지라는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 이스람에서 큰 이스람회당을 지어놓고, 성지로 삼아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두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것이 곧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란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약속하고 있는 수많은 축복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신명기 27장의 축복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복주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적들이 한길로 치로 와서 일곱길로 도망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곳에서도 그가 있는 곳에 복을 내릴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극명한 차이를 우리들은 출애굽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홍해바다를 마른땅을 걷듯이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뒤따르던 애굽의 군대는 바로 그 바다에서 다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하심이 그의 백성들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거듭한 성도들이란 말씀이지요.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물 댄 동산과 같다고 하기도 하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도 같다고 하고,
돋는 햇볕과도 같아서, 점차 광명에 이른다고 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그의 유명한 시편27편:6절을 보면,
'그의 진실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령 나를 따를지니, 내가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거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상,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인자하신 손길이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물댄 동산이나 시냇가의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것입니다.
돋는 햇볕같이 점점 더 풍성하고 축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국시민권을 가지고 어떤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
그곳에 있는 대사관에서 우리들의 안전에 대하여 보호하여 주고 책임을 져 줍니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느곳을 가든 책임지고 보호하여 줍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켜주심속에 있게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바로 당신, 바로 우리들입니다.
3. 믿음으로 받게 되는 세 번째 복은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는 복'입니다.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된다는 표현은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갈라디아교인들은 이미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이야말로
성도에게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임재 후에야 제자들은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으며,
또 능력있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성령받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성령받았을 때만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사야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32:15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될 수 있는 것은 성령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의지력이 높고, 머리좋고,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 땅이 아름다운 밭이 되고, 축복의 동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그의 은사를 받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을 때,
그들이 거하는 나라는 놀랍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 -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 지게 될 것입니다.
결론)
근래에 방송과 신문과 잡지들을 볼 때에,
이 세상이 점점 더 멸망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볼 때에 뚜렷이 나타나기에 배우게 되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멸망하는 문명의 징조입니다.
규율과 질서와 규범이 파괴됩니다.
진취적인 기상은 사라지고, 대신에 개인적인 향락과 쾌락만을 좇는 풍조가 만연하게 됩니다.
오늘 언론매체들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현상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퇴페적이고, 향락적입니까?
개인의 쾌락과 이익만을 추구하며, 개인의 자유만을 찬양하고, 사회적인 법과 질서와 윤리는 무시하기 일수이지 않습니까?
방송과 영화 불건전한 욕망들을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나라와 사회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사회는 주의 은총과 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이 사람들, 성령의 사람들을 진정으로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
성령의 은사로 무장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오늘 우리의 역사와 사회는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가 우리 나라와 사회를 바르게 만드는 진리의 등대요 소금과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국의 고대 수도인 서안은 진시왕의 거대한 무덤으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 무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화청궁이라는 궁궐이 있습니다.
이곳은 당현종으로 하여금 국사에 소홀히 할 정도로 사랑을 받아,
중국의 클레오파트라라고 하는 양귀비가 머물렀다고 하는 궁궐입니다.
이곳은 원래 온천으로 유명한 곳인데,
현재 발굴복원중에 있는데, 발굴된 곳 가운데, 큰 목욕탕이 있어서,
아마도 양귀비가 목욕한 곳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큰 목욕탕을 보면서, 가이드들은 양귀비가 무척 뚱뚱한 여성이었다고 말합니다.
여러 증거들을 볼 때에도,
양귀비는 서역풍의 글레머였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당나라 시대의 미인이란
버드나무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서양의 몸무게 나가는 미인스타일이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몸무게가 듬직하신 여성분들은 모두 다 양귀비를 닮으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몸무게는 작고, 키는 큰 여성이 미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미라는 것이 시대마다, 또 사람마다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치관이란 것이 절대적이 아니어서,
바뀌는 것이 사실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들은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나누게 됩니다.
그 때마다,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인사를 할 때에, 저 사람이 생각하는 복이 무엇일까 하는 점입니다.
금년에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뜻이 금년에 돈 많이 버세요로 알아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금년에 건강하세요라고 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며,
금년에 출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세요라고 들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복의 개념이 다르다가 보니,
우리들 성도들이 전도할 때
예수믿고 복받으세요라고 말하며, 전도할 때에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자칫하면 오해할수도 있게 됩니다.
예수믿고 복받으란 말을 '예수 믿으면 돈 많이 벌게 된다더라'고 들을 사람도 있고,
'예수 믿으면 건강하게 된다'고 들을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예수 믿으면 천당에 간다는 말로 들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했을 때, 틀린 말씀이 아니라, 진실인데,
이 때에, 복이란 도대체 어떤 복인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 받을 것'이란 큰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나왔는데,
기대했던 복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기대했던 복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 신앙이 잘못되었는가하여,
온갖 복을 다 내려 준다고 하는 기도원이나 이상한 집회를 찾아 다니다 실망하는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했을 때,
믿음으로 우리 성도들이 받게 되는 복은 어떤 복인가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우리들은 예수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놀라운 복을 받게 됩니다.
9절 말씀을 보시면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받게 되는 그 복이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1. 믿음으로 받게 되는 첫 번째 복은 '의롭게 되는 복'입니다.
8절 말씀을 보시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이 말씀에 의하면, '이방이 믿음으로 의로 정하실 것이다'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방이 아브라함을 인하여 복을 받게 되는데,
그 복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얻게 되는 복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큰 복은 의롭다 함을 얻는 바로 이 복입니다.
그리고, 이 의롭게 되는 축복위에
비로서, 다른 복들도 의미가 생겨지고, 그 효력도 발휘하게 됩니다.
의롭다고 할 때에,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의의 개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의롭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기 전에 인간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하면,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과 원수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강력한 원수가 나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먹는 음식이 제대로 소화가 될 수 있으며,
그가 음악을 즐길 수 있겠습니까?
그의 삶에 무슨 즐거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원수와 빨리 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참된 마음의 평화의 안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런 예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남서울대학교에서 가족캠프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온 가족 가운데,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원수관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대덕연구단지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트 박사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원수처럼 미워하고,
아들도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르긴 해도, 그 아들은 집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지옥에 들어가는 것같을 것입니다
부모와 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한 아이들은
집에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불편할 것이며,
그렇다고, 다른 곳에 갈 수도 없기에,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인간들에게 있어서
세상살이는 고난과 싸움과 슬픔과 눈물뿐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스런 인생살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후에 심판이 있을 것이며,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의 형벌이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우리 인간들을 절망에 빠지게 하는지 모릅니다.
바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주는 그 축복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회복하였을 때,
그는 아들로서의 지위도 회복하게 되었고,
굶주림과 추위와 죽음의 위협에서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와 바른 관계를 회복하였을 때,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전에는,
그 어떤 소망도 있을 수 없고,
그 어떤 즐거움도 찰라적인 기쁨일 뿐,
진정한 행복은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의롭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축복인 것이지요
2. 믿음으로 받게 되는 두 번째 복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복'입니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그렇게나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중동의 많은 이스람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가운데 하나도 역시,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흔적이 있는 곳이면, 모두다
유대교의 성지며, 이스람교의 성지이며, 동시에 기독교의 성지입니다.
창조사학회에서 제작한 셈족의 루트를 찾아서란 비디오와 책을 보니,
아브라함의 고향이라는 우르에는 아브라함의 탄생지라는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 이스람에서 큰 이스람회당을 지어놓고, 성지로 삼아 놓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두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것이 곧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란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약속하고 있는 수많은 축복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신명기 27장의 축복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복주심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적들이 한길로 치로 와서 일곱길로 도망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곳에서도 그가 있는 곳에 복을 내릴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극명한 차이를 우리들은 출애굽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홍해바다를 마른땅을 걷듯이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뒤따르던 애굽의 군대는 바로 그 바다에서 다 수장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보호하심이 그의 백성들에게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믿음으로 거듭한 성도들이란 말씀이지요.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과 축복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물 댄 동산과 같다고 하기도 하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도 같다고 하고,
돋는 햇볕과도 같아서, 점차 광명에 이른다고 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그의 유명한 시편27편:6절을 보면,
'그의 진실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령 나를 따를지니, 내가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거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상,
하나님의 진실하심과 인자하신 손길이 언제나 우리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물댄 동산이나 시냇가의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을 것입니다.
돋는 햇볕같이 점점 더 풍성하고 축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한국시민권을 가지고 어떤 나라를 여행하게 되면,
그곳에 있는 대사관에서 우리들의 안전에 대하여 보호하여 주고 책임을 져 줍니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어느곳을 가든 책임지고 보호하여 줍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어디를 가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지켜주심속에 있게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안전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사람들
바로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바로 당신, 바로 우리들입니다.
3. 믿음으로 받게 되는 세 번째 복은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되는 복'입니다.
성령의 약속을 받게 된다는 표현은 약속된 성령을 받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성령을 믿음으로 받게 된다는 것을 갈라디아교인들은 이미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이야말로
성도에게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 것을 명령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임재 후에야 제자들은 제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으며,
또 능력있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성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성령받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성령받았을 때만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사야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32:15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될 수 있는 것은 성령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의지력이 높고, 머리좋고, 똑똑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 땅이 아름다운 밭이 되고, 축복의 동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과 그의 은사를 받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을 때,
그들이 거하는 나라는 놀랍게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 -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 지게 될 것입니다.
결론)
근래에 방송과 신문과 잡지들을 볼 때에,
이 세상이 점점 더 멸망하는 쪽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역사를 볼 때에 뚜렷이 나타나기에 배우게 되는 현상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멸망하는 문명의 징조입니다.
규율과 질서와 규범이 파괴됩니다.
진취적인 기상은 사라지고, 대신에 개인적인 향락과 쾌락만을 좇는 풍조가 만연하게 됩니다.
오늘 언론매체들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현상들을 보십시오
얼마나 퇴페적이고, 향락적입니까?
개인의 쾌락과 이익만을 추구하며, 개인의 자유만을 찬양하고, 사회적인 법과 질서와 윤리는 무시하기 일수이지 않습니까?
방송과 영화 불건전한 욕망들을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나라와 사회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사회는 주의 은총과 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이 사람들, 성령의 사람들을 진정으로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
성령의 은사로 무장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오늘 우리의 역사와 사회는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가 우리 나라와 사회를 바르게 만드는 진리의 등대요 소금과 빛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