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07
새벽 153 축복운동 (요한 21:1-11)
할렐루야 새벽 153의 놀라운 은혜의 축복이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들에게 오늘 한날도 충만 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새벽 153축복에 대하여 애청자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증거 하고저 합니다. 새벽은 부지런한자의 것이라고 어느 철학자는 말하였습니다. 또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그것을 쟁취하고자 하는자는 새벽에 뜨는 태양을 가슴으로 품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새벽에 일어납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크신 행사와 이적과 역사 하심을 보여 주실때에 부지런한자만이 그 현장에 동참할 수 있고 체험할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여 하나님께 153의 크신 축복을 받는 애청자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했고 11절에 보니까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오른편은 순종의 편입니다. 여기서 순종으로 이루는 두 가지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던졌기 때문에 153마리나 되는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만일 그때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시는 말씀을 허튼 소리로 여기고 웃어 넘겼다면 고기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제도 오늘도 수고롭게 그물을 던지면서도 빈 그물을 끌어 올리는 반복된 인생의 헛수고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내 방법을 버리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그물을 던져야 될 줄 믿습니다. 믿고 순종할 때 153마리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물을 오른편에 던졌더니 큰 고기를153마리를 잡았지만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가령 수천 마리의, 수만 마리의 고기를 잡았어도 그물이 찢어지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고기를 많이 잡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고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세상 그물은 고기도 잘 잡히지 않지만 걸핏하면 잘 찢어집니다. 찢어지면 다 새어 나가 버립니다. 여러분, 찢어지지 않는 그물이 건강한 그물입니다. 찢어지지 않는 교회가 능력있는 교회입니다. 찢어지지 않는 인격이 온전한 인격이요 제대로 된 인격입니다. 내 멋대로 그물을 던지면 찢어집니다. 그러나 주님 명령대로 그물을 던지면 고기도 많이 잡히고 그물도 찢어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오른편은 주님이 지시하신 곳을 의미하고 다른 편은 다른 방법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성공하려면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멋대로 살면, 자기 멋대로 살면 안 됩니다. 출세를 위해 그물을 던지고 있건, 돈을 벌기 위해 그물을 던지고 있건, 행복을 찾느라 그물을 던지고 있건 그것이 헛수고가 되지 않게 하려면 주님 명령대로 던져야 하고 바로 믿고 바로 던져야 될 줄 믿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뭔가가 걸렸다가도 그물이 찢어져 다 세어 나가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으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가 함께 하는 밤은 그물이 가득한 밤이요 배가 가득한 밤이요 마음의 은혜가 가득한 밤이요 기쁨과 성공이 있는 복된 밤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이 실패냐 성공이냐 하는 것은 예수님을 의지하고 사느냐, 예수 없이 사느냐 하는 둘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께 순종함으로 축복된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른편에 던지라고 한 말씀은 여기에 승리가 있고 여기에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좌편에 서서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거기에는 실패가 있을 뿐입니다. 내가 아무리 인간적인 노력을 다 했어도 실패 뿐입니다. 베드로가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소녀 앞에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장담했던 베드로는 실패한 자가 되었고 이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고기 잡는 일 마저도 실패하고 맙니다.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이 말은 주님 편에 축복이 있고 거기에 승리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이사야 41장 10절에 보니까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로운 오른손, 주님의 손이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귀한 시간에 주님의 강한 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오늘날까지 서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손이 붙들고 계심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지금 서 있습니까? 온전합니까? 하나님의 손이 붙들고 있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지금 온전히 서 있습니까? 이것도 하나님이 붙들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호흡하고 있고 여러분의 생명이 여기 보장되어 있습니까? 이것은 내가 스스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생명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능력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축복의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은혜의 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강한 손이 붙들면 거기 축복이 있고 승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신앙계를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모나미 볼펜을 잘 아시는 줄 압니다. 우리 한국에 가장 유명한 볼펜이 이 모나미 볼펜 회사입니다. 그 모나미 볼펜이 153이라고 쓰여진 것을 봤을 겁니다.
모나미 볼펜 회사 회장이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하다가 얼마 안 가서 완전히 망했습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예수를 믿고 신앙 생활 했지만 사업이 잘 되니까 세상으로 나갔고 하나님 곁을 떠나 살다가 완전히 파산했습니다. 그가 빚쟁이에게 쫓겨서 이리저리 쫓겨다니다가 하나님 앞에 천부여 의지 없어 손 들고 옵니다 하고 망하고 이제 하나님 앞에 손 들고 왔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철야하며 밤새도록 하나님 앞에 하나님 말씀대로, 뜻대로 살지 못한 죄를 회개하며 통곡하며 기도하는데 새벽 미명에 강단 앞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으로 153이라는 숫자가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숫자인가 궁금해서 새벽 기도회 목사님을 찾아가서 물어봤더니 요한복음 21장에 나오는 숫자인데 그 내용은 오른편에 던져서 잡은 고기가 153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른편, 주님의 편으로 삶의 방향을 돌리면 153의 천국의 축복을 받게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는 순종해서 모든 삶의 방향을 우편으로 돌렸습니다. 그때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되고 IMF 가운데도 끄떡없는 기업이 되었다는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새벽 153 축복 운동에 열심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새벽 153 숫자가 채워지는 날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준다고 분명히 약속하십니다.
새벽은 기적의 시간입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새벽에 홍해가 갈라지고 새벽에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시고 새벽에 요단강을 건너가고 새벽에 여리고성이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153 축복을 받기 위해서 우리 모두 새벽에 일어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읍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되 하늘의 153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이 축복은 주님의 오른손이 붙들어 주는 축복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그랬습니다.
사랑하는 애청자 여러분, 우리가 축복을 받되 찢어지면 불행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에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찢어져 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한 결혼을 했는데 좌편으로 방향을 돌리다가 가정이 찢어지고 슬피 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이 가운데 신령한 은혜를 받았는데 소멸해 버린 분이 있습니까? 153의 축복을 받으십시요. 그물이 찢어지지 않는 축복은 주님 편에서만 얻는 축복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은 애청자 여러분 모두가 새벽 153 축복 운동에 동참해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