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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에 충성한 오벧에돔 (삼하6:5-12, 역대상 13: 13- 14, 역대상 26장 4- 11)
오늘은 3개월 동안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 집에 모시고 충성스럽게 섬겨 복을 받은 오벧에돔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교훈을 얻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벧에돔이란 이름의 뜻은 '에돔의 종' '에돔 신의 예배자'라는 의미입니다. 오벧에돔은 가드 사람으로 가드림몬 레위 사람의 성읍출신으로 봅니다. 그는 기럇여아림과 예루살렘의 중간에 살고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대었다가 죽은 근방이었습니다. 웃사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행렬이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고 그 인근에 있는 오벧에돔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이 3개월이었습니다.(대상13:13-14)
하나님이 오벧에돔과 그 온 집을 축복하시므로 법궤를 두려워했던 다윗 왕과 이스라엘 장로들이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된 것입니다. 아비나답의 집에서 법궤를 운반할 때에는 새 수레를 만들어 소들이 끌게 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법궤는 채를 양편고리에 꿰어 어깨에 메고 운반하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수레를 만들어 법궤를 운반하는 것이 더 정성되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벧에돔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지는 법궤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장로들이 어깨에 메고 올라갔습니다.(대상15:25)
오벧에돔은 뜻밖에 자기 집에서 법궤를 맡게 되었고 짧은 기간에 다른 사람이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은 그 부락이나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 삽시간에 알려졌습니다. 법궤는 두려워할 대상만이 아니라 가까이 할 대상임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마25:21)
작은 일도 충성하여 복을 받은 오벧에돔에 대해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가드 사람 오벧에돔과 법궤
"가드"는 단 지파의 지경에 있던 레위인 "가드림몬"을 가리킵니다.(수21:24) 또한 오벧에돔은 고라의 후손으로(대상26: 1, 4) 예루살렘 성전의 문지기였습니다. 따라서 오벧에돔이 "가드사람"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가 "가드림몬"에서 출생한 까닭입니다.(삼하6: 10, 11)
오벧에돔은 법궤 때문에 블레셋 사람들이 당한 엄청난 재난과 벳세메스 사람들이 어떤 재난을 당하였으며 특히 법궤 법궤를 운반하던 웃사가 소들이 뛸 때에 법궤를 붙들므로 재앙이 임하여 죽은 사건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법궤를 옮기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다윗 왕조차도 웃사의 죽는 사건을 보고 법궤 모시기를 포기한 때에, 오벧에돔은 기꺼이 법궤를 자기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법궤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을 알고도 기꺼이 맞아들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법궤의 참 모습인 하나님을 보았으므로 기쁘게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벧에돔의 신앙과 용기에 대해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와 후손에게까지 축복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는 그 자체가 축복이며,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경거망동하는 자는 저주를 면치 못합니다.(고후2: 15- 17)
2. 오벧에돔 가정에 임한 복
믿음 좋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분통해 하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녀가 시험에 낙방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이유없이 육체에 질병이 오면 가정적인 큰 시험이 듭니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분노를 품고 섭섭함을 감출수 없었습니다. 법궤를 운반중 웃사가 그만 하나님에게 급살을 당했습니다. 법궤는 레인인만이 만질 수 있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다윗은 마음속으로 "하나님. 제가 당신의 법궤 옮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이 거국적인 행사를 망쳐버리고 백성들 앞에서 제 위신이 한없이 추락한것을 압니까? 이게 무슨 꼴입니까?" 문제는 다윗의 조급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분노와 화를 발함은 마음이 조급해서 입니다. 다윗은 분과 신경질을 내면서 "이곳은 베레스웃사라고 하여라. 웃사가 죽었다. 하나님이 그를 치셨는데 억울하다. 나는 이 일에 아멘할 수 없다."
여러분 하나님은 때때로 나에게 시련을 주십니다. 불리한 환경을 통해 더 굳세게 하실려고 말입니다. 이 하나님의 일에 원망할 수 없습니다. 농구경기 중 자기선수가 애매한 파울을 당했습니다. 벤치의 감독이 거세게 심판에게 항의 하면 테크니컬 파울로 배로 불리우게 됩니다. 살다보면 가정적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불리한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야 됩니다. 그런데 현상앞에 다윗은 조급하게 화내며 반응을 했던 것입니다. 중국인은 느긋한 대륙기질이 있고, 일본인은 친절과 웃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고슴도치같이 털을 꼿꼿이 세우고 급하고 공격적으로 대응한다고 합니다. 조금만 손해보면 큰소리 치고 즉각 털을 곤두세웁니다. 상황을 너무 빨리 판단해버리는 조급함 때문입니다.
어떤 주부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가는데 이 여자가 집에서 얼마나 조급한지 남편보고 `출근 빨리 빨리' 아이들보고도 `빨리 학교가라. 빨리 밥먹어라. 빨리 자라' 그래서 별명이 `빨리 빨리 여사'라고 한다. 남편이 부탁을 한다. `여보 이번 외국가면 외국사람 여유좀 본받아 제발 그 빨리란 병을 좀 버리고 오시오"
김포공항에서 다른 교인들을 만나서 하는 말이 "김집사, 요번 미국갔다오면 다시는 빨리란 말을 할 수가 없어. 이제부터는 얼른얼른이라고 해야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시간 없으니 얼른 갑시다. 우리네 조급한 것은 알아줘야 합니다. 신앙은 쉽게 화내고 쉽게 분노하고 조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판단과 이성적 기능이 마비사태일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령이 지배하면 내 속에서 성령님이 판단하고 때론 성령님께서 내 판단을 도와주셔서 지혜롭게 상황을 대처할 수 합니다. 화내는 것은 문제해결의 실패를 말하는 것입니다. 항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실수였습니다.
그 다음 교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장점은 자신의 잘못을 곧바로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 부분을 좋아하시고 이 솔직하고 진실한 점을 신용하십니다.
사무엘하 6장 9절에 "다윗이 그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라고 말합니다. 원망하던 마음이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두려워하는 자녀들입니까? 내 죄악 모습을 발견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내 잘못된 감정과 조급한 생각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쉽게 절망하고 소극적인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왜 다윗이 쉽게 낙심하고 분노했습니까? 시선이 미래에 없고 극히 현실에만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발끝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멀리보고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 되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수 있습니다.
여성동앙 2월호에 김인호가 쓴 자랑스런 한국청년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뇌성마이지만 손발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청년이야기입니다. 태어날 때 난산으로 질외질식상태로 뇌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참 훌륭했습니다. 아이가 뇌성마비인 것을 안뒤 아이에게 지극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갔습니다. 슈퍼, 은행, 눈에 뵈는것은 계속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린이대공원에 구경시켜주려 갔더니 그 아이를 구경하러 사람들이 졸졸 따라다녔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마나 사랑하고 용기를 주었는지 초등학교 3학년까지 자신이 불구자란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캘스레이트 大, 버클리 大를 졸업하고 카톨릭 유니버어티 이브 아메리카 大학원 우주물리학 박사가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클링턴 대통령게게 발탁되어 미 연방 공무원 특채로 화재가 되었습니다.
얼마든지 비관하고 하나님을 원망할수 있었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믿음갖고 노력하면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은 본문 오벧에돔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련중에 있는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포기하고 오벧에돔집으로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속상한 다윗이 일방적으로 궤을 메고 오벧에돔에 두었던 것입니다. 주인의 의견도 묻지않았습니다. 이것은 실례도 한참 실례되는 일이고 불쾌한 일입니다. 더구나 나곤의 마당에서 웃사가 죽어 자빠지는 것을 봤을텐데 얼마나 겁이 나겠습니까? 그러나 오벧에돔은 부정적으로 보지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들었습니다. 그 집에 9개월 동안 하나님의 궤를 머물게 해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무엘하6장 12절에 "하나님의 궤를 인해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남이 짜증내고 화풀이하는 일을 기쁨으로 받아 들일때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언약궤는 알고보면 축복의 상징인 것입니다. 언약궤가 있을때는 승리하고 언약궤가 앞서갈 때는 요단강이 갈라져 걸어갔습니다.
이스라엘 행진할 때 언약궤를 맨앞이나 중간에 두었던 것은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 혹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계시지 않으면 불해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오벧에돔이 잘난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궤가 그집에 있었다는 점이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축복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이 많은 기독교 성자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그들의 삶속에 적용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벧에돔 가정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시면서 어떻게 살았을까요? 분명히 그들은 말씀가운데 거룩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절에 언약궤 속의 내용물은 3가지라고 말합니다. ① 아론의 싹난 지팡이 ② 만나담은 금항아리 ③ 언약의 비석.
이 세 가지는 모두 이스라엘의 범죄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을 때 지팡이 위아래를 자른후 지팡이를 성전에 두었더니 그중 아론의 지팡이만 싹이 났습니다. 이 가정이 하나니의 궤를 모셔왔는데 왜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야, 저거 들어오면 우리는 짐이 된다. 죽게 된다. 손해 보게 된다." 아내는 "여보 우리가 하나님 섬기지만 적당히 합시다."
하나님이 세우신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가정이 행복해지기 원한다면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특히 아내 여러분 남편을 하늘처럼 받들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모든 가정의 비극은 남편을 하늘처럼 받드는데서 시작합니다. 아시겠습니까? 남편은 하늘처럼 받으러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늘부터는 꼭 방법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하늘처럼 받들어야할 존재가 아니라 하늘 이상으로 받들어야 할 존재다. 온 가정이 마음이 하나되었으니 하나님이 궤를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내고 자녀들이고 하나님의 일을 최고로 아는 가정에 하나님이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노예적 복종이 아니라 창조적 순종, 자유와 기쁨 가운데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아름다운 순종의 덕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웃사를 치셨던 그손으로 하나님이 오벧에돔의 가정에 영육의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 거룩한 복이 여러분 가정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만나는 생명과 같은 양식입니다. 양식이 고갈된 극한 상황에 하나님이 하늘의 문을 여시고 이 놀라운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먹고 먹다가 만나가 싫증이 나자 불평을 합니다. 자족과 감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불평을 하자 불뱀을 보내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원망으로 바꾸지 마시지 바랍니다. 오벧에돔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법궤를 기꺼이 영접하고 충성스럽게 섬긴 사실을 생각하고 우리는 늘 감사하고 충성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오벧에돔의 집에 임한 복(福)
오벧에돔은 법궤를 잘못 다루는 자들에게만 재앙이 임하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법궤를 바르게 모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웃사의 잘못된 행동을 처벌하신 바로 그 손을 통하여 오벧에돔의 겸손한 용기에 보상을 주었고 그 법궤로 하여금 생명에서 생명으로 이르는 향기가 되게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떠한 삶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생활 중심에 모시는 용기있는 신앙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오벧에돔의 집안이 모두 큰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을 주십니다.
역대상 26장에는 성전 문지기를 맡은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오벧에돔과 그의 아들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면 오벧에돔은 어떠한 복을 받았으며, 그 복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본문에서 오벧에돔이 세 가지 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자손이 번성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에게서 난 자가 육십이명이며”(8절)라는 본문 말씀을 통해 오벧에돔이 자손번성의 복을 받은 사실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손들 중에서 큰 인물이 나왔습니다. “그 아들 스마야도 두어 아들을 낳았으니 저희의 족속을 다스리는 자요 큰 용사라”(6절)는 말은 지도자가 배출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손들 모두 능력이 있는 유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다 오벧에돔의 자손이라 저희와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그 직무를 잘하는 자니.....”(8절). 여기서 ‘능력이 있다’는 말은 ‘재력이 있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오벧에돔은 하나님께로부터 자손의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집안이 두루 형통하고 번성하는 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벧에돔이 어떻게 이처럼 귀한 복을 받았는지를 역대상 13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 웃사가 하나님의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죽는 사건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꺼려하고 두려워하고 멀리할 때, 오벧에돔은 담대하게 궤를 자기 집으로 모셔서 잘 받들었습니다. 그 결과 오벧에돔이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대상 13:14)
이 말씀 속에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는 비결이 나타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궤인 말씀을 집에 모시고 온 가족이 말씀을 귀하게 여기며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우리 당대 뿐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까지 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4.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
역대상 26장 4- 11절에 보면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이 받은 축복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밷에돔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문을 지키는 문지기로서 봉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문지기들 중에서 특히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의 이야기가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하나님께서 그와 그 자손들에게 복 주신다는 내용이 선명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왜 오벧에돔과 그의 후손들이 이처럼 축복을 받았습니까? 그것은 오래전에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집에 모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자신의 집에 모시며 석달 동안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지킨 결과 하나님은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본문은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작은 일에 충성된 결과가 무엇인지 다같이 살펴봅시다.
(1)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으로 내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법궤를 모신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삼하 6: 11, 12절에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으로 오기 전에 웃사가 흔들거리는 하나님의 궤를 손으로 만져 즉사하고만 사건이 있었습니다.(대상 13: 10) 이 사건으로 다윗 왕은 떨림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의 궤를 왕궁에 모시지 못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가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황 중에도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법궤를 기꺼이 모셔 들었고 경외함으로 법궤를 지키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의 집에 큰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2가지 복을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에는 큰 영광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벧에돔은 웃사의 죽음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떨리는 마음으로 밥궤를 석달 동안 잘 모심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오벧에돔의 집에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적은 일이나마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하심으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2)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셨습니다.(출20:6)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잘 준행하는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의 후손들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본문에서 잘 증명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벧에돔에게 여덟 아들을 주셨는데 그 아들들과 그 형제들은 다 능력이 있어 직무를 잘하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대상 26장 8절) 그리고 그들 후손들 가운데 큰 용사가 나왔고(대상 26장 6절) 또한 능력있는 자들이 나왔습니다.(대상 26장 7절) 이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대상26장 5절) 오벧에돔이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고 지킨 결과, 즉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 하나님은 오벧에돔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에게까지도 복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나 한 사람이 후손들에게 덕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잘 섬기며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더 큰 일을 맡습니다.
우리가 작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 많은 것으로 맡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25: 21- 23) 우리가 작은 일이라도 성심 성의껏 충성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더 큰 일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부터 큰 일을 맡으려고 추구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주어진 작은 일부터 착실히 충성합시다. 오벧에돔이 석달 동안 하나님의 법궤를 잘 모시며 작은 일에 충성한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제 더 큰 일을 그에게 맡기셨습니다.(13절) 즉, 오벧에돔은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로서 봉사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남방의 문을 담당했습니다. 이 문은 다윗과 솔로몬의 왕궁이 있는 쪽으로 왕이 사용하는 문입니다. 이 특별한 위치를 얻게 된 것은 제비뿝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결과 때문이었습니다.(잠16:33)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은 여호와 앞에 다 드러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순간을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펴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칭찬을 받으며 복을 받게 됩니다. 나아가서 내 후손들이 복을 받아 잘 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내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는 항상 큰 일을 찾으면서 현재의 작은 일은 소홀히 하는 어리석은 자는 아닙니까? 현재 내게 맡겨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면서 더 큰 일을 맡는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오벧에돔을 통해 우리가 배울 교훈이 무엇인가를 정리하여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의 법대로 섬겨야 합니다. 인간의 훌륭한 생각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성경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려고 그렇게 원하시는 축복을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신 계명을 잘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이제 부터 하나 하나 그것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복을 다 받아 누립시다. 예언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듣고 삶 속에서 지켜나갑시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잠13:13)
2. 오벳에돔의 순종은 큰 축복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맡겨지는 주님의 일을 거부하지 맙시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신27:10)
3. 웃사에게는 법궤를 인하여 진노가 내렸으나, 같은 법궤를 인하여 오벧에돔의 집에는 복이 내렸습니다. 여기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받아들이는 자와 거스리는 자 사이를 축복과 저주의 선으로 갈라 놓습니다.(신11:26-28, 고후2:15-16)
4. 오벧에돔은 법궤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익히 잘 알고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궤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여 섬겼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오벧에돔이 법궤를 그의 집에 모셔들인 것처럼 하나님을 나의 생활 중심에 모셔들여야 합니다. 혹시 우리 주위에 하나님을 생활의 주인으로 모시기를 꺼리고 자기 자신이 우선이 되어 사는 성도들은 없습니까? 만약 그러한 자가 있다면 그는 법궤를 꺼려하는 자와 같습니다.
5. 오벧에돔은 자기 집에 법궤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석달 동안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그리고 법궤가 다윗의 성으로 옮겨진 후에도 그 법궤를 지키는 문지기로 충성을 다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한 봉사자였습니다. 참된 기쁨과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 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6.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어떻게 모시느냐에 따라 복의 향방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잠시 창조 동산으로 되돌아 가보면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복을 주셨듯이 원래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서 사울 시대에 아비나답의 집으로 언약궤를 모신 후 20년이 지나고 다윗이 왕이 되어 그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과정에서 3개월 간 오벧에돔의 집에 모시게 됩니다.
아비나답은 20년의 긴 세월 동안 하나님을 모셨지만 별로 축복 받았다는 말이 없다. 반면에 오벧에돔은 3개월의 짧은 기간에도 정성을 다해 모셨기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서 정성껏 열성으로 모실 때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시37:4)
참고로 오벧에돔이라는 동명이인으로는 레위 자손 여두둔의 아들인데 다윗이 약대를 조직하는 중 저는 비파와 수금을 탔고 겸하여 궤 앞에서 문지기를 한 자가 있고(대상15:18-24, 대상16:5), 또 유대국 아마샤 왕 때 성전기명을 간수하는 자인데 그때에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 성전의 금은과 기명과 왕궁의 재물을 약탈하고 백성을 포로로 잡아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습니다.(대하25:21- 24)
성도 여러분! 오벧에돔은 기쁨으로 법궤를 영접하였습니다. 또한 충성스럽게 그 법궤를 섬겼던 용기있는 신앙으로 큰 복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법궤를 통해 저주받은 자도 있고 오벧에돔과 같이 축복을 받은 이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복을 받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는 사단이 틈타는 고난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벧에돔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서 기쁘고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 되어 영육간에 큰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한태완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