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하시는 하나님  (시 139:1-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평강이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목표는 '진보하는 교회'인데, 저는 줄곧 경건 생활에서 우리가 크게 진보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해 왔습니다. 만약 경건 생활에 진보가 없다면, 우리의 신앙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앙이 정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합니다. 남들의 신앙이 진보하니까 나의 신앙이 퇴보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남의 신앙이 진보하든 퇴보하든, 내 신앙이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퇴보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여러분에게 경건 생활의 핵심은 예배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배만큼 우리의 신앙을 진보시키는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배는 경건 생활의 꽃이요, 경건 생활의 총체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산 제사로서 살아 있는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저는 우리의 예배가 단지 교회당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활을 통해 영광을 받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교회당 안에서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나 촛불 혹은 성경이나 우리 가운데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성전 안에 임재하셨고, 특히 지성소의 법궤 위에 강하게 임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법궤 안에는 십계명 돌판과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 만나가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성전 안에서만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 임재하셨고, 그들 앞을 인도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성전 안에서 계시지 않고,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공간 속에서 살아야 하는 피조물이므로 전후와 좌우, 밖과 안을 구분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공간 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므로 우리처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특정한 공간 앞이나 뒤 혹은 안이나 밖에 계신 분이 아니라 어디에도 계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온 우주 만물 가운데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이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안 계신 곳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어려운 한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온 우주에 편재(偏在)하신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고 말했습니다. 영은 흔히 바람과 비교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요한은 바람의 출처와 방향을 알 수 없듯이, 성령의 활동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람은 또 다른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바람은 안 부는 곳이 없고,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지구 대기권을 떠나면, 바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인위적으로 공기를 막거나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하십니다. 사람이 성령을 영접하거나 성령을 거부할 수는 있을지라도,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거나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 가운데 온 우주에 충만히 임재하십니다. 우리가 호흡할 수 있는 것도 공기 덕분이듯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것도 공기를 창조하시고 공기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영 덕분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늘 공기를 들어 마셔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을 때에 사람들은 심장이 멈추었다고도 말하지만, 사람이 숨을 거두었다고 말합니다. 시편 기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 기운으로 이루었도다"(시 33:6). 여기서 입 기운은 하나님의 영을 말합니다. 욥도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욥 33:4).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성령 가운데서 어디나 계시므로 우리도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기가 어디나 있지만, 살아 있으면서도 공기가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기와 백치 혹은 정신질환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디나 계시지만,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신론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공기를 알기는 하지만, 공기의 소중함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지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존재는 믿지만, 하나님을 예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약하거나 교만한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나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임재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잘 들어가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연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연습한다면, 하나님의 임재는 습관으로 자리잡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제 말이 아니라, 일평생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감으로써 많은 성도들에게 큰 감화를 끼친 로렌스 형제의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그 유익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      

(1)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려면, 순결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을 불쾌하게 할 어떤 행동이나 말,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우리는 늘 이렇게 살기 어렵고 때때로 넘어집니다. 그럴 때에 즉시 회개하고 겸손히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십시오. 만약 우리가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되면, 지체없이, 연기하지 말고 회개하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왜냐하면 우리가 하루를 더 살 것이라는 보증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갑자기 우리를 습격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일을 연기하지 마십시오. 아퀴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은 그에게 회개할 내일도 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다."

(2)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려면, 마음의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십시오. 잠잠한 믿음과 겸손한 사랑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방해하는 세상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으십시오. 염려의 90 퍼센트 이상은 대개 부질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끊임없이 염려합니까? 하나님의 임재와 도우심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가까이 오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고 굳게 약속하셨건만, 사람들은 그럴수록 바람개비처럼 쉽게 흔들리는 사람과 세상을 더욱 의지함으로써, 더욱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세계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원래 첼로 연주자로서 심한 근시 때문에 연주할 때에 제대로 악보를 볼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속해 있던 악단의 지휘자가 병원에 갑자기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단원 들 중 누군가에게 지휘를 부탁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악보를 몽땅 외우고 있던 토스카니니가 선발되어서 지휘자를 대신해 지휘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토스카니니의 시력이 그토록 나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첼로 연주자로 일생을 마쳤을 지도 모릅니다. 시력이 나빠서 악보를 외워야 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서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괴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은 더 큰 능력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합니다. 토스카니니는 회고록에서 "어려울 때에 힘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좋은 환경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좋은 환경만이 좋은 결과를 거 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과 같은 좋은 환경에서도 타락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십니다.

(3)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려면,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기로 결심하십시오.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그리고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십시오. 언제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하는 것을 공급해 주시기를 요청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인생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실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활동한 사람들 중에 한국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킴 윅스입니다. 그녀는 한국 전쟁 때에 실명한 후에 고아원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떤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인디아나 주립대학에서 공부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성악 수업을 한 후, 그녀는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게 된 후, 빌리 그래함 목사와 함께 집회를 할 때마다 간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장님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는 목적지에 꼭 도착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보이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하면서 살면, 하나님께서는 내일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그곳에 도달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전적으로 믿고,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에 전적으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매일 여러분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유익

(1)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갈 때에 우리가 얻는 유익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먼저 우리의 모든 일 속에서 믿음이 살아나 힘차게 운동합니다. 특히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에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방식에 익숙해지면,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하나님께서 가까이 계신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하나님을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우리를 더욱 강건하게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비례해서 자라납니다, 우리의 소망은 더욱 확고히 자라게 되며, 우리의 생활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 때, 우리의 의지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완전히 태워버립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고, 더욱 사랑하게 되고, 더욱 섬기게 되고, 더욱 찬양하게 되고, 더욱 예배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갑시다.

하나님의 존재는 믿어도 하나님의 임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더욱 적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놀랍고 큰 유익을 깨닫기만 한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이 권고한 대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합시다.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려고 더욱 힘씁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부귀영화도 아니고, 입신양명도 아니며, 부귀장수도 아닙니다. 이런 것들은 잠깐 뿐이며, 덧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웨슬리). 이것은 영원한 것이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가장 귀중한 보배입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도, 괴로우나 즐거우나, 하나님과 늘 함께 하기를 애쓰십시오. 하나님이 임재가 주는 풍성한 유익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이신건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