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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항복한 사람들 (창32장 24~29절)
짐승들은 물에 집어넣어도 물에 빠져 죽지 않지만 사람은 수영할 줄 모르는데 물에 넣으면 허우적거리다 빠져 죽습니다. 그러나 수영 한번 배운 일이 없는 개나 고양이를 물에 넣어 보십시오. 빠져 죽지 않고 헤엄을 잘 칩니다. 그 이유는 짐승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물에 몸을 맡기고 손발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수영을 쉽게 배우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제일 먼저 깊지 않은 물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온몸을 물에 맡기고 엎드리십시오. 처음엔 가라앉지만 조금 있으면 뜹니다. 숨을 안 쉬고 손발을 움직이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겁먹지 말고 몸을 물에다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께 맡기고 항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활동하기 전에 하나님께 맡기고 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할 때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항복”(surrender)이나 “복종”(submission)이란 현대사회에서 좋아하지 않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이 싫어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할 때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사였던 Hudson Taylor가 선교사 생활에 실패를 거듭하고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아서 너무 고민한 나머지 불면증에 걸리고 몸은 야위어가고 건강이 악화되어 갈 때 영국에 있는 누이에게 사실을 말했더니 누이가 대답하기를 “너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푹 쉬는 법을 배우라, 포도나무 가지가 원줄기에 잘 붙어 있기만 하면 영양분이 올라와 꽃필 때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열매 맺게 된단다”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마음에 평안이 오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동쪽으로 뻗어야겠는데, 꽃을 피워야 하겠는데, 하고 염려하고 힘쓸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지요. 1밀리도 떨어지지 않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 맺기 전에 하나님께 맡기고 항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물을 흘려보내는 대나무와 같습니다. 물을 잘 흘려보내려면 속에 가로막힌 칸막이가 다 없어져야 합니다. 고통스러워도 가로막힌 속을 다 깨Em려 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육에 속한 자아, 고집, 교만이 깨어지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하나님께 유용한 그릇이 되고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항복하게 됩니다.
①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모든 신앙의 문제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시고, 해와 달과 수억만 개의 별들을 지으시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고 했습니다.
② 사랑이 극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도록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리시고 못 박히신 모습은 마치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 너 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2-4)
③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성공도, 실패도, 아픔도, 상처도, 지나고 보면 모두 우리에게 좋게 해주시는 좋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능력이 무한하시고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좋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항복해서 손해날 것이 무엇이며 맡기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레미아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항복할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들
①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떠나라”고 할 때 목적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 그는 100세나 되어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줄 때는 언제고 도로 달랠 때는 언제입니까?” 하지도 않았고, “차라리 내 생명을 드리면 드렸지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도 않았습니다. “낳을 수 없을 때 낳게 하신 하나님이 재 가운데서라도 살려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믿음으로 순종하고 드렸습니다. 완전히 항복했기 때문에 고집도 욕심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탄복하시며, 창세기 22장 16-17절에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완전히 항복하면 꼭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지만 도리어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② 야곱
야곱은 꾀가 많고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형 대신 양의 가죽을 손목과 목에 감고 들어가 축복을 가로챈 사람입니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머슴살이하며 번 많은 소떼, 양떼, 처자식들을 이끌고 돌아오는데 충격적인 소식이 왔습니다. 20년 전에 속여먹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온다는 것입니다. 심장이 멎을 듯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때 많은 소떼, 양떼를 형 에서에게 선물로 보내고 가족들도 보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자기는 가지 않고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며 목숨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새벽이 되도 붙잡고 놓지 않으니까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치자 와지끈 하고 환도뼈가 위골이 되어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환도뼈는 신체의 제일 강한 부분인데 그것을 깨뜨려 항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8)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모자라서 야곱에게 졌겠습니까? 아닙니다. 환도뼈가 위골이 되면서 야곱은 항복한 것입니다. 항복한 것이 하나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은 진정한 승리자가 됩니다. 마귀를 이기고, 경쟁자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은 항복을 얻기 위해 고난의 방망이로 치십니다.
③ 요셉
요셉은 부모에게도,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는 훌륭한 인물인데도 형들이 시기하여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했고, 은 20량에 팔려 멀고 먼 애굽나라에서 종살이를 했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쳤는데도 축복은커녕 몇 년씩이나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맡기고 항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고 잘 참을 수 있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안 했더라면, 형들이 종으로 팔아먹지 않았더라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도 없었고 자기 민족과 애굽 사람들을 기근에서 살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은 억울함도, 분함도 잘 참을 수 있습니다.
④ 모세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40살이나 되도록 왕자의 대접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했고 혈기가 왕성해서 하나님이 귀한 인물로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살인범이 되어 광야로 도망가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며 40년이나 고생하게 했습니다. 모세는 자존심도 다 죽고 혈기도, 욕망도 다 죽은 다음에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그제서야 가시나무 떨기 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야, 모세야, 네가 내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40년 쓰시기 위해 80살이 되도록 훈련시켰습니다. 완전히 항복한 다음에야 쓰셨습니다.
⑤ 수제자 베드로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실 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예수님 말씀대로 세 번이나 주를 부인했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육신적인 자아와 혈기에서 나온 말이지 영에서 나온 신앙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실패를 맛본 후에 점점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들어오?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을 때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을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게 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비우고 항복한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예수님은 목수이므로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가 더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지식, 경험 다 버리고 순종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할 때에 이런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주님, 모르는 말씀 마십시오. 주님은 목수일은 잘 알아도 고기 잡는 데는 제가 전문가입니다” 그러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과 축복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뒤에도 다른 배를 손짓하여 불러다가 나누어 가졌습니다. 제가 잘나서 많이 잡은 것이 아니니까요. 또 많이 잡았다고 기뻐 뛰며 춤춘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무릎을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며 베드로 자신은 아무것도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주님께 항복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서 베드로는 고기를 잡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잡아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완전히 깨어지고 녹아져서 항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⑥ 마리아
두 마리아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하나는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리라고 일러줄 때 “나는 사내를 접촉한 일도 없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천사가 대답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항복하는 태도로 응답했습니다. 당시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때려죽이는 법인데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큰 모험이요, 완전히 항복한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면 망할 것 같고 실패할 것 같고 굶어죽을 것 같아 전적으로 항복하지 못합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그 향유가 적어도 300데나리온 값이 나가는 비싼 향유인데 그 돈은 노동자가 일 년 일한 봉급에 해당한 것이고 그만한 돈을 저축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저축해서 장만한 것이고 아마도 시집갈 밑천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좋을텐데 왜 허비하느냐고 꾸짖는 가룟 유다를 예수님은 책망하시고 마리아는 칭찬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마리아의 행적도 전파되리라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항복한다는 것은 숙명론적으로 단념하는 것이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투쟁이고 삶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항복하는 사람을 지켜보시다가 큰 그릇으로 쓰시고 엄청난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온전히 항복하고 내어 맡긴 아브라함을 보시고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시며 큰 복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 패배하는 것이 아니고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의 길이며 진정한 복을 받는 길입니다.
5병2어를 주님의 손에 맡겨드린 그 소년 때문에 굶주린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아서 12바구니나 거두었는데 그것은 이 소년이 집에 가져갔을 것입니다. 또 전설에 의하면 그 소년이 Poly Karp 같은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항복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길이 열리는데 사람들은 죽는 줄 알고, 망하는 줄 알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목회사역도 내가 내 힘으로 하는 줄 알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밤잠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주님의 양떼이지” 하고 주님께 맡기고 두 시간, 세 시간,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힘이 솟구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5병2어의 기적처럼 몇십 프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10배, 100배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살고, 내가 살면 교회가 죽는다”(我死卽敎會生, 我生卽敎會死)는 말은 참으로 진리입니다.
C.C.C. 세계 총재 Bill Bright 박사는 세계 대학생 수억 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분인데, 어느 분이 묻기를 “빌, 왜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시고 당신의 삶에 그렇게 많은 복을 주시는 걸까요?” 하니까 “나는 젊었을 때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나는 직접 계약서를 쓰고 그 밑에 서명을 했는데 거기에 ‘바로 이 날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썼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제 맘대로 못하고 완전히 항복한 사람입니다.
출처/김홍도 목사 설교 중에서
짐승들은 물에 집어넣어도 물에 빠져 죽지 않지만 사람은 수영할 줄 모르는데 물에 넣으면 허우적거리다 빠져 죽습니다. 그러나 수영 한번 배운 일이 없는 개나 고양이를 물에 넣어 보십시오. 빠져 죽지 않고 헤엄을 잘 칩니다. 그 이유는 짐승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고 물에 몸을 맡기고 손발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수영을 쉽게 배우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제일 먼저 깊지 않은 물에서 숨을 들이마시고 온몸을 물에 맡기고 엎드리십시오. 처음엔 가라앉지만 조금 있으면 뜹니다. 숨을 안 쉬고 손발을 움직이면 앞으로 나아갑니다. 겁먹지 말고 몸을 물에다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께 맡기고 항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활동하기 전에 하나님께 맡기고 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할 때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항복”(surrender)이나 “복종”(submission)이란 현대사회에서 좋아하지 않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이 싫어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할 때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내지 선교사였던 Hudson Taylor가 선교사 생활에 실패를 거듭하고 하는 일마다 되지 않아서 너무 고민한 나머지 불면증에 걸리고 몸은 야위어가고 건강이 악화되어 갈 때 영국에 있는 누이에게 사실을 말했더니 누이가 대답하기를 “너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푹 쉬는 법을 배우라, 포도나무 가지가 원줄기에 잘 붙어 있기만 하면 영양분이 올라와 꽃필 때 꽃피고, 열매 맺을 때 열매 맺게 된단다”라고 했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마음에 평안이 오고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동쪽으로 뻗어야겠는데, 꽃을 피워야 하겠는데, 하고 염려하고 힘쓸 필요가 있습니까? 아니지요. 1밀리도 떨어지지 않고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 맺기 전에 하나님께 맡기고 항복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물을 흘려보내는 대나무와 같습니다. 물을 잘 흘려보내려면 속에 가로막힌 칸막이가 다 없어져야 합니다. 고통스러워도 가로막힌 속을 다 깨Em려 버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육에 속한 자아, 고집, 교만이 깨어지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하나님께 유용한 그릇이 되고 승리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항복하게 됩니다.
①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운행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모든 신앙의 문제는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다와 육지를 지으시고, 해와 달과 수억만 개의 별들을 지으시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9:23)고 했습니다.
② 사랑이 극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도록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분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팔을 벌리시고 못 박히신 모습은 마치 “나는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 너 없이 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2-4)
③ 모든 것이 합력하여 좋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성공도, 실패도, 아픔도, 상처도, 지나고 보면 모두 우리에게 좋게 해주시는 좋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렇게 능력이 무한하시고 생명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좋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항복해서 손해날 것이 무엇이며 맡기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좋은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레미아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맡기고 항복할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들
① 아브라함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버리고 떠나라”고 할 때 목적지도 모르고 떠났습니다. 그는 100세나 되어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줄 때는 언제고 도로 달랠 때는 언제입니까?” 하지도 않았고, “차라리 내 생명을 드리면 드렸지 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도 않았습니다. “낳을 수 없을 때 낳게 하신 하나님이 재 가운데서라도 살려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믿음으로 순종하고 드렸습니다. 완전히 항복했기 때문에 고집도 욕심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탄복하시며, 창세기 22장 16-17절에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완전히 항복하면 꼭 망할 것 같고 죽을 것 같지만 도리어 엄청난 축복을 받게 됩니다.
② 야곱
야곱은 꾀가 많고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형 대신 양의 가죽을 손목과 목에 감고 들어가 축복을 가로챈 사람입니다. 그러나 20여 년 동안 머슴살이하며 번 많은 소떼, 양떼, 처자식들을 이끌고 돌아오는데 충격적인 소식이 왔습니다. 20년 전에 속여먹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온다는 것입니다. 심장이 멎을 듯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때 많은 소떼, 양떼를 형 에서에게 선물로 보내고 가족들도 보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불안해서 자기는 가지 않고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을 하며 목숨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새벽이 되도 붙잡고 놓지 않으니까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치자 와지끈 하고 환도뼈가 위골이 되어 절름발이가 되었습니다. 환도뼈는 신체의 제일 강한 부분인데 그것을 깨뜨려 항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32:28)고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힘이 모자라서 야곱에게 졌겠습니까? 아닙니다. 환도뼈가 위골이 되면서 야곱은 항복한 것입니다. 항복한 것이 하나님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은 진정한 승리자가 됩니다. 마귀를 이기고, 경쟁자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깁니다. 하나님은 항복을 얻기 위해 고난의 방망이로 치십니다.
③ 요셉
요셉은 부모에게도, 하나님께도, 사랑을 받는 훌륭한 인물인데도 형들이 시기하여 구덩이에 빠져 죽을 뻔했고, 은 20량에 팔려 멀고 먼 애굽나라에서 종살이를 했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쳤는데도 축복은커녕 몇 년씩이나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맡기고 항복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평하지 않고 잘 참을 수 있었습니다. 십수 년이 지나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생활을 안 했더라면, 형들이 종으로 팔아먹지 않았더라면, 애굽의 총리가 될 수도 없었고 자기 민족과 애굽 사람들을 기근에서 살릴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은 억울함도, 분함도 잘 참을 수 있습니다.
④ 모세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40살이나 되도록 왕자의 대접을 받으며 살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강했고 혈기가 왕성해서 하나님이 귀한 인물로 쓰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살인범이 되어 광야로 도망가 이드로의 양 무리를 치며 40년이나 고생하게 했습니다. 모세는 자존심도 다 죽고 혈기도, 욕망도 다 죽은 다음에 완전히 하나님께 항복했습니다. 그제서야 가시나무 떨기 불 가운데 나타나셔서 “모세야, 모세야, 네가 내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해내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40년 쓰시기 위해 80살이 되도록 훈련시켰습니다. 완전히 항복한 다음에야 쓰셨습니다.
⑤ 수제자 베드로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실 때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장담했지만 결국 예수님 말씀대로 세 번이나 주를 부인했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은 육신적인 자아와 혈기에서 나온 말이지 영에서 나온 신앙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실패를 맛본 후에 점점 자아가 깨어지고 하나님께 항복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들어오?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했을 때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을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물을 내렸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어지게 될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자기를 비우고 항복한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예수님은 목수이므로 어부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가 더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지식, 경험 다 버리고 순종하였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항복할 때에 이런 기적과 축복이 나타난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주님, 모르는 말씀 마십시오. 주님은 목수일은 잘 알아도 고기 잡는 데는 제가 전문가입니다” 그러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과 축복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기를 많이 잡은 뒤에도 다른 배를 손짓하여 불러다가 나누어 가졌습니다. 제가 잘나서 많이 잡은 것이 아니니까요. 또 많이 잡았다고 기뻐 뛰며 춤춘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무릎을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며 베드로 자신은 아무것도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주님께 항복한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을 통해서 베드로는 고기를 잡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를 잡아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했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완전히 깨어지고 녹아져서 항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⑥ 마리아
두 마리아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하나는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리라고 일러줄 때 “나는 사내를 접촉한 일도 없는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천사가 대답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고 완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기고 항복하는 태도로 응답했습니다. 당시 처녀가 잉태하면 돌로 때려죽이는 법인데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큰 모험이요, 완전히 항복한 태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면 망할 것 같고 실패할 것 같고 굶어죽을 것 같아 전적으로 항복하지 못합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는 그 향유가 적어도 300데나리온 값이 나가는 비싼 향유인데 그 돈은 노동자가 일 년 일한 봉급에 해당한 것이고 그만한 돈을 저축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 저축해서 장만한 것이고 아마도 시집갈 밑천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좋을텐데 왜 허비하느냐고 꾸짖는 가룟 유다를 예수님은 책망하시고 마리아는 칭찬했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마리아의 행적도 전파되리라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항복한다는 것은 숙명론적으로 단념하는 것이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투쟁이고 삶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삶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항복하는 사람을 지켜보시다가 큰 그릇으로 쓰시고 엄청난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입니다.
온전히 항복하고 내어 맡긴 아브라함을 보시고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하시며 큰 복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 패배하는 것이 아니고 거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의 길이며 진정한 복을 받는 길입니다.
5병2어를 주님의 손에 맡겨드린 그 소년 때문에 굶주린 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아서 12바구니나 거두었는데 그것은 이 소년이 집에 가져갔을 것입니다. 또 전설에 의하면 그 소년이 Poly Karp 같은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항복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길이 열리는데 사람들은 죽는 줄 알고, 망하는 줄 알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목회사역도 내가 내 힘으로 하는 줄 알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밤잠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내 교회입니까? 주님의 양떼이지” 하고 주님께 맡기고 두 시간, 세 시간, 기도하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힘이 솟구침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5병2어의 기적처럼 몇십 프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10배, 100배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내가 죽으면 교회가 살고, 내가 살면 교회가 죽는다”(我死卽敎會生, 我生卽敎會死)는 말은 참으로 진리입니다.
C.C.C. 세계 총재 Bill Bright 박사는 세계 대학생 수억 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분인데, 어느 분이 묻기를 “빌, 왜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시고 당신의 삶에 그렇게 많은 복을 주시는 걸까요?” 하니까 “나는 젊었을 때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나는 직접 계약서를 쓰고 그 밑에 서명을 했는데 거기에 ‘바로 이 날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라고 썼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종은 제 맘대로 못하고 완전히 항복한 사람입니다.
출처/김홍도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