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27
행복한 가정이란 (잠15:16-20)
요즘 들어서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지수로 표시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염지수라든가, 자외선 지수나 오존지수 그리고 황사의 지수라든지 이렇게 생활이나 환경에 대한 지수들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표현하는 지수에는 무형적인 요소들도 지수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복지수라든가 혹은 불쾌지수라든가 아니면 고객만족지수라든가 이렇게 심리적인 부분에까지 수치로 표현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사람의 정신적인 것까지 어떤 수치로 계산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좀처럼 높아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것은 돈이 많은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반드시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위가 행복지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것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반드시 더 행복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가정이라는 말에는 아무도 異議를 가지지 않습니다. 가정이 행복해야 행복하고 가정이 불행하면 불행하다는 말은 사람의 행복지수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에덴동산의 한 가정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장 먼저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가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가정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밀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정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불행도 가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인생의 첫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벗어난 가정에는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한 가정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터전 위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가정에 들어 온 후에 가정은 모든 관계가 하나 하나 불행을 주는 관계로 변해갔습니다.
먼저 말씀을 벗어난 부부의 관계 속에 불행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고 아내는 남편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을 벗어난 부모와 자식의 관계 속에도 불행이 왔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죄를 지은 이후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자녀를 얻게 됨을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형제와 형제 사이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부부 관계가 행복해야 되는데, 부모와 자녀 사이가 행복해야 되는데, 형제가 서로 화목해야 행복한데 오히려 서로를 불행하게 하는 관계로 변질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다른 관계는 저절로 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관계의 원리입니다.
욥 22: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잠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페스탈로치는 기독교의 위대한 업적은 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변화시키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교회는 가정에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하고 신앙생활의 열매는 무엇보다 가정을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가 어느 사회에서나 그 시대의 가정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능력 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가정들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으로 행하신 이적은 한 가정을 말씀 위에서 치유하시고 행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세상에서 역사하셨던 대상도 한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한 가정이었던 사실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삭게오의 가정을 찾아 가셨고 베드로는 고넬료의 가정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지상교회는 바로 가정에서 출발했습니다. 이것은 가정과 교회는 공동의 터전 위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행복한 가정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말씀을 보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의 비결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른 가정이 행복한 가정입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기초는 바로 신앙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가정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가정에 자녀를 주신 분이십니다. 가정의 축복은 여호와를 경외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오늘 말씀에도 다른 것은 없어도 가정이 존재할 수 있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가정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하나님을 섬기는 원리가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먼저 가족들이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보면 너희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키라 제 칠일은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들이나 네 남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계명에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은 개인적인 계명이 아니라 가정에 주신 계명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가족이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개인만 지킬 수 없습니다. 가족이 함께 지켜야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무엇보다 가족이 주일을 성수하는데 서로 협력을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가정의 사명입니다. 신 6:7 너희는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고 문지방과 문설주에 적어 놓으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자녀에게 물려주는 것은 가정의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은 가정을 통해서 자녀에게 말씀을 물려준 가정은 복을 받은 가정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물려주지 못한 가정은 불행한 가정입니다. 때문에 가정은 자녀에게 말씀을 물려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세 가정 가운데서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한 가정들이 있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잠을 자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사람이 함께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을 버림을 받고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다가 한 사람은 들림을 받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삶의 공동체로써의 가정은 많지만 믿음의 공동체로의 가정은 적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건전한 인간관계를 가져야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다음은 가족이 서로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가정의 심각한 문제는 가족이 서로 미워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많은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기도 하지마는 상처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살면서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대상이 있다면 자기 가족에게서 일 것입니다. 가정에서 인간관계를 바로 세우려면 다른 사람을 보면 안됩니다. 사람의 교훈을 따라 살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하라고 하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가정생활에서 인간관계에 문제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초의 가정이 말씀을 순종치 않는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으므로 깨어진 가족관계를 말씀을 지키므로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보여준 곳이 바로 가나 혼인 잔치집이었습니다. 말씀이 문제를 치유합니다. 때문에 인생이 행복하려면 가정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야 합니다. 성경 말씀은 가정의 인간관계를 특별히 몇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입니다.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아들로써 순종의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 27:16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엡 6:1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과 교회와의 관계로 묘사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자녀에 대한 계명입니다. 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말씀하셨고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3. 물질생활이 건강해야 행복한 가정입니다.
여기 물질 생활을 언급하는 말씀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가정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고 살진 소를 먹으며 사는 가정이 나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가정의 기초를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인간관계는 가정의 골격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은 가정의 삶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때문에 가정에 물질은 중요한 것이고 가정의 삶은 물질에 철저하게 의존하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은 가난한 가정도 불행한 가정이 아니라 크게 부한 가정보다도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채소를 먹는 가정도 살진 소를 먹는 가정보다도 더 사랑하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도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내가 가진 물질적인 상황속에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물질이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신앙과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채소를 먹으며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미워하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신앙과 사랑은 물질적 가난을 극복하고 그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도에는 일 년에도 수백 명의 아내들이 지참금을 적게 가져 왔다고 아내를 살해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 지참금이 적다고 아내에게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죽였던 사건도 있었고 심지어 임신한 부인을 지참금이 적다는 이유로 불태워서 살해한 사건도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은 물질이 신앙과 사랑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을 정말 명심해야 합니다.
북한에 다녀오신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남한과 북한의 삶을 묘사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못 사는 것을 모르고 남한 사람들은 자신이 잘 사는 것을 모른다 고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은 생활 형편으로 본 인간의 행복지수와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지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엔개발계획에서 행복지수를 조사하는 내용이 인간개발지수 즉 HDI 인데 이 지수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수치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평균수명, 교육지수, 성인문맹율, 국민소득 등을 기초로 국민들의 생활의 질로 사람의 행복을 표현하는 지수입니다. 1등이 노르웨이 그리고 스웨덴 캐나다 벨기에 호주 미국 아이슬란드 네들란드 일본 순이고 한국은 173개국 중에 27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행복지수는 그것과는 매우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의 어떤 교수가 150개국 국민을 상대로 스스로 느끼는 행복도를 조사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가 1등을 했고 미국은 46위를 기록했다는 기사가 육아잡지 앙팡이라는 곳에 실렸습니다. 이것은 생활지수와 행복지수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처/조병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