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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전도사 (고린도후서 5:17-21)
1954년 미국 밀워키 북부의 한 마을에서 4남매 중 막내아들이 태어납니다.
그는 피부색이 검은 ‘크리스 가드너’입니다. 어머니가 재혼한 양아버지의 심한 폭력성으로 인한, 가정적인 불화로 위탁양육을 받습니다. 1972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만, 학비마련이 어려워서 대학진학을 하지 못합니다. 1972년 해군에 입대하여 의무병으로 일하다가 재대한 후에, 의사가 되어보려고 노력하였으나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서 의료기 세일즈맨으로 일하게 됩니다. 가진 돈을 다 투자해서 한꺼번에 구입한 의료기를 집에 쌓아두고 열심히 팔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한물간 의료기는 좀처럼 팔리지 않습니다.
넉넉지 못한 결혼생활에 아내 ‘린다’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81년 아들 ‘크리스토퍼’가 태어난 다음 아내는 가출합니다. 집세를 내지 못하여 쫓겨나고,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하여 일하면서도 아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 때문에 겪었던 비극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그 어려운 때에도 매일 자신의 살림살이를 다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닙니다.
밤이 되면 노숙자 쉼터를 찾고, 때로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아들과 밤을 지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늦게까지 일하다가 직장의 자기 책상 밑에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1982년 증권거래자격증을 취득합니다.
월가에서 최고의 주식 중개인으로 부상을 하고, 마침내 1987년 독립해서 “가드너 리치 앤 컴퍼니”를 설립하여 지금은 1억 8천만 달러의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2002년 미국 아버지모임에서 “올 해의 아버지 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 출판한 자서전 “행복을 찾아서”가 2006년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금년에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 거리의 노숙자에서 1억 8천만 달러(1,700억원)의 자산가로, 월 스트리트의 전설을 만들기까지 그에게는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어머니 ‘베티 진 트리플릿’ 입니다. 16살 때, 집에서 TV로 대학농구경기를 보면서 말합니다. “와우, 저 선수들은 앞으로 백만 달러나 벌겠네!” 그 때 엄마가 곁에서 말합니다. “얘야, 네가 원한다면 언젠가 ‘너’도 백만 달러를 벌 수 있단다.” 이 말 한 마디가 그의 마음속에 꿈의 불씨를 심어주었습니다.
다음은 주식중매인 ‘밥 브리지스’입니다. 1980년 여름 날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야외주차장에서 빨간색 멋진 페라리 308을 타고 주차할 곳을 찾고 있던 분입니다. 자기주차한 곳을 내주는 대신 두 가지를 묻습니다. “무슨 일을 하세요?” “그 일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이 만남으로 증권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글라이드 감리교회 세실 윌리엄스’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영혼을 고쳐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계속 격려해 주셨습니다. “걷고 또 걸으라. 걷고 또 걸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말로만 걷겠다고 하지 말고, 일어나서 앞을 향해 걸어가라. 성큼성큼 걷지 않아도 된다. 아기처럼 한 발짝 한 발짝 걸어도 충분하다. 앞으로 나아가라.” 목사님은 ‘희망의 행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는 말합니다.
“집은 없었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에게 있어서 이 세 사람은 모두 행복전도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온 몸으로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전도사라는 말은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쁜 소식을 믿는 전도자입니다. 이 세상에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입니다. 이 행복 전도사들로 인하여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주시고, “화해의 말씀”도 주셔서,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깊이 들여다봅시다.
첫째, 5:17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고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 국가 조찬기도회가 홍은동 그랜드 힐턴 호텔 컨벤션에서 열렸습니다. 기도회 장소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경호원들이 공항 검색대에서 검색하듯 하였습니다. 국가수반인 대통령께서 함께하는 곳이니 동참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다 정해지고, 입장할 때는 몸수색도 거쳐야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행복전도사로 자임하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까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또 당연히 새로운 존재답게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5:21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신 분에게, 우리 죄를 대신에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죄인의 모습 그대로는 안 됩니다. 아무나 올 수는 있지만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을 입은 자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다 준비된 잔치에 초청을 받아온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결국은 밖으로 쫓겨나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오른쪽으로 큰 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문은 당시 기억으로는 25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은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그 문으로 한번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여러분 아십시오. 그 문은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요한복음14:6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세상 살다가 무디어지는 구속의 은총을 새록새록 깨닫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주일 예배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새 삶의 중심입니다.
성령님은 이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로마서8:14-16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다시 두려움 속에 빠뜨리는 것은 ‘노예의 영’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날마다 증언하여 주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 확인하여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이것을 요한복음1:13에서는 “자녀가 되는 권세”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모두 죄인이었고,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은혜 속에 들어온 자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당당합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특권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합니다.
“나는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둘째로 5:18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회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그리스도인에게는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하였습니다.
1.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본문5:20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문을 열어놓으시고 기다리시는데 사람들이 자기가 높이 쌓아둔 죄의 장병이 너무 높아 스스로는 그 장벽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59:1,2입니다.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독립문 쪽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를 가보면 담장이 꽤 높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보조 장치를 하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높은 장벽은 하나님이 쌓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쌓은 죄의 담이고 그 담을 뛰어넘지 못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두텁고 견고한 장벽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다 녹여버리셨습니다. 다른 곳으로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가 놓여있는 곳으로, 그 십자가를 통고하는 자만이 그 장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해야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스스로가 그들을 위하여 또 다른 길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열어놓으신 그 유일한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길로 들어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풀립니다.
살길이 있습니다.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어렵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이 길로 오시면 됩니다.
마태복음11:28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2)본문 5:19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화해하라 하십니다.
고린도후서5:19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놀라운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돌보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행복해지는 존재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절입니다.”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부여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화복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3장에서 하나님과 등을 돌린 인간의 세상의 실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버린 인간에게 하나님은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변명만 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인간을 하나님은 에덴에서 추방하십니다.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1)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3:16)
-너희는 사람들과 화목 하라.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 한 사람한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 그들도 사랑하십니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서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이제는 나를 통하여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2)땅과의 전쟁입니다.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창세기3:17,18)
-구원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화목해야 합니다.
로마서8:19-21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곧 피조물도 사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환경의 문제입니다. 환경은 하나님과 등진 사람들의 삶의 현상입니다.
길을 가다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차창 밖으로 던지는 사람들, 자기가 먹은 종이 커피잔들을 아무데나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산에 갔다가 쓰레기를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자연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위임해 주신 동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마저 자연을 괴롭힌다면 자연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동산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산들이 완전히 민둥산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북한과 중국접경지역에 가보면 북한과 중국영토가 현저히 다른 현상이 보입니다. 중국 쪽은 산들이 푸르고 들이 푸르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산들은 완전히 민둥산입니다. 들의 식물들조차 무성하지 못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아주 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니 그 양편에 무슨 기온의 차이가 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출처/최이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1954년 미국 밀워키 북부의 한 마을에서 4남매 중 막내아들이 태어납니다.
그는 피부색이 검은 ‘크리스 가드너’입니다. 어머니가 재혼한 양아버지의 심한 폭력성으로 인한, 가정적인 불화로 위탁양육을 받습니다. 1972년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지만, 학비마련이 어려워서 대학진학을 하지 못합니다. 1972년 해군에 입대하여 의무병으로 일하다가 재대한 후에, 의사가 되어보려고 노력하였으나 꿈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에서 의료기 세일즈맨으로 일하게 됩니다. 가진 돈을 다 투자해서 한꺼번에 구입한 의료기를 집에 쌓아두고 열심히 팔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한물간 의료기는 좀처럼 팔리지 않습니다.
넉넉지 못한 결혼생활에 아내 ‘린다’와의 관계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81년 아들 ‘크리스토퍼’가 태어난 다음 아내는 가출합니다. 집세를 내지 못하여 쫓겨나고, 새로운 일자리에 도전하여 일하면서도 아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아버지 때문에 겪었던 비극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기 위하여, 그 어려운 때에도 매일 자신의 살림살이를 다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닙니다.
밤이 되면 노숙자 쉼터를 찾고, 때로는 지하철 화장실에서 아들과 밤을 지내기도 하고, 심지어는 늦게까지 일하다가 직장의 자기 책상 밑에서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1982년 증권거래자격증을 취득합니다.
월가에서 최고의 주식 중개인으로 부상을 하고, 마침내 1987년 독립해서 “가드너 리치 앤 컴퍼니”를 설립하여 지금은 1억 8천만 달러의 자산가가 되었습니다.
2002년 미국 아버지모임에서 “올 해의 아버지 상”을 수상하였고, 2005년 출판한 자서전 “행복을 찾아서”가 2006년에 영화로 만들어져서 금년에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 거리의 노숙자에서 1억 8천만 달러(1,700억원)의 자산가로, 월 스트리트의 전설을 만들기까지 그에게는 세 번의 중요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어머니 ‘베티 진 트리플릿’ 입니다. 16살 때, 집에서 TV로 대학농구경기를 보면서 말합니다. “와우, 저 선수들은 앞으로 백만 달러나 벌겠네!” 그 때 엄마가 곁에서 말합니다. “얘야, 네가 원한다면 언젠가 ‘너’도 백만 달러를 벌 수 있단다.” 이 말 한 마디가 그의 마음속에 꿈의 불씨를 심어주었습니다.
다음은 주식중매인 ‘밥 브리지스’입니다. 1980년 여름 날 ‘샌프란시스코 종합병원’ 야외주차장에서 빨간색 멋진 페라리 308을 타고 주차할 곳을 찾고 있던 분입니다. 자기주차한 곳을 내주는 대신 두 가지를 묻습니다. “무슨 일을 하세요?” “그 일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이 만남으로 증권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글라이드 감리교회 세실 윌리엄스’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은 그에게 먹여주고, 재워주고, 영혼을 고쳐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계속 격려해 주셨습니다. “걷고 또 걸으라. 걷고 또 걸어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말로만 걷겠다고 하지 말고, 일어나서 앞을 향해 걸어가라. 성큼성큼 걷지 않아도 된다. 아기처럼 한 발짝 한 발짝 걸어도 충분하다. 앞으로 나아가라.” 목사님은 ‘희망의 행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는 말합니다.
“집은 없었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 가드너’에게 있어서 이 세 사람은 모두 행복전도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역시 고난과 시련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온 몸으로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전도사라는 말은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에게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기쁜 소식을 믿는 전도자입니다. 이 세상에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입니다. 이 행복 전도사들로 인하여 세상은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주시고, “화해의 말씀”도 주셔서,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깊이 들여다봅시다.
첫째, 5:17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고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간 국가 조찬기도회가 홍은동 그랜드 힐턴 호텔 컨벤션에서 열렸습니다. 기도회 장소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경호원들이 공항 검색대에서 검색하듯 하였습니다. 국가수반인 대통령께서 함께하는 곳이니 동참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다 정해지고, 입장할 때는 몸수색도 거쳐야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행복전도사로 자임하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할까요?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또 당연히 새로운 존재답게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5:21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신 분에게, 우리 죄를 대신에 죄를 씌우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죄인의 모습 그대로는 안 됩니다. 아무나 올 수는 있지만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을 입은 자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다 준비된 잔치에 초청을 받아온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결국은 밖으로 쫓겨나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정말 웅장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런데 그 성전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오른쪽으로 큰 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 문은 당시 기억으로는 25년마다 한 번씩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은총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그 문으로 한번 들어가야 되지 않을까요? 그러나 여러분 아십시오. 그 문은 예수그리스도뿐입니다.
요한복음14:6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세상 살다가 무디어지는 구속의 은총을 새록새록 깨닫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주일 예배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새 삶의 중심입니다.
성령님은 이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로마서8:14-16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노예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다시 두려움 속에 빠뜨리는 것은 ‘노예의 영’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성령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날마다 증언하여 주십니다. “너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 확인하여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딸이다.”
이것을 요한복음1:13에서는 “자녀가 되는 권세”라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우리 모두 죄인이었고,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그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은혜 속에 들어온 자는 권세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당당합니다. 담대히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특권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합니다.
“나는 행복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둘째로 5:18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회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그리스도인에게는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 하였습니다.
1.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본문5:20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 하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문을 열어놓으시고 기다리시는데 사람들이 자기가 높이 쌓아둔 죄의 장병이 너무 높아 스스로는 그 장벽을 넘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59:1,2입니다.
“주의 손이 짧아서 구원하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주의 귀가 어두워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의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 때문에, 주께서 너희에게서 얼굴을 돌리셔서, 너희 말을 듣지 않으실 뿐이다.”
독립문 쪽에 있는 서대문 형무소를 가보면 담장이 꽤 높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다른 보조 장치를 하지 않고서는 나갈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높은 장벽은 하나님이 쌓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쌓은 죄의 담이고 그 담을 뛰어넘지 못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두텁고 견고한 장벽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다 녹여버리셨습니다. 다른 곳으로는 넘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가 놓여있는 곳으로, 그 십자가를 통고하는 자만이 그 장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해야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스스로가 그들을 위하여 또 다른 길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로 말미암아 열어놓으신 그 유일한 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 길로 들어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풀립니다.
살길이 있습니다.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어렵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냥 믿음으로 이 길로 오시면 됩니다.
마태복음11:28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2)본문 5:19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의 화해하라 하십니다.
고린도후서5:19입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놀라운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하나님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돌보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행복해지는 존재가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절입니다.”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부여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화복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창세기3장에서 하나님과 등을 돌린 인간의 세상의 실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탄의 유혹에 빠져버린 인간에게 하나님은 돌아설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변명만 하고 책임을 전가시키며,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인간을 하나님은 에덴에서 추방하십니다.
그 결과는 참담합니다.
1)인간관계의 갈등입니다.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창3:16)
-너희는 사람들과 화목 하라.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 한 사람한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듯, 그들도 사랑하십니다. 내가 누군가에 의해서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은 것처럼 이제는 나를 통하여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주님께서 원하십니다.
2)땅과의 전쟁입니다.
“이제 땅이 너 때문에 저주를 받을 것이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창세기3:17,18)
-구원받은 자녀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화목해야 합니다.
로마서8:19-21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 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곧 피조물도 사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는 것입니다.”
환경의 문제입니다. 환경은 하나님과 등진 사람들의 삶의 현상입니다.
길을 가다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차창 밖으로 던지는 사람들, 자기가 먹은 종이 커피잔들을 아무데나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산에 갔다가 쓰레기를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 자연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하고 있습니다. 정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만들어 위임해 주신 동산을 잘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책임이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마저 자연을 괴롭힌다면 자연은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동산을 잘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산들이 완전히 민둥산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북한과 중국접경지역에 가보면 북한과 중국영토가 현저히 다른 현상이 보입니다. 중국 쪽은 산들이 푸르고 들이 푸르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산들은 완전히 민둥산입니다. 들의 식물들조차 무성하지 못합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아주 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거리니 그 양편에 무슨 기온의 차이가 날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출처/최이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