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0
반드시 번성케 하리라 (히 6:13-20)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브리서 6:13-20)
희미한 약속이 있고 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럭저럭한 약속이 있고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믿기 어려운 약속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약속이 있습니다.
사람의 약속은 희미하고 불분명하고 믿기 어려운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고 분명하고 정확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정확하고 확실한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나옵니다. 그리고 22장에도 약속이 기록되어 잇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들은 단 하나도 에누리 없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약속의 중심골자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번성케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반복적 약속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고 확실한가를 설명해 줍니다.
'번성'이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번성입니다.
가지치고 뿌리 뻗고 60배, 100배 열매 맺는 것, 아들 딸 낳고 그 씨족이 불어나는 것, 외양간에 소 떼가 불어나고 닭장의 닭들이 불어나는 것 등이 생물학적 번성입니다.
키가 크고 자라고 성장하는 것들을 생물학적 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경제적 번성입니다.
이익이 불어나고 재산이 증식되는 것, 살림규모가 커지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 등을 경제적 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영적번성입니다.
믿음이 자라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주님을 섬기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등이 영적 번성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번성의 복은 세가지를 겸한 번성이었음을 창세기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손이 번성했고 경제가 번성했고 믿음도 번성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의 약속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확실합니다.
14절을 보면 "반드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약속의 확실성을 뜻합니다.
반드시 복주시고 번성케 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도 반드시 응답하심을 믿고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왕 재위 14년 되던 해 앗수르왕 산헤립이 18만5천명 대군을 이끌고 유다 나라를 침공했습니다. 모든 국도와 보급도로를 차단하고 협박과 공갈로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역대하 32:8을 보면 "저와 함께한 자는 육식의 팔이요 우리와 함게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사우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대로 하나님은 앗수르 군사 18만5천명을 물리치고 그 날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반드시 응답하신 것입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앞 길 건너에 큰 나이트클럽이 있었습니다. 교회 입장에선 모양새도 그렇고 밤이 되면 교회 앞길이 술 마시고 춤추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내용은 "주여 저 나이트클럽이 망하여 여기를 떠나게 하여 주옵소서"였습니다. 그런 기도를 시작한지 몇 달 후 그 나이트클럽에 불이나 전소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그 나이트클럽 주인이 교회더러 변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교회가 기도하는 바람에 자기네가 망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건을 심리를 위해 판사가 양측을 불렀습니다.
교회대표에게 물었습니다.
"교회가 술집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이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마다 술집이 망할 줄로 믿고 기도했습니까?"
"무슨 소립니까? 그거야 그냥 해본거죠. 절대로 믿고 기도한 건 아닙니다..."
술집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교회가 당신네 클럽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예, 한달전쯤 알았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기도하는 대로 술집이 망하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반드시 백번, 천번 믿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누가 더 반드시 믿는 사람인가를 생각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주십니다.
2. 변치 않습니다.
17절을 보면 "그 듯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라고 했고 18절을 보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뜻합니다.
고가의 보석일수록 색깔이나 모양이 변하지 않습니다.
금 색깔은 당에 묻어도 변치 않습니다만 은이나 동은 벽에 걸어두어도 색깔이 변합니다.
신앙도 변하는 신앙이 있고 변치 않는 신앙이 잇습니다. 힘들다고 변하고 속상하다고 변하고 병들고 실패했다고 변하면 신앙을 지키는 것이 힘듭니다. 왜냐면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들이 겹겹이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마다 변하면 신앙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3:8을 보면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6:26을 보면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7을 보면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이상 세구절의 교훈은 예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시작과 끝이시라는 것입니다.
1927년 아더루터가 지은 찬송 중에 "이 세상의 친구들"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449장입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일어도
예수 나의 힘 되니 겁낼 것 없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후렴이 중요합니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그렇습니다. 영원히 변치않고 도우시고 함께 하시고 붙드시는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3. 견고합니다.
19절을 보면 "튼튼하고 견고하며"라고 했습니다. 튼튼하고 견고하다는 jt은 건축용어입니다.
유대나라 돌은 석회암이어서 견고하지 못합니다. 개리석이나 화강암에 비하면 약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그 어떤 것보다 견고하고 튼튼합니다.
그 어떤 힘도 예수를 넘어뜨리거나 무너트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는 나의 반석"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것들은 제아무리 크고 견고하다고 해도 무너지고 오래 못갑니다.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여리고 성을 점령한 기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 여리고를 점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바퀴씩 성 주위를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창 한번 던진 일도 없고 활 시위한번 당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이 무너졌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도 비슷합니다.
소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야 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키나 몸무게나 가지고 있는 무기 등 그 어느 것도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윗의 승리였습니다.
이긴 정도가 아닙니다. 이기고 남았습니다.
사무엘상 17:40을 보면 소년 다윗이 돌맹이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 물매에 넣어 던졌습니다. 사무엘 상 17:49을 보면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다고 했습니다. 소년이 던진 돌이 투구를 뚫고 이마에 박힌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승리였습니다.
사무엘상 17:45을 보면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했고 46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라고 했고 47절을 보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다윗의 신앙이었고 그 믿음이 골리앗을 이긴 것입니다.
약하다고 겁낼 것 없습니다. 강하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견고케 하시면 나는 반석보다 견고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그 시로 석은 나무토막처럼 무너지고 스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케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등 모두가 다 하나님이 번성케 해주신 사람들입니다.
이삭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본래 이삭은 성품이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었고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그랄 지방에 살던 이삭이 우물 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삭이 농사가 잘 되고 성공하자 동네사람들이 시기하여 이삭이 판 우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두말없이 옮겨가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물이 솟아났습니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이 덤벼들어 빼앗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양보하고 져주고, 참고, 손해를 감수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창세기 26:12을 보면 하나님이 그 해에 백배나 복을 주셨고 13절을 보면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괴롭힌 사람들은 부자가 못되었습니다.
22절을 보면 그들과 다투지 않고 우물도 빼앗긴 채 그곳을 떠나며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더 넓은 당으로 가게 됐으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쫓겨 가고 빼앗기고 그러면서도 억울해 하지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린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기를 쓰고 앙탈을 부리고 독하게 굴고 인색하게 산다고 해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번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나 사자나 호랑이처럼 피를 먹고 고기를 먹는 야수들은 점점 멸종되어갑니다만 풀을 뜯어먹는 초식동물이나 힘없는 것들은 그 번식률이 높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나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이기려면 져야 합니다. 앞으로 나가려면 한 발짝, 두 발짝 물러나야 합니다. 멀리 뛰려면 더 물러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만을 죽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완성이 안됐을 것입니다.
번성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번성의 주체 즉 번성케 하시는 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하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처럼 독자라도 드리고 이삭처럼 져주고 물러서고 양보해야 합니다.
넷째, 순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번성은 우리의 소원이고 기대입니다.
금년 한 해 영적으로 육적으로 경제적으로 번성하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번성케 하리라시는 주님의 약속이 성도 여러분의 심령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번성하리라. 반드시 번성케 하리라. 아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브리서 6:13-20)
희미한 약속이 있고 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 그럭저럭한 약속이 있고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믿기 어려운 약속이 있고 믿을 수 있는 약속이 있습니다.
사람의 약속은 희미하고 불분명하고 믿기 어려운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고 분명하고 정확합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정확하고 확실한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나옵니다. 그리고 22장에도 약속이 기록되어 잇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들은 단 하나도 에누리 없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약속의 중심골자는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어 번성케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복주고 복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는 반복적 약속이야말로 하나님의 약속이 얼마나 신실하고 확실한가를 설명해 줍니다.
'번성'이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생물학적 번성입니다.
가지치고 뿌리 뻗고 60배, 100배 열매 맺는 것, 아들 딸 낳고 그 씨족이 불어나는 것, 외양간에 소 떼가 불어나고 닭장의 닭들이 불어나는 것 등이 생물학적 번성입니다.
키가 크고 자라고 성장하는 것들을 생물학적 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경제적 번성입니다.
이익이 불어나고 재산이 증식되는 것, 살림규모가 커지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 등을 경제적 번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는 영적번성입니다.
믿음이 자라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고 주님을 섬기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등이 영적 번성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번성의 복은 세가지를 겸한 번성이었음을 창세기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손이 번성했고 경제가 번성했고 믿음도 번성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본문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신 번성의 약속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확실합니다.
14절을 보면 "반드시"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약속의 확실성을 뜻합니다.
반드시 복주시고 번성케 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도 반드시 응답하심을 믿고 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왕 재위 14년 되던 해 앗수르왕 산헤립이 18만5천명 대군을 이끌고 유다 나라를 침공했습니다. 모든 국도와 보급도로를 차단하고 협박과 공갈로 항복을 종용했습니다.
이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역대하 32:8을 보면 "저와 함께한 자는 육식의 팔이요 우리와 함게 하는 자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사우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기도대로 하나님은 앗수르 군사 18만5천명을 물리치고 그 날 큰 승리를 주셨습니다. 반드시 응답하신 것입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앞 길 건너에 큰 나이트클럽이 있었습니다. 교회 입장에선 모양새도 그렇고 밤이 되면 교회 앞길이 술 마시고 춤추러 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교회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내용은 "주여 저 나이트클럽이 망하여 여기를 떠나게 하여 주옵소서"였습니다. 그런 기도를 시작한지 몇 달 후 그 나이트클럽에 불이나 전소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문제는 그 나이트클럽 주인이 교회더러 변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교회가 기도하는 바람에 자기네가 망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건을 심리를 위해 판사가 양측을 불렀습니다.
교회대표에게 물었습니다.
"교회가 술집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한 일이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기도할 때마다 술집이 망할 줄로 믿고 기도했습니까?"
"무슨 소립니까? 그거야 그냥 해본거죠. 절대로 믿고 기도한 건 아닙니다..."
술집주인에게 물었습니다.
"교회가 당신네 클럽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예, 한달전쯤 알았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기도하는 대로 술집이 망하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반드시 백번, 천번 믿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합니다.
역설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누가 더 반드시 믿는 사람인가를 생각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반드시 주십니다.
2. 변치 않습니다.
17절을 보면 "그 듯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라고 했고 18절을 보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을 뜻합니다.
고가의 보석일수록 색깔이나 모양이 변하지 않습니다.
금 색깔은 당에 묻어도 변치 않습니다만 은이나 동은 벽에 걸어두어도 색깔이 변합니다.
신앙도 변하는 신앙이 있고 변치 않는 신앙이 잇습니다. 힘들다고 변하고 속상하다고 변하고 병들고 실패했다고 변하면 신앙을 지키는 것이 힘듭니다. 왜냐면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일들이 겹겹이 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마다 변하면 신앙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3:8을 보면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서 6:26을 보면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7을 보면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라고 했습니다.
이상 세구절의 교훈은 예수님은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시작과 끝이시라는 것입니다.
1927년 아더루터가 지은 찬송 중에 "이 세상의 친구들"이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449장입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일어도
예수 나의 힘 되니 겁낼 것 없네.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후렴이 중요합니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잖네.
온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그렇습니다. 영원히 변치않고 도우시고 함께 하시고 붙드시는 분은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3. 견고합니다.
19절을 보면 "튼튼하고 견고하며"라고 했습니다. 튼튼하고 견고하다는 jt은 건축용어입니다.
유대나라 돌은 석회암이어서 견고하지 못합니다. 개리석이나 화강암에 비하면 약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그 어떤 것보다 견고하고 튼튼합니다.
그 어떤 힘도 예수를 넘어뜨리거나 무너트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는 나의 반석"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세상 것들은 제아무리 크고 견고하다고 해도 무너지고 오래 못갑니다.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여리고 성을 점령한 기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 여리고를 점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에 한바퀴씩 성 주위를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창 한번 던진 일도 없고 활 시위한번 당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이 무너졌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도 비슷합니다.
소년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야 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키나 몸무게나 가지고 있는 무기 등 그 어느 것도 비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다윗의 승리였습니다.
이긴 정도가 아닙니다. 이기고 남았습니다.
사무엘상 17:40을 보면 소년 다윗이 돌맹이 다섯 개를 골라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 물매에 넣어 던졌습니다. 사무엘 상 17:49을 보면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다고 했습니다. 소년이 던진 돌이 투구를 뚫고 이마에 박힌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승리였습니다.
사무엘상 17:45을 보면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했고 46절을 보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라고 했고 47절을 보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다윗의 신앙이었고 그 믿음이 골리앗을 이긴 것입니다.
약하다고 겁낼 것 없습니다. 강하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견고케 하시면 나는 반석보다 견고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면 그 시로 석은 나무토막처럼 무너지고 스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케 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 등 모두가 다 하나님이 번성케 해주신 사람들입니다.
이삭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본래 이삭은 성품이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었고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26장을 보면 그랄 지방에 살던 이삭이 우물 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삭이 농사가 잘 되고 성공하자 동네사람들이 시기하여 이삭이 판 우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삭은 두말없이 옮겨가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물이 솟아났습니다. 그러자 동네사람들이 덤벼들어 빼앗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양보하고 져주고, 참고, 손해를 감수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창세기 26:12을 보면 하나님이 그 해에 백배나 복을 주셨고 13절을 보면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을 괴롭힌 사람들은 부자가 못되었습니다.
22절을 보면 그들과 다투지 않고 우물도 빼앗긴 채 그곳을 떠나며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더 넓은 당으로 가게 됐으니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24절을 보면 쫓겨 가고 빼앗기고 그러면서도 억울해 하지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린 이삭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기를 쓰고 앙탈을 부리고 독하게 굴고 인색하게 산다고 해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고 번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수리나 사자나 호랑이처럼 피를 먹고 고기를 먹는 야수들은 점점 멸종되어갑니다만 풀을 뜯어먹는 초식동물이나 힘없는 것들은 그 번식률이 높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나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이기려면 져야 합니다. 앞으로 나가려면 한 발짝, 두 발짝 물러나야 합니다. 멀리 뛰려면 더 물러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만을 죽지 않으셨다면 구원의 완성이 안됐을 것입니다.
번성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첫째, 번성의 주체 즉 번성케 하시는 분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하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아브라함처럼 독자라도 드리고 이삭처럼 져주고 물러서고 양보해야 합니다.
넷째, 순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번성은 우리의 소원이고 기대입니다.
금년 한 해 영적으로 육적으로 경제적으로 번성하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번성케 하리라시는 주님의 약속이 성도 여러분의 심령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반드시 번성하리라. 반드시 번성케 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