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8
사 53:4-6 (요 1:29)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인 동시에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대한 믿음과 자세가 점차 약해지고 한갓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한인교회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애통하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미국교인들은 왜 교회에 와서 그렇게 슬퍼하느냐고 묻습니다.
“내 죄를 위하여 죽어주신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 감격스러워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들은 핀잔을 주듯 “그러면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르느냐?”고 대답합니다.
물론 주님의 부활의 중요성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서구나 미국 교회에서는 요즘 예수님의 부활만을 중요시하여 십자가 대신에 예수님의 부활 그림을 교회에 걸어 놓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부활이 중요한 만큼 십자가의 죽으심은 더욱 중요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부활 없는 십자가 또한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부활의 기쁨보다 십자가의 고난만을 생각하며 애통하는 한국교인들도 문제는 있지만 고난을 외면하고 기쁨만 맛보려는 미국교인들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십자가와 부활은 불가분리의 관계이며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은 십자가와 부활을 중점적으로 동시에 증거 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십자가에 대해 무관심한 신자들이 많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다고 자타가 인정할지라도 십자가와 관계없는 신앙은 무익합니다.
십자가의 신앙이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듣는 중에 십자가의 신앙이 모든 성도 여러분께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예화)
세계에서 제일 높은 십자가는 미국 시카고 교회에 세운 십자가라고 하는데 몇 년 전 이 교회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지나가던 차들도 멈췄습니다.
왜냐하면 특별한 관심거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 높은 십자가에 올라가서 십자가를 수리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십자가를 관심있게 쳐다보지 않았는데 사람이 올라가니 쳐다보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십자가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되고 성도들과도 멀어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낙원교회 창립 31주년을 맞이해서 주님이 못 박힌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바라보십시다.
십자가를 똑바로 바라보므로 우리를 위하여 고통당하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의 생명은 구원받고, 영적인 신앙이 성장하게 됩니다.
자!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왜 중요한지 십자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요성을 깨닫고자 합니다.
1. 거룩한 희생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약 시대의 두 가지 모습을 생각할 때에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희생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구약 시대에는 죄지은 사람이 용서받기 위해서는 짐승을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야 했습니다.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를 그 짐승에게 전가시켜 자기 대신하여 짐승이 희생되었던 것입니다.
희생 제물을 드려서 그 짐승이 불에 태워짐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가 불살라 태워지고, 없어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2) 구약 시대에는 1년에 한 번씩 속죄의 절기가 있었습니다.
속죄일에 제사장은 모든 백성들 앞에서 수 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 백성들의 죄를 염소에게 전가시킨 다음 광야로 내쫓습니다.
결국 염소는 광야에서 맹수의 먹이가 되어 죽습니다.
이로써 백성들의 죄가 사해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구약의 종교 행위의 모습은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미리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라고 했던 것은 이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 이후에 인간의 역사는 온통 죄로 물들게 되었습니다.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사망은 곧 인간을 지옥으로 이끄는 도구이며 결국은 영원한 멸망을 가져옵니다.
이처럼 죄로 말미암아 지옥으로 가게 된 온 인류를 살리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모든 죄악을 한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희생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동물이나 어떤 사람의 희생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거룩한 희생인 것입니다.
낙원교회 형제 여러분!
하나님의 어린양,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우리들의 무거운 죄악의 짐을 벗겨 주었다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골고다 언덕 높은 곳에서 못 박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 볼 때에 죄는 씻음 받고, 죄 값인 죽음에서 벗어나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살과 피로 우리를 살리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의 죄를 지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살과 피를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살리신 것입니다.
예화)
연어는 자신이 태어났던 곳을 찾아와 알을 낳고 새끼가 부화하게 되면 곧 죽어 버립니다.
그 이유는 어린 새끼가 어미의 살을 먹고 자라나게 하기 위함이니 이야말로 새끼를 위한 어미의 지극한 사랑이요 거룩한 희생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습니까?
죄에 빠진 우리의 영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흘리신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씻을 수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마치 연어가 제 어미의 살을 파먹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서 우리의 영혼이 살고 자라게 된 것입니다.
878 낙원교회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실 때에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받아먹으라. 이는 너희를 위한 내 살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잔에 포도주를 나눠주시면서 "받아 마시라.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저와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살이 찢기셨고, 피를 흘리셨던 것입니다.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이 저와 여러분의 영을 살리셨고, 지금도 생명으로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도 그분의 피를 마시고, 살을 먹는 것이며 그렇게 될 때 생명이 구원되는 것입니다.
3.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다리가 된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중보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중보자란 중매장이란 말과 같은데 처녀, 총각을 중매하여 연결해 주는 중매장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매 맺으신 분이시기에 '중보자'라고 합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더라면 우리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맺어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은 바로 우리와 하나님을 관계 맺어 주셨습니다.
예화)
프랑스 파리의 어떤 4층집 아랫층에서 불이 나서 점점이 윗층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중 4층에는 아버지와 세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아래층에서 불이 타 올라오자 여러 번 탈출을 시도했으나 출입구가 막혀 있고 불이 워낙 세차게 타올라서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래층에서 타올라 오는 불길과 연기로 세 아들은 질식할 것 같았고 기침을 하며 견뎌 내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아들들을 데리고 옆에 있는 건물을 향한 창문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창문에서 옆집 창까지는 불과 1m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향하여 건너뛰라고 재촉했으나 아이들은 건물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그 높이에 질려서 벌벌 떨고만 서 있는 것입니다.
불은 자꾸만 타올라서 이제는 4층까지 번졌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자기편의 창문에 발을 걸고 건너편 건물의 창문을 향하여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창틀을 붙잡고 몸으로 다리를 만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얘들아, 어서 내 몸을 밟고 건너라. 어서 어서!"
아버지의 외침을 들은 아들들은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몸을 밟고 무사히 옆집으로 건너게 되었으나 자신은 결국 희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다리가 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몸을 밟고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며 다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16:9-11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라고 노래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요 14: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결코 가롯 유다의 배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던 것은 우리들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오늘의 본문 말씀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오래 전에 이미 말씀했던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머리에 쓰시고,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에 찔려서 물과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흘리심으로 우리는,
1) 진홍같이 붉은 우리의 죄가 흰눈같이 깨끗하게 씻김을 받았으며,
2) 그분의 십자가에서 상한 살과 흘리신 피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고
3) 그분의 십자가 희생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형제, 자매들은 31년 전 이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을 육군 제7525부대 포병 제878대대에 배속된 모든 이들에게 베푸시려고 낙원교회당을 세워 주신 주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찬양을 세세영원토록 돌려 드립시다.
할렐루야!!!
출처/박광현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