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96
마음에도 온도가 있다. (눅 24;13-35 )
부활주일입니다.
프랑스의 어떤 회의주의자가 말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빈 무덤의 냄새를 맡고 사는 사람들이다>
비꼬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있습니다.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중에 가장 귀한 말씀입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32)
사람마다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같은 마음은 아닙니다. 네 종류의 마음이 있습니다.
1. 찬 마음
2. 미지근한 마음
3. 따뜻한 마음
4. 뜨거운 마음
네 마음을 살펴 보면서 은혜를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1. 찬 마음
마음이 찬 사람이 있습니다. 겨울 바닷가처럼 찬 바람이 불어 옵니다. 옆에 가기가 싫습니다. 말 한 마디가 냉정합니다. 인정 사정 통하지 않습니다.
사울이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사울은 자기의 목표를 위하여서는 사람을 마구 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치는 다윗을 사랑하고 아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다윗 편을 들고 자기 편을 들지 않는다고 제사장 85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이 살고 있는 놉땅으로 군사들을 보내어 가족까지 몰살시켰습니다(삼상 22;16-19)
사울은 찬 사람이었습니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시베리아같이 얼음덩어리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헤롯도 그런 사람입니다. 헤롯은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혜를 나쁘게 사용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헤롯을 만나면 사람들을 벌벌 떨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하셨을 때 왕이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2살 이하 어린아이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마 2;16) 아내가 10명이었습니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자식이라도, 아내라도 사정없이 죽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헤롯의 가족이 되는 것보다 돼지가 되는 것이 더 안전하다>
헤롯은 70세에 악질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죽을 때 이스라엘에서 존경받는 이들을 강제로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고 말했습니다.
<내가 죽게 되면 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같다. 내가 죽자 말자 이 사람들을 다 죽여라. 그러면 이들 가족이 울 것이다. 그러면 내 죽음 후에 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헤롯은 마음이 찬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만 모이는 교회안에도 찬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 가는 문에는 12문이 있습니다. 동서남북에 각각 3개씩 있습니다. 주석가 바클레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동쪽은 해가 일찍 뜨는 곳이기에 일찍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 들어가는 문이 될 것이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이기에 늘그막에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들어가는 문이 될 것이다. 남쪽은 따뜻한 곳이기에 마음이 따뜻하고 열정적으로 예수를 믿은 사람이 들어가는 문이 될 것이다. 북쪽은 싸늘한 곳이기에 예수를 믿으면서 싸늘하게 믿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마음이 찬 사람이 있습니다.
2. 미지근한 마음
우리가 사는 사회나 교회에는 찬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지만 미지근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라오게아 교회에게 편지 내용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4-16)
사도행전 20장을 보면 유두고라는 청년이 등장합니다. 그는 바울이 말씀을 강론할 때 창가에 걸터 앉아 있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들어 온 것이 아닙니다. 나간 것이 아닙니다. 뜨거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찬 것도 아닙니다. 안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밖을 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지근한 사람입니다.
에스겔은 이 세상은 땅 아니면 물 둘 중에 하나밖에 없는 데 땅도 아니고 물도 아닌 땅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겔 47;11)
개벌과 진펄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미지근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저 그렇습니다.
아주 인색한 사람이 종에게 술을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빈 병을 주면서 술을 사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돈은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종이 물었습니다.
<빈 병만 주고 돈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술을 사오지요?>
주인이 말했습니다.
<돈을 가지고 술을 사는 것이야 누구는 못 하냐? 돈없이 술을 사와야 비범한 사람이지>
인색한 주인이 돈을 주지 않으니까 할 수 없이 빈 병을 들고 술을 사러 갔다가 빈 병만 들고 주인앞에 나타났습니다. 주인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왜 빈 병만 가지고 왔느냐?>
종이 대답하였습니다.
<술이 든 술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야 누구는 못 합니까? 빈 병에서 술을 마셔야 비범한 사람이지요>
이같이 세상에는 미지근한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3. 따뜻한 마음
이 세상이나 교회에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가요? 항상 따뜻한 말만 합니다. 남에게 포근한 말만 합니다.
어떤 자매가 남편을 잃고 너무나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한 성도에게 따뜻한 말을 해주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슬픔을 당하고 있는 그 여인에게 가서 따뜻한 말을 하였습니다.
<태양, 양지쪽, 난로, 곤로, 온천, 싸우나, 숯가마, 태양, 목욕탕, 찜질방, 전기 담뇨....>
이런 말을 한다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아닙니다. 어떤 말을 하는 것이 따뜻한 말일가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긍정적인 말을 하여서 사람들을 포근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사람입니다. 바울같은 사람입니다.
모세가 가데스 바아네에서 정탐군 12명을 보냈습니다. 10명의 정탐군은 이렇게 보고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민 14;1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4;33)
그러나 2명의 정탐군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메뚜기다> <그들은 우리 밥이다>(민14;8-9)
이 말을 듣고 모두 용기를 얻고 나가서 승리하였습니다. 일이 되게끔 하는 이가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사형을 당하기 위하여 로마로 끌려 가고 있었습니다. 그 배에는 276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14년 동안 풍랑에 밀려 배는 이리 저리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사람만 말고 모두 버렸습니다. 사공들은 바다에 능숙한 사람이기에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다 죽음앞에 싸늘하여졌습니다. 그 때 바울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2-25)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안심하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 살아 났습니다. 사공은 사람을 죽이려하는 싸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을 살리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4. 뜨거운 마음
그런데 세상에는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 큰 일을 한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만드는 데 마음이 뜨거운 사람이었습니다. 교회 성장에 뜨거운 마음을 가진 목회자가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 갑니다. 본문은 엠마오로 가다가 마음이 뜨거워져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와 예수님의 부활복음을 생명을 걸고 전한 두 제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의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처음에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 하고 방황하였습니다. 거의 가 다 자기 고향으로 내려 갔습니다. 본문의 두 제자도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두 명의 대화 내용은 자기들의 선생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데 정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대화의 주제였습니다.
엠마오라는 <모르는 길>이라는 의미입니다. 두
명의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하였다는 소문은 들었는 데 도무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날 수 있는 지 모르겠다면서 모르는 길 엠마오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이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감히 예수님일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글로바가 슬픈 얼굴로 대답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 하느뇨.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사형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았으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이뿐 아니라 이 일이 된 지가 사흘 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저희가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 하고 와서 그가 살으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한 우리와 함께 한 자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의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 하였노라>
이 말을 가만히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고 눈이 가려진 그들을 책망하시며 구약에 나타난 메시야 예언을 낱낱히 풀어 주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25리 되는 엠마오에 도착하였습니다. 두 명의 제자들은 목적지까지 왔는 데 예수님은 더 가시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날이 이미 저물었으니 하루밤 더 머믈면서 말씀을 들려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축복 기도하시고 떡을 먹는 데 두 제자의 눈이 열리며 예수님이 예수님으로 보였습니다. 그 순간 주님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두 제자들은 말했습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 하더냐>
그리고 두 명의 제자들은 즉시 일어나 그 밤에 예루살렘으로 올라 갔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기도하다가 불같은 성령으로 마음이 뜨거워진 후 복음을 전하다가 모두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져야 무슨 일이든지 해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마음이 뜨거워질 수 있을 가요?
마음이 뜨거워지는 가장 지름길은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나는 남서울 중앙 교회에서 집회를 하였습니다. 너무나 집안이 가난하여 교회에서 한 달에 30만원씩 생활비 보조를 받는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딸과 어머니 둘만이 살고 있는 모녀 집안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생활능력이 없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지난 번 전국 체육대회에서 싸이클에서 일등을 하였습니다. 500만원의 부상이 나왔습니다. 그에게 500만원은 엄청나게 큰 돈이었습니다. 없을 때는 몰랐는 데 생기고 보니 왜 그렇게 쓰고 싶은 곳이 많았는 지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가장 사고 싶은 것은 자전거였습니다. 싸이클 1등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주일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데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선교임을 알았습니다. 그의 마음은 선교헌금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불붙기 시작하였습니다. 밤이면 드리고 싶어 불타고 아침이면 아까워지고 하기를 몇 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설교하는 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같았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교를 가장 기뻐한다>
그래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튿날 학교에서 싸이클을 사라고 380만원을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삼성에 그 학교에서는 혼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로부터 한 달에 30만원 받던 것을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가정 경제도 다 풀리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뜨거운 사람은 어떤 어려운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마음이 떡워집니다.
어떤 부부가 설날 아침에 떡국을 먹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떡국을 맛있게 먹는지 부인이 한참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한 살 더 먹는 것이 그렇게 좋아요?>
남편이 대답하였습니다.
<암 좋지. 좋고 말고 주님 뵈올 날이 가까워 졌는데 그럼 좋지 안 좋아?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이 먹는 것도 좋아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은 항상 마음이 뜨겁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남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남겼습니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 영생을 남기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한평생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던 한 노목사님이 연세가 많이 드셔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자기 장례식에 틀어 주라고 미리 녹화 케이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을 생각하며 모인 많은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테이프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습니다.
<김 장로님. 그동안 참 고마웠습니다. 내가 목회를 잘 하도록 항상 옆에서 도와주셔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김 장로님. 천국에서 만납시다>
김 장로님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뒤이어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김 장로님. 설교시간에 하품 좀 하지 마세요>
<최 권사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나를 위해서 불철주야 기도하신 그 기도에 내가 얼마나 희망과 용기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권사님.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으니 권사님도 천국에서 만납시다. 그런데 권사님, 졸지 좀 마십시오>
목사님은 한 분 한 분 그렇게 말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천국에서 만나요>
출처/강문호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