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의 2제 (엡 6:4)

할렐루야!!
여러분 반갑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도 크신 사랑으로 함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옆에 사람 보시면서 인사합시다. "반갑습니다." 아주 반가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우리나라에 경차로 제일먼저 나온 자동차가 티코입니다. 아시죠? 이 차가 얼마나 작은데도 잘 달리는지요. 고속도로에서도 이 티코가 참 빨리 달려요. 그런데 티코가 처음 나왔을 때 이런 유머가 돌았습니다. 한국에서 티코를 몰던 사람이 이 차를 독일로 가져갔습니다. 독일의 고속도로 이름은 아우토반입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제한 속도가 있습니다. 100키로에서 110키로.... 그러나 독일의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에는 제한 속도가 없기 때문에 세계의 내노라 하는 자동차는 다 이 아우토반에 와서 그 속도를 뽐을 낸다고 합니다. 바로 이 아우토반에 우리나라 경차인 티코가 나타났어요. 작아도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한참 신나게 달리는데 50키로 70키로 100키로를 넘어가지고 시속이 110-120키로···· 정신없이 올라갔어요. 그러다보니까 그만 너무 지나쳤는지 고장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고치려 해도 안되니까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손을 들고 구조를 요청했는데 커다란 벤츠가 서더니 한 신사가 내려 "무슨 일이십니까? 내가 도와드리겠습니다."고 했습니다.

티코 차주가 자초지종을 말하자 벤츠 차주가 자기 차에 고장 난 티코를 줄로 묶어 견인해서 공장까지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만약에 문제가 있거나 혹시라도 위험한 일이 생기면 경적을 울리세요. 그러면 내가 차를 세워서 문제를 해결해 주겠습니다” 약속을 하고 다시 아우토반을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우토반에 얼마나 많은 차가 다닙니까? 포르쉐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 순간 벤츠 운전자가 갑자기
"속도하면 벤츠인데..." 하고는 포르쉐를 앞서야 하겠다는 생각에 속도 경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벤츠가 200키로까지 속도를 내면서 앞다툼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뒤에 달려 있는 티코 운전자가 큰일이 났습니다.
'야~ 이러다가 죽는거 아닌가? 얼마나 마음이 다급해지는지...'
빵빵 경적을 울리고 그것도 안듣자 라이트를 켜서 알려도 벤츠의 운전자는 경주에 정신이 팔려 있으니 아무 반응이 없는 거에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날 독일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기사가 실리기를 "아우토반에 새로운 강자가 나타났다. 한국에서 온 조그만한 티코가 벤츠와 포르쉐를 추월하려고 경적을 울리고 라이트를 켜더라."

본대로 다 말한다고 맞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따라서 오해할 수 있습니다.
사실과 진실은 같을 수도 있지만 다르다는 것도 여러분은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작은 머리로 얼마나 많은 판단을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도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비판과 정죄를 내 기준에 맞춰서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자녀가 의사되기를 바라며 사는 부부가 있어요. 이 부부는 아이를 이렇게 키웁니다.
“자, 우리 영민이는 이 다음에 꼭 의사가 될 거예요…… 그렇지. 의사가 될 우리 영민이 잠에서 깨어났네요. 그래, 일어났어…… 옳지…… 쭈쭈 한번 할까? 그래, 자~다리 쭉 뻗고…… 의사는 키도 커야 돼요.”
“어이구, 이 다음에 의사가 될 우리 영민이가 이렇게 울면 안 되지요. ……어디가 아파 우는 건가요, 배가 고파 우는 건가요…… 아냐! 기저귀가 축축해서 그러는가 본데…… 그래도 그만한 일 갖고 울면 안 되지요."
무슨 얘기 입니까?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녀에 대한 기대와 꿈을 키웁니다. 아니,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그 아이의 운명을 결정해 버립니다. 부모 자신의 기대와 꿈에 바탕을 둔 그 계획대로 자녀가 커주면 좋겠지만 그러기가 어디 쉬운 일입니까? 자녀의 의사와는 아무 상관없이, 자녀의 능력은 고려치도 않고 부모 맘대로 꿈(부모만의)을 정해 놓고, 자녀보고 그 꿈을 이루라고 강요합니다.

그 꿈을 이루어 주는 자녀도 있겠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자녀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입니까? 혹여 자녀가 부모의 기대대로 자라 주지 않으면 “저 녀석은 누굴 닮아 저럴까”
“저런 자식이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라는 말도 자녀가 보는 앞에서 아무렇게나 말을 내 뱉는 부모들이 있어요. 자녀가 부모들의 기대대로 자라지 않는 게 어디 자녀만의 잘못입니까?

솔직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덜컥 자녀부터 낳고 보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자녀에게 “넌 이렇게 자라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도 몰라 “자녀는 이렇게 키워야 한다”라고 누가 말만 하면 무조건 따라 하며 갈팡질팡합니다. 원칙 없는 자녀 교육, 부모의 기대만 존재하는 자녀 교육, 이것이 우리 자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부모들이 과연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절대 우리 자녀들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아야 합니다.

1889년, 역사를 바꾸어놓은 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 아이는 사촌인 오스트리아인 부부 사이에서 출생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소년은 알코올 중독자인 숙모 밑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16살때 학교를 중퇴하고 극렬분자가 됐습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입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또 다른 한 아이가 같은 해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면서 자란 소년은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입니다. 2차대전을 승리한 장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고 후에 미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아비들이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언제 노여워합니까?

한 부유한 집에서 자라난 아들과 가난한 집에서 자라난 아들이 성장해서 만났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사람은 항상 부모에 대해서 불만이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 부모는 나에게 무엇을 남겨준 것인가? 나보고 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렇게 밖에 나를 성장시켜주지 못했는가?’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둘이서 술을 한잔하면서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가난한 집에서 자란 사람이 부유한 집에서 자란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만일에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너만큼만 자산을 물려주었다면 나도 일찌감치 내 사업을 이끌어서 지금쯤 나는 아주 훌륭한 사업가가 되었을 거야”
무슨 말이에요? 자기는 재산을 못 물려받아서 이렇게 가난하고 힘들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 부유한 집에서 자란 친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 말에 동의 할 수 없어. 너 알다시피 우리 아버지가 부자였잖아. 그러나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돈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야. 네가 보기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에게 돈을 물려받아서 내가 내 사업을 꾸리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가본데... 그렇지 않아.
나는 우리 아버지에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지’ 그 습관, 태도 등을 본받았어.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돈은 안 물려주셨어. 유감스럽게도 너에게 돈을 물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의 네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 너에게는 성공 모델이 없었던 거야”

우리는 자꾸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 맞습니다. 물려받은 것이 없어서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돈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 좋은 정신적 태도, 좋은 가치관 ... 그런 것들을 우리가 못 물려받아서 지금 보다 우리가 더 성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잠언1장 20절에 “지혜가 거리에서 부르며...”
라는 말씀처럼 얼마든지 우리는 부모 말고도 지혜를 이 세상에서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91)는 그에게 음악을 배우러 찾아오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당신은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하루는 모차르트에게 음악을 배우러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모차르트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그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예,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쳤고, 바이올린도 한 10년을 배웠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모차르트는 “수강생으로 받아는 들이겠으나 수업료는 원래의 두 배를 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보다' 생각을 하고 묵묵히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청년 한 명이 와서 그의 수강신청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물었습니다.
"당신은 음악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그 청년은 "전에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모차르트가 음악을 모르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뜻 밖에도 "좋습니다. 수업료는 반만 내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미리 와 있던 청년이 모차르트에게 항의하듯 물었습니다.
"왜 음악을 전혀 모르는 저 사람에게는 수업료를 반만 내라고 하시고, 10년이나 음악을 공부한 저에게는 수업료를 두 배로 내라고 하시니 그건 부당한 처사가 아닙니까?“
그러자 모차르트가 그 이유를 말해 주었습니다.
"아닐세, 내 입장에서 보면 음악을 이미 배운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내 입장에서 보면 잘못 된 습관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야 “
습관을 잘 못 들이면 고치기가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좋은 습관은 어렸을 적부터 형성을 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들은 바로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형성시켜 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조금 자랐을 때 검소하고 소박하게 길들이지 아니하면 반드시 사치스럽게 되고, 부지런함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반드시 게으르게 되고, 참는 버릇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늘 다투게 되고, 겸양하고 공손한 버릇을 가르치지 아니하면 반드시 거만하게 됩니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이미 성장한 사람들은 그만 부모들에 대해서 그만 노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성장한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더 이상 노엽게 할 수 있는 원망들을 수 있을만한 잔재를 남기지 말아야 되겠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자녀교육의 첫 번째 계명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두 번째 계명은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십니다.
1)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십시오
개역성경에는 교훈이라는 말보다는 교양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여러분 교양이 뭡니까? 태도입니다. 지식을 가지고 취하는 태도를 교양있다 라고 하는 겁니다. 교양있는 사람은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압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줍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보고 사람들이 돌을 들고 "쳐 죽일까요?"했더니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사람 돌로 치라" 다 돌아갔어요. 그러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가서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정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능성을 보고 다시는 가서 죄를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의 교양으로"라고 하는 말은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을 귀히 여기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상대방의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습을 보셨을 때 어느 누구하나 예수 믿을만해서 믿을 만한사람 없습니다. 다 죄인입니다. 다 지옥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가능성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한다는 말입니까? 누가 누구를 싹수가 있다 없다 얘기를 합니까? 주님의 교양은 우리의 가능성을 보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존심이 우리에게 있어요. 적어도 우리는 상대방의 명예와 체면을 보고 우리는 지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부모와 자녀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의 사정과 행동을 모르고는 자녀를 지도할 수 없는 것이다. 자녀가 부모에게 말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때에 부모가 먼저 앍고 은근하게 잘 조처하면 그 자녀는 부모를 더욱 믿고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여간 일에는 간섭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는 암만 옳은 말이라도 수다스러우면 듣는 이가 귀찮게 여기는 것 당연한 것 아닙니까?.
둘째는 매사를 간섭하면 자녀가 일을 제 의사대로 하여볼 용기가 나지 않고 일을 꾀하기를 두려워하며 겁이 나서 자주 자립하는 정신이 발달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는 사람이란 일의 잘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주의 교양으로 상대방을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서울대 교수가운데 이면우 교수라고 계십니다. 신바람 교육을 제창하신 분입니다.
『 자녀 교육 10계명 』

1. 자녀를 깍듯이 예우하라.
2. 고집 센 자녀를 지원하라
3. 칭찬을 해도 남과 비교하지 마라
4. 큰 일에 실패한 자녀를 격려하라
5. 선택의 자유를 반복 훈련하라
6. 사람이 주는 상을 탐내지 마라
7.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8. 외로움을 극복하도록 가르쳐라
9. 전문가가 되도록 당부하라
10.부모는 최후의 안식처가 되어라

교양있는 부모는 자녀를 깍듯하게 예후할 뿐더러 그 자신이 자식들에게 안식처가 된단말입니다. 이 세상 어딜가도 위로 받을 수 없어도 내 부모님께만 오기만 하면 위로받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최근에 상영 됐던 영화 가운데 ‘말아톤’이라고 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본래는 '마라톤'이라고 해야 하는데 '말아톤'이라고 하는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그렇게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22살의 자폐아 청년이 있습니다. 나이는 22살이지만 그의 지능은 5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 아들을 갖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힘들고 답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의 어머니 박미경씨의 인고의 노력이 오늘의 배형진군을 만들었는데 그 일이 너무나도 감동적이기 때문에 영화로 만들어지고 엄청나게 많은 관객들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 영화 속의 실제주인공인 배형진 군의 이야기가 TV와 신문을 통해서 계속 소개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말아톤’ 영화가 그렇게 많이 사람들을 동원하게 되리라는 것을, 개봉 전에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폐증’이라고 하는 장애를 가진 배형진군의 이야기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하리라는 것을 미처 짐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1년 춘천마라톤대회에서 42.195km의 풀코스를 2시간 57분 만에 완주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다음 해에는 철인 3종(수영, 사이클, 마라톤) 마라톤 경기까지 치러냄으로써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정신연령이 다섯 살에 불과한 형진이가 신체 건강하고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여간해서는 하기 힘든 일을 달성한 것입니다. 어떻게요? 정신연령이 5살밖에 안되지만 이 신체는 22살의 청년이라는 것을 착안했습니다. 정신을 보지 않고 육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너에게 좋은 육체를 줬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그 영화 속에서 나오는 대사 중, 요즘 최고의 유행어가 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 초원이 몸매는 끝내줘요~’
라고 하는 말, 그리고 ‘방귀는 나가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초원이 엄마는 기회 있을 때마다 “초원이 다리는?”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초원이는 “백만 불짜리”하고 응답합니다. 그리고 다시 엄마가 “초원이 몸매는?”하고 물으면 “끝내줘요~”하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자기암시를 하게 함으로써, 형진 군의 어머니는 그 아들로 하여금 용기와 소망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형진 군이 마라톤을 마치고 난 다음에 꼭 하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엄마, 또 해냈어요!” 그리고 “난 행복해요!”라는 말한답니다.

여러분 우리자녀들에게 교양있게 대해야 합니다.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존심을 세워줘야 합니다. 귀하게 여겨 줘야 합니다. 그리고 깍듯하게 예후를 하고 부모는 최후의 안식처가 되야 합니다. 주의 교양-주님은 한번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비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가능성을 보고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를 존귀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자녀를 실패하게 하는 10가지 계명 중에 남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너는 제 같지 않냐?" 여러분 우리는 제 같은 애로 키우면 안됩니다. 제하고 다른 아이로 키워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어머니는 ‘사랑한다’와 ‘네 능력을 믿는다’는 두 마디로 아들을 길렀다고합니다. 새 아버지가 수없이 바뀌었지만 클린턴이 훌륭하게 자라나 대통령이 된 것은 어머니가 심어준 사랑과 자신감 덕분이었다는 겁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우리는 교양있게 해야 합니다. 성의 있게 해야 합니다.

한 포도열매를 보고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왜 이 포도는 이렇게 살이 쪘고 이 포도는 빼빼 말랐어요?" 엄마가
“뚱뚱하면 어떻고 홀쭉하면 어떠냐. 그냥 먹어둬!”그러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뚱뚱한 포도는 부지런해서 열심히 영양분을 빨아먹어서 그렇고, 빼빼 마른 포도는 게을러서 영양분을 안 빨아먹어서 그래”
아이들의 질문에 성의껏 답해주어야 합니다. 한번쯤은 성의있는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않아요? 하찮은 물음이라도 아이에게는 큰 문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홀히 취급하지 않고 인정하며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꾸지람을 많이 받으면서 성장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을 비난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만약 어린아이가 수치심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면 죄의식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대신에 어린아이가 격려를 받으며 성장을 하면 고마워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꾸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하지도 못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다 걸고 문제를 일으키면 어려서 부모에게 너무 공격을 받으면서 성장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자녀에게 교양있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자존감을 세워주면서 귀하게 여기면서 믿어주면서 키우라는 것입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뭘 그렇게 꾸물대? 시계 안보여? 벌써 15분인데 보나마나 또 지각이다."
이 아이는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지각하고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게 마련이다.
좀 늦게 일어나도 "엊저녁에 늦게 자더니 일어나기 힘들었구나. 지금 15분이지. 괜찮아. 넌 아빠 닮아서 달리기는 끝내주잖아. 빨리 뛰어봐."
이 아이는 신나게 달려가 지각을 면하고 자리에 풀썩 앉으면서 생각한다.
'역시 난 아빠 닮아서 달리기는 끝내주는 구나.'

"오늘 시험 영어지? 또 아는 거 틀리지 마라. 지난번 같이."
이 아이는 겁먹은 채 이름을 힘없이 적고 시험을 보기 시작한다.
"오늘은 영어야? 이번에 열심히 했잖아. 실력발휘 한번 해봐. 오케이?"
그러면 이 아이는 '내가 아는 것만 나오겠지'하고 믿으며 자신감을 갖고 시험을 치룰 것입니다.

아침부터 자식의 기를 살려 어머니와 기를 죽이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침부터 자녀를 실패자로 만들어 내보내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아침에 부모가 만들어준 태도는 하룻동안 아이의 성패를 좌우하게 됩니다. 할 말이 없더라도 등에다 대고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요.
"어머나, 우리애가 벌써 이렇게 이뻐지네. 어깨가 벌어지네.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이 도와 주실꺼야." 복을 빌어 주시기 바랍니다.
심리학적으로 본 좋은 아버지는 이렇게 한다고 합니다.

유아기 자녀 - 젖먹는 아기에게는 엄마만큼이나 아이의 볼에 뺨을 비비고 그냥 흥얼거리면서 만져 주며 늘 흐뭇하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아버지

아동기 자녀에게는 - 손을 잡고 무등을 태워주며 귀찮을 정도로 많은 사소한 질문에도 마치 웃어른에게 설명하듯 자세히 말해 주고 반듯한 자세를 보여주면서 여러 가지 소리나 동물 의 행동을 흉내내면서 같이 놀아주는 아버지

청소년 자녀에게는 - 최근 유행하는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있고 자녀와의 의리를 중시하며 엄마 몰래 용돈을 주거나 목욕탕에 같이 가며 머리를 맞대고 학교 숙제를 같이 할 수 있는 아버지

청년 자녀에게는 - 당당하게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기쁨과 울분을 함께 하며 자신과 나라의 앞일 을 내다보고 뜻을 키우는데 의기투합할 수 있는 아버지
아이들이 청년이 되니까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요.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장년 자녀에게는 -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경험을 자녀와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회상하며 뜻을 모아 작은 일에서부터 정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아버지

노년 자녀에게는 - 찬송가를 흥얼거리며 풍족하진 않지만 여유있게 살았노라고 감사하며 남을 위해 봉사하고 농익은 삶의 지혜를 나누는 아버지

자신에게는 - 언제나 남을 생각하고 욕심을 줄이며 구도하는 자세로 인생을 마무리하겠다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아버지

이런 아버지라고 보고를 하고 있습니다.

2) 오직 "주의 훈계로 양육하십시오.
훈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강요가 좀 있습니다. 내 지식이나 경험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줄때 자녀들이 무엇을 느끼겠습니까?

세계적인 흑인 농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는 수 백종의 농작물의 씨와 농작물에서 얻는 기름을 개발하는데 탁월한 공로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국 상원에서 그를 초청해서 그의 공로를 기리고, 치하하기 위하여 조그마한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사회자가 카버 박사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박사님, 당신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초인간적인 발명과 개발을 하는 대단한 업적을 가질 수 있었읍니까?"
그랬더니 그 말을 들은 카버 박사는 손에 들고 있던 성경을 높이 들면서
"모든 조화는 여기에서 나옵니다." 라고 답변했습니다.
이때 어떤 상원의원이 약간 비웃는 듯한 말투로
"아니, 박사님 낙화생 기름 짜는 법도 그 책에서 배웠나요?" 라고 물었읍니다.
그러자 카버 박사는 대답하기를
"낙화생 기름 짜는 법은 성경에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인간과 이 세계를 더 행복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께서 이 책을 통하여 나에게 자기와 함께 일하자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는 참으로 깊은 진리가 담겨 있읍니다. 카버 박사는 왜 학문을 하게 되었읍니까? 하나님이 일하자고 하셨기 때문에 학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까? 성경을 통해서 들었다고 카버 박사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학문을 해도 하나님과 동사하며 연구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속 연구하는 분야에 지혜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지요...

이런 제목의 글을 보았습니다. “기독교는 어찌하여 지난 2천년 동안 계대교육에 실패하였는가?”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오늘날의 신앙의 시작은 예루살렘의 오순절 성령강림절에 다락방에서 시작됐습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 민족에게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민족이 다른 민족에게는 복음을 전하고 자기 민족교회는 죽었습니다.

우리 지난 수요일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수요일에는 선교사를 파송을 했고 그 주일에는 "선교하는 기쁨"에 대해 설교를 했는데 우리나라는 선교사파송에 있어서 세계2위입니다. 만 팔 천명이 백 오십 국가에 있습니다. 대단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한국 교회가 예루살렘의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나하는 염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2천년 동안 계속 다른 민족에게 복음은 전하고 자기 민족교회는 죽어왔다. 현재 한국 교회도 2세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90%이상이 교회에 안 나간다. 교회교육과 가정교육이 90%이상 실패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은 어떻게 아브라함부터 현재까지 4천 2백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수하고 살았습니까? 어느 통계는 유대교는 1년에 325시간 성경교육을 시키는데 비하여 카톨릭은 200시간, 개신교는 50시간 교육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당연히 을우리 후손들에게 말씀을 전해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행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구원만 강조했고 하나님의 자녀되는 것만, 새 생명 얻는 것만 강조했지 말씀안에 살아가는 것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믿어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 속에 이러한 축복과 은혜가 계속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제 자식들에게 이 5가지를 늘 말합니다.

첫째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는 기도해야 한다.

셋째는 많이 강조하는 건데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노회가 있었고 노회임직식이 있었는데 목사안수 받는 목사들에게 무슨 말씀을 증거 할 까 하다가 저는 이 목사님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목사가 왜 있는거냐?" 교인들 때문에 우리가 있고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있는 거다. 내가 잘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
감사해야지요. 자식들은 부모에게 감사를 하고 부모는 자식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넷째는 검소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가 소비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카드를 너무나도 많이 씁니다. 그러니까 이 카드 때문에 가정들이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좀 검소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판이나 정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봐주면서 격려하고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겁니다.

이 다섯 가지를 자녀들에게 강조합니다. 성경, 기도, 감사, 검소한 생활, 비난보다는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에 자손대대로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축복의 가문으로 만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